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36화 (136/225)

EP.136 15장. 여인, 노인, 어린아이를 조심하라 - (4)

문도의 안내에 따라 독고령과 일행들은 검후의 처소에 들어섰다.

“음, 왔느냐?”

“… 예.”

“앉거라.”

“서 있는게 더 편한…”

“앉죠, 령.”

“… 눼.”

독고령이 툴툴대며 서교의 맞은 편에 앉자, 그 모습을 보고 그녀가 웃었다.

“아직도 삐져있느냐?”

“… 안 삐졌는데요.”

“삐졌구만.”

“… 아닌데요.”

“크큭, 아닌 걸로 하자꾸나.”

“…”

옆에 서있던 문도가 다기를 가져다주자, 서교는 손을 내저어 그녀를 밖으로 내보냈다.

처소에 서교와 독고령의 일행들만 남자, 서교는 모든 일행에게 일일이 손수 차를 내주었다.

“들게나.”

“… 감사합니다.”

독고령이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 환골탈태한 건가요?”

“삐졌다고 하지 않았나?”

“안 삐졌다고 했는데요.”

“본녀가 나이를 먹어서 헷갈렸나 보구만.”

“…”

“그래. 으음…”

서교가 찻 잔을 바닥에 내려두고는 턱에 손을 짚고는 입을 열었다.

“따지고보면 그대의 옆에 있는 위일청 덕이구만.”

“… 네?”

“본녀는 평생 남성과 몸을 섞어본 적 없는 처녀였다네. 나이를 먹고 망측하게도 위일청의 꼬임에 넘어가 쾌락을 알아버리고 말았지. 그 날은 정말이지…”

서교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위일청을 쳐다보았다.

“황홀했다네.”

아무리 그 속에 들어있는 게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여인임을 알고 있음에도 외형은 남궁소소와 비슷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기에 독고령은 그 위화감을 지울 수 없었다.

“… 색마.”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령.”

“여튼 그 날 이후로 본녀의 마음에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네. 보타문이 불가의 문파라고는 하나 결혼을 금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저 멀리 아미파의 자매들처럼 금남의 구역으로 자리잡은 것도 아니기에 죄책감은 없었으나 그 날 이후로 본녀는 많이 변했다네.”

“…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평소처럼 운기조식을 하는 데 그게 조금 길어졌고, 고민은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번째 환골탈태를 이뤄낸 것이지.”

서교가 자그마한 팔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환골탈태를 이루면 신체가 무공에 최적화된다고들 그러지 않더냐? 그 말과 같이 더 많은 내공을 원했던 본녀는 내공을 쌓기 가장 좋은, 아직 세맥에 탁기가 끼지 않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더구나.”

“… 성취를 축하드립니다, 검후님.”

“뭘. 하지만 이 모습으로는 지난 번처럼 즐기기엔 조금 그렇겠구나, 위일청. 그대는 본녀의 젖가슴을 참으로 좋아했던 것 같은…”

“… 이익!!”

독고령이 또 화를 못 참고 주먹을 꽉 말아쥐자, 그 모습을 보고 서교가 웃었다.

“후훗, 참으로 성정이 급한 아이로다. 놀리는 재미가 있구나. 이제 그만하마.”

“…령 매, 숨 쉬어. 크게 숨 쉬어. 응?”

“후우… 하아… 후우…”

“크크큭…”

독고령이 화를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려 준 서교는 그제서야 표정을 바로했다.

“그럼 신변잡기는 이 쯤 해두고…”

서교가 위일청을 바라봤다.

“극양의 기운을 다룰 내공심법은 구해왔느냐? 광마의 여식과 함께 다니는 걸로 보아 저 아이가 그 답인듯 한데…”

“예, 독고 소저가 구양신공을 알고 있습니다.”

“흐음…”

서교가 독고령을 쳐다보자, 독고령 또한 지지않겠다는 듯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 참으로 드센 아이로고. 본녀에게 한 번 당하고도 다시 싸우겠다 투지를 불태우는 게 즐겁구나.”

“… 다시 해볼래요? 이번에는… 하으읏…!”

위일청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 령, 제발.”

“이… 일청…!”

“얌전히 있다 가기로 했잖아요?”

“씨이…”

독고령은 잠시 원망스러운 듯 위일청을 쳐다보다가 그가 손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는 서교에게 대답했다.

“… 알고 있어요.”

“가르쳐 줄 수 있느냐?”

“…”

독고령이 대답을 하지 않고 망설이자, 서교가 피식 웃었다.

“본녀가 잘못했다. 남궁원청 그 놈이 오랜만에 편지를 보냈길래 조금 짓궂은 장난을 쳤구나.”

“엑? 검신 영감님이요?”

“…그 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

예상하지 못 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검후를 보고 독고령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영감탱이가 또 뭘 한거야…!’

“… 아무 것도 못 들었는데요.”

“… 잠시만 기다려보거라.”

서교가 손을 들어올려 서신 하나를 허공섭물을 이용해 독고령에게 전해주었다.

“읽어보거라.”

“… 네.”

서신을 펼쳐 내용을 읽어본 독고령은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광마의 여식이 내 절기를 이었으니 시험해주게. 성정이 급한 아이니 적당히 놀려주면 알아서 날뛸걸세. 위일청과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효과가 좋을걸세. 놀리는 재미가 좋은 아이니 적당히 가지고 놀며 예뻐해주게. - 그대의 오랜 벗이.]

독고령이 서신을 내팽개치며 외쳤다.

“캬아아악!!! 이 영감탱이가 진짜…!”

“… 그 놈은 옛날부터 그랬노라. 본녀는 또 사제지간에 합의가 된 줄 알고 그대의 혈기를 조금 눌러달란 얘기인 줄 알았노라, 크큭.”

화를 내며 날뛰는 독고령을 보며 서교가 물었다.

“그래서 어땠느냐?”

“… 뭐가요?”

“본녀의 절기 말이다.”

“… 세던데요.”

“그건 반 정도니라. 제대로 쓰면 바다가 잠시 갈라지지.”

“…”

노망났냐고 물어보려다가 생각해보니 자신 또한 산을 갈랐던 게 떠올라 독고령은 입을 다물었다.

그 때, 서교의 입에서 상상치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배워보겠느냐?”

“… 예?”

“그대가 본녀에게 구양신공을 알려준다면, 본녀가 그 절기를 가르쳐주마. 어떠냐? 이 정도면 셈이 얼추 맞지 않겠는가?”

“…”

독고령은 잠시 망설였다.

‘… 검후의 절기…’

배우면 분명 좋을거다.

독고령이 느낀 바에 의하면 남궁원청의 가르침으로 만든 일영기는 한없이 압축된 일점집중의 절기였다.

어떤 것이라도 자를 수 있는, 아주 날카롭고 강맹한 기운.

반면 검후의 절기는 한없이 넓었다.

그녀의 기운과 일영기가 맞닿는 순간.

독고령은 거센 소나기가 일영기를 수 천번 때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검신 남궁원청과 다른 방향이지만 검후 서교의 절기 또한 천하제일이라 불릴만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구양신공에 저렇게 집착하는 게 영 찝찝한데…’

단순 호의라고 해도 이제 막 처음 만난 이에게 대뜸 절기를 가르쳐주겠다고 말하면 일단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절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느꼈던 독고령이었기에 더더욱 구양신공의 가치가 이 정도나 되나 싶었다.

찝찝함에 망설이는 독고령을 보고, 서교가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망설여지는 게 있나보구나.”

“… 눼.”

“음… 그럼 그대가 판단하기 편하도록 본녀가 조금 속내를 밝혀주마.”

“거짓말일 수도 있는데요?”

“그건 그대가 알아서 판단해야지, 크큭.”

“…”

참으로 마음에 안 드는 할망구라고 생각하며 독고령은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본녀는 검을 익히는 게 즐겁다. 그대도 무인이니 본녀의 마음을 이해하리라 짐작하마.”

“… 네.”

“헌데 보타문의 다른 문도들 중에 본녀의 절기를 이을 정도로 오성이 뛰어난 아이들은 없다. 애초에 본녀는 다른 문도들을 전부 딸로 받아들였지, 제자로 생각해 본 적도 없어. 하지만…”

조금은 씁쓸한 말투로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본녀의 검술이 끊기는 것은 참을 수 없더구나.”

“… 제자를 찾거나 비급을 남기면 안 돼요?”

독고령의 물음에 서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남궁원청의 절기를 비급으로 남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어… 하다보면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 절기는 그런 영역이 아니다. 기술이 체계화 되어 법도에 이르고, 법도를 깨닫고는 나아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대종사의 영역에 이른 뒤, 그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어 도를 이뤄야 마침내…”

서교가 조용히 독고령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사용하는 절기에 이르는 게야.”

“… 복잡하네요.”

“비급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법도에 불과하지. 오성이 뛰어나 대종사에 이를 수 있는 자는 오히려 새로운 검법을 창안할 수도 있을게야. 허나 그러고도 본녀의 절기는 막대한 내공을 필요로 하기에 아무나 쓸 수가 없어.”

“…”

“본녀는 기껏 창안한 내 절기가 이대로 맥이 끊기는 게 아쉬워 밤잠을 이룰 수가 없어. 그렇기에 말하마.”

서교가 독고령에게 몸을 가까이하며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비급으로 남기기는 불가능한 기술이지만, 당장 눈 앞에 본녀의 절기를 익힐 수 있을만큼 뛰어난 오성과 막대한 내공을 가진 데다가 나이도 어린 무인이 있구나. 본녀가 이런 자를 그냥 넋 놓고 놓치리라 생각하느냐?”

“아닐 거 같네요.”

“어떻게 생각하느냐? 원한다면 다른 것도 얹어주마. 본녀의 절기를 배워보지 않겠느냐?”

“…”

어린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검후였으나 그녀의 표정에서 독고령은 간절함이 엿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 검후님.”

“그래.”

“검술 배우는 거 좋아하세요?”

“좋아한다.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독고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입꼬리 끝에 가득한 장난끼를 보고, 서교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는 싫어해서요. 크하핫!!”

“…”

“먼저 갑니다. 고생하세요~”

“려… 령!”

검후를 제대로 물 먹이고 떠나는 독고령을 쳐다보다, 위일청이 당황하며 검후를 바라보았다.

“후… 후후훗…! 크하하하핫!!!”

하지만 검후는 양천광소를 터뜨리며 재밌는 걸 보았다는 듯이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다행히 마음이 그리 상하지 않으셨구나 싶어 위일청이 안심할 즈음, 서교의 입에서 섬짓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재밌구나… 아주 재밌어… 본녀에게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른 년은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거… 검후님…”

“가 보거라, 일청. 다음에 때가 되면 다시 부르겠노라.”

“… 저희가 잘 타일러보겠…”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거라.”

검후가 일부러 뚝뚝 말을 끊어가며 강조했다.

“절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거라.”

“… 너무 험하게만 안 다뤄주십사…”

“다음에 보자꾸나. 유화야! 태극삼검을 데리고 오너라!”

“예, 문주님.”

“…”

검후의 축객령에 위일청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처소를 나왔다.

*

밖으로 나오자 독고령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얼굴 가득 함박 미소를 짓고는 위일청과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아… 령.”

“네, 일청.”

“… 어쩌자고 그랬습니까?”

“일청, 일단 자리를 옮겨요. 하오문은 대충 이해한 거 같네요.”

“… 네?”

위일청이 고개를 돌려 은관영을 확인하자, 그녀도 뭔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이 손짓하며 말했다.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하자고요.”

“… 그럽시다.”

처소로 돌아온 독고령과 일행들은 혹시나 훔쳐듣는 이가 없도록 기막을 몇 개나 치고 난 뒤에도 머리를 모아 입을 가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독고령과 은관영이 눈을 마주치자 그녀가 물었다.

“네가 설명할래?”

“그럴까요오?”

“… 뭡니까, 아까부터?”

은관영이 위일청과 백리소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부터 독고 소저와 둘이 나누던 얘기가 있어요. 그거 때문에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오.”

“어떤 얘기입니까?”

“위 오빠한테 검후님의 제자에 관한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 꾸준히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어요.”

“무당과 보타문이 합작해서 검후의 제자를 통해 음양지체를 이루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 음양지체요?”

“무당의 개파조사인 장삼봉 진인이 이루었다는 그 경지, 맞지?”

백리소현이 묻자, 은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리고 오늘, 검후님이 구양신공에 집착하는 걸 보고 저는 독고 소저가 일단 거절하길 바랬어요. 이런 식으로는 아니지만요오…”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하더라고.”

독고령이 자신의 양 손에 각각 음기와 양기를 띄워올리며 말했다.

“내가 쓰는 절기만해도 엄청난 위력인데 음양지체가 만약 이런 걸 멋대로 다룰 수 있다고 가정하면… 천하제일인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해요.”

“설마요. 그런 건 아닐 겁니다.”

“… 지금 나 말고 검후 편 드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닙니다, 령.”

위일청이 독고령을 쳐다보며 말했다.

“검후님의 제자는 정말 위험한 상태입니다. 매번 끌어오르는 양기를 주체하지 못 해서 정말 절실하게 내공심법을 원하는 아이예요.”

“일청, 그런 거라면 당장이라도 극양의 기운이 뇌수를 침범해서 광증이…?”

독고령이 갑자기 위일청의 등 뒤를 쳐다보았다.

“… 령?”

그 곳에 새빨간 눈의 소녀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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