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14장. 세대교체 - (7)
“… 소소야.”
“네, 언니!”
“… 여기 있어야겠니?”
“안 돼요…?”
덜컹이는 마차 안에서 독고령의 질문을 받은 남궁소소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빛이 독고령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독고령은 부담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속내는 순수하지 않았기에.
“령 매, 위 오라버니랑 같이 있고 싶어?”
“아… 아니거든!!”
은관영이 자연스럽게 마부석에 앉은 뒤, 마차의 내부에서 남궁소소는 독고령에게 안긴 채 있었고 그 반대편에 백리소현과 위일청이 함께 앉아있었다.
처음엔 위일청과 독고령이 붙어있었으나 남궁소소가 그녀의 무릎 위에 앉은 뒤로 위일청이 자리를 옮긴 뒤 내내 이 상태였다.
그리고 솔직한 독고령의 심정은 불만스럽기 그지 없었다.
‘… 옆에 있고 싶은데…’
어깨를 붙인 채 같이 있고 싶었다.
위일청의 체온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자신이 조금만 더 작았다면 위일청의 무릎 위에 앉아있고만 싶었다.
하지만 지켜야 할 체통이 있었기에 독고령은 꾸욱 참고 있었다.
그 때, 남궁소소가 독고령에게 말했다.
“언니언니.”
“응?”
“위 공자 오빠랑 같이 있고 싶으세요?”
“흐엑?! 내... 내가?!”
“아니에요? 아까부터 계속 위 공자 오빠만 쳐다보고 있길래…”
“아… 으아아…”
어린아이한테도 들킬 정도로 노골적인 그녀의 진심을 들키자, 독고령이 당황했다.
그 모습을 본 위일청은 웃음을 꾹 참았고, 백리소현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소소에게 말했다.
“소소 아가씨.”
“네?”
“잠깐 위 오라버니랑 자리를 바꿔서 갈까요? 빨간 언니가 힘들어 보이는데.”
“네!”
남궁소소가 백리소현의 품에 안기자, 위일청이 웃으며 독고령의 옆에 앉았다.
“제 품이 그렇게 그리웠습니까, 령?”
“아… 아니거든요! 애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거예욧!”
“음?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요? 크큭…”
“지… 진짜아…”
독고령이 얼굴을 붉히며 등을 돌리자 위일청이 그녀의 머리칵을 붙잡고 거기에 코를 박았다.
“가만 보면 령이 제일 음란한 것 같단 말이죠.”
“이… 일청!”
“무슨 생각을 하셨길래 머리가 분홍색이 됐을까요?”
“하으으…”
“크큭, 이리 오세요.”
위일청이 독고령의 어깨를 안고는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자, 그녀가 엉거주춤 안겼다.
“흐아아… 두… 둔치가 보고 있는데…”
“조금씩 익숙해지셔야죠. 언젠간 밤에도…”
“그… 그만 말해욧!!”
독고령이 당황하며 위일청의 입을 틀어막자, 그 모습을 보고 남궁소소가 백리소현에게 물었다.
“큰 언니!”
“응?”
“빨간 언니 머리색이 왜 바뀐거예요?”
“음… 빨간 언니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머리가 분홍색으로 바뀌어요.”
“아… 아니거든!”
“신기하네요.”
”그쵸?”
당황하는 독고령을 보며 백리소현은 헤실헤실 웃었다.
보타문까지 가는 길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만 같았다.
백리소현의 품에 안긴 남궁소소가 조금씩 졸기 시작하고, 독고령도 위일청의 품에 익숙해질 즈음, 은관영이 마차를 멈춰세우고는 마부석의 창문을 열었다.
“여기서 잠깐 쉬다갈게요오.”
“네. 은 소저, 상주까진 얼마나 걸릴 거 같나요?”
“앞으로 한 2일 정도요? 가는 길에 객잔이 있으면 좋을텐데 없어서 당분간은 야영을 해야할 거 같아요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근처에 냇가를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물을 좀 구해놔야겠군요.”
“아… 저도 같이 갈게요, 일청.”
위일청이 식수를 구하러 간다고 하자, 독고령이 같이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고 은관영이 히죽거렸다.
“너무 오래 있다 오지는 마시고요~. 이따 따로 시간을 드릴게요오.”
“아… 아니거든! 으… 음탕한 년아!!”
“어라아?? 저는 그냥 오래 있다고 오지 말라고 한 거 뿐인데요오?”
“이이익…!!”
“헤헷, 한 식경(30분)만 쉬다가 출발할테니깐 빨리 다녀오세요.”
은관영이 다시 마부석의 창문을 닫자, 독고령이 얼굴을 붉히곤 거친 숨을 내쉬었다.
‘누… 누굴 하루 종일 발정나있는 년으로 보나!!’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돌아가며 자신을 놀리고 있자, 독고령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시간만 충분하고, 위일청과 둘만 있는 상황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면 무언가를 할 흑심은 있었지만, 그 속내를 들키는 일은 부끄러웠다.
“진짜 일청이 말리지만 않았으면 하오문을 진즉에 다져놨을텐데…”
“정말로 다져놓을거 같으니깐 말렸지요, 크큭.”
“… 적당히만 할 생각이였거든요?”
“됐습니다, 령. 은 소저가 조금 장난기가 있으니깐 너무 나무라지는 마세요.”
먼저 마차에서 내린 위일청이 투덜대는 독고령에게 손을 뻗자, 그녀가 그의 손을 붙잡고 마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네에.”
위일청의 손은 독고령에게 조금은 컸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독고령은 그의 검지와 중지를 움켜잡는 형식으로 손을 잡게 되었고, 새삼스레 자신의 신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되었다.
‘… 참 크네. 내가 작기도 하고…’
독고진이었던 시절에는 강호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작게만 느껴졌다.
낮은 문, 좁은 창문, 자그마한 손, 머리 하나만큼 조그만 사람들.
하지만 독고령으로 변하자, 보이는 모든 것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문.
기대기 적당한 크기의 창문.
큰 손.
머리 하나만큼 큰 사람들.
“…”
괜히 손에 힘이 꾹 들어가자, 위일청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령?”
“네?”
“갑자기 손을 힘주어 잡으셔서요.”
“아… 그냥요.”
“별 일 없다면 괜찮고요. 저 쪽에서 물소리가 들립니다.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돌아올 때는 경공술을 써서 돌아와야겠네요.”
“네.”
위일청이 다시 앞서걷기 시작하자, 독고령은 그의 손가락을 부여잡고 뒤따라 걸었다.
*
독고령은 새삼스레 자신이 이젠 정말 여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해도 될까?’
숲의 안으로 걸어들어갈수록, 독고령은 갑자기 백리소현의 말이 떠올랐다.
[령 매, 팔은 이렇게 붙잡아.]
[령 매가 팔을 당기지 말고, 은근슬쩍 가슴을 밀어넣는 느낌으로. 알았지?]
‘으으으…’
처음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은 손에 점점 땀이 차올라서였다.
혹시나 땀이 차오른 것 때문에 위일청이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시작된 고민은 그래도 붙잡은 손을 떼기 싫다는 생각 때문에 더 깊어졌다.
아예 손을 떼고 옷깃을 붙잡을까 했지만, 그러긴 싫었다.
그의 체온을 직접 느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등에 업히거나 위일청이 침대로 옮겨줄 때처럼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으나 도저히 부끄러워서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실수로 다리라도 다친 척 할까 싶었지만, 독고령은 이미 무명의 특훈 덕에 뛰어난 경공술을 익혔기에 씨알도 안 먹힐 방법이었다.
‘왜 괜히 무공을 가르쳐주겠단 얘기를 꺼내서…’
무공을 가르쳐주겠다 얘기하면서 자신의 성취를 대충이라도 보여줬던 것이 후회되었다.
아직도 경공술은 어설퍼서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다는 변명이라도 했으면 참으로 좋았으리라 후회한 뒤, 독고령은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그 때, 백리소현이 떠올랐다.
그녀는 항상 위일청의 팔을 껴안고는 그 거대한 가슴으로 그의 팔을 파묻고는 했다.
위일청에게 들러붙은 백리소현의 모습은 항상 자연스러웠고, 은관영도 가끔 그렇게 팔에 안기던 게 떠오르자 독고령 또한 그러는 게 맞나 싶었다.
그렇게 팔에 안기기만 하면 몸의 많은 면적이 위일청의 팔에 맞닿으니 독고령도 분명 기분 좋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의 팔이 어디에 닿는가?
백리소현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한 가슴이지만, 적어도 은관영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자신의 가슴에 닿는 것이다.
‘…’
앞서걷는 위일청에게 들키지 않게 슬며시 자신의 가슴을 한 번 푹 찔러본 독고령은 그 부드러움에 놀랐다.
이런 부드러운 물건이 타인의 팔을 감싼다면 분명 기분 좋지 않을까?
게다가 여성의 상징이기도 한 부분이다보니 혹여나 위일청이 음심이 솟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이 으슥한 산길, 아무도 없는 곳, 마차와 충분히 떨어진 곳, 혹시나 격한 무언가를 하더라도 땀을 씻어낼 냇가가 가까운 곳이기에 다 괜찮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생각 끝에 독고령의 마음이 한 쪽으로 기울자, 그녀는 즉시 행동에 옮겼다.
“이… 일청…!”
“네?”
독고령이 갑자기 그의 팔을 붙잡고 멈춰서자, 위일청 또한 멈춰섰다.
“무슨 일입니까, 령?”
“그… 그게…”
독고령은 눈을 질끈 감고, 그의 팔을 금나수의 묘리를 이용해 덮쳤다.
당황하자 자연스레 무공이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극성에 이른 금나수로 그의 팔을 움직이지 못 하게 막아둔 뒤, 독고령이 가슴을 위일청의 팔에 밀어붙이자 그가 당황했다.
“… 무공 수련입니까?”
“흐엑?!”
“갑자기 금나수를 펼치시고 그러십니까?”
“아… 으아… 아니…”
위일청의 말을 듣고 독고령이 당황하자, 그녀는 결국 진심을 토해냈다.
“파… 팔… 껴안고 싶어서요…”
“… 그냥 안으셔도 됩니다. 크큭… 제가 도망이라도 칠 줄 알았습니까? 금나수까지 펼치시길래 놀랬습니다.”
“아으… 미안해요…”
“아닙니다. 제가 배려가 부족했네요.”
위일청이 독고령의 팔목을 붙잡고 자신에게 끌어당기자, 그녀가 자연스레 위일청의 팔에 안기게 되었다.
“다시 갈까요? 냇가가 거의 가까워졌네요.”
“… 네.”
혹시나 위일청의 음심이 솟지는 않을까 싶어서 한 행위였는데 의외로 그가 덤덤하자 독고령은 조금 주눅이 들었다.
‘… 역시 둔치 때문인가…’
그녀의 가슴이 너무 커서 혹시 자신의 가슴으로는 어림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독고령은 어떻게든 자신의 가슴을 부풀리기 위해 두 팔을 아래로 내리며 가슴을 모았다.
그리고는 위일청의 팔을 가슴으로 꾹꾹 밀어붙였다.
하지만 독고령의 바램과 달리 그럴수록 음심이 샘솟는 것은 위일청이 아닌, 오히려 자신임을 깨달았다.
‘으으…’
가끔씩 그의 팔꿈치가 툭툭 자신의 가슴을 누르자 하단전이 조금씩 욱씬거렸다.
괜히 다리 사이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어 걷는 게 조금씩 느려졌다.
그의 손가락을 잡고 걸을 때에 비해 보폭이 조금 줄어들었음에도 이미 온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금세 시냇가에 도착하자, 독고령은 붙잡고 있던 그의 팔을 풀었다.
“… 물 받아요, 일청.”
“네, 령. 령도 혹시 모르니 물 좀 채워두시죠.”
“… 네.”
스스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풀이 죽은 목소리가 나오자, 독고령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 진짜 내가 음탕한 년이 된 건가…’
다른 이들 앞에선 여전히 당당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하고, 마음에 안 드는 년놈이 있으면 언제든지 두들겨팰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위일청 앞에서는 조금씩 주눅들고, 조심스러워지는 자신이 답답하고 애가 탔다.
수통에 물을 가득 담고난 뒤에도 여전히 미련이 남자, 그 미련은 결국 한숨이 되어 독고령의 입 밖으로 나왔다.
“하아…”
“아쉽습니까, 령?”
“네?”
어느새 자신의 수통에도 물을 다 담은 위일청이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마차에서 떨어졌겠지요?”
“…”
“령,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아으…”
위일청이 미소와 함께 독고령을 꼬드겼다.
그가 뻗은 손을 붙잡고 일어난 독고령은 부끄러움에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녀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위일청이 피식 웃으며 손을 독고령의 뺨 위에 올렸다.
“저 보세요, 령.”
“하으으…”
“하고 싶은 게 있으신거죠?”
“아니… 그…”
“아직 시간이 좀 남았네요. 살짝 늦더라도 은 소저가 많이 화내지는 않겠지요.”
“…”
“령.”
위일청의 손이 독고령의 턱을 살포시 붙잡으며 조금씩 얼굴을 가까이했다.
코와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이르자, 그의 달콤한 숨결이 독고령을 유혹했다.
“원하는 걸 말해보세요.”
“지… 진짜 안 늦을까요…?”
“오히려 령이 너무 시끄럽지만 않으면 안 들키지 않을까요?”
“그… 그럼…”
독고령이 살짝 고개를 들어, 위일청과 눈을 마주쳤다.
저도 모르게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독고령의 본심은 말보다 빠르게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녀의 혀 끝이 조심스레 위일청의 입술에 닿았다.
“야… 야한 거… 조금만… 하고 가… 흐읍…!”
독고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일청이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거칠게 들어오는 그의 혀에 독고령이 수통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수통에서 새어나온 물이 자신의 발을 적시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독고령이 정신없이 그의 혀를 탐하자, 위일청의 손이 자연스레 그녀의 가슴께로 향했다.
그 때…
“커흠커흠.”
“흐엑?!”
“… 두 선남선녀 분께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소만… 미안하오. 본 도가 빨리 물을 떠야해서…”
“…”
냇가의 맞은 편에 하얀 장삼과 도관을 쓴 헌양한 사내가 얼굴을 잔뜩 붉히고는 수통을 내보이며 말했다.
“… 물만 금세 뜨고 비켜줄 터이니 하던 걸 마저…”
“무당?”
“…”
“하아…”
그의 허리에 매달린 목재로 된 손잡이, 검집에 각인된 태극 문양의 송문검을 보자 독고령의 머리에 피가 쏠렸다.
“… 이 개새끼들은 누굴 물 멕이는 걸 참 좋아하네.”
“무량수불… 처자께서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맞고 얘기하자.”
“예?”
무당파의 도사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몰랐다.
얼마 없는 시간,
이제 막 불이 붙기 시작한 두 남녀,
하필 그 순간 끊고 들어온 무당파의 도사.
그리고 선남선녀 중 ‘선녀’가 얼마나 흉촉한지, 얼마나 무당파를 싫어하는 지, 그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흉흉한 기세를 풀풀 풍기는 그녀가 뛰어드려는 순간…
“흐아앙!”
“령… 제발…”
“이… 일청! 갑자기 만지면… 응앗?!”
"안 날뛸때까지 만질겁니다?”
"지... 진짜아...”
위일청이 자신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 된 것도, 그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