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14장. 세대교체 - (15)
숙소에 도착한 일행은 짐을 풀고, 각자 방을 정했다.
가장 왼쪽 방에는 창천오검.
그 옆 방에는 독고령과 남궁소소.
세 번째 방에는 현천, 현상, 청운을 포함 무당의 삼인방.
그리고 가장 오른쪽 방에는 위일청과 백리소현, 은관영이 위치했다.
독고령은 은근슬쩍 내공까지 드러내며 위일청과 같이 자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으나, 은관영과의 밀담 이후 그를 포기했다.
“… 당분간 내가 일청 담당이라매.”
“근데 무당파를 감시하긴 해야 하니깐요.”
“…”
“아까 편지를 흘렸다매요.”
“그치.”
은관영이 주변을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오는 길에서 마차에서 현상 도사와 나눴던 얘기 기억나시나요오?”
“어떤 거?”
“음양지체 만들려고 하냐는 질문에 현상 도사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눈치였어요. 근데 무당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사문의 대표격인 태극삼검을 보냈을까요?”
“… 아니겠지.”
독고령 또한 은관영의 말에 동의했다.
그냥 어린아이의 용태 하나를 살피기 위해 태극삼검이 움직인다?
쉬이 납득하기 힘들었다.
“저는 원래 이렇게 생각했어요. 태극삼검이 셋 다 강호를 유람한 경험이 일천하니깐 이 참에 경험을 쌓게 해줄 겸, 검후님과 면식도 쌓는 정도라고요.”
“근데…”
“독고 소저가 말했죠. 편지를 숨기려고 했다고.”
“… 그렇지.”
전낭을 꺼내보이려다가 같이 흘린 편지를 보고, 현상은 노골적으로 당황하며 그 편지를 숨기려고 했다.
편지의 존재를 알게되자, 모든 게 납득이 갔다.
아마 그 편지는 매우 중요한 것이고, 무당의 장문인이 검후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무당의 미래를 담당하는 태극삼검에게 운반을 맡긴다 생각하면 이치에 맞다.
“그 편지 내용이 중요하겠네.”
“그렇죠. 그러니깐 방을 이렇게 배치해야해요. 태극삼검이 독고 소저한테는 약하게 느껴질 지 몰라도 만약 저와 소현 언니의 방에 들이닥치면 위험해요.”
“활로를 막고, 포위하잔 얘기네.”
“네. 아예 진을 빼놓으면 저랑 소현 언니 둘이서 상대할 만한데 그런 껀덕지도 없고요.”
“쓰읍…”
독고령은 위일청과 함께 잘 수 없음에 아쉬웠지만, 결국 납득했다.
“그래, 이해하마.”
“그리고 독고 소저랑 위 오빠랑 한 방에 놔두면 또 금세 야한 짓을 하다가 정신을 놓고 있을 위험도…”
스르릉.
독고령이 유성도를 뽑으려고 하자, 은관영이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다.
은관영이 입을 틀어막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치자, 독고령은 유성도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은관영이 전음을 보냈다.
[사실이긴 하잖아요오.]
“캬아아악!!”
“꺄아!!”
이미 충분히 거리를 벌린 은관영이 도망치자, 독고령은 쫓아가려다가 금세 포기했다.
“하아… 진짜…”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아이한테 놀림이나 당하는 지금의 상황이나 자신을 놀려댄 누군가를 쫓아가다 포기하는 모습이 전혀 ‘독고진’답지 않았다.
하지만…
“… 풉.”
썩 나쁘지 않았다.
*
방으로 돌아오자 청운이 남궁소소와 창천오검의 막내와 같이 있었다.
창천오검 중 한 명이 있는 것은 이해가 갔다.
잠시 방을 비운 독고령을 대신해 남궁소소의 옆을 지키는 것이니.
허나…
“… 네가 왜 이 방에 있냐?”
“누님을 기다리고 있었죠. 방에서는 저 안 필요하십니까?”
“… 지랄났다, 지랄났어.”
“지랄이 뭐예요, 빨간 언니?”
“… 안 좋은 거야. 검신 영감님이나 니네 아빠 앞에서는 쓰지 마라.”
“네!”
“하아…”
독고령이 슬쩍 창천오검을 쳐다보자, 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 가주님에겐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린애 앞이라 말조심하는 게 너무 힘드네. 어휴…”
독고령이 방에 주저앉아, 남궁소소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 또 안아요?”
“이게 좋아서. 너는 안 좋아?”
“저도 좋긴한데 답답해요.”
“그럼 조금만 만지다 풀어줄게.”
“으으…”
독고령은 남궁소소를 품에 끌어안고 그녀의 말랑말랑한 볼을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느낌 참 좋단 말이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서 그런지 감촉이 매우 좋았다.
피부도 보드랍기 짝이 없어서 천하에 감히 비견될만한 감촉을 찾을 수 없었다.
연신 손을 놀려대며 남궁소소를 만지던 와중, 방 안에서 침묵하고 있는 다른 두 명을 쳐다보자 못내 이 방에 없는 위일청이 아쉬웠다.
‘저 두 놈이 아니라 위일청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 독고령은 불현듯 은관영의 말이 떠올랐다.
[아예 진을 빼놓으면 저랑 소현 언니 둘이서 상대할 만한데…]
‘음…?’
갑자기 독고령의 머릿속에서 기가 막힌 비책이 떠오르자, 그녀가 남궁소소를 만지던 손을 멈추고 운을 띄웠다.
“근데 니네 둘이 배분이 비슷한가?”
“예, 그렇죠.”
“아마도요?”
“신기하네.”
“… 어떤 점이 그러합니까, 독고 소저?”
되묻는 창천오검을 보며 독고령이 피식 웃었다.
“아니, 배분이 비슷하니깐 실력도 비슷한 게 좀 신기해서.”
움찔.
그 말을 듣자, 둘 다 몸을 꿈틀댔다.
남궁세가와 무당은 상당히 미묘한 관계였다.
오대세가의 거두이자, 제일검. 남궁세가.
구파일방의 거두이자, 천하제일검문이라 자부하는 무당파.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의식 안 할 수가 없는 사이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창천오검이었다.
“하… 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 검을 맞대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지요.”
창천오검이 슬며시 겸손의 말을 내뱉자, 독고령은 불을 붙였다.
“그런가? 하긴. 니네 맏이가 태극삼검 맏이보다 세더구만.”
“무슨 소리입니까, 누님?!”
그 말을 듣자, 독고령의 기대대로 청운이 발작하듯 말했다.
“창천오검의 명예가 드높긴 하지만, 저희 태극삼검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아냐아냐. 내가 둘 다 대충 봤는데, 창천오검이 좀 더 세더라고.”
“그럴 리가요!”
“어허, 청운 도사. 독고 소저의 무위가 매우 뛰어나니 그 안력 또한 드높을 터. 순순히 인정하는 것 또한 도인의 재량 아니겠습니까?”
“남궁의 검이 아무리 드높다 할지언정, 무당의 태극만큼 깊겠습니까?”
“…”
대놓고 각 문파의 검술을 빗대 무당이 더 낫다고 얘기하자, 창천오검의 막내 또한 목소리가 낮아졌다.
“허어… 한 번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이 앞에 장원이 있으니 그 곳에서 비무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 그러지요.”
둘 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소저.”
“누님!”
“”판결을 내주시죠.””
“나 말고.”
“… 예?”
독고령이 단박에 거절하고는 히죽거렸다.
“어차피 각자 사문의 사형들이랑 온 거 아니야? 그들에게 봐달라고 해. 나는 소소 보고 있어야지.”
“허나 소소 아가씨가 검술을 견식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될 텐데요?”
“오…?”
남궁소소마저 떼어놓을 방법이 저절로 굴러들어오자, 독고령이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소소도 보러 갈까?”
“언니도 같이 가요?”
“어… 언니는 몸이 안 좋아서… 으으…”
독고령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그럼 가기 싫은데…”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검술 자랑해야지. 아마 니네 아빠도 좋아할 걸?”
“지… 진짜요?”
“그럼.”
남궁소소가 동의를 구하듯 창천오검을 바라보자, 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소 아가씨.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덤으로 제가 남궁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도 보시고요.”
“무슨 소리입니까? 소소 아가씨가 오히려 무당의 검이 남궁보다 강함을 깨닫고 저희 본산에 속가제자로 입문하실 수도 있는거죠. 남궁세가의 여식이시니 본산제자도 가능할 것입니다.”
“… 본가의 전대 가주님이 검신이시고, 현 가주님이 무림맹주십니다. 강호제일인과 차기 강호제일인의 검술을 직접 사사받을 수 있는 기회를 굳이 걷어차실리가요?”
“이런… 창천오검께서 견식이 짧아서 모르시는군요. 저희 개파조사신 장삼봉 진인께서 세운 전설에 비하면 검신 어르신은 아직 조금 아쉽죠.”
“하! 모셔와 보시던가.”
“하! 제 검이 곧 그 분의 검입니다!”
말싸움이 길어지자, 둘 다 당장이라도 출수할 기세를 뿜으며 씩씩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 둘 다 너네 사형들 데리고 밖으로 나가.”
“예! 오늘 무당이 남궁세가의 검법이 드높음을 알게 될 겁니다!!”
“누님! 무당의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하고 오겠습니다!!”
“… 니들이 알아서 해. 소소야, 같이 갔다오렴.”
“네, 언니.”
남궁소소가 일어나 창천오검에게 달려갔다.
잠시 후, 방을 나간 청운이 내공을 담아 객잔 전체에 울려퍼지도록 외쳤다.
“남궁세가와 무당이 비무를 벌이려고 하오! 강호의 동도 여러분은 부디 어디의 검이 더 강한지 판결해주시오!!”
“엑?!”
갑자기 판을 크게 벌이는 청운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독고령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너… 너 뭐 하냐?”
당황한 것은 독고령만이 아닌지 근처의 방이 다 열리며 모든 일행이 튀어나왔다.
“청운아! 그게 무슨 말이냐?!”
“막내야, 비무라니?”
창천오검과 태극삼검이 다 튀어나오자, 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읽은 서책에선 이런 식으로 객잔에서 비무를 벌이는 장면이 있었기에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 비무라니, 그게 무슨…”
현상이 머리를 감싸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 없던 걸로…”
“사형! 남궁의 검이 무당의 검보다 대단합니까?!”
“… 아니, 그…”
현상이 슬그머니 창천오검의 맏이를 쳐다보았다.
“… 검술은 저마다 다르니 우열을 논할 수가 없는 법이다, 청운아.”
“맞는 말씀입니다. 허나 그러니 더더욱 비무를 나눠봐야지 않겠습니까?”
“… 무엇을?”
“장문인께서 말하시지 않았습니까? 강호에 나가서 여러 경험을 쌓고 오라고요. 저희가 언제 또 남궁세가와 검을 나눠보겠습니까?”
“…”
청운이 창천오검을 가르키며 말했다.
“창천오검 분들은 내일이면 떠나십니다. 지금이 아니곤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사형.”
“… 어디가 더 우월하고, 못 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건전한 검술의 교류라면야 상관없다.”
현상이 창천오검을 바라보자, 그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또한 무당의 검법을 견식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또한…”
애석하게도 창천오검은 현상이 생각한 것보다 좀 더 호전적이었다.
“무인의 호승심 또한 억누르기 힘들군요. 무당이라 하면 천하제일 검문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 부끄러운 말이긴 합니다만, 그리들 여겨주시더군요.”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모습을 보고 독고령이 씨익 웃었다.
‘잘 한다, 잘 한다, 잘 한다.’
창천오검의 맏이가 칼을 툭 치며 말했다.
“저희 남궁세가야말로 천하제일검문이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그를 증명할 기회가 생겼군요.”
“…”
창천오검이 저렇게까지 말하자, 현상 또한 더 이상은 거절하지 않았다.
“원시천존… 밖으로 나가시지요.”
“좋습니다.”
애들 싸움으로 시작하여 어느새 가문과 문파의 자존심 싸움이 된 것을 보고 독고령은 그 둘을 열심히 응원했다.
‘아무튼 싸워라! 오래 싸워!’
창천오검과 태극삼검이 걸어나가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일청이 말했다.
“저희도 갈까요, 관영, 소현?”
“엑?!”
“이런 기회는 쉽게 놓칠 수가 없죠. 보다보면 배울 것이 많을 겁니다.”
“그럴까, 위 오라버니?”
“저는 무조건 볼거에요오. 귀한 정보죠.”
“어… 어어…”
이거까진 예상하지 못한 독고령이 당황했다.
“령은 안 갈 건가요?”
“아… 으아…”
“저는 먼저 내려갈게요오!”
“같이 가, 관영아.”
“령? 저도 갑니다?”
“으… 으으…”
독고령이 당황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그의 새끼손가락을 붙잡았다.
“거… 검은 나중에 내가 가르쳐줄게요! 내가 더 강해요! 저 잘 가르쳐 줄 수 있어요!”
“… 령?”
“지… 지금은…”
독고령이 그의 새끼손가락을 꾸욱 붙잡고는 고개 숙이며 말했다.
“나랑 같이 있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