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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13장. 보름달이 뜨기 전에 - (11) (110/225)



〈 110화 〉13장. 보름달이 뜨기 전에 - (11)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 째가 되자.


위일청은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1시진(2시간) 정도 짧은 잠을 잔 뒤, 위일청이 일어나 방을 나서자 백리소현이 그를 반겨주었다.

“아…  오라버니.”
“백리 소저.”
“… 1시진 정도 밖에 안 잔  아니야?”
“괜찮습니다. 다시 나가보겠습니다.”
“어…? 벌써?”
“예. 뭔가 흔적이라도 찾아야…”
“위 오라버니.”

밖으로 나가려던 위일청의 손을 백리소현이 붙잡았다.

“… 무리하지 마. 안색이  좋아보여.”
“하지만…!”


위일청의 목소리가 커졌다.

“살막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독고 소저가 어떤 고초를 당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위일청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이미… 늦었을 수도…”
“위 오라버니.”

백리소현이 위일청을 껴안았다.

“령 매를 찾으려다가 위 오라버니가 먼저 쓰러지겠어.”
“… 불안해서 미칠 거 같습니다.”
“알아. 나도 령 매가 너무 걱정돼. 하지만 찾는 사람이 쓰러지면  되잖아.”
“… 제가 문을 열었어야 했습니다.”
“응?”
“제가 그 때… 독고 소저의 방에 들어가야 했어요.”
“아니야… 위 오라버니의 잘못이 아니야.”


백리소현이 조심스레 그를 놓아주었다.

“… 조금만  쉬고 가, 오라버니.”
“정말 괜찮습니다.”
“… 그럼 차만 한 잔 마시고 가. 응?”
“…”


애원하듯 부탁하는 백리소현을 보며 결국 위일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잔만 마시고 바로 나가겠습니다.”
“… 응.”


백리소현이 건네는 차를 받아들고 위일청이 들이키는 순간…

“어…?”
“미안, 위 오라버니.”
“윽…”


위일청이 쓰러졌다.

기울어지는 위일청을 받아든 백리소현이 그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으로 받치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위 오라버니.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쉬니깐…”

위일청이 3일 동안 고작 2시간만 자고 내내 밖을 돌아다니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백리소현이 더 가슴아팠다.

이러다 위일청이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기에 결국 백리소현은 운영에게 찾아가 수면제를 받아와 몰래 차에 타서 위일청에게 건네주었다.

수색도 수색이지만, 쉴  쉬어줘야했다.

하지만 위일청이 쉴 생각이 전혀 없으니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다 생각하며 백리소현은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령 매… 빨리 돌아와… 제발…’


갑자기 사라진 독고령 만으로도 슬픈데, 이러다가 위일청마저 어떻게 될까봐 백리소현은 결국 참던 있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깐… 령 매를 구해주세요.’

어딘가 하소연할 곳도 없었기에 백리소현은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하늘에 빌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하늘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


“하아… 하아…”

온 몸이 통증으로 지끈거리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은관영은 수풀을 헤맸다.


그 때, 창천오검의 일원이 은관영을 불렀다.


“은 소저! 여기 못 보던 발자국이 있소!”
“지금 갈게요!!”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가 은관영이 절박한 심정으로 살펴보았지만, 애석하게도 무공을 배우지 않은 듯한 사람의 것이었다.

그녀가 일어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 이건 아니에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발자국에 힘이 들어갔어요. 살수들의 발자국은 이것보다 좀 더 얕게 찍혀요. 경공을 배운 자라면 발의 일부분만 찍히기도 하고요.”
“아… 죄송합니다. 아직 구분이 힘들어서…”
“괜찮아요. 다른 발자국이라도 발견하면 얘기해주세요.”


은관영이 돌아서서 다시 수색을 하려고 하자, 창천오검이 그녀를 붙잡았다.

“소저…”
“네.”
“이제 곧 해가 집니다. 오늘의 수색은 여기까지 하고…”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밤 눈이 밝아서요.”
“… 마지막으로 쉬신 게 언제입니까?”
“괜찮아요. 독고 소저를 찾고 난 뒤에 쉴게요.”
“…”

무슨 말로도 은관영을 막아설 수 없어보이자, 창천오검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저희도 조금 더 찾다 돌아가죠.”
“… 안 그러셔도 되는데…”
“이리 고생하시는데 먼저 돌아가기엔 저희의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독고 소저 또한… 검을 섞으며 많은 정이 쌓였고요.”
“… 그럼  부탁드릴게요. 뭐라도 좋아요. 나뭇가지가 이상하게 꺾여있든, 못 보던 발자국이 있든, 뜯어진 옷가지가 있든… 뭐든지요.”
“네.”


창천오검이 다시 수색을 위해 흩어지자, 홀로 남은 은관영이 비틀거렸다.

“윽…”


머리가  돌았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여야 해… 제발…’

위일청이 남기고 간 독고령의 편지를 보는 순간, 은관영은 깊은 죄책감에 빠졌다.

혹여나 자신의 말이 그녀를 상처입힌 것일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멈춰설 수 없었다.

매번 괄괄한 모습만 보여주기에 독고령은 아무런 고민 없이, 편하게 사는 줄만 알았다.

‘제발… 그게 마지막은 아니겠죠?’

손을 들어  뺨을 때리고는 은관영이 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이미 며칠이나 지났기에 흔적은 찾기 요원할 것이다.

어쩌면… 아니 상당히 높은 확률로, 이미 독고령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관영은 멈춰설  없었다.

‘살아만 있어줘요, 독고 소저. 제발…!’

은관영이 나무를 짚고 일어나 다시 몸을 움직였다.

흔적을 찾아야하는데 자꾸만 시야가 번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잇… 왜… 왜…”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내도, 또 다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눈물 때문에 수색을 이어나가지 못 할 지경이 되자 은관영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아앙… 내가 미안해요, 독고 소저어… 흐윽…”
“뭐가 미안한데?”
“그냥… 다… 엑?”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은관영이 당황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엔 약간의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붉은 머리를 한 독고령이 서있었다.

“어… 어? 어라?”
“미안하다매. 말해봐, 뭐가 미안한데?”
“어… 저… 환영인가요오…?”
“어, 환영이야. 그러니깐 그냥 말해봐.”
“… 아닌 거 같은데요오…”
“콱 씨, 당연히 아니지.”

독고령이 은관영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자신의 머리에 느껴지는 독고령의 손길에 당황한 은관영의 눈이 커졌다.

“… 어? 진짜 독고 소저세요?”
“그럼 가짜겠냐?”
“아… 아아…”
“늦어서 미안하다. 잠깐 밖에 돌아다니다 왔어.”
“흑… 흐아아앙…!!”
“또 우냐…”

독고령이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한 은관영을 꼬옥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 옳지. 뚝. 빨리 그쳐. 전처럼 코까지 풀려고?”
“나… 나는… 흑! 독고 소저가아… 흐윽…”
“괜찮아, 괜찮아.”
“흐아아앙!!”
“목청도 좋다, 야.”

독고령이 은관영의 울음이 멎을 때까지 그녀를 달래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은관영이 눈물을 닦아내며 독고령을 바라봤다.


“지… 진짜 독고 소저 맞죠오?”
“한 대 맞으면 정신이 들겠냐?”
“… 진짜 독고 소저네요오…”
“…”
“어… 어디 갔다온 거예요오… 걱정했잖아요! 다친 덴 없어요?!”
“… 미안하다. 잠시 그냥 바람 좀 쐬고 왔어.”
“말하고 가셔야죠! 편지도… 그런 거 남겨두고…”
“아, 시발.”


그제서야 자신이 남겨둔 편지가 떠오른 독고령은 머리를 긁적이다, 은관영을 보고 표정을 바로했다.


“야, 은관영.”
“… 웬일로 이름을 다 불러주시고…”
“나 위일청 좋아한다.”
“…”
“그냥저냥 좋아하는 거 말고… 그…  많이… 좋아하는  같다.”
“뭐예요, 그 애매한 답은…”
“사과는 안 하마.  말대로 그… 내 잘못은 아니니깐?”
“… 소저답지 않게 엄청 말을 고르시네요.”
“그러니깐 그…”
“…”

은관영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독고령이 어색한 듯 은관영의 눈을 피하며 웅얼거렸다.

“… 친하게 지내자고.”
“어린애세요?”
“…”
“그냥 그런  안 해도 돼요오. 이전에는 친하게 안 지냈나요?”
“그… 어…”


독고령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자, 이번엔 은관영이 그녀를 껴안아주며 말했다.


“저는 독고 소저가 미워요.”
“…”
“재능도 뛰어나고, 위 오빠랑도 금세 잘 지내고… 이렇게 말도 없이 밖에 나가서 걱정시키는 것도, 말을 막 하는 것도  싫어요.”
“… 미안…”
“하지만 그래도 독고 소저가 좋아요.”
“엉?”
“그러니깐… 앞으론 말  조심하세요오. 재능 있는 사람이 거들먹거리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엄청 화나거든요오?”
“… 미안하다.”
“미안하면 앞으로도 계속 ‘관영’이라고 불러주세요오.”


은관영이 독고령을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령… 음… 언니라고 해야하나요?”
“으… 그건 싫은데…”
“그럼 사매가 좋으세요?”
“… 시발. 이게 또 그렇게 되네. 하아…”

독고령은 잠시 ‘언니’와 ‘사매’라는 호칭 중에서 고민하다 결국 포기했다.

“하아… 네가 알아서 불러라.”
“응, 사매.”
“콱 씨… 말은 놓지 말고.”
“싫은데에~. 내가 입문 시기는 더 빠른데에~.”
“… 맞을래?”
“기사멸조거든요, 그거!”
“지랄한다, 지랄.”

독고령이 피식 웃으며 일어나 은관영에게 손을 뻗었다.

“… 돌아가자. 힘들어 죽겠다.”
“무슨 일 있었어요?!”
“… 그건 아니고. 그냥 쉬지도 않고 뛰어와서. 그리고… 위일청도 걱정되고.”
“아… 빨리 돌아가죠! 위 오빠, 엄청 걱정했어요.”
“… 시발. 안내해.”
“네!”


독고령의 손을 꼭 붙잡고, 은관영이 날아올랐다.

둘의 신형을 떠오르기 시작한 보름달의 달빛이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



“… 어?”

위일청을 재워두고 은관영이 어디갔는지 찾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온 백리소현은 두 눈으로 믿지  할 광경을 목격했다.

“…  왔어, 그… 소현 언…”
“령 매!!!”
“컥!”


독고령이 큰 마음 먹고 백리소현을 ‘언니’라고 부르려고 했으나, 그녀의 말은 갑자기 덮쳐든 백리소현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


“어… 어디서… 아아… 진짜 령매구나… 다친 데는?! 괜찮아?!”
“… 괜찮아. 아무 일 없었어.”
“진짜…”
“… 너도 우냐?”
“그럼  울어?!”
“… 미안하다.”
“흑… 걱정했잖아…”
“…”

자신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백리소현을 보며, 독고령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금 웃음이 나와,  매?!”
“미안, 크큭… 그냥… 그…”

독고령은 부끄러움에 뒷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참 많이 사랑받고 있구나 싶어서.’

독고령에게 있어 타인과의 관계는 항상 사이에 칼  자루를 두고 얘기했었기에 이런 따스한 감정은 아직 어색했다.


하지만 이 어색한 감정이 독고령은 참으로 기뻤다.

‘… 나쁘지 않네, 이것도.’

자신을 껴안고 울고 있는 백리소현을 달래준 뒤, 그녀가 점차 진정될 즈음.

독고령이 물었다.

“… 위일청은 어딨어?”
“내가 재웠어. 지금은 방에 있고.”
“… 그래?”
“령 매 때문에 위 오라버니가 걱정 엄청 많이 했어…”
“… 내 업보가 깊다. 미안해.”
“빨리 가 봐.”


백리소현이 독고령을 놓아주며 말했다.

“… 걱정 끼친 사람들한테  사과부터 하고.”
“엑?”
“검신 할아버지도, 운영 어르신도, 소홍이도… 모두 걱정했어.”
“그렇게 많이?”
“그러니깐  사과하고, 그리고 오라버니한테 찾아가.”
“…”
“우린 전부 령 매 찾느라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뭘 먹지도 못 했어.”
“… 미안.”
“그러니깐 지금부터 실컷 먹고, 편하게 잘 거야. 피곤해서 도중에 깨지도 않을 거야.”
“… 응?”
“오늘만이야.”
“…”

백리소현의 미소를 보고, 독고령이 살짝 뺨을 붉혔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밤하늘엔 보름달이 찬란하게 떠있었다.

다시 고개를 내린 독고령이 백리소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응.”
“다녀와, 령 매. 난 이제 진짜 좀 쉬어야겠어. 다른 얘긴 내일 하자.”
“응, 쉬어.”
“사과는 내일 다시 들을게.”
“엑…”
“가자, 관영아.”
“네, 언니이.”

은관영이 밉살맞은 웃음과 함께 백리소현과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 독고령이 일어섰다.

‘… 그래, 일단 사과 먼저.’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만지는 것을 느끼며, 위일청이 조금씩 잠에서 깼다.

“윽…”
“아…”


자신의 이마를 만지던 손길이 멈추자, 위일청은 조금씩 자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고,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깨달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무릎을 베개삼은 채, 그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음을 깨닫자 위일청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하아… 백리 소저. 다음엔 이런 식으로…”
“저 둔치 아니에요…”
“음?”
“잘 잤어요, 일청?”


익숙한 목소리에 위일청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ㄹ… 령?”
“… 다녀왔어요. 미안해요, 걱정 끼쳐서…”
“저… 정말…”
“다들 반응이 똑같네요.”
“령!!”

위일청이 독고령을 껴안자, 그녀가 곤란한 듯 말했다.

“… 이런 것도 다 똑같고요.”
“괜찮습니까? 다친 곳은요?”
“없어요. 정말 괜찮아요. 그냥… 잠깐 나갔다 왔어요.”
“걱정했잖아요!!”
“… 미안해요. 그보다 일청.”


독고령이 그를 떼어내며 얼굴을 마주하고 말했다.


“… 할 말이 정말 많은데… 이거부터 먼저 하려고요.”
“하세요.”

독고령이 살짝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말했다.


“사랑해요, 정말 많이요.”
“…”
“그러니깐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 어떤 부탁인가요?”
“같이 죽어줘요.”


독고령이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 저랑 같이 죽어주세요, 일청.”

 말을 듣고 위일청은 잠시 멍하니 독고령을 바라보다,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지요, 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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