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5 15장. 여인, 노인, 어린아이를 조심하라 - (3)
보타문은 강호의 가장 오른쪽, 절강성에 위치한 주산열도의 문파였다.
처음에는 근방에 위치한 보타산이 관음보살의 성지라 불렸기에 그 곳을 관리하던 사찰에서 시작된 작은 문파였다.
하지만 여자들만 모인 문파를 습격해 망측한 일을 벌이는 자들이 있었으니 이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고, 보타문의 문주는 대대로 ‘검후’라는 칭호를 이어받게 되었다.
섬에 위치한 문파의 특성상 다른 문파와 교류도 크게 없었기에 신비 문파로 분류되는 보타문을 방문하는 일에 일행들은 들떠 있었으나…
“본녀가 검후, 서교니라.”
“…”
남궁소소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스스로를 검후라고 밝히자, 일행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태극삼검을 제외하고.
“왜 다들 아무 말도 없는게야? 본녀가 검후라니깐?”
서교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장 먼저 은관영이 도끼눈을 치켜뜨고는 위일청을 노려봤다.
“위 오빠…”
“… 네, 은 소저.”
“아니죠?”
“… 아닙니다.”
“아니… 아… 아아…”
“은 소저, 일단 진정하시고…”
“어… 어어어… 어떻게… 설마 소소한테도…”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진짜로요.”
은관영은 충격에 빠져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황은 백리소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생 처음 보는 백리소현의 표정을 보고, 독고령은 속으로 감탄했다.
‘… 둔치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가 있구나…’
항상 포근한 미소로 따스하게 남들을 바라보던 백리소현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는지 경멸의 눈빛으로 위일청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독고령만은 검후를 보고 오히려 긴장했다.
“다들 소란 떨지 마.”
“… 응?”
“령 매?”
“… 진짜 검후다.”
독고령의 말을 듣고, 검후 서교가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알아채겠느냐?”
“…”
어린아이의 귀여운 모습으로 도발적인 미소와 함께 바라보는 서교를 보며 독고령은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 괴물이 여기도 하나 있네.’
말도 안 되는 양의 내공이었다.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 하는듯 보였으나, 독고령의 예민한 기감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주산열도 전체를 덮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양의 내공을.
그 거대한 내공을 고작 저런 자그마한 몸에 품고 있는 것을 보고 독고령은 식은 땀을 흘렸다.
‘… 무림에서 노인, 여인, 어린아이를 조심하라더니…’
본래의 의미는 다를지 모르나 우습게도 그 세 개에 다 해당하는 서교는 특히 조심해야할 인물이었다.
“감이 좋은 아이로구나.”
서교가 아장아장 걸어와 흥미로운 듯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광마라 불리는 이의 여식이라고 들었다만, 아무리 봐도 자네가 광마보다 더 강할 거 같은데 말이지.”
“…”
“대답이 없구나. 재미없군.”
서교가 독고령에게 흥미를 끊고는 위일청을 향해 걸어갔다.
“오랜만이구나, 위일청.”
“… 정말 검후님이십니까?”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어떤 밤을 보냈는지 다 얘기하면 믿겠는가?”
“…”
“더 이상은 쾌락을 못 버티겠다고 애원하는 본녀에게…”
“아… 아닙니다… 더는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교의 도발섞인 말투를 듣고, 독고령이 이를 악물었다.
‘저 할매가 미쳤나…!’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들고 싶었으나 전에 한 번 위일청이 정 남을 때리고 싶다면 ‘세 번까지 참아달라’ 부탁했던 게 떠올랐기에 독고령은 일단 참았다.
‘세 번… 딱 세 번까지만 참는다…!’
그 때, 주위에 서있는 백리소현과 은관영을 쳐다보고는 검후가 말했다.
“이 쪽의 작은 아이는 약벽이랑 많이 닮았구나. 키만 좀 더 컸으면 확실히 닮았을 터인데…”
“… 더 클 건데요오…”
“정진하거라. 소현 아가는…”
서교가 백리소현을 보더니 포근한 눈빛으로 미소지었다.
어린아이가 짓기에는 그 미소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와 백리소현은 그녀가 정녕 검후 서교임을 알아차렸다.
“… 전보다 많이 발전하였구나. 좋은 인연이 있었느냐?”
“저… 정말… 검후님이세요?”
“맞다고 했거늘, 본녀를 믿지 못 하는게냐?”
“아니… 너무… 귀여워지셔서…”
“하핫, 듣기는 좋구나.”
서교가 키가 작았기에 어디를 두드릴지 고민하다가 백리소현의 다리를 툭툭 치고는 태극삼검에게 다가갔다.
“… 허산은 잘 보내줬느냐?”
“예, 검후님.”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일단 본문을 찾은 용무에 대해선 나중에 논하고, 먼저 여행으로 쌓인 피로부터 풀도록 하여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깍듯이 인사하는 태극삼검을 뒤로 하고 서교가 다시 돌아와… 위일청의 손을 잡았다.
‘이… 이익…!!’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이 주먹을 꽉 쥐고 이를 갈기 시작했으나 서교는 신경도 안 쓰고 위일청을 쳐다보았다.
“위일청.”
“… 예, 검후님.”
“어떠냐? 이 모습은 취향이 아닌가?”
“… 예?”
“오늘 밤 말이다. 지난 번처럼 본녀를 기쁘게…”
세 번을 참은 독고령은 기어이 입을 열고 말았다.
“이 할매가 미쳤나…!”
그 모습을 보고, 서교는 기쁜듯이 웃었다.
“이제야 반응하는구나, 광마의 여식.”
“위일청은 내 거야! 건드리지 마!!”
결국 독고령이 칼을 뽑아들었다.
*
챙!
독고령이 유성도를 뽑아들자, 그에 호응하듯 검후와 함께 나온 보타문의 문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챙! 챙! 챙!
“감히 검후님에게 무슨 망언을…!!”
“됐다. 소란떨지 말거라.”
“… 예, 문주님.”
서교가 손을 들어올리자, 보타문의 문도들이 일사불란하게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허나 독고령은 여전히 유성도를 붙들고는 거친 숨을 내쉬며 서교를 노려보고 있었다.
“적당히 해야지… 미쳤냐?!”
“본녀에게 한 말인가?”
“그래, 나잇값 못 하는 할매.”
“호오… 본녀에게 이런 폭언을 하는 이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더군다나…”
콰과과곽!!
서교의 주변에 가공할만한 내공이 모여들자, 바닥의 자갈들이 둥실둥실 떠오르며, 근처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본녀의 힘을 알고 있으면서도 덤벼드는 멍청이는 더더욱 오랜만에 보고.”
“내가 쳐맞기 전엔 일단 들이대고 보는 성격이라서.”
“크하핫, 마음에 드는구나. 허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독고령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온다…!’
일영기를 끌어올리며 독고령은 그녀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 싹퉁머리는 본녀가 조금 손보고 싶구나.”
단순히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이라면 그저 어린아이의 귀여운 손동작에 불과했으나 독고령은 그 짧은 손동작에서 잠시 죽음을 엿보았다.
“크윽…!!”
독고령이 유성도를 들어올려 그 정체모를 거대한 기운을 막는 순간.
“…”
세상이 한 번 조용해졌다가,
굉음이 터져나왔다.
콰아앙!!!
“윽…!”
“꺄악…!!!”
갑작스레 일어난 충격파에 주변에 있던 위일청은 급히 호신강기를 일으켜 백리소현과 은관영을 보호했다.
“끄으윽…!!”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나긴 충격파를 견뎌내고, 위일청이 고개를 들어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령!!”
독고령과 서교.
단 한 합의 교환이었지만, 결과는 명확했다.
“이… 일영기가…”
독고령은 유성도를 놓쳤고…
“… 정녕 남궁원청의 절기를 사용하는구나.”
서교는 살짝 커진 눈으로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독고령이 서교의 일격을 버텨내지 못 하고 결국 칼을 놓치면서 찢어진 손아귀를 바라보다 자신의 옷을 뜯어 손에 묶고는 다시 유성도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검후를 향해 중단세를 취하자, 서교가 피식 웃었다.
“됐다. 그 정도면 무례를 용서하마.”
“… 무슨 소리예요?”
“본녀가 일부러 도발했단 얘기니라.”
“…”
“따라오너라. 오랜만에 본문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으니 기쁜 날이군.”
서교가 손을 들어 문도 중 하나를 부르자, 그녀가 재빨리 다가와 서교를 안아들었다.
“광마의 여식.”
“… 독고령인데요?”
“그래, 독고령이라 하는구나. 술은 좋아하느냐?”
“좋아해요.”
“본녀는 싫어한다. 술 마실 생각은 일절 하지 말도록.”
서교가 손가락으로 한 쪽 눈을 내리 찢으며 베~ 하고 혀를 내밀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약올리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독고령은 이를 갈았다.
‘나잇값 못 하는 할매…!’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무력이 신위에 이르렀기에 독고령은 속으로만 툴툴거렸다.
“크하하핫.”
“이익…!”
분해하는 독고령의 얼굴을 보고 양천광소를 터뜨리며 검후가 멀어지자, 위일청이 달려와 독고령의 손을 붙잡았다.
“령…! 괜찮습니까?”
“… 괜찮아요. 손바닥이 조금 찢어진 거 뿐이에요.”
“하아… 정말이지… 어쩌자고 그러셨습니까?! 아무리 검후께서 도발했다고 하셔도 그렇죠!”
“… 미안해요. 저 할망구가 일청한테 계속 치근덕거리니깐…”
“그래도요! 제발 부탁입니다, 령… 그러지 좀 마세요. 걱정했잖아요…”
“… 미안해요.”
위일청이 독고령을 껴안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령과 같이 지내다보면 목숨이 여벌로 필요할 듯 합니다.”
“… 앞으론 안 그럴게요.”
“제발 얌전히 있다 갑시다, 령. 네?”
“… 눼.”
독고령이 위일청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잠시 그의 체온을 즐기던 와중…
“… 독고 소저의 무력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시군요.”
“닥치거라, 청운.”
“이럴 때도 말하면 안 되는 겁니까, 사형?”
“지금 두 연인이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며 한숨을 돌리는 중이거늘 어찌 외인이 간섭하느냐?”
“… 죄송합니다, 사형.”
태극삼검이 훼방을 놓자, 독고령은 멋쩍은 듯 위일청과 떨어졌다.
그리고는 청운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들어갈까요, 일청?”
“그럽시다. 소현, 관영.”
“네에!”
“응, 들어가자.”
보타문은 생각보다 큰 문파였다.
태극삼검과 떨어져 네 명이서 함께 지낼 수 있는 널찍한 객실을 배정받자 독고령은 또 다시 툴툴거렸다.
“… 왜 하필 다 같은 방이라서…”
“후훗, 령 매는 싫어?”
“… 그냥. 개인실이면 더 좋다 싶어서…”
“위 오라버니랑 둘이서 야한 짓 하게?”
“아… 아니거든?!”
“그래, 그래. 자, 끝.”
“… 고맙다.”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찢어진 손바닥에 연고를 발라준 뒤, 깔끔한 붕대를 묶어주곤 웃었다.
“정 부끄러우면 말해. 나랑 관영이가 자리 비워줄테니깐.”
“…”
“싫어?”
“아… 아니… 그… 으으…”
독고령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머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마워.”
“뭘, 별 말씀을.”
“독고 소저, 독고 소저!”
“너는 또 왜?”
백리소현과 볼 일이 끝나자, 은관영이 서책을 들고 독고령을 붙잡았다.
“… 어땠어요?”
“뭐가?”
“검신 어르신이랑 비교해서 대충 누가 더 위였던 거 같아요?”
“… 엥?”
“이거 엄청 고급 정보란 말이에요!”
“아…”
하오문과 같은 정보 문파에게 초고수들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건 확실히 큰 정보다 싶었다.
하지만…
“그냥 엄청 강하다…? 깜짝 놀랐다?”
“아잇…! 그런 거 말고요. 뭐라도 좋으니깐 느낌이라도 얘기해주세요.”
“음…”
독고령은 잠시 고민하고는 좀 더 신중히 대답했다.
“… 검신 영감님이랑 싸우면 그래도 영감님이 이길 걸?”
“진짜요?”
“약간… 음… 뭐라고 해야지…”
독고령이 두 팔을 넓게 벌리며 말했다.
“이게 검후의 내공이면…”
“네네.”
독고령이 두 손바닥을 모아 보이며 말했다.
“이게 검신 영감님.”
“검후 님은 넓게 퍼진 엄청난 양의 내공을 쓰시고, 검신께서는 내공을 압축해서 휘두르시는 느낌이란거죠?”
“어… 그렇지… 아까 저 미친 할매가 손을 휘둘렀을 때 보이지 않는 엄청 거대한 몽둥이를 받아내는 느낌이었어.”
“으음… 감사합니다.”
“고생해라.”
싱글벙글 웃으며 서책을 껴안고 돌아가는 은관영을 보며 독고령은 피식 웃었다.
‘… 그래도 도움이 되긴 했나보네.’
이제 검후가 부를 때까지 느긋이 기다려야겠다 생각하며 등을 기대고 드러눕는 순간.
“… 검후께서 찾으십니다, 손님.”
“시발.”
“… 예?”
“아무 것도 아니야.”
보타문의 문도가 독고령 일행을 찾아왔다.
독고령이 일어나며 툴툴거렸다.
“… 더럽게 마음에 안 드는구만.”
그녀의 혼잣말을 듣고는 위일청이 슬며시 독고령의 뒤에 접근했다.
“령.”
“흐아앙…!”
그녀의 엉덩이를 꽉 쥐며, 위일청이 속삭였다.
“검후님 앞에선 언사를 조심합시다. 저 뿐만이 아니라 령과 다른 일행들을 위해서도요.”
“녜… 녜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