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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화 〉13장. 보름달이 뜨기 전에 - (10) (109/225)



〈 109화 〉13장. 보름달이 뜨기 전에 - (10)

독고령이 사라진 날.

남궁원청의 허락을 받은 뒤, 위일청은 먼저 은관영을 찾아갔다.

“아, 위 오빠. 무슨 일로 그리 급하게…”
“은 소저, 독고 소저가 사라졌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말에 은관영이 당황했다.

“도… 독고 소저가요?”
“네. 아무래도 살막에 납치된 거 같습니다.”
“!!”

위일청의 말을 듣는 순간, 은관영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 정보를 모아볼게요.”
“고맙습니다,  소저.”
“하지만 위 오빠.”

은관영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만약 정말 살막이 손을 썼다면…”
“압니다.”

위일청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래도 정보를 알아봐주세요. 혹시나 독고 소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위일청이 이를 악물었다.

“… 혈채를 갚아야죠.”
“…”
“일단 저는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흔적이라도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위일청이 밖으로 나서자, 은관영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 대화가… 마지막인가요…?’

찝찝함 속에서 마무리된 독고령과의 마지막 대화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냥…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괜히 감정이 북받쳐올라 속내를 털어놨을 뿐이지, 다시 만나면 서로 앙금을 털어내고 더 친해지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사이 독고령이 사라질 줄은 몰랐다.

“…”

은관영이 이를 악물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이대론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휘익!

그녀가 휘파람을 불자 올빼미가 날아들었다.

“일찍 깨워서 미안.”

올빼미를 쓰다듬으며 은관영이 다리에 편지를 묵었다.

“급한 거니깐 잘 부탁할게?”

올빼미가 푸득거리며 날아가는 것을 확인한 뒤, 은관영 또한 밖으로 나섰다.

살막은 강호에서 이름 높은 전문적인 살수 집단.

멍청하게 추적할 단서를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실낱 같은 단서 하나라도…’

은관영은 아주 실낱 같은 희망의 동앗줄이라도 필요했다.

*



“훌륭하오, 동업자 양반.”
“이제 끝…”
“아직 멀었소. 기왕 이렇게 된 거 보법도 조금…”
“아잇, 시발 좀! 너 원래 이랬냐?!”
“무엇이 말이오?”
“왜 이렇게 질척거려, 새끼야!! 이 정도면 충분한…”
“당가주를 죽일  있을 정도라 생각하오?”
“…”

당문의 가주, 독선 당정의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독고령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잠잠해진 것을 보고 무명이 손을 들어 절벽을 가리켰다.

“저 절벽을 자른 기술, 이름이 무엇이오?”
“… 몰라. 그냥 하다보니 되더라고.”
“다시 보여줄 수 있겠소?”
“안 돼.”

독고령은 자신의 내부에 남아있는 양기가 거의 없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막대한 양의 음기와 양기가 필요한데… 내 몸에 남은 양기가 거의 없어.”
“아까는 어떻게 쓴 것이오?”
“이거.”

독고령이 태양화리의 내단을 꺼내보였다.

“태양화리로 만든 거다.”
“극양의 기운을 품은 영물의 내단이라… 기술 하나 보자고 쓰기엔 아쉽구려.”
“… 그렇지.”
“그럼 앞으로 양기는 어떻게 수급할 생각이오?”
“흐엑?!”

독고령의 머리가 갑자기 분홍빛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고 무명이 흥미로운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호오… 머리색이 바뀌는구려. 축골공이라도 익히신 것이오?”
“아… 으엑?!”
“… 뭐라도 대답  해주시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뭐가 말이오?”
“으… 아… 알아서 할게, 새끼야!!”
“…”

영문 모를 이유로 독고령이 갑자기 당황하자, 무명은 입을  다물었다.

“다… 다음은 뭐라고?”
“오, 배울 마음이 생기셨소?”
“빠… 빨리 다 배우게.”
“훌륭하오. 이번엔 허공답보(虛空踏步)의 요령을 가르쳐 드리겠소.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다행히 얘기를 돌리는  성공한 독고령은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계속 머릿속에 위일청이 떠오르는 것은 쉽게 막을 수 없었다.

“한 번 익혀두면 허공에서도 운신이 자유로워져서…”

계속하여 무언가를 말하는 무명의 말들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단전의 욱씬거림이 신경쓰여 도저히 그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초야…’

자신도 모르게 속곳이 조금씩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위일청을 조금만 떠올려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 도대체 어떤 기분일…’

“동업자 양반?”
“흐엑?!”
“머리가 완전히 분홍빛으로 바뀌었구려. 무슨 일 있었소?”
“아… 아무 일도 없어!”
“그럼 뭐… 한  해보시겠소?”
“뭐… 뭘?”
“허공답보 말이오. 방금 가르쳐 드렸잖소.”
“미친 놈아!”
“…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시오?”
“다시 얘기해, 새끼야. 하나도 못 알아먹겠더라.”
“… 알았소.  들으시오.   쉽게 얘기해드리겠소.”

다시 설명을 시작한 무명의 말에  기울이며 독고령은 위일청에 대한 생각을 털어냈다.

그럼에도 하단전의 욱씬거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무명은 자신의 선언대로 고작 하루 만에, 독고령에게 가르쳐  수 있는 대부분을 가르쳐주었다.

“… 동업자 양반.”
“왜?”
“보름에 해야할 일이 그리 중한 것이오?”
“… 조금.”
“조금 중요한 것이면 그냥 포기하고 경신술을  더…”
“많이!”
“… 여인이  이후로 말이 자주 바뀌시는 것 같소.”
“뒤질래?”
“…”

무명의 일침에 뜨끔한 독고령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 경신술 가르쳐준 건 고맙다. 잘 써먹으마.”
“그래주면 고마울 것 같소. 당문을 쳐죽이는데 쓴다면 더욱 기쁠 것이고. 아…”
“응?”
“… 사천에  지 얼마나 되었소?”
“마지막에 들린  작년이니깐… 좀 됐지?”
“지금 사천은 마경이오.”

사뭇 진지해진 무명의 목소리에 독고령 또한 덩달아 진지해졌다.

“마경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동업자 양반이 사라지고 난 뒤 사천 일대에 기이한 일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소.”
“예를 들면?”
“… 시체가 살아 움직이고 있소.”

그 말을 듣자 독고령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강시? 안 그래도 전에 아안에 들렀을 때, 이상한 강시를 하나 만났지.”
“어떤 강시였소?”
“보통 강시는 음기가 강한데 그 새끼는 양기가 넘치더라고. 덕분에 내 양기도 날뛰어서 한동안 태양혈이 지끈거리고 광증도 심해져서 고생 좀 했다. 그거 고치려고 북해빙궁까지 찾아갔었고.”
“… 그럼 내가 본 것과 다르겠군.”
“응?”

무명이 물었다.

“그 동안 많은 강시들을 봐왔소. 헌데…”
“헌데?”
“… 음양의 기운을 모두 가진 강시를 만났소.”
“그게 왜? 어차피 나도 양기를 가진 강시를 만났는데?”
“심지어 살아있었소.”
“생강시?”
“다르오. 강시들은 보통 심령이 제압되었기에 이지가 또렷하지 않은 것은  알고 계시지 않소?”
“자아가 있어?”
“대화도 나눴소.”
“…”

독고령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강시의 무서운 점이 이미 한  죽은 시체를 사람처럼 다루는 것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드는 점이였다면

강시를 그나마 상대하기 편한 점은 자아가 없기에 공격이 직선적인 점이었다.

그렇기에 독고령은 당문이 강시를 만드는  열을 올리는 것이 병신 같다며 비웃었다.

강시를 아무리 강화해봤자, 고작 사람의 흉내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결국 정점에 이른 무인은 강시로 상대할  없었다.

하지만…

“자아도 있고, 대화도 나눴다면…”
“무공을 사용했소.”
“!!”

독고령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떤 무공이였는데?”
“… 한 번도 보지 못한 사특한 무공이었소. 조법과 함께 사술을 섞어쓰더이다.”
“조법과 사술… 또 개같은 걸 만들어냈군.”
“강하오.”
“얼마나?”
“멀찍이서 보고 이길 수 없다 생각하여 도망쳤소.”
“… 네가? 암살도 시도하지 않고?”
“… 그렇소. 처음엔 못 보던 이가 당문의 본가에 들어서길래 그를 뒤쫓았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30장(90미터) 안으로 들어갈 틈이 없었소.”
“미치겠네…”

독고령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무명이 30장 이내로 접근할 엄두도 못 냈다는 말은 못 해도 ‘선(仙)’급 이상의 강자라는 소리와 같았다.

‘그 사이에  한 발 나아갔냐, 십새끼들…’

적이 더 강해졌단 소리를 듣자 독고령은 또 다시 짜증이 일었다.

“아무튼… 혹시나 당문을 칠 때 하얀 얼굴에 피처럼 붉은 입술을 한 장발의 강시를 조심하시오.”
“… 염두해두마. 근데 대화는 어떻게 나눴냐?”
“내가 나눈  아니오.”
“그럼?”
“그 강시와 독선이 자주 대화를 나눴소.”
“… 시발. 당정 그 쳐죽일 새끼를 잡으려면 강시도 같이 잡아야겠네.”

독선 하나도 쉬이 감당하기 어려웠거늘, 그와 비슷한 무력을 가진 강시가 옆에 있단 소리를 듣자 독고령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잇, 시발. 몰라. 일단 들이박아봐야지, 뭐.”
“… 참으로 동업자답소.”

무명이 피식 웃었다.

고작 하루 사이에 감정이 참 많아진 무명을 보고 있으니 독고령은 그의 변한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모습이 가슴 아팠다.

“… 역시 나랑 같이 한  가 볼 생각없냐? 내가 신의랑 친하거든?”
“죽을 때를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소.”
“그래도…”
“동업자 양반.”

무명이 독고령의 말을 끊어들었다.

“나는 죄 많은 삶을 살아왔소.”
“…”
“지학(15세)이 되기도 전에 손에 처음 피를 묻혔고, 평생을 그리 살아왔소. 단순히 돈을 위해서 타인의 목숨을 빼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쓰레기요.”
“너는…”
“허나   많은 삶을 살면서 속죄의 기회가 생겼소. 내가 행한 일이 소악(小惡)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악을 없애는 일 말이오.”

무명은 약간의 미소를 띄우고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면 염라께서도 조금은 죄를 덜어주시지 않겠소?”
“…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미안하오, 크큭. 배워먹지 못  놈이라.”
“뒤진다?”

말은 험하게 했지만, 독고령 또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띄고 있었다.

‘농담도 할  알게 되었군…’

역시 무명은 변했다 생각하며 독고령이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무명.”
“말씀하시오, 동업자 양반.”
“다음에 만나면 검남춘을 마시자. 당문이 좆같은 새끼들이긴 하지만, 사천의 검남춘이 제일 맛있더군.”
“내게 다음이 있을…”
“다음에 만나면. 약속하자.”
“…”

무명은 독고령이 어떤 사람인  잘 알고 있었다.

 번 약조한 바는 쉽게 어기지 않는 자.

그렇기에 그 약속이 무겁게 느껴졌다.

다른 이들의 반지르르한 헛된 약속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기에, 쉬이 답하지 못 했다.

“약속  하면  간다?”
“…이 참에 천상제까지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려.”
“진짜 한  더 맞을…”
“약속하지.”

무명이 독고령을 직시하며 말했다.

“당문의 창고를 털어보면 최상급의 검남춘 하나 정도는 있지 않겠소? 그걸로 준비해두지.”
“약속했다?”
“물론이오.”

무명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독고령 또한 더 이상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다음에 보기로 약속했으니, 반드시 다음에 만날 것이다.

독고령에게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지켜지는 것이었으니.

“그럼 나 간…”
“소저!!”
“응?”

독고령이 다리에 힘을 주다 풀었다.

청년이 급하게 달려와 무언가를 건넸다.

“헉… 헉… 가시면서 챙겨드시라고 먹을 거리를 몇 개 챙겨왔습니다.”
“일부러 안 나오는 줄 알았네.”
“예?”
“아니다. 고맙다,  먹으마.”
“그… 혹시 존성대명이 어찌 되십니까?”
“응?”
“그래도 이름은 알아두고 싶어서요. 은인이시지 않습니까?”
“은인은 무슨.”

독고령이 그냥 웃어넘기려다 무언가 떠올랐다.

“야, 너 나중에 살막 말고  밑에 들어올래?”
“예?”
“음?”
“저런 칙칙한 새끼 옆에서 지내지 말고 나중에 객잔이나 하나 내라. 숙수 시켜줄게.”
“어…”

청년이 얼빠진 얼굴로 무명과 독고령을 번갈아봤다.

 모습을 보고 독고령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큭… 농담이야, 새끼야.”
“아…”
“오, 야. 무명, 얘 아쉬워하는 거 같은데?”
“그런 듯 하오. 이제 슬슬 놓아줄 때가 된 듯 하군.”
“마… 막주!”
“크큭…”

둘이서 나란히 청년을 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청년이 정말 곤란해보이자 독고령이 웃음을 멈추려 노력하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큭… 아… 덕분에 편하게 지내다 간다.”
“… 예.”
“이름… 이름이라…”

독고령은 잠시 고민했다.

보통이라면 무명을 대고 떠날텐데, 하필 독고령의 앞에 붙은 무명이 ‘음란검’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어디서 쉽게 떠들고 다닐만한 무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멸칭에 가까웠다.

결국 독고령은 익숙한 무명을 댔다.

“광마다.”
“예?”
“광마 독고령. 그게 나야.”
“어… 어어… 광마는 팔척장신이라 들었는데…”
“그 광마는 뒤졌고, 이제 내가 광마야.”

독고령이 실실 웃으며 무릎을 굽혔다.

“다음에 또 보자.”
“아… 저기…!”

파앗!

청년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독고령이 날아올랐다.

‘아… 이름 못 들었구나.’

끝까지 청년의 이름을  들은 사실이 떠올랐지만, 독고령은 그냥 가던 길을 향해 계속 움직였다.

다음에 다시 살막에 들릴 약속도 했으니   다시 만나서 들어도 되고, 정 시간이  나면 그가 알아서 자신을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청년의 이름을 듣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깐.

‘지금 만나러 갈게요, 일청.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려줘요…’

독고령의 신형이 숲을 가르며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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