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13장. 보름달이 뜨기 전에 - (1)
당문의 대문 앞에 이르자, 노승은 얼굴을 찌푸렸다.
“나무아미타불…”
소림의 방장이자, 권신(拳神)이라 불리는 공여대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업이 너무 깊도다…’
아직 대문을 두드리지 않았음에도 안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사특한 기운을 느끼고 공여대사는 불호를 다시 한 번 외며, 잘못된 선택을 해버린 후배를 안타까워했다.
‘결국 사마외도의 길을 택했는가…’
당문이 가지고 있던 기이한 열등감은 이미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독을 쓰고, 사특하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편술과 비도술을 주로 쓰더라도 그렇기에 오히려 사마외도에 빠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항상 사마외도에 반 쯤 발을 걸쳤음에도 꿋꿋이 정파를 자처해왔던 당문이였기에 잘못된 길을 걷지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
‘이 또한 내가 짊어질 업보구나…’
한 걸음, 한 걸음 당문의 대문에 가까워질수록 농후해지는 사기(邪氣)를 느끼며 공여대사는 문을 두드렸다.
“문 좀 열어주겠나, 당정?”
공여대사의 부름에 답하듯 문이 열리고 거무죽죽한 인상의 한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 아무리 소림의 방장이라 하더라도 가주의 이름을 격없이 부르는 것은 예가 아닌듯 합니다.”
“예의 또한 말이 통할 때나 챙기는 것이 아닌가? 이미 소승에게 살기를 들이미는 것이 대화를 할 생각조차 없어보이는구만.”
“… 어린 것들이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 했나 봅니다. 무례를 대신 사과하지요.”
그가 고개를 까닥이자, 공여대사가 피식 웃었다.
“신기하구만.”
“… 무엇이 말입니까?”
“살아있지 않은 자가 예의와 혈기를 논하는 게 신기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
거무죽죽한 인상의 사내가 고개를 들고는 이를 내보였다.
“어떻게 아셨소이까?”
“처음에는 독기와 사기에 섞여서 나도 알아차리기 힘들었네. 헌데 이렇게 직접 말을 섞으니 시체가 말을 하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고?”
“…”
공여대사가 승복의 윗도리를 벗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한계까지 자신을 깎아낸 수도승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둑! 우두둑!
목을 돌리며, 양 다리를 벌리고, 양 팔을 앞으로 내밀며 기수식을 취하고는 공여대사가 말했다.
“소승이 불문에 귀의한 뒤, 평생을 살인과 동떨어져 지냈다네.”
“유명하시지요.”
“허나 이미 죽은 시체를 해하는 것을 가지고는 부처님도 뭐라하시지 않겠지.”
“잠…!”
공여대사가 주먹을 꾸욱 쥠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과광!!
거무죽죽한 인상의 사내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공여대사가 사자후를 내질렀다.
“썩어도 정파라 믿었거늘!!! 감히 혈교 놈들과 손을 잡아?!!”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라고, 사내대장부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도 던질 줄 알아야한다고 하더이다.”
무너진 누각 위로 내려서는 초록빛의 장포를 입은 사내를 보고 공여대사가 외쳤다.
“당정, 네 이 노옴!!”
“그러게 말 좀 들으시지 그랬습니까. 정마대전 당시에도 독을 풀었으면 지금 즈음, 마교는 강호에서 없어졌겠죠.”
“허튼 소리!!”
공여대사의 손이 또 한 번 움직였다.
그의 주먹은 허공을 때렸으나 당정이 밟고 있던 누각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소림이 자랑하는 칠십이종 절예의 하나, ‘백보신권(百步神拳)’이었다.
무너져내리는 누각을 바라보며 당정이 이마를 찌푸렸다.
“격공권은 피하기 힘들어서 싫은데 말입니다.”
“내 오늘 네 놈을 계도해주마!!”
“계도는 무슨!!”
쿠궁!
당정이 진각을 내지르며 대지를 울렸다.
“항상 방관하기만 했던 소림이 이제와서 무슨 도덕을 논하는가!!”
“이 노옴!!”
“맞는 말이라 듣기 싫은가 보지?!”
당정의 외침에 응답하듯, 수없이 많은 무인들이 튀어나와 공여대사를 둘러쌌다.
튀어나온 무인들에게서 하나같이 생기가 느껴지지 않자, 공여대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이게 무엇이냐…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가 하나도…”
“혈교와 손을 잡은 이유죠. 멋지지 않습니까?”
“이… 이 무슨…”
넋이 나간 공여대사를 비웃으며 당정이 한 어린 소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군지 기억납니까? 제 딸입니다. 마교의 침공 당시 열 두 살이었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마교가 사천을 휩쓰는 동안, 소림은 무엇을 했습니까? 무당은? 남궁은?”
당정이 살기를 내뿜으며 공여대사에게 말했다.
“말했잖습니까, 제가. 조금의 희생이면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고독만 완성시킨다면 천하제일인을 만들 수 있다고.”
“그렇다고 죄 없는 양민들을 해칠 수는 없지 않는가?”
“어차피 약한 자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이들의 목숨을 가치 있게 쓰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 광인의 생각이도다.”
“지극히 효율적이기도 하죠. 양민 10만의 목숨으로 천하제일인 하나를 얻을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라 생각합니다.”
“크… 크하핫…”
갑자기 공여대사가 웃어대자, 당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치셨습니까, 방장?”
“네 놈의 그 오만이 만들어낸 것이 광마가 아니더냐?”
“…”
“이미 틀린 답을 껴안고 징징거리는 꼬락서니가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구나, 당정.”
충격적인 광경에 잠시 흔들렸던 공여대사가 다시 주먹을 꾸욱 쥐고 자세를 바로했다.
“네 놈은 틀렸다, 당정. 광마가 이를 증명하노라.”
“허튼 소리.”
“네 놈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그 약한 이들 중에서 광마가 나왔다. 홀로 네 놈의 계획을 몇십년 늦춘 걸출한 무인이 탄생했다.”
“그 새끼는 아무 것도 아니야!!”
“헌데 아직도 그 아해를 못 잡았구나. 혈교와 손을 잡고, 죽은 딸을 강시로 되살리고도 한 명을 못 잡아냈구나.”
“아니라고!!!”
당정이 공여대사에게 달려들며 손바닥을 날렸다.
우우웅!!
공여대사의 몸에서 샛노란 기운의 내공이 넘실거리며 그의 장법을 맞받아쳤다.
“크윽… 여래신장!”
“사마외도에 빠진 자를 상대하기에 이보다 좋은 것이 없지.”
당정이 자신의 팔을 타고 오르는 선기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공여대사가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오라, 사특한 것들아. 왜 마교가 단 한 번도 소림을 이겨내지 못 했는지 오늘 내가 직접 보여주겠노라!”
공여대사의 온 몸에 파마(破魔)의 기운이 어리며 후광이 떠오르자, 그를 둘러싼 강시들이 우물쭈물거렸다.
그 광경을 보고 당정이 발악했다.
“쳐라!! 죽여!!!”
“으… 으아아악!!!”
당정의 외침에 그제서야 달려드는 강시 무리를 보며 공여대사 또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오늘 이 모든 업보를 껴안고 귀의하겠노라!’
“하압!”
진각과 함께 그가 정권을 내질렀다.
공여대사에게 날아가는 강시들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당정이 침을 삼켰다.
‘젠장… 하필 저 땡중이 와서…’
사마외도의 술법으로 제조한 강시들의 가장 큰 적이 파마(破魔)의 기운을 다루는 정종의 무공이었다.
당정은 가능한 검신이 찾아오길 바랬으나 애석하게도 찾아온 것은 권신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가진 강시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과 믿음직한 동맹이 있다는 점이었다.
“… 뭐하다 이제 왔소?”
“말했잖아. 소피를 보고 오겠다고.”
“담이 큰 건지, 정신이 이상한건지…”
당정이 한숨을 쉬며 돌아보자, 그 곳엔 하얀 얼굴에 피처럼 붉은 입술을 한 장발의 사내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사내의 목소리는 분명 남성인데도 여성처럼 가는 목소리가 마치 환관의 목소리를 연상케했다.
“오~, 저 자가 당대의 방장이야?”
“그렇소, 혈라(血羅).”
“여전히 기분 나쁜 기운이네. 으으…”
혈교의 교주, ‘혈라’가 몸을 부르르 떨자, 당정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보다 정녕 저 정도의 강시로 방장을 꺾을 수 있소이까?”
“나야 모르지. 이번 대의 방장이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뭐 하나 확실한 게 없군.”
“자네가 고독을 좀 더 많이 만들었다면 강시의 숫자가 늘어났을텐데 말이지.”
“…”
혈라의 일침을 들은 당정이 이를 갈았다.
‘망할 놈의 광마…’
독고진만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초조하게 공여대사와 강시의 싸움을 지켜보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당정이 화를 삭혔다.
“지나간 일은 어찌할 수 없소.”
“뭐, 그렇긴 하지.”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넘어가자 당정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 놈의 말투 좀 어찌할 수 없소?”
“내가 말한 게 아니라 전대 교주께서 말씀하신거라 통제가 안 되네?”
“젠장.”
“여튼 고생하고, 혹시나 필요하면 부르고.”
“또 어디 가시오?”
“몸을 돌보러.”
혈라가 자신의 팔을 들어보였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기분 나쁘게 덜렁거리는 팔을 보고 당정이 인상을 구겼다.
“그건 또 왜 그런거요?”
“슬슬 몸이 완성됐다 싶어서 곤륜에 잠깐 다녀왔거든.”
“… 투신이랑 싸우고 왔소?”
“싸움까지야. 그냥 손 한 번 주고 받은거지.”
백도 무림의 절대자 중 하나와 싸우고 왔다는 말을 마치 동네 마실 다녀오겠다는 말처럼 한 뒤, 혈라는 당정을 가르키며 말했다.
“나 말고 네 몸이나 간수 잘 해. 아직 대법이 완성되지 않았으니 선기를 피하라고 했잖니?”
“… 그냥 손 한 번 주고 받은 것 뿐이오.”
“그러다가 나처럼 망가진다?”
“주의하지.”
당정이 공여대사의 선기에 노출된 오른팔의 고통을 꾹 참아내며 말했다.
“… 정말이지. 아직까지도 그대와 손을 잡은 것이 맞는 일인지 모르겠소.”
“계승식은 거의 다 끝났으니 걱정 마. 전대 교주님들이 내 몸에 깃들기만 하면 검신이든, 권신이든, 투신이든, 아니면 마신이든 다 상관없으니깐.”
“… 그래도 잊지 마시오. 우리가 나눈 계약을.”
“알지, 알아.”
혈라가 싱긋 웃으며 당정에게 말했다.
“내가 마교를 부숴주지. 그대는 백도 무림을 내게 바치고.”
“바치는 게 아니라 건네주는 거지. 마교만 어찌할 수 있다면 아무 상관 없소.”
“으캬캭!! 자네가 정파에서 태어난 게 참 아쉬워. 지금이라도 본 교에 귀의한다면 부교주 자리는 언제든지 건네줄 텐데.”
“천성이 남의 밑에 못 들어가는지라.”
“아쉽군, 아쉬워.”
그 말을 끝으로 혈라의 그림자에서 피가 솟구치더니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 언제봐도 신기한 사술이란 말이지.”
다시 홀로 남은 당정은 여전히 분투중인 방장을 바라보며 소매 속의 우모침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틀린 답을 껴안고 징징거린다고?’
방장의 말은 그의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당정은 이제와서 그를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틀린 답은 옳게 만들면 그만이오, 방장.’
결국 천하제일인, 독인을 만들어 전 무림을 자신의 지배 아래에 놓게 되면 나머지 모든 이들은 약자다.
그리고 그 날이 찾아오면 당정은 무림에 새로운 질서를 세울 생각이었다.
‘그러니 부디 순순히 죽어주시오.’
저 괴물 같은 방장이 빈 틈을 보일 때를 기다리며 당정은 전투를 지켜보았다.
*
운영과 헤어진 후, 독고령은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지내는 처소로 향했다.
“안에 있냐?”
“령 매. 어서 와.”
“아, 독고 소저! 무슨 일이세요오?”
“별 건 아니고… 자.”
독고령이 운영에게 받은 내단을 던져주었다.
“이게 뭐야?”
“내단. 태양화리로 만든 거.”
“흐에엑!! 이거 진짜 저 주는 건가요오?”
“어. 빨리 먹어, 둘 다.”
“령 매…”
“독고 소저어…”
둘 다 놀란 얼굴로 독고령을 쳐다보자,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독고령이 고개를 돌렸다.
“아이씨, 뭐 별 거라고 그러냐. 그냥 먹어… 빨리 운기조식부터 해서 기운 좀 흡수하고.”
“고마워, 령 매.”
“감사해요오! 근데 나중에 먹으면 안 되나요오…?”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극양의 기운으로 만든 내단이면 구명용 환약으로도 쓰여서요. 아껴둘려고요.”
“응?”
독고령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듯 하자, 은관영이 말했다.
“양기는 생명력을 뜻하잖아요? 그렇다보니 태양화리의 내단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구명용 환약으로는 최고로 쳐서요. 혹시 나중에 위 오빠가 크게 다칠 때를 대비해서…”
위일청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독고령이 은관영의 말을 끊어들었다.
“그냥 먹어, 새끼야. 여러 개 가지고 있어.”
“아… 진짜요?”
“그래. 일청이 정 위험하면 내가 약 주면 되니깐…”
“헤에~.”
“ㅁ… 뭐, 새끼야?!”
“아니요오~. 독고 소저가 너무 아름다우셔서요오~.”
“무… 무슨…”
은관영이 히죽거렸다.
“독고 소저, 그거 아세요?”
“뭐?”
“사랑에 빠진 여인은 아름다워진대요오~.”
“흐엑?!”
독고령이 얼굴을 붉히자, 은관영의 히죽거림이 더 심해졌다.
“그냥 그렇다고요오~.”
“아… 아니… 으… 가… 간다!!”
“도망치시는 거에요오?”
“아… 아니야, 새끼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어디 가시는데요오?”
독고령이 허리춤에 걸린 유성도를 가르키며 말했다.
“사냥 좀 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