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13장. 보름달이 뜨기 전에 - (4)
은관영의 울음이 조금씩 멎어들자, 독고령이 물었다.
“괜찮냐?”
“흑… 이제 됐어요.”
“… 오냐. 코라도 풀래?”
독고령이 팔을 들어 소매를 가르키자, 은관영이 그녀의 소매를 붙잡고 코를 풀었다.
“흥!! 고마워요오…”
“…”
소매에 묻은 은관영의 콧물을 보며 독고령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진짜 풀 줄은 몰랐는데… 에이, 시발 모르겠다…’
다시 표정을 풀고 독고령이 은관영을 쳐다보았다.
“… 미안하다.”
“뭐가요?”
“아니… 그…”
“사과하지마요. 독고 소저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깐.”
“…”
“짜증나… 씨이…”
은관영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오.”
“아니… 그…”
“위 오빠가 먼저 고백한 거니깐요. 독고 소저는 잘못없어요.”
“…”
“그냥… 위 오빠가 독고 소저한테 빠진 거니깐요.”
독고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과 사귀어 본 적도 없고, 남을 위로할 줄도 모르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자신이 내뱉는 말이 남에게 어찌 들릴 지 모른다는… 생전 처음 겪는 두려움에, 독고령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 독고 소저.”
“어. 듣고 있어.”
“위 오빠 많이 좋아해요?”
“…”
독고령이 대답을 망설였다.
은관영이 얼마나 많이 위일청을 좋아하는 지 느꼈기에, 자신의 대답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두려웠다.
10년을 기다려왔다는 은관영의 말은 독고령에게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그녀가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은관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안 좋아하세요오?”
“아니… 그…”
“그럼 다르게 물어볼게요.”
“어?”
“천축에 도착하고도 위 오빠 옆에 있으실 건가요?”
“아…”
은관영의 질문은 독고령이 내내 피하고 다니던 현실과 강제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천축에 도착하면…’
독고령의 머릿 속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위일청의 따스한 손길.
죽은 가족들의 차가운 손.
위일청의 따스한 미소.
자신을 비웃던 모용벽의 차가운 웃음.
‘나는…’
고민 끝에 독고령이 입을 열었다.
“왜 천축에 도착한 뒤의 일을 묻는건데…?”
“생각해 본 적 없으세요?”
“… 어.”
“위 오빠랑 백년가약을 맺을 건가요?”
“…”
독고령은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옆에 있으면 편하니깐, 따듯하니깐, 기분 좋으니깐.
그게 전부였다.
먼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생각해 본 적 없어…”
“저는 평생 위 오빠 옆에 있고 싶어요.”
“…”
“독고 소저는 그렇지 않은가요?”
“모르겠어…”
평소와 달리 자신감이 없어보이는 독고령을 보며 은관영은 답답함을 느꼈다.
“사랑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 그으…”
“저는 위 오빠를 사랑해요. 필요하다면 위 오빠 대신 죽을 거고,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
“독고 소저는 아니에요?”
“나… 나는…”
독고령은 끝까지… 은관영의 물음에 답하지 못 했다.
*
은관영과 헤어진 뒤, 독고령은 내내 그녀의 마지막 말이 신경쓰였다.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
그저 위일청의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그와 함께하면 몸이 달아오르고,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간질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 나는 누구지?’
육체가 위일청을 원한다면, 마음은 여전히 복수를 잊지 못 했다.
아직도 당문의 소식이 들리면 피가 거꾸로 솟고, 모용세가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절로 이를 악물게 되었다.
‘천축에 도착하고 나면… 그 다음엔?’
원래는 천축에 도착한 뒤, 극양의 신물을 훔쳐 다시 남성의 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복수를 위해.
지금의 몸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수 십년을 함께한 남성의 몸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결국 전장에서 필요한 것은 강인하고, 익숙한 육체였다.
“하아…”
고민이 거듭될수록, 은관영의 울음소리가 계속 귀에 울려퍼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백리소현의 장난스러운 말도 다시 떠올랐다.
[굴러들어온 돌이~]
“시발! 시발시발시발!!!”
위일청과 복수, 두 개 다 손에 넣고 싶은 욕심 또한 있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독고령은 그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위일청은 강하지만, 독선과 검존에 비해선 나약하다.
독고령이 복수를 위해 그들을 잡으러 나선다고 하면… 그는 함께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위일청은 그런 남자니깐.
그리고 아마, 아니.
매우 높은 확률로 그들의 손에 의해 싸늘한 시체가 될 것이다.
‘혹시나 위일청이 죽는다면…’
잠깐의 상상만으로 독고령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가정이였지만, 그녀가 지금의 몸으로 복수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면 마주하게 될 현실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하기엔 마음 속 응어리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지금도 잠시 원수들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온 몸에 빠르게 피가 돌며 몸이 데워졌다.
마치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듯이 여전히 그녀의 복수심에 반응하는 몸을 보며 독고령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누구지?’
독고진. 광마 독고진.
결국 그녀는 복수심을 잊을 수 없었다.
위일청과의 함께 지낸 짧은 시간 동안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편안함에, 따스함에 잠시 눈이 멀었다.
하지만 한 순간의 따스함은 그와 평생을 함께해온 복수심을 이겨내지 못 했다.
“… 시발.”
결국 독고령은 결단을 내렸다.
“… 이 정도면 되려나.”
활동하기 편한 옷가지들, 피풍의, 화섭자.
운소홍에게 부탁하여 얻은 건량과 벽곡단, 그리고 약재 몇 가지들.
떠날 준비가 끝났음에도 독고령은 무언가 놓친 것만 같았다.
‘… 역시 말하고 떠냐아하나…’
백리소현은 그녀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은관영은 방금 전의 일 때문에 다시 만나기 껄끄러웠다.
위일청은…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 편지라도 써야겠군.’
붓을 들고, 종이를 꺼낸 뒤.
독고령은 한참을 가만히 멈춰있었다.
‘… 뭐라고 해야 할까…’
먼저 가겠다?
혼자 여행을 떠나야겠다?
아니면 사실 독고령이 독고진이었노라 고백이라도 해야하나?
“…”
종이를 앞에 두고 독고령은 한참을 멈춰있었다.
원래부터 혼자였다.
가끔 운영, 무명, 그리고 은약벽과 짧게 지내긴 했더라도 이렇게 긴 시간을 남들과 함께 보는 것은 가족을 잃은 뒤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독고령은 쉼없이 떠오르는 추억에 쉬이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 어디부터 써야할지, 원…”
결국 편지의 마지막 부분인 ‘천축으로 혼자 먼저 떠나겠다.’만 적어두고 독고령은 멈춰섰다.
편지에 무언가를 채워나가려고 할수록 다른 것이 차올랐다.
“시발…”
차오른 무언가는 결국 종이 위로 툭 떨어지더니, 얼룩이 되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은 독고령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냈다.
“청승맞게 뭐 하는건지… 시발…”
그 때.
“안에 있습니까, 독고 소저?”
“… 응?”
위일청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치겠군. 환청까지 다…”
“들어갑니다?”
“흐엑?! 자… 잠깐만!!”
“안에 계셨군요.”
환청이 아님을 깨달은 독고령이 다급히 일어나 문고리를 붙잡았다.
“왜… 왜 왔어요?!”
“점심이나 같이 먹자 싶어서요. 그보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목소리가…”
“아… 아무 일도 없어요!!”
“…”
황급히 목소리에서 울음기를 지워내려 애쓰며 독고령이 말했다.
“나… 나중에 봐요.”
“무슨 일 있으셨나보군요.”
“아… 아니에요.”
“그럼 얼굴을 보여주세요. 들어가…”
“싫어요!!”
독고령이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드… 들어오지 마세요…”
“… 무슨 일입니까, 소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에요.”
“아닌 거 같은데요?”
“제발… 그냥 가주세요…”
참았던 눈물이 다시 조금씩 차올랐다.
조금씩 목이 메여오고,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졌다.
“령. 고민거리가 있다면 얘기해주시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독고령은 아무 말도 꺼내지 못 하고 울음을 삼켰다.
‘어떻게 말해요…’
자신은 사실 독고령이 아니라, 독고진이였노라.
복수를 잊지 못 해서 원수를 죽이기 위해 떠나겠노라.
함께 하면… 당신은 죽을 지 모른다고.
독고령은 말할 수 없었다.
함께 사지에 뛰어들자고 말하기에… 위일청은 독고령에게 너무나 큰 존재였다.
차마 부탁할 수 없었다.
‘아… 나는…’
자신이 죽는 것은 상관없었으나 위일청이 죽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 독고령은 은관영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 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나는 위일청을 사랑하는구나.’
좀 더 함께 있고 싶었다.
그의 따스함에 기대 좀 더 그 편안함을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의 옆에 있으면 안 되겠구나 깨달았다.
“령. 듣고 있나요?”
“… 네.”
“왜 울고 있나요?”
“… 아니라고요…”
“…”
스스로도 숨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으나 독고령은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위일청은 그녀의 거짓말을 눈 감아주었다.
“… 알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죠.”
“네?”
위일청이 문 앞에 털썩 앉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고민인지 제게 얘기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
“다만… 식사는 꼭 저랑 같이 하죠.”
“흐윽…”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세요.”
위일청의 말을 들은 독고령은 결국 문고리를 붙잡고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왜… 왜…!!’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울음은 그녀의 머릿 속에서 한맺힌 외침이 되어 울려퍼졌다.
‘왜 하필 여자가 돼서…!! 왜 하필 남자로 태어나서…!! 왜 하필… 왜 하필 지금…!’
분하고, 원통했다.
차라리 이런 감정을 몰랐다면 편했을텐데.
그 날, 위일청의 방에 찾아가지 말 걸 그랬다며.
그와 보냈던 한 순간의 따스함이 평생 함께한 복수심을 이겨내지 못 했지만, 그 한 순간의 따스함이 독고령에게 살면서 가장 아픈 상처가 되었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왜 자신은 복수심을 잊지 못 하고 사는가.
왜 위일청은 자신에게 저리 따듯한가.
왜…
왜…
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 모든 원망들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리고 눈물이 마를 즈음.
독고령이 일어났다.
“…”
얼룩이 번진 편지를 보며 붓을 집어들고 한 번도 그에게 하지 못 한 말을 적어냈다.
’사랑해요(愛).’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그리고 그 앞에, 자신의 본심을 숨기는 한 글자를 추가했다.
‘不(않아요).’
불애(不愛).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고.
“시발…”
다 메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려 하자, 독고령은 꾸려둔 행낭의 주둥이를 조이고 어깨에 걸쳤다.
부디 위일청에게 들키지 않고 떠날 수 있기를 바라며 창문을 연 뒤, 두고 가는 것이 없는지 방 안을 다시 살펴보는 순간.
“…어?”
그는 갑자기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 풍경 속에 함께 있었다는 듯이.
하지만 그 풍경에 결코 어울지 않는 흉흉한 외형의 사내를 본 순간, 독고령은 당혹스러움에 입을 열었다.
“네… 네가 왜 여기…”
갑자기 나타난 사내, 무명은 독고령의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의 왼손이 독고령의 턱 아래를 찔러들어오자, 그녀가 급히 팔을 들어 투로를 막았다.
‘이… 이거…!’
그와 동시에 무명의 오른손이 자신의 목을 향해 들어오자, 독고령은 억지로 몸을 비틀어 그 오른손을 피해냈다.
“너…!!”
독고령과 무명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명이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냈다.
‘시발…’
자신의 이마에 느껴지는 따끔함과 함께 독고령의 의식이 흐려졌다.
“다음엔… 말하고 하랬잖아… 개새끼야…”
쓰러지는 독고령을 껴안아들고 무명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
탁상 위에 써둔 편지와 여행을 떠나려는 듯 챙겨둔 행낭을 확인한 무명은 그대로 독고령을 들춰매고는 사라졌다.
위일청이 독고령의 처소에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