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40화 (140/225)

EP.140 15장. 여인, 노인, 어린아이를 조심하라 - (8)

“오…”

“어떠냐? 멋지냐?”

검후가 씨익 웃으며 절벽에 멈춰섰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너머로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보였다.

한없이 넓은 바다를 보고 있자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 멋지네요.”

“이래서 내가 이 곳에 자리잡았던 선조분들에게 감사하고 사느니라. 이렇게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본녀의 작음을 깨닫고 겸허함에 대해 되새기곤 하지.”

“근데 굳이 왜 여기로 데리고 온 거예요?”

“절기 때문에 그렇노라. 본녀의 절기는 음… 원래부터 바다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거라 위력이 너무 강하거든.”

“…”

담담하게 바다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독고령은 넋이 나갔다.

‘저 할망구도 어딘가 이상한 할매였네.’

이렇게 거대한 바다와 맞서싸울 생각을 하다니...

독고령이 요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검후가 말했다.

“먼저 하겠느냐? 준비가 오래 걸리면 본녀거 먼저 보여주지.”

“아뇨. 바로 할게요.”

잡생각을 떨쳐낸 독고령이 일영기를 끌어올렸다.

아직까지 양기는 여유 있었으나 이 뒤에 절기를 배우기 위해 조금만 남겨두고 독고령은 아낌없이 양기를 뽑아냈다.

아무리 검후에게 배우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지기 싫은 마음 또한 존재했기에 독고령은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일영기를 끌어내 도에 담아냈다.

독고령의 유성도에 선명하게 맺힌 분홍빛 일영기를 보며 검후는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남궁원청의 절기는 무색이었는데 너는 분홍색이구나.”

“… 사람마다 다 다른 법이죠, 뭐.”

독고령이 상단세를 잡고,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흡!”

깔끔하게 내리쳤다.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평범한 내려치기였으나 그 여파는 엄청났다.

“…”

옆에서 독고령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지켜본 위일청은 한 순간 세상이 반 쪽으로 잘렸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 아무 일 없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바다는 여전히 파도치고 있었고, 하늘은 그저 맑았다.

하지만 위일청과 검후는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 무시무시한 절기였네요, 령.”

“어처구니가 없구나.”

“… 예?”

백리소현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한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위일청이 말했다.

“… 저기 보세요, 소현.”

“응?”

위일청의 손 끝을 보자 그녀의 시야 멀리 조각난 구름이 보였다.

“… 저거 령 매가 한 거야?”

“그런 거 같습니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한순간 등이 오싹해졌어요.”

“…”

독고령이 칼을 집어넣자, 검후가 그녀를 품평하듯 이리저리 쳐다보았다.

“… 왜요?”

“참 신기하단 말이지. 정녕 남궁원청의 절기를 네 것으로 만들었구나.”

“전에 한 번 보셨잖아요?”

“이렇게 느긋하게 보는 것은 또 별개의 얘기노라. 어디까지 베었느냐?”

“… 대충 시야가 닿는데 까지요?”

“한 없이 날카로운 검이구나. 남궁원청 그 놈과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은 다른 듯 하고… 여튼 네가 본녀의 절기를 잇기는 충분해 보이는구나.”

검후가 정말 놀란듯 하자, 독고령은 득의양양해졌다.

씰룩대는 입꼬리를 억누르는 모습을 보며 백리소현과 위일청은 웃음을 참기 바빴으나, 검후는 그 모습이 귀여워보였는지 같이 미소짓고는 독고령과 자리를 바꿨다.

“이젠 본녀의 차례구나. 음… 본녀의 절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술이니 보고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뭘 경고까지하고 그러세요?”

“본녀의 절기는 화려하거든.”

검후가 가볍게 검을 뽑아들자, 그녀의 기세가 달라졌다.

마치 독고령과 경쟁이라도 하겠다는 듯 똑같은 상단세를 취하는 순간…

“… 윽!”

검후의 몸에서 한없이 많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내공이 뿜어져나왔다.

그 내공의 량이 얼마나 많은지 내공이 많다고 자신하던 위일청과 독고령마저 사색에 질렸고, 백리소현은 무의식 중에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자신을 보호했다.

그리고…

후웅!

검후의 검이 아래로 내리그으며 강풍이 일었다.

“크윽…!!”

콰과과곽!!

어찌나 강한 강풍이던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미친 할매가…!!’

거센 바람이 다 지나가고 다시 눈을 뜬 독고령의 시야에 보인 것은…

“엑…”

바다가 갈라져있었다.

방금까지 시야에 보이던 그 넓은 바다가 검후가 내려친 검을 기준삼아 좌우로 갈라져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차례 갈라진 바다는 다시 맞부딪히며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고, 시야의 끝엔 갑작스레 생겨난 용권풍이 보였다.

“… 이런. 점심 즈음에는 비가 내리겠구나.”

“…”

“어떻느냐? 이게 본녀의 절기니라. 원래는 폭풍우를 좀 잠잠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검술이라 범위가 조금 큰 게 흠이지만…”

갈라진 바다가 다시 모여들며 검후의 뒤로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다.

“배워보겠느냐?”

“…”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짭짤한 바닷물을 느끼며 독고령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검후의 말대로 조금씩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자, 일행들은 검후의 처소로 자리를 옮겼다.

바닷물에 젖어버린 옷을 갈아입고는 검후가 대접해준 차를 마시고 있는 와중, 검후가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얌전해졌구나, 령아야.”

“… 괴물이셨네요, 할머니.”

“예끼!”

검후가 귀여운 얼굴로 빼액 소리쳤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가만히 두지 않을게다.”

“… 뭐라고 부를까요, 그럼?”

“그냥 검후님이라고 부르거라.”

“… 예, 검후님.”

검후의 절기의 제대로 된 위력을 견식한 뒤, 독고령은 얌전해졌다.

‘아니… 내가 저걸 맞받아쳤네…’

천하에 정말로 바다를 가르고, 날씨마저 뒤바꿀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검후가 검을 한 번 휘두른 대가로 잠시 소나기가 내렸고, 멀리서 용권풍이 다가오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독고령은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저 작은 몸으로 자연재해를 일으킬 신위를 보여줬으니 아무리 독고령이라 할 지라도 경외감을 느끼며 얌전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정신차리거라.”

“… 듣고 있어요.”

“크크큭, 한 번 보여주길 잘했구나. 얌전해진 게 본녀의 마음에 쏙 들어.”

“… 그래서 저걸 저한테 가르쳐주시겠다고요?”

“그렇노라.”

그 말을 듣고 옆에서 백리소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응? 소현 아가는 왜 그러느냐?”

“아… 죄송합니다. 앞서가는 령 매를 뒤쫓아갈 생각에 그만…”

“뒤쫓아가겠다고?”

“… 네.”

검후가 왜 굳이 되묻는지 모르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백리소현을 보며, 검후는 포근하게 웃었다.

“따라갈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고된 길이라도 목적지에 이를 수 있겠지.”

“… 네?”

“아무 것도 아니다. 너도 듣다보면 얻는 것이 있을 터. 잘 듣도록 하여라.”

“네, 검후님.”

검후가 독고령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손을 내밀었다.

“령아야.”

“… 네.”

“손을 줘서 아까 그 기운을 다시 일으켜보거라.”

“일영기요?”

“일영기라고 부르는구나, 후훗.”

“아…”

무심결에 자신이 붙인 절기에 대해 말해버리자, 독고령은 얼굴을 붉히며 위일청을 쳐다봤다.

다행히도 위일청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독고령을 보고 마주 웃었으나…

“귀여워, 령 매.”

“하으으…”

백리소현이 배실배실 웃는 것을 보고 독고령은 고개를 푹 숙였다.

“후훗, 좋을 때로구나.”

“… 합니다?”

“그래.”

독고령이 검후의 양 손을 붙잡고 각각의 손에 양기와 음기를 끌어올렸다.

“…”

“…”

“이게 다냐?”

“이러고 이제 합치는데요?”

검후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듯 당황하자, 독고령도 당황했다.

“… 왜요?”

“완맥을 잡아봐도 되겠느냐?”

“… 싫어요.”

독고령은 혹시나 또 귀신같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 싶어서 슬그머니 팔을 뺐다.

“… 하긴. 이해하노라.”

“예?”

검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미 정체를 들켰나 싶어 독고령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무인이 타인에게 완맥을 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럼 몸 내부에 음기와 양기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나 얘기해보거라. 상황을 알아야 본녀도 뭘 얘기하지 않겠느냐?”

“…”

“그것도 싫은게냐?”

“아… 아니요…”

독고령은 마음 속으로 씻을 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다.

‘… 이 할매도 아는 거 아냐?’

독고령이 미심쩍게 쳐다보자, 검후는 묵묵히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 에이, 아니겠지.’

검후가 아무 반응이 없자, 독고령은 그제서야 입을 열어 자신의 내부 상태를 설명했다.

“… 하단전에 음기가 엄청 많고요, 얘가 미쳐 날뛰어서 중단전에도 올라가고 그래요.”

“양기는?”

“… 상단전에 조금 남겨둔 거랑… 그…”

독고령이 잠시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 일청을 통해서 얻은 걸 상단전에 모아놔요…”

“음양교합을 통해서 양기를 얻는구나.”

“으으…”

“흐음흐음… 위일청.”

“예, 검후님.”

“그대가 언제 혼례를 치를지는 모르겠으나 본녀도 잊지 말고 꼭 초대하였으면 좋겠구나. 보아하니 이 아이는 너를 절대 안 놓치려 들겠구나.”

“아… 아니이… 으으…!!”

검후가 갑자기 결혼 얘기를 꺼내자, 독고령이 당황하며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다.

“크큭, 놀리는 재미가 있구나. 참으로 귀여운 아이로고.”

“하으…”

독고령이 안절부절하며 위일청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을 보며 위일청이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령이 욕심이 과해서요.”

“그래 보이더구나.”

“아… 그… 그만 얘기하고 빨리 절기 가르쳐줘욧!!”

“크크큭, 알았다.”

검후는 그 후로 조금 더 웃다가 자세를 바로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진(2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

검후의 처소는 조금씩 시끄러워졌다.

“아니…! 령아야, 그 내공을 좀 더 풀어헤쳐보거라!”

“이… 이렇게요?”

“그렇게 말고, 아예 내공을 확 놓아버리래두?”

“이렇게 말인가요?”

“하아…”

“아잇! 내공을 어떻게 풀어헤쳐요?”

“보여주지 않았느냐, 이렇게!”

검후가 자신의 내공을 훅 개방하여 근처에 늘어놓자, 독고령이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그게 안 되는데 어떻게 해요?!”

“공수래공수거 모르느냐?! 일단은 내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거라!”

“빈 손으로 왔으니 빈 손으로 가는거죠!”

“본녀에게 대드는 게야?!”

“아닛, 이해가 안 가니깐 그렇죠!!”

“이게…!”

검후와 독고령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크나큰 오해가 있었다.

검후는 독고령이 다시 없을 오성을 가지고, 무학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말해주는 것을 바로바로 쏙쏙 이해하고는 금세 절기를 배울 줄로만 알고 있었으나 독고령은 무식하기 그지 없었다.

하다못해 자신이 이르른 경지가 물극필반의 경지인 것도 본인이 자각도 못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검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답답하기는 독고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금 쉽게 설명해주면 참 좋겠는데 뭐만하면 일단 불가의 듣도보도 못한 비유들이 튀어나오고 그 말들이 하나같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독고령은 이해할 수 없어 조금씩 짜증이 쌓였고, 그 결과 서로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 령.”

“네, 일청.”

“그… 내공을 좀 더 주변으로 발산한다는 느낌으로 비워보는 건 어떨까요?”

“아…!”

그 말을 듣고 아까보다 조금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자 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옳지, 그렇게 하는 거다. 그렇게 단전을 먼저 다 비우고…”

“다요?”

“다.”

“… 어떻게요?”

“그건 네가 해야지.”

“아니, 가르쳐준다고 한 건 검후님이잖아요.”

“말했지 않느냐? 먼저 공을 깨닫고 난 뒤에야 색을 알 수 있다니깐?”

“그러니깐… 으으…!”

독고령이 참지 못 하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좀 쉽게 말해주시면 되겠구만…”

“툴툴대는게야?”

“아잇, 할머니가 워낙 어렵게만 말하니깐 그렇죠!”

“하… 할머니?”

갑작스레 할머니란 말을 듣자, 검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이 작심한 듯 말을 쏟아냈다.

“할머니 맞잖아요. 검신 영감님도 그렇고 나이 먹으신 분들은 죄다 어려운 말만 좋아…”

“이 년이? 네가 집착이 많고 욕심이 그득그득하니 내공도 닮아서 흩어지지도 않고 말도 안 듣지 않느냐?! 일청은 잘만 따라하지 않느냐?!”

옆에서 진즉에 독고령의 단계를 뛰어넘은 위일청과 비교하며 말하자, 독고령도 발끈하여 반박했다.

“이익… 일청도 욕심 많거든요!”

“네 년의 욕심이 더 많아! 가르치다 본녀의 복장이 터지겠구나! 말을 못 알아먹으니 가르치기도 힘들구나!”

“그럼 가르치기 쉬운 일청을 가르치든가욧!!”

“이 년이…!”

“… 어?”

갑자기 방금까지 막 말을 쏟아내던 독고령이 멈추자, 검후 또한 멈춰섰다.

“… 왜 그러느냐? 미치기라도 한 게야?”

“할머니.”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래도.”

“아잇… 검후님. 그… 배우는 조건이 뭐랬죠?”

“응?”

“대종사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정도의 재능이죠?”

“… 그렇노라.”

“내공도 많아야하고요?”

“그렇단다. 왜 그러느냐?”

“…”

독고령이 위일청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기 스스로 독자적인 검법도 만들어내고, 강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내공량도 많은 데다가, 검후님 가르침도 쏙쏙 알아먹는 기재가 여기 하나 있네요.”

“… 응?”

“일청.”

독고령이 위일청을 보며 말했다.

“… 검후님의 절기, 배워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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