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41화 (141/225)

EP.141 15장. 여인, 노인, 어린아이를 조심하라 - (9)

“… 검후님의 절기, 배워볼래요?”

“제가요?”

“네, 일청.”

독고령이 검후를 쳐다보며 말했다.

“검후님.”

“그래.”

“검후님이 절기를 전수해주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절기가 안 끊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크신거죠? 거기다가 제가 구양신공을 넘길만큼 혹할만한 게 검후님의 절기 뿐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고요.”

“… 그렇노라.”

“그럼 꼭 제가 아니더라도 괜찮지않나요?”

“흐음…”

검후가 고민하듯 망설이자, 오히려 위일청이 당황하며 독고령을 말렸다.

“려… 령. 저는 굳이…”

“일청도 배우면 좋잖아요?”

“그렇긴 한데…”

“오는 길 내내 검신 영감님의 절기에 대해서 얘기했던 거 기억나요?”

“기억납니다.”

“근데 거의 못 익혔죠.”

“… 그렇긴 하죠.”

“아마 일청의 무재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상성이 안 맞는 게 아닐까요?”

“… 예?”

독고령이 손을 휘적거리며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 검후님의 절기는 좀 더 뭐라고 해야지… 엄청 넓은 느낌이란 말이에요?”

“네.”

“하지만 검신 영감님의 절기는 꾹꾹 눌러담는 느낌이에요.”

독고령이 자연스레 일영기를 손 안에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거 처음 만들어 낼 때, 저는 그냥 어떻게든 음기와 양기를 섞는 느낌으로 좀… 그… 으으… 이렇게…”

독고령이 허공에 이래저래 손짓하며 음기와 양기의 움직임을 보여주자, 검후가 대강이나마 어떤 느낌인지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반이 다르구나. 너는 태극을 기점으로 삼아 스스로를 완성하였으나 본녀는 애초에 태극을 기반으로 삼지않고, 공(空)을 기점으로 삼아 서로 맞지 않구나.”

“… 무슨 소리세요?”

“너는 천하를 두 개로 나눠보지만, 본녀에겐 하나란 얘기니라.”

“…”

독고령은 뜻 모를 검후의 말을 이해하길 포기했다.

“위일청.”

“예, 검후님.”

“그대의 무재가 뛰어남은 알고 있다. 동물의 모습을 따라 만든 그대의 검술은 인상깊었노라.”

“… 부끄럽습니다.”

“그대의 내공 또한 본녀의 절기를 감당하기 충분한 것을 알고 있노라. 무슨 기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에 만났을 때보다 내공의 량이 훌쩍 늘었구나.”

“…”

독고령은 한순간 위일청과 눈이 마주치자,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게다가 그대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소녀경이 본녀의 심법과 똑같이 이미 조화의 묘리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심법이니 이 또한 본녀에겐 호재니라.”

검후가 위일청에게 손을 뻗으며 물어보았다.

“본녀의 절기를 배워보겠느냐?”

“…”

위일청은 검후를 한 번 바라보고, 독고령을 바라보았다.

마치 ‘정말 내가 배워도 되나요, 령?’이라고 묻는듯 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독고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위일청은 다시 한 번 검후를 바라보고, 넙죽 고개를 숙였다.

“… 흑룡강의 위씨세가에서 온 위일청이라 합니다. 사제간의 예를 갖추려 합니다.”

“보타문에서 나고 자란 서교라고 한다. 새로이 제자를 받아 기껍구나.”

위일청과 마주 인사를 하는 검후를 보면서 백리소현이 조용히 독고령을 손짓으로 불렀다.

“자리를 비워주자, 령 매.”

“그래.”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하늘이 거무죽죽하여 언제라도 비를 쏟아낼 기세인 것을 보고 독고령은 얼굴을 찌푸렸다.

“… 괜히 절기 하나 배우겠다고 했다가 날씨가 이 꼬라지네.”

“그러게.”

비를 피하기 위해 처마 아래에 자리잡고 독고령이 앉자, 백리소현이 그녀의 옆에 따라앉으며 물었다.

“령 매.”

“응?”

“… 아깝지 않아?”

“뭐가? 절기?”

“응.”

“음…”

독고령은 잠시 턱을 긁적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영감님한테 배운 절기만으로도 차고 넘쳐.”

“하지만 날씨를 바꿀 정도로 대단한 검법인데? 전설로 남지 않을까?”

“그러겠지.”

“그런데도 안 아까워?”

“응.”

독고령이 피식 웃으며 백리소현에게 말했다.

“정 배우고 싶으면 나중에 일청한테 배우면 되니깐.”

“… 그래?”

“저거 하나 안 배웠다고 내가 약한 것도 아니고 뭐…”

독고령은 조금 부끄러운듯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 일청이 세지면 나도 좋고.”

“령 매, 령 매.”

“… 왜?”

백리소현이 독고령을 바라보다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령 매는 좋은 아내가 될 거 같아.”

“흐엑?! 나… 나는 위일청이랑…!”

“응? 누군지는 말 안 했는데에~?”

“아이… 진짜 좀…!”

“히힛. 령 매는 참 귀엽단 말이지.”

“껴안지 말고 좀…!”

독고령이 덮쳐드는 백리소현을 피해 이리저리 버둥거리는 사이.

처소의 문이 열리고 검후가 나왔다.

“… 여색에도 취미가 있었느냐?”

“아니거든요!!”

“하긴. 위일청이 있는데 여색을 탐하는 것도 이상하구나. 일어나거라, 밥 먹으러 가자.”

“지금요? 일청이랑은 얘기 안 나누고요?”

“숙제를 줬으니 해결은 저 아이가 하겠지. 너한테도 관계가 있겠구나.”

“… 제가요?”

독고령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검후가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들어가 낭군님께 물어보거라.”

“나… 낭군 아니거든요!”

“미래의 낭군님 정도로 해두자꾸나. 소현 아가, 같이 가겠느냐?”

“네, 검후님. 먼저 갈게, 령 매. 낭군님이랑 놀다와?”

“아… 아니라고!!!”

검후와 백리소현이 먼저 주방으로 가자, 홀로 남은 독고령은 잠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 일청. 안에 있어요?”

“네, 령.”

“검후 님이랑 둔치는 먼저 밥 먹으러 갔어요. 같이 갈래요?”

“음… 그게…”

“응?”

위일청은 어딘지 곤란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검후 할매가 괴롭혔어요?”

“이젠 제 스승님이시니 조금만 말을 조심해주시면…”

“… 미안해요.”

“아닙니다. 뭐… 괴롭힘 받은 것은 아닌데 조금 괴로운 숙제를 받았습니다.”

“네?”

위일청이 독고령을 보며 미안하다는듯이 말했다.

“… 한동안 밤일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 네?”

“먼저 색욕을 버리라고 하시더라고요.”

독고령이 주저앉았다.

*

검후의 처소를 박차고 나가 식당으로 들이닥친 독고령은 서교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따졌다.

“아니익…! 왜…!”

“후훗, 봤느냐? 내가 말한대로지?”

“그러게요. 령 매는 정말 바로 뛰어오네요.”

“이 아이도 욕심이 참으로 많은 아이니라.”

“무시하지 말고욧!!”

쾅!

독고령이 탁상을 내리치자, 식당 내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주목되었다.

그러자 조금 정신을 차린 독고령이 검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왜… 왜 밤일을 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그게 시작이니라.”

“아니이… 무공 익히는 거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끌끌끌. 네 년의 머릿 속에 음탕함이 가득차있구나.”

“이해 안 가는 소리 하지 마시고욧!!”

독고령이 다시 한 번 빼액 소리를 지르자 검후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턱짓했다.

“여기가 어디냐?”

“식당이요.”

“그거 말고. 여기가 무슨 문파더냐?”

“… 보타문이요.”

“그리고 보타문은 아미파나 소림사만큼 규율이 빡빡하진 않지만, 일단은 불문의 한 갈래니라. 불가의 무공은 다른 곳의 무공과 또 다른 법이지.”

검후가 일어나더니 자신이 먹은 밥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따라오거라.”

“…”

다 먹은 밥그릇을 들고 식당 옆의 우물가에 찾아간 검후는 자신의 손으로 밥그릇을 닦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불가 무공의 시작은 공(空), 즉 비움이니라. 속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욕칠정을 이겨내는 것에서 시작하지.”

“오욕칠정이 뭔데요?”

“오욕은 재물, 명예, 음식, 수면, 색을 탐하는 욕망이며, 칠정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망의 일곱가지 감정이니라.”

그 말을 들은 독고령은 재빨리 검후의 말에 반박했다.

“… 자기도 위일청이랑 잤으면서.”

“본녀는 살면서 섬 밖으로 나가본 일이 거의 없었기에 되려 오욕칠정에 대해 몰랐노라. 그런 삿된 것도 경험해보고 나서야 버릴 수 있는게지.”

“…”

“위일청은 색욕이 넘치는 아이니라. 살면서 단 한 번도 여자가 궁해진 적이 없겠지. 그러니 오히려 그것을 놓는 것에서 깨달음이 시작되는게야.”

밥그릇을 다 씻은 검후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닦아둔 밥그릇을 원 위치에 놓고는 식당을 나섰다.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독고령은 계속하여 검후를 설득했다.

“아니이…! 무공은 그냥 가르쳐주면 되는 거 아니예요?”

“네 년은 오성이 지나치게 뛰어나 구렁이가 담 넘듯이 쉽게 배웠을지는 모르나 위일청은 어설프게 배워서 될 일이 아니야.”

검후가 잠시 멈춰서더니 독고령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제의 연을 맺었으니 속세의 모든 것을 떨쳐내라고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본녀 또한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니라.”

“…”

“그러니 괜히 낭군님 앞길을 막는 짓은 하지 말거라.”

“나… 낭군님 아니라고욧!”

“여튼. 2주간은 몸을 섞지 말란 얘기니라.”

“2… 2주욧?!”

“고작해야 2주 밖에 안 되는 것을 뭘 그리 어려워하느냐?”

“아… 아니이…”

독고령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 일청이 누군지 아시잖아요! 걔 색마예요. 2주나 야한 짓을 못 하면…”

“예끼, 이 년아. 본녀는 평생을 색욕과 떨어져 지내도 괜찮았어.”

“아… 으으…”

안절부절 못 하는 독고령을 바라보며 검후가 말했다.

“이 참에 너도 같이 수행을 해보는 것은 어떻느냐? 네 년은 오욕 중에서도 ‘색욕’이 너무 많아.”

“아… 안 음탕하거든요, 저!!”

“그런 년이 음란검이라 불리느냐?”

“흐엑?!”

“끌끌끌. 무명은 강호인의 시선이니라. 천하의 동도들이 네 년을 음란하다 여기는데 혼자서 아니라고 바락바락 우겨봤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지.”

“그… 그건 멸칭이잖아욧!”

“마음에 안 들면 그 무명을 붙인 호사가를 찾아가 따지거라. 여튼 본녀는 가 보마. 위일청이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구양신공을 요구할 터이니 미리 준비해놓거라.”

“아… 으으…”

어떻게든 검후의 말을 돌려놓고 싶었는지 독고령이 그녀의 옷깃을 붙잡으려다가…

꾹 참고 손을 거뒀다.

그 모습을 보고 검후가 피식 웃었다.

“행여나 일영기를 쓰다가 양기가 부족해졌다는 헛소리는 말거라. 정 부족하면 양기를 담은 내단이라도 내어줄 터이니.”

“…”

검후가 그대로 자리를 뜨자, 홀로 남은 독고령이 두 손을 벌벌 떨었다.

“2… 2주? 칠주야를 두 번?”

“령 매, 정신차려.”

“아… 으아아…”

“…”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독고령을 보고 백리소현은 그녀를 껴안아 토닥여줬다.

“… 2주만 참아, 령 매. 응?”

“으아아… 2주를 어떻게…”

“하아…”

백리소현은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서 계속, 독고령을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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