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와 색마-134화 (134/225)

EP.134 15장. 여인, 노인, 어린아이를 조심하라 - (2)

아침이 밝고, 남궁소소와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독고령은 그녀와 붙어있었다.

“… 언니.”

“왜?”

“이렇게 밥 먹어요?”

“어. 이렇게 먹자.”

남궁소소를 무릎 위에 앉히고 뒤에서 꼭 끌어안은 채로 음식상에 앉자, 그녀가 물었다.

“… 이러면 빨간 언니가 밥을 못 먹지 않아요?”

“괜찮아. 언니도 알아서 먹을 수 있어.”

“네.”

이별의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이 큰 것은 독고령이었다.

남궁소소는 다시 만나리라는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독고령은… 이런 종류의 이별에 익숙하지 않았다.

“… 소소야.”

“네, 언니.”

“… 언니랑…”

같이 갈래? 라고 물으려다가, 독고령은 말을 다시 삼켰다.

“… 아니다.”

“네?”

“… 아냐. 밥 먹어, 소소야.”

“네!”

독고령은 말없이 남궁소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 천천히 먹어.”

그녀랑 조금이라도 나중에 헤어지고 싶은 마음을 돌려말하며… 결국 독고령은 끝까지 식사에 입도 대지 않았다.

결국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독고령은 남궁소소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예 그녀가 움직이도 못 하게끔 들고 안은 상태로 내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 독고 소저.”

“아, 좀! 잠시만 기다려 봐.”

“… 예.”

창천오검이 출발하기 위해 남궁소소를 건네달라 말하는데도 독고령은 내내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보다못한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령 매.”

“… 어.”

“소소 아가씨도 집에 가야지.”

“…”

그 말을 듣고, 독고령은 자신의 품에 안긴 남궁소소를 내려다보았다.

헤어질 때는 울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

남궁소소는 독고령의 부탁대로 그 귀여운 두 눈망울에 힘을 부릅 주고는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 한심하네.’

어린아이도 이렇게 열심히 참고 있었는데,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자신이 못 놓아주고 미련을 떨고 있는 게 한심했다.

결국 마음을 먹은 독고령이 남궁소소를 바닥에 내려주고는, 쪼그려 앉아 그녀와 눈 높이를 맞췄다.

“소소야.”

“… 네, 언니.”

“약속한 거 기억하지?”

“노란 꽃이 두 번 필 때요?”

“… 그래. 노란 꽃이 두 번째로 필 때, 내년말고 내후년의 봄이 찾아오기 전까지…”

독고령이 남궁소소의 뺨을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언니가 소소를 만나러 갈게.”

“… 진짜죠?”

“응. 약속했잖아.”

“기… 기다릴게요.”

“그래.”

더 이상 말하면 남궁소소가 울음보를 터뜨릴 것만 같아서 독고령은 그녀를 창천오검에게 슬며시 밀었다.

그리고는 창천오검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 당연히 알아서 하겠지만, 잘 부탁한다.”

“… 물론이오. 독고 소저 또한 가는 길, 살펴가시오.”

포권을 주고 받은 뒤, 독고령이 등을 돌리곤 혼자서 먼저 마차로 들어갔다.

울적해진 독고령을 보며 청운이 현상에게 속삭였다.

“… 의외의 일면이 있네요.”

“이래서 강호가 무서운 것이다. 장문인의 말을 잊었느냐?”

“어떤 거 말입니까?”

“강호에선 항상 여인, 노인, 그리고 아이를 경계해야한다고 하셨던 게 저러한 이유에서다. 아이는 독고 소저처럼 강인한 무인의 마음도 녹여내는 것이니라.”

“제가 또 하나 배웁니다, 사형.”

“가는 길에 니가 당할 고초가 줄어들 것만 같아 다행이구나.”

“아…”

그 말을 듣자, 청운이 아쉬워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그 꼬라지를 보고 현상이 연신 도호를 되뇌였다.

*

현상의 예상대로 보타문이 위치한 주산열도로 향하는 마차 안은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가장 시끄러운 독고령이 축 늘어져서 고개를 마차에 기댄채 창문 밖만 바라보고 있고,

그 다음으로 시끄러운 은관영은 이래저래 바빠보였다.

백리소현은 위일청과 함께 마부석에 앉아있었기에 마차 안의 어색한 침묵은 오롯이 현상이 감내해야할 몫이었다.

침묵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제인 현진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묵언수행 중이라 여길 정도로 말이 없는 과묵한 이였고, 현진 또한 조용한 본산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현상의 진짜 고민은 이 침묵을 깰 기회만 엿보고 있던 청운이었다.

“…”

연신 무슨 말로 이 침묵을 깰 수 있을지 눈치만 살펴보고 있는 청운이 도대체 어떤 말로 독고령의 침묵을 깰 지가 불안했다.

지금에야 우수에 젖어있는 그녀였으나 독고령이 얼마나 흉폭한 성정을 가지고 있는지 첫 만남에 이미 확인한 현상이었다.

‘청운아, 제발…’

그 때.

마부석의 창문이 열리고 백리소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령 매, 령 매. 괜찮아?”

“… 안 괜찮아.”

“자리 바꿀래?”

“응?”

“령 매가 위 오라버니랑 같이 있고 싶어할 거 같아서.”

“… 바꿀래.”

“응, 그래.”

독고령이 마차의 문을 열고 허공을 박차 마부석으로 날아가자 그 모습을 보고 현상이 눈을 부릅 떴다.

‘허… 허공답보?!’

무시무시한 무공 실력을 가진 줄은 알고 있었으나 저 정도 경지인 줄은 몰랐던 현상이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었다.

그 때, 독고령과 교대하듯 마차 안으로 들어온 백리소현이 현상을 보고 웃었다.

“후후… 현상 도사님. 뭘 보고 그리 놀라셨나요?”

“아… 아닙니다. 그저 감사를 표하고 싶군요, 백리 소저.”

“네?”

“… 덕분에 구명받았습니다.”

“…”

백리소현은 현상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그저 미소만 지었다.

마부석으로 온 독고령은 위일청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는 그의 손을 주물렀다.

평소에 비해 눈에 띄게 처진 채로 자신에게 의존하는 독고령을 보며 위일청이 입을 열었다.

“령.”

“… 네, 일청.”

“소소 아가씨랑 헤어져서 많이 서운한가 봅니다.”

“… 네.”

“천축으로 가는 길에 안휘성에 들렀다 갈까요?”

“어…? 그래도 돼요?”

“원래는 강서로 돌아가려 했으나 안휘성에 들렀다 가도 됩니다. 대신 천축으로 갈려면 귀주가 아니라 사천을 지나 들어가야겠군요.”

“…”

사천이란 단어가 나오자 잠시 살의가 일어났으나 독고령이 금세 가라앉히고는 다시 위일청의 손을 만졌다.

“… 일청의 손은 얇네요. 단단하고요.”

“그런가요?”

“소소의 손은 작고, 부드러웠어요.”

“저한테는 령의 손도 그런데요, 뭘.”

“그렇나요?”

“네, 령.”

위일청이 자신을 만지던 독고령의 손을 붙잡았다.

독고령이 잠시 그의 손 안에서 얌전히 있다가, 깍지를 끼며 말했다.

“일청. 안휘로는 가지 말아요. 소소랑 내후년에 만나기로 했으니깐, 그 전에는 안 갈래요.”

“그러죠.”

“하지만 사천엔 가요.”

“음… 귀주를 통해서 사천까지 갔다가 운남에 가자고요?”

“네.”

“조금 돌아가는 데 굳이 그래야할 이유가 있나요?”

“… 있어요.”

“어떤 이유인가요?”

“… 사천에 죽이고 싶은 놈이 있어요.”

“…”

독고령은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 많고, 강해요.”

“그런가요?”

“… 네.”

“춘부장과 관련이 있는 일인듯 한데 당문입니까?”

“… 맞아요.”

“음… 혹시 전에 저보고 같이 죽어달라고 했던 게 그 얘기입니까?”

“네. 하지만 일청.”

독고령이 고개를 들고 위일청을 바라보았다.

“… 일청은 안 와도 돼요.”

“갑자기요?”

“… 소소랑 헤어지면서 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그러니깐 만약 위험하면 저 혼자라도 갈게요.”

“… 꼭 가야하는 일인가요?”

“네. 안 가면 안 돼요.”

“하아… 그럼 같이 가죠.”

“… 괜찮아요?”

“정 위험하면 령이 지켜주겠죠. 그리고…”

위일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도 제법 강합니다.”

“…”

“뭐, 령보다 약하지만요.”

“아… 아니에요…!”

독고령의 짧은 침묵 속에 담긴 의미를 위일청이 모를 리는 없었다.

위일청이 조금 자신을 깎아내리자, 당황한 독고령이 허둥지둥 변명하기 시작했다.

“이… 일청도 강해요! 내공도 엄청 많고, 또… 검술도 스스로 만들어냈고… 또…”

“그래도 여전히 령보다 약한데요, 뭐.”

“아… 아니… 으아…”

독고령이 당황하며 금세 평상시의 활기를 되찾자, 위일청이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령이 가르쳐주면 더 강해지겠죠. 안 그렇나요?”

“으… 앞으로 틈틈이 가르쳐줄게요.”

“네, 기대하겠습니다.”

“그… 그럼… 일청도 내가 검술 가르쳐줄 때마다… 밤에 찾아와줘요.”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나요?”

“제… 제가 음탕한 게 아니라…”

독고령이 위일청의 옷깃을 꼭 붙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일청 없이는 못 쓴단 말이에요… 심검…”

“네?”

“… 심검 쓰려면 양기가 있어야하는데… 일청이 아니면 양기를 수급하지 못 해요…”

“… 그런 제약이 있었군요.”

“지… 진짜…!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누가 만든지는 몰라도 참 잘 지었네요, 별호.”

“네?”

“음란검이요, 크큭. 음양교합 없이는 심검을 못 펼치는 검수라니…”

“아… 으아아…! 노… 놀리지 말고욧!!”

“크큭, 알았습니다.”

“… 전부터 짓궂어요, 일청.”

“령이 너무 귀여워서 그런거죠.”

“으으…”

“이 참에 령도 소소 아가씨처럼 제게 안기시는 건 어떻습니까?”

위일청이 다리를 벌리고는 그 사이의 빈 공간을 손으로 툭툭쳤다.

“어떤가요?”

“… 싫진… 않은데…”

“그럼 오시죠.”

“으으… 혹시나 안에서 애들이 나오면…”

“어차피 다 아는데 뭘 부끄러워 하십니까?”

“그건 또 다른 문제예요… 으아아…”

독고령이 머리를 싸매고 잠시 고민하다가, 마부석에서 일어나더니 허공을 밟고는 위일청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 허공답보는 언제 익히셨습니까?”

“얼마 전에요. 말하지 않았나요?”

“… 경공술도 뛰어나시네요.”

“저거 생각보다 쉬워요. 가르쳐줄까요, 일청?”

“… 한 번 배워보죠.”

독고령의 재능에 질려하며 위일청은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

“… 일청도 이거 좋아하네요.”

“령도 소소 아가씨한테 자주 이러지 않았나요?”

“이상하게 그 자세가 편하더라고요, 히힛. 입장이 바뀌니깐 알겠네요. 소소가 절 위해서 답답한 걸 참아줬네요.”

“답답한가요, 령?”

“… 아뇨. 일청이 많이 체중을 안 실으니깐 괜찮아요. 저는 일부러 소소의 머리를 턱으로 누르기도 했거든요.”

“크큭, 짓궂네요. 령.”

“소소가 워낙 귀여워서요.”

그 말을 듣자, 위일청이 손을 움직여 독고령의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저도 령이 귀여운데요?”

“… 여기서 말고요.”

“그럼 어디서요?”

“나중에… 조용한 곳에서요…”

“그럴까요?”

“… 네.”

위일청이 그녀를 건드리던 손을 아래로 내려 허리를 붙잡고, 턱도 어깨에 내려 그녀를 껴안았다.

“그럽시다. 나중에, 조용한 곳에서…”

“… 네.”

*

보타문으로 향하는 동안 위일청과 독고령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서로의 무공에 대해서도 논하였으나 가끔은 주변 인물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백리소현, 은관영, 태극삼검, 남궁소소, 그리고… 이제 곧 만날 검후.

보타산을 지나 주산열도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뒤, 독고령은 꺼내기 싫었지만 결국 검후에 대해 위일청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위일청이 검후와 한 번 육체적 교감을 나눈 사이였기에 껄끄럽긴 했으나 이제 곧 만날 사람이였기에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배의 난간에 기대 위일청에게 몸을 맡긴 독고령이 슬며시 말을 꺼냈다.

“… 일청은 검후 만나봤죠?”

“예.”

“어떤 무인이던가요?”

“음… 별호가 어울리는 분입니다.”

“강호사절화 말이죠? 예뻐요?”

“… 령보다 못 합니다.”

“그럼 됐어요.”

“강호가 령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 강호사절화는 오절화로 바뀔 겁니다.”

“… 그런 명호는 필요없어요.”

어차피 위일청 눈에만 예쁘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말을 꺼내려다가 독고령은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샐 것만 같아서 재빨리 다시 화제를 돌렸다.

“… 강하죠?”

“강하죠.”

“얼마나 강한지는 알아요? 저는 한 번도 못 만나봐서…”

“… 왜 꼭 싸울 거 같이 얘기합니까, 령?”

“혹시 모르죠.”

“하아… 검신 어르신과 같은 세대의 분입니다. 괜히 무림의 선배님을…”

독고령이 기겁하며 위일청에게 말했다.

“그… 그럼 할머니랑도…!!”

“… 아닙니다. 환골탈태를 이루셔서 제가 만났을 때는 백리 소저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보였습니다.”

“… 가슴도 커요?”

“령의 가슴이 더 좋습니다.”

“저보다 크냐구요?”

“… 조금요.”

“이익…!!”

독고령이 몇 번이고 위일청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변태! 색마! 가슴만 좋아하고…!!”

“… 지금은 령이 더 좋습니다.”

“몰라욧!”

“… 알 수 있게 해드려요?”

“흐아앙…!”

위일청이 독고령의 가슴을 슬며시 움켜쥐자, 그녀가 손을 떼내며 말했다.

“… 색마.”

“색마라면서요?”

“흥… 아무튼 강하네요.”

“그렇겠죠. 검신 어르신도 왕년에는 한 성격하셨던 걸로 아는데, 그 검신 어르신의 제의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검후님 뿐이니깐요.”

“… 성격도 나쁜 할머니네요.”

“…”

위일청은 독고령이 툴툴대는 소리를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때, 배가 멈춰서고 보타문이 위치한 곳에 도착했다.

“… 내리죠.”

“네.”

선실 내에 있던 다른 일행도 배가 멈춰선 것을 알아차리고 밖으로 나와, 배에서 내리자 한 무리의 일행이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너라!!”

선두에 서있던 자그마한, 남궁소소와 동년배로 보일 정도로 어린, 소녀가 덧니를 드러내고는 웃으며 위일청과 일행들을 맞이해주었다.

“광마의 여식, 보타문의 오랜 벗인 무당의 태극삼검, 하오문의 소문주 후보, 위일청의 여인, 그리고… 위 공자!”

“누… 누구 십니까?”

“하긴, 본녀의 모습이 달라졌으니 알아보지 못 하겠구나.”

자그마한 소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본녀가 검후, 서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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