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14장. 세대교체 - (8)
무당산에 일단 찾아간 독고진은 굳게 닫힌 무당파의 정문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무겁게 닫힌 입구엔 봉문(封門)이라 적힌 낡은 현판만이 남은 채, 인기척조차 없었다.
독고진이 사납게 이를 드러내고는 씨익 웃으며 그 현판을 손에 쥐고는…
빠각!
깨부쉈다.
“누구 맘대로 문을 닫아, 새끼들아.”
독고진이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온 산이 떠나가라 외쳤다.
“손님 받아, 말코 새끼들아!!!!”
내공을 담아 내지른 외침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입산을 막고 있던 문짝이 날아갔다.
그 광경을 바라본 독고진이 참마도를 어깨에 걸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문도 열어주고 착하네, 새끼들.”
듣는 이 하나 없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즐거움으로 가득차있었다.
산길을 따라 본당이 있는 곳으로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유명한 무당의 해검지(解劍地)가 보였다.
무당파를 방문한 이들은 해검지에 검을 맡겨둬야만 한다.
그 누구도 무기를 가지고 이 곳을 넘을 수 없다고 하는 유명한 곳은 생각보다 스산했다.
짙은 피 냄새와 바닥에 꽂혀있는 수없이 많은 송문검이 마치 검의 무덤만 같았다.
그리고 그 무덤 사이로, 세 명의 도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중도 나와있구만.”
“… 누구시오? 본산은 지금 외인을 받아들이지 않소.”
“차 한 잔 얻어먹고 가도 되냐? 목이 말라서 그런데.”
“그렇다면 일단 무기를 내려놓으시오.”
“이렇게?”
쿵.
독고진이 참마도를 바닥으로 향하며 노골적인 살기를 드러내자, 세 명의 도사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진이 웃었다.
“풉…! 야~ 진짜 잘 지은 거 같단 말이지?”
“뭐가 말이오?”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더더욱 말코처럼 생겼구만.”
“… 이름을 밝히시오, 시주.”
챙!
세 명의 도사가 마치 한 몸으로 이어진 듯 동시에 검을 뽑아들자, 독고진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왜? 명부에 적어두고 ‘광마 독고진이 무당을 들림.’이라고 적어두려고?”
“광마 시주셨구려.”
“그래. 내가 광마다.”
“본도는 태극삼검이라 불리는…”
“태극삼검!!”
독고진이 도사의 말을 끊었다.
‘은약벽이 말한 놈들이 직접 나와줬군.’
흥분한 독고진이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태극삼검에게 다가갔다.
“니들이 차기 장문인 후보들 맞지? 무당파에서 제일 센 놈들이지?”
“… 처음부터 우리를 노리고 왔군.”
“대화는 짧게, 전투는 길게 하자!”
독고진이 태극삼검의 선두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곤 차를 마시자고!!”
“무슨…”
하늘로 뛰어오른 독고진이 맹렬한 기세로 도를 내리치자, 태극삼검이 검을 들어올렸다.
“어디 한 번 보자고! 그 유명한 능유제강!!”
검과 도를 다루는 이는 많지만, 모두가 똑같이 다루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극한의 빠르기를 중시하는 쾌검을 쓰기도 했고,
누군가는 묵직한 한 방을 중요하시는 중검을 쓰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상대방의 공격을 흘리는 유검을 쓰기도 했다.
그렇기에 쾌와 중의 묘리를 중점으로 사용하는 독고진은 전부터 궁금했다.
강함을 부드러움으로 제압한다(能柔制强)고 하는 무당파의 그 유명한 유검이.
그리고 독고진의 참마도와 태극삼검의 송문검이 맞닿는 순간…
쉬잉!
“응?”
철과 철이 부딪히는 깡 소리가 아니라 검의 날과 도의 날이 스치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퍼졌다.
“…”
당황한 독고진이 잠시 거리를 벌렸으나, 태극삼검은 그에게 파고 들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그 곳에서 기다렸다.
“… 좆 같은 검술이네, 그거.”
“광마 시주처럼 강맹한 자일수록 부드러움에 약한 법이지요. 한 번 손을 나눠봤으면 아실겁니다. 저희는 상극이니 이만 물러나시지요.”
마치 이미 이겼다는듯, 태극삼검이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본산은 봉문 중입니다. 봉문이 끝나는 날, 다시 찾아와주시지요. 그럼…”
“재밌네.”
“음?”
독고진이 도를 고쳐잡고는 이를 드러냈다.
“다시 해 봐.”
“… 기어이 벌주를 택하시겠습니까?”
“도사 새끼들이 술을 논하냐?”
“…”
태극삼검이 다시 검을 뽑아들자, 독고진 또한 똑같은 자세를 잡았다.
“어디… 끝까지 가보자!!”
독고진이 다시 한 번 태극삼검에게 달려들었다.
독고진과 태극삼검의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독고진이 도를 휘두르고, 태극삼검이 받아넘겼다.
“야이, 부랄도 없는 새끼들아!!”
마치 미끄러운 장어를 붙잡는 느낌이었다.
검과 도가 맞부딪칠 때의 호쾌함은 없고, 기분 나쁜 감각이 손 끝에 맴돌았다.
그 기분이 오죽 나빴으면 독고진은 호쾌하게 자신과 맞부딪히던 도선이 잠깐 그리워질 정도였다.
“사내답게 맞받아치라고!!”
“크윽…!”
갑갑하긴 태극삼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어찌나 강맹한 도법인가…!’
검과 도가 맞닿는 찰나의 순간, 손목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역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 무당의 기본이자, 끝이었다.
그 간단하지만 어려운 행위는 모두 손목에서 시작되고, 상대의 강맹한 기운을 흘리는 기교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태극삼검은 손목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결국…
“크윽…!”
“사제!!”
태극삼검 중 하나가 손목을 부여잡고 쓰러지자 명암이 엇갈렸다.
“드디어 하나 잡았고!!”
독고진은 환희에 가득찼고,
“어떻게든 막아야한다!!”
“예, 사형!!”
태극삼검은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그들의 각오는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크윽…!”
“이제 너 하나 남았냐?”
“… 원하는 게 무엇이오?”
“엉?”
태극삼검의 맏형으로 보이는 이가 갑자기 검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 뭐 하냐? 더 안 해?”
“본산의 어린 제자들은 건드리지 마시오.”
“앙?”
“무슨 연유로 무당을 핍박하는지 모르겠으나 차기 장문인이 될 자의 목이라고 하면 충분할터이니 본 도의 목으로 만족할 수는 없소?”
“뭔 개소리야, 새끼야?”
“그래도 정정당당함을 아는 무인으로 보여 부탁드리는 말이오. 아무리 사마외도에 빠진 이라 할 지라도 절박한 이의 목소리는 알지 않소?!!”
“닥쳐.”
독고진이 낮게 으르렁대자, 태극삼검의 맏형은 오한이 들었다.
독고진의 목소리는 흡사 지옥에서 갓 올라온 이처럼 분노에 가득차 있었다.
“… 내가 애새끼들을 핍박할 쓰레기로 보이나?”
“별호에 ‘마(魔)’가 들어있지 않소?”
“그건 니네 쓰레기가 붙인 별호고, 하… 시발.”
독고진이 참마도를 어깨에 걸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흥이 식었다. 차나 마시자.”
“… 예?”
“시발, 처음부터 말했잖아. 니네 장문인만 보고 가면 난 관심없어, 새끼야.”
“무기는 해검지에 놓고 가셔야…”
“콱 씨. 끝까지 해 봐?”
“…”
“안내해. 안 그러면 나이가 들어찬 도사 새끼들은 죄다 볼기짝을 후려쳐주마.”
“… 따라오시오.”
태극삼검이 앞서걷자, 그제서야 독고진이 그의 뒤를 따라걸으며 툴툴거렸다.
“진즉 그럴 것이지.”
“원시천존이시여…”
태극삼검은 답답한에 도호만 연신 되뇌였다.
*
무당의 본산은 한적했다.
가끔씩 마당을 쓰는 어린 도사들이 보일 때마다 독고진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어보였으나, 하나같이 울먹거리며 숨기를 반복하자 그는 포기하고 묵묵히 태극삼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장문인이 머무는 본당에 가까워질수록, 어딘가 몸이 불편한듯 발을 절뚝거리는 도사들이 하나둘씩 독고진의 뒤로 따라붙자 그가 불편한 듯 말을 내뱉었다.
“… 따라 붙는 놈들이 많다?”
“갑자기 외인이 들어왔으니 다들 걱정하는 것이오. 그대가 악의만 내비치지 않는다면 누구도 덤벼들지 않을 것이오. 우리가 같이 있으니.”
“괜히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라. 안 그러면 멀쩡한 다리까지 부러질테니깐.”
“… 시주.”
태극삼검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독고진을 쳐다보았다.
“이 곳이 어딘지 모르고 하는 말이오?”
“적진의 한복판이지. 내게 가장 익숙하기도 하고.”
“…”
태극삼검이 묵묵히 그를 쳐다보자, 독고진이 도발하듯 웃었다.
“더 해볼까?”
“… 따라오시오.”
태극삼검이 깊은 한숨과 함께 다시 걸었다.
본당에 도착하자, 태극삼검의 둘째와 셋째가 독고진을 막아서고, 맏이가 읍했다.
“… 장문인. 무진입니다.”
“무슨 일이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차를 얻어 마시고자 합니다.”
“들라하라.”
“예.”
무진이라 불린 도사가 독고진을 쳐다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본당으로 들어섰다.
본당의 안으로 들어서자 희끄무리한 수염에 마치 도화에서나 찾아볼 법한 늙은 도사가 독고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봉문을 깨고 들어올 정도면 급한 손님이시겠구려.”
“내가 목이 많이 말라서 그렇소.”
“클클… 그러시구려. 앉으시지요.”
허산진인이 손짓하여 자리를 내주는 모습을 보며 독고진은 확신했다.
‘… 무공을 익히지 않았군’
은약벽의 걱정과 달리… 무당은 추레하기 그지 없었다.
셋이서 달려들어도 독고진 하나 감당 못 하는 장문인 후보들.
무공을 배운 적 없는 장문인,
더 볼 것도 없단 생각이 들자, 독고진은 자리에 앉을 생각도 없이 뒤돌아섰다.
그러자 허산진인이 그를 멈춰세웠다.
“… 벌써 가려하시오?”
“용무를 다봤소. 괜히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하오.”
“… 오신 김에 차나 드시고 가시는 게 어떻소? 노도가 오랜만에 외인을 만나니 반가워 그렇소이다.”
“…”
독고진은 허산진인을 바라보고 인상을 구겼다.
“노인은 배알이 없소?”
“허허… 어찌하여 그렇게 생각하시오?”
“나는 이 곳을 찾은 불청객이오. 불청객에게 고개를 숙이고, 차를 내주고, 예를 지키는군.”
“그것이 사람이 사는 도리니 그렇지 않겠소?”
“도리?”
“도를 닦는 도인이 기분이 나쁘다고 도리를 어길 수가 있겠소?”
“젠장. 뜬구름 잡는 소리도 하는군.”
“클클클. 이런 얘기가 싫은가 보오?”
“싫소. 이해도 안 가고, 재미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지.”
독고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무림에 몸을 던진 이후, 그는 철저히 몇 가지의 원칙을 지켜왔다.
그 중 하나는 ‘무공을 배우지 않은 양민은 건드리지 않는다.’ 였다.
그리고 지금… 눈 앞의 이 노인은 그 경계에 서있는 인물이었다.
무공을 배운 이들을 이끄는 일반인.
독고진은 이 노인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그 때, 허산진인이 찻 잔에 차를 따르고는 건넸다.
“드시겠소?”
“…차 한 잔만 마시고 가지.”
“클클, 고맙소. 노도에게 어울려줘서.”
차를 마시지 않고는 도저히 자신을 보낼 것 같지 않자, 독고진은 빨리 차를 마시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그의 마음과 달리 허산진인이 우려낸 차는 뜨겁기 그지 없어, 독고진이 차를 마시는 속도는 느렸다.
그 모습을 보고 허산진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의심치 않는구려.”
“무엇을?”
“노도가 혹시 독이라도 탔으면 어쩌려고 그걸 들이키시오?”
“독은 익숙해서 괜찮소.”
“험난한 삶을 사셨구려.”
“내 인생 얘기도 늘어놓아야 하오?”
“할 마음이 있으면 하고, 그럴 마음이 없다면 차만 마고 가시오.”
“돌겠군.”
도대체 이 노인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독고진의 속내는 답답하기만 했다.
“원하는 게 뭐요?”
“음?”
“내게 왜 이러는 것이오? 나는 그저 노인네의 무공 수위만 확인하고 가려했소.”
“그럼 왜 그리 말하지 않았소?”
“응?”
“손님께서 차를 마시고 싶다고 봉문까지 깨고 들이닥쳤으니, 노도가 차를 우려냈소.”
“…”
“그러니 차만 마시고 가시오.”
허산진인이 후르릅 소리를 내며 차를 마시곤 씨익 웃었다.
“꽤나 강한 무인이신가 보오?”
“조금 하오.”
“아이들은 다치지 않았소?”
“손목이 조금 시큰거리고 다일듯 하오.”
“다행이구려.”
“젠장! 환장하겠군, 정말!!”
결국 참지 못 한 독고진이 차를 한 입에 삼키고는 가슴을 두들기며 그 뜨거움을 참아냈다.
“다 마셨소. 가겠소!”
“살펴가시오.”
독고진은 차 때문인지, 아니면 허산진인이 보여준 태도 때문인지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오름을 느꼈다.
쾅!
본당을 박차고 나온 독고진의 광포한 기세를 보고 태극삼검이 일제히 검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진이 으르렁거렸다.
“손 떼라… 뒤진다, 진짜…!”
“… 가려고 하시오?”
“그래, 간다. 시발, 좆같아서 더 이상은 못 있겠군.”
“…살펴 가시오.”
“닥쳐!!!”
독고진이 내공까지 실어 사자후를 내질렀다.
“차라리 욕을 해라!!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들어!! 도대체 네 놈들은 부랄 두 짝을 뭣하러 달고 있는가!!!”
쾅!
독고진이 참마도를 바닥에 꽂으며 말했다.
“덤벼!! 덤비라고, 개새끼들아!!!!”
“… 시주.”
“너냐?! 네가 처음이야?!!”
“시주!!”
태극삼검의 맏이, 무진이 그를 힐난하듯 쳐다보았다.
“… 아이들이 겁을 먹었소. 이만 물러가주시오.”
“!!”
그 말을 듣자, 독고진은 속이 철렁내려 앉았다.
무진의 시선을 따라가자, 그의 등 뒤에 겁을 먹은 채 떨고 있는 어린 제자들이 보였다.
겁에 질린 어린아이들을 보고, 독고진은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졌다.
“으… 으윽…”
광증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독고진은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도망치듯 뛰어올랐다.
*
쾅!
하오문의 내실을 박차고 들어온 독고진을 보고, 은약벽이 놀랐다.
“손님?”
“술! 당장 술!!”
“… 무슨 일 있으셨나요?”
“닥치고 술 가져와!!”
“…”
그의 눈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본 은약벽은 아무 말 없이 그가 마시다 말던 술을 내주었다.
“여기요.”
낚아채듯 술병을 쥔 독고진은 잔에 따르지도 않고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그의 목울대가 쉼없이 움직이며 술을 넘기더니 빈 병을 바닥에 놓고는 독고진이 마치 맡겨놓기라도 한 듯, 다시 은약벽에게 손을 뻗었다.
“술!”
“…”
은약벽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잠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녀가 동이째 술을 가져오자 독고진이 피식 웃었다.
“역시… 하오문주야.”
“… 비싼 건 아니니 마음 놓고 드시지요. 대신… 독하답니다?”
“마음에 드는군.”
독고진이 술이 든 동이를 부여잡고 들이키기 시작했다.
“…”
어지간한 술꾼들도 못할 짓을 하는 걸 보고, 은약벽이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다 드시면 불러주세요. 술냄새가 독하네요.”
독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