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39화 (139/225)

EP.139 15장. 여인, 노인, 어린아이를 조심하라 - (7)

처소로 돌아온 독고령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위일청이었다.

“… 일청.”

“령! 어딜 갔다온 겁니까?!”

“… 미안해요.”

“걱정했잖습니까?”

달려온 위일청이 독고령을 꼭 안았다.

“… 또 저번처럼 말없이 어디 간 줄 알았습니다.”

“… 미안해요.”

“하아… 정말…”

“일청, 나 진짜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습니다.”

“…”

“왜 웃고 그럽니까? 걱정했다니깐요, 령.”

“아뇨…”

그냥 잠시 어디 갔다온 것 뿐인데, 돌아온 자신을 이렇게 걱정해주고 반겨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그냥 좋아서요.”

“… 다음에도 또 이렇게 사라지면 볼기짝을 때릴 겁니다. 전처럼요.”

“흐엑?!”

“농담이 아니라 진담입니다.”

“이… 일청…!”

독고령이 당황하여 뭔가를 말하려고 하자, 옆에서 백리소현이 웃었다.

“령 매, 볼기짝을 맞았었어?”

“엑… 아… 아니…”

“아주 좋아하더군요.”

“일청! 그 얘기는…”

“헤에~ 독고 소저, 전부터 느낀건데 아주 흥미로운 취미가 있으시네요오.”

“아… 으아아…”

독고령이 부끄러움에 머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이자, 위일청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여튼. 다음엔 아무 말 없이 사라지지 마세요. 걱정했습니다.”

“… 네.”

“그래서 어디에 갔다온 겁니까?”

“아… 그게요…”

독고령은 백리소현과 은관영까지 불러모아 검후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주하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자, 위일청이 한숨을 내쉬고, 백리소현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반응을 보고 독고령이 입을 열었다.

“설마…”

“…”

“…”

대답이 없는 두 명을 보고 독고령이 물었다.

“… 했어요, 일청?”

“그게 말입니다, 령…”

“령 매, 실은 말이지…”

위일청과 백리소현이 우물쭈물거리다가 서로를 마주보고는 결국 독고령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 과거에 그… 소녀경에 탁기를 없애는 효능도 있지 않습니까?”

“했어요?”

“… 그 때 위 오라버니는 엄청났지.”

백리소현이 어딘가 먼 곳을 보며 아련한 눈빛으로 회상하자 독고령이 되물었다.

“아니익!! 그래서 했냐고!!”

“… 진짜 치료를 목적으로…”

“캬아아악!!!”

독고령이 발작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검후랑도 하고! 주하랑도 하고! 아주 그냥 다 했어요?!!”

“… 일청 오빠도 다 사정이…”

“뭐가?!!”

“… 령, 그게 말입니다…”

위일청이 생전 처음 보는 비장한 표정과 함께 무릎을 꿇고 독고령에게 죄를 고백했다.

“… 제가 원래 정말 분별없이 아무 여성과 하지 않습니다. 진짜로요.”

“근데요?”

“… 주하 소저와 하룻밤을 보냈는데 소녀경이 또 내공을 섞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특징 덕에 령과 하룻밤을 보내고 저도 막대한 내공의 상승이 있었고요.”

“잡설이 길어요.”

“… 요기가 제 몸을 침투했습니다.”

“…”

“제가 색마라고 불리기 시작한 게 그 날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듣고 독고령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 그… 주하 밤모습처럼…”

“… 네.”

“아니, 그럼…”

“… 당시 보타문 내에 있는 문도들을 덮치기 시작했고 결국 검후님이 나선 뒤에야…”

“…”

독고령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으면 다리가 풀림을 깨달았다.

“그래서 검후랑 잔 거예요?”

“… 검후님도 그 일이 있고난 뒤, 오히려 깨달음도 얻으셨으니…”

“… 몇 명이랑 헀어요?”

“그…”

“사실대로 말해줘요. 화 안 낼테니깐요.”

“…”

위일청이 슬며시 손가락을 활짝 폈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은 안심했다.

“5명이면 다행이…”

“50명이요.”

“…”

“그래도 전부 자발적으로 나서셨고, 오히려 좋아하신 분도…”

독고령은 결국 폭발했다.

“죽어욧!! 변태!! 색마!! 호색한!! 쓸데없이 정력만 좋은 놈아!! 캬아아악!!!!”

“…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리 밑에 양물이 열 개라도 달렸어욧?!! 아니, 어떻게 문파를 거덜내놨어욧!!”

“… 미안합니다. 저도 그럴 줄은 몰랐…”

“몰라욧!! 나가!! 당장 나가악!!!”

그 때 옆에서 백리소현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 화 안 낸다매, 령 매.”

“아니익!! 너는 뭐 했는데 위일청이 그렇게 날뛰도록 못 말렸억!!!”

“… 내가 제일 먼저 나가떨어졌어.”

“캬아아악!!!”

독고령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위일청이 보타문에서 무슨 일을 벌였으리라고는 어느정도 마음 먹고 있었다.

지난 번에 하오문 산동지부에서도 수없이 많은 기녀들과 밤을 보냈던 것을 얼추 알고 있었으니깐.

하지만 그들은 기녀다. 몸을 파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자신과 정인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색마라고 불리는 것만 보아도 그가 과거 얼마나 많은 여인과 지냈을 지 상상이 갔으니깐.

하지만… 보타문은 얘기가 달랐다.

보타문이 어딘가?

불문(佛們)이다.

절에서, 머리를 밀지는 않았으나 관음보살을 모시는 여승들이 모인 곳에서 색욕을 뿌리고 다녀?

그것도 한, 둘이면 모르겠는데 아무리 환골탈태 했는 데다가, 강호사절화라고 불릴 정도의 미녀였다고는 해도 할머니랑 했다고?

그것도 모자라 50명의 문도…?

“정도가 있잖아욧, 정도가…!!”

“… 저도 제 절륜함에 놀랐습니다.”

“아니익…!! 으갸아아악!!!!!”

평소라면 이 쯤에서 위일청이 독고령의 어딘가를 건드려 그녀를 제압했을텐데, 하필 그 위일청이 이 사단을 만든 원인제공자라 아무 것도 못 하고 있었다.

결국 독고령이 쉬이 진정하지 못할 듯 하자 은관영이 그녀의 뒤에 슬며시 접근해 엉덩이를 만지려던 찰나…

“콱 씨! 뒤질래?!”

“… 역시나.”

“뭐가, 새끼야?!”

“이렇게 기감이 좋은데 위 오빠가 손을 들이밀 때만 몰랐다는 게 수상하네요오.”

“흐엑?!”

“음탕하셔라.”

“아… 아니…!”

“조만간 독고 소저랑 같이 밤을 보내겠네요오. 그 때는 얼마나 귀여운 목소리로 울어대실지 기대도 되고 말이죠, 헤헷.”

“아… 아니야악!!”

“아무튼 화 그만 내고 어서 자요. 피곤해요오.”

“씨이…”

은관영이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자, 백리소현도 거들었다.

“말했잖아, 령 매. 위 오라버니의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만 힘들다니깐?”

“… 그래도.”

“앞으로 다른 데 한 눈 팔지 않게 우리가 잘 단속해야지, 뭐.”

“저는 다른 여인과 잘 생각이…”

“닥쳐욧! 색마!!”

“…”

“자자, 령 매. 진정하고 빨리 코 자자. 응?”

“씨익… 씨익…!”

“천천히 숨 쉬어. 응?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후우, 하아… 후우, 하아…”

“옳지옳지.”

조금씩 독고령이 진정하자 은관영은 잽싸게 움직여 이부자리를 폈다.

“자, 빨리 누워요. 독고 소저.”

“… 내가 애야?”

“빨리요오. 위 오빠 옆자리 줄게요.”

“…”

독고령이 잠시 위일청을 노려보다가 이부자리에 눕고는 허공에 선을 그었다.

“… 이거 넘으면 때릴 거예요.”

“… 네, 령.”

“씨이… 잘 자요.”

“령도 잘 자요.”

독고령이 이불을 들어 머리 끝까지 올리고는 위일청에게 등을 돌리고 눕자, 그제서야 안심한 다른 이들도 이부자리를 펼쳤다.

“불 끌게요오.”

“네, 관영.”

“다들 좋은 밤 보내시고 내일 봐요오.”

치익.

촛불이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린 독고령은 다른 이들이 잠에 든 듯 하자, 조심스레 이불을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 진짜 안 넘어오냐…’

백리소현과 은관영과는 머리를 맞대고 있었고, 위일청은 바로 옆에서 자고 있었다.

다른 두 명이 있었기에 야한 짓은 못 하더라도 하다못해 어딘가 손이라도 붙잡고 같이 자고 싶었다.

하지만 위일청은 멍청하게도 끝까지 약속을 지키겠다며 선을 넘어오지 않고 그냥 자고 있었고, 그 모습이 오히려 독고령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멍청이, 바보, 색마.’

두 눈을 감고 곤히 자고 있는 위일청을 보며 한참을 욕하다가 독고령은 다시 베개에 고개를 눕혔다.

‘… 멍청이.’

그리고는 잠꼬대를 하는 척 슬그머니 위일청을 향해 굴러갔다.

“…”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붙어있고 싶었다.

혹시나 이 속내를 들킬까 싶어 빨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독고령은 위일청의 품 속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 애썼다.

*

“으음…”

아침 햇살이 눈을 부시게 만들자, 독고령이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이제 막 이불을 개고 있는 백리소현이었다.

“아, 령 매. 일어났어?”

“응…”

눈을 부비며 주변을 둘러보자 은관영의 이부자리는 이미 비어있었다.

잠기운에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독고령을 보며 백리소현이 피식 웃었다.

“결국엔 위 오빠랑 붙어 잤네.”

“응?”

그제서야 위일청이 자신을 껴안고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한 독고령이 몸을 일으켰다.

“… 내가 간 거 아니야.”

“그래그래. 잠꼬대로 넘어갔다고 하자.”

“진짜 아니거든?”

“응응. 알지알지.”

“… 이불이 얇아서 어제 좀 추웠나보다.”

“그랬나보네.”

“…”

“후훗, 참 귀여워. 우리 령 매.”

“뭐가…!”

“으음…”

그 때, 품 안에서 온기가 사라지자 몸을 뒤척이던 위일청마저 일어났다.

“… 좋은 아침입니다.”

“일어났어, 위 오라버니?”

“… 일어났어요?”

“예.”

일어나서 이불을 개기 시작하는 위일청을 보며 독고령이 백리소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래, 히힛.]

그렇게 다들 이불을 정리하고 백리소현이 머리를 손질해줄 무렵, 검후가 숙소에 찾아왔다.

“다들 일어났구나.”

“… 일찍 오셨네요.”

“나이를 먹으니 밤잠이 워낙 없어서 그렇노라.”

“… 진짜 적응 안 되네요.”

저런 자그마한 몸으로 나이가 어쩌구저쩌구 얘기를 내뱉는 걸 들을 때마다 위화감이 들었으나 독고령은 곧 익숙해지리라 생각했다.

“독고령.”

“네.”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도 되겠느냐? 본녀가 마음이 급하여 빨리 내 절기를 가르쳐주고 구양신공의 구결을 듣고 싶어서 그렇노라.”

“무슨 일 있어요?”

“얼마 전에 보름이 지나갔기에 망정이지 다음 번 보름 전까지는 주하도 어느정도 차도가 있으면 좋겠구나.”

“아…”

보름달이 뜨면 음기가 강해지고, 그만큼 요기가 날 뛸 것이다.

어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자 독고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죠. 빨리 하는 게 좋으니깐.”

“그래. 다른 두 아이도 따라오겠느냐?”

“… 저희가 옆에서 지켜봐도 됩니까, 검후님?”

위일청이 조심스레 묻자 검후가 웃었다.

“본다고 쉬이 따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또 보다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는 법인게지. 령아도 그게 좋지 않겠느냐?”

“… 굳이 그렇게 부르셔야해요?”

“본녀가 보기엔 다 아이니라.”

독고령이 툴툴대며 일어나자, 검후는 웃으며 앞장섰다.

그 뒤를 따라 백리소현과 위일청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 저희 한 명 없는데요?”

“하오문에서 찾아온 아이라면 아침부터 참으로 부지런하더구나. 본문을 살피는 것은 좋으나 나쁜 의도를 가지면 언제든 쫓아낼 터이니 적당히 하라고 일러두었노라.”

“…”

“그래서 잠은 잘 잤느냐? 위일청과 함께 자는 모습이 보기 좋더구나.”

“흐엑?! 봐... 봤어요?!”

당황한 독고령을 보며 오히려 검후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들여볼 필요까지야 있느냐? 그냥 느껴지거늘.”

“…”

독고령은 혹시 검후가 보타문을 넘어 주산열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 부처님 손바닥 위가 이런 느낌인가보네…’

독고령 또한 환골탈태를 이루고 기감이 진일보하였으나 그렇다고해도 검후만큼 속속들이 모든 것을 알 거 같진 않았다.

‘… 조졌네.’

아무래도 이 곳에 있는 동안 야한 짓은 못 할 것만 같아서 독고령은 괜히 짜증이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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