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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화 〉12.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 (11) (98/225)



〈 98화 〉12.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 (11)

독고령이 이를 드러내며 은은한 기운을 퍼뜨리자, 살막의 살수 7호는 숨을 멈췄다.

‘이 무슨 흉포한 기운인가…!’

귀식대법을 활용해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지운 뒤에도 한동안 7호는 식은 땀이 절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기운은 금세 잦아들었으나 오히려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7호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입을 둥글게 모았다.


“휘익!”

자신과 함께 온 살수들에게 새를 흉내낸 소리로  물러날 것을 지시한 뒤, 7호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목표 대상과 충분히 거리를 벌린 뒤에야 안심한 그는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피고는 경신술로 몸을 날려 정기 보고를 위한 장소로 향했다.


“… 정기보고를 위해 찾아왔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수풀을 향해 무릎을 꿇고 7호가 고하자 쇠를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하라.”
“… 대상이 저희를 알아차렸습니다.”
“검신의 눈을 속이긴 힘들지.”
“검신이 아닙니다. 보호대상 1호 입니다.”
“… 뭐라?”


수풀에서 거무튀튀한 인형(人形)이 튀어나왔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마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그 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묘한 사내를 보고 7호는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막주…”
“설명하라. 대상이 어떻게 너를 알아차렸지?”
“… 대상이 저희가 있는 곳을 향해 흉포한 기운을 뿌리며 경고하였습니다. 십  확신합니다.”
“허어…”
“막주, 저희에게 벅찬 살수행입니다.”
“… 오히려 과분하다 생각하고 너를 보낸 것이거늘.”

막주가 신음을 흘리며 잠시 고민했다.

“함정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독고진을 안다.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는 나를 동업자라 불렀지.”
“…”
“그렇기에 확신한다.”


살막의 막주, 무명이 주먹을 불끈쥐며 분노를 드러냈다.

“독고진은 절대 가족이 있을 수 없는 사내야.”
“… 그런 자가 존재합니까?”
“너는 차가운 불을 본 적이 있느냐?”
“예?”
“독고진은 불이다. 온 무림을 불태울, 지옥에서 찾아온 업화(業火)다.”
“그런…”
“독고진에게 가족이 있다? 폭포에서 떨어지던 낙수가 역으로 승천하는 소리지. 그렇기에 당문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나 또한 궁금했거든. 어떤 미친 작자가 독고진의 딸을 감히 자청하는지 말이야.”
“…”

어지간해선 결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막주가 진심으로 분노한 것을 보고, 7호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7호.”
“예, 막주!”
“이번 작전에서 빠지도록.”
“… 존명.”

7호는 자신이  수 있노라 반박하지 않았다.

살수에게 있어 대상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킨 것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무명의 판단은 당연했다.

“3호와 4호를 같이 보내겠다. 나 또한 주변에서 지켜보마.”
“마… 막주께서 직접 손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이번 일은 놓쳐선  될 일이다.”


무명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독고진이 사라지고 당문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
“그 동안은 피해자들을 따로 빼돌리고, 그들의 행동을 방해하는 데 그쳤지만, 이젠 그 것으로 부족하다. 놈들을 쳐야할 때가 다가왔어.”


무명이 거무칙칙해진 자신의 손을 내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나 또한 영면에 들  있겠지.”
“막주…”
“같이  살수들을 데리고 돌아가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존명.”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7호를 바라보며, 무명은 긴 한숨을 내쉬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후우… 윽…!”


손 끝에서 시작되는 고통을 억누르며 무명은 고민에 빠졌다.


‘어디 갔소, 동업자 양반…’


갑자기 독고진이 사라지고, 그의 딸이라 주장하는 이가 나타났다.

무명은 그 사실이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당문이 생포를 원하는 것을 보면 인질로 쓸 셈이겠지. 정녕 그대에게 자식이 있었던 것이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 쪽이 가장 옳은 답이라 생각했지만, 무명은  생각을 금세 지워버렸다.


다른 이가 딸이 있다고 하면 놀랍지 않았지만, 하필  독고진이다.

당문에게 죽어나간 모든 이들의 복수심이 하늘에 닿아 지상에 내려준 복수의 화신.

무명에게 독고진이란 사내는 그랬다.

‘아니면… 그대를 끌어들일 함정이란 말이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무명은 결국 이 궁금증을 해결해 줄 당사자를 직접 만나기로 결정했다.

독고령.

그녀만 만난다면 무명의 궁금증은 풀릴 것이다.

당장은 검신이 옆에 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검신의 곁에서 떠나는 순간, 무명은 바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



“으음…”


햇살이 눈을 간지럽히자, 독고령은 몸을 뒤척거렸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령, 이제 슬슬 일어나야죠.”
“… 싫어요.”
“이제 곧 해가 중천에 뜰 겁니다.”
“… 조금만요.”

다그치는 위일청의 목소리를 듣고, 독고령은 오히려 더욱 그의 품을 파고 들었다.

“… 조금만 더 있을래요.”
“크큭, 그럼 제가 먼저 일어나 아침거리를 챙겨오겠습니다.”
“아…”


위일청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독고령은 금세 허전함을 느꼈다.

“… 일어날게요.”
“조금 더 누워계셔도 되는데요?”
“일청이 없으면 싫어요…”
“그런가요?”
“… 네.”


어젯밤에 결국 살수들이 신경쓰여 내내 선잠을 잤던 독고령은 비틀거리며 위일청의 품에 다가가 안겼다.


“하음…”

자신의 품에 안겨 길게 하품하는 독고령을 보고 위일청이 웃으며 그녀의 눈가를 매만졌다.

“눈꼽이 끼었네요.”
“… 어제 잠을 제대로  자서 그런가봐요.”
“무슨 일 있었나요?”
“아… 그…”

독고령이 살수 때문에 신경쓰여 잠을 못 잤다고 하기엔 그랬기에 다급히 변명거리를 찾다가 자신의 배에 닿는 딱딱한 무언가를 가르키며 둘러댔다.

“일청의 양물이 신경쓰여서요.”
“음탕하셔라.”
“… 그래도 앞으로 조금만 더 참으면 되죠?”
“네, 령.”

위일청이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토닥여줬다.

“조금만 더 참죠.”
“히힛… 네.”

잠시동안 서로의 체온을 좀 더 즐긴 뒤, 위일청이 그녀를 놓아주었다.


“먹을 걸  챙겨올테니 그 사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 일청.”
“그럼…”


위일청이 웃으며 밖으로 나가자 홀로 남은 독고령의 눈매가 표독하게 바뀌었다.

‘아, 시발 개같은 새끼들…’


창문을 열어재낀 독고령은 어젯  혈향이 느껴진 방향을 노려다보았다.

“이익…!”

당장이라도 사자후를 터뜨려 수풀 사이에 숨어있을 살수 놈들을 죄다 쫓아내고 싶었지만, 위일청에게 들킬까봐 꾸욱 참았다.


‘이래서 살수 새끼들이 싫은데…’


독고령은 자연스레 무명의 조언이 떠올랐다.

[살수는 정체를 들키면 끝이오. 그렇기에 항상 기척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지. 그러다가 사람들이 가장 풀어지는 순간에 목표를 덮친다오.]
[무인이 풀어지는 순간이 있던가?]
[있소. 오랜만에 가족을 다시 만나는 순간,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순간,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순간.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도 일상에서 마저 무를 행하진 않지.]
[… 무서운 놈이였구만, 동업자 양반.]
[그러니 일러두는거요. 그대라면 살수들에게 자주 노려질테니 항상 긴장의 끊을 놓치 말라고.]

그에게 조언을 들은 이후, 독고진은 의식적으로 항상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을 주의해왔다.

그가 살면서 긴장을 푸는 순간은 오직 하오문의 거처 아래에서 잠시 몸을 쉬는 순간이 전부였다.


‘아, 미치겠네…’

수풀에 숨은 살수들의 기척은 자고 일어나니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어차피 의녀문만 벗어나면 곧바로 덮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시기가 시기였다.

‘… 보름 전에는 다 족쳐둬야하는데…’


아무리 독고령이 주의를 기울인다고한들, 위일청과의 초야 때까지 긴장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순간을, 절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도 답답해 미치겠군.’

결국 독고령은 결심했다.


오늘 밤부터 밖으로 나가 한 놈씩 찾아 족치기로.


‘하나씩 쳐죽이다보면 알아서 꺼지겠지, 개새끼들.’


독고령이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조금씩 끌어오를 무렵…

“령?”
“아, 일청. 왔어요?”
“… 아침부터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요?”


독고령이 끌어오르던 기운을 숨기고는 배시시 웃으며 위일청에게 다가갔다.


“아니요. 전혀요.”
“흉흉한 기운을 풍기길래 놀랐습니다.”
“그냥…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봐요.”
“좀 더 자고 가시겠습니까?”
“… 그래도 돼요?”
“오늘은  다른 일이 없어서요.”
“으으…”


독고령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 남궁세가 놈들 합격술도 깼으니깐 오늘 아침 정도는…’

그녀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조금만  자고 갈래요.”
“그러시죠, 령. 일단 아침부터 먹읍시다.”
“네.”

위일청이 가지고 온 아침상을 바닥에 내려놓고 앉자, 자연스레 독고령이 그의 품에 파고 들어 위일청의 무릎 위에 앉았다.

“… 여기서 먹어도 되죠?”
“크큭, 그러세요.”
“히힛…”


독고령이 가슴에 차오르는 간질거림을 참아내며 젓가락을 들었다.

“이거 맛있네요.”
“그러게요. 숙수께서 요리를 잘 하나 봅니다.”
“그… 으으…”


독고령이 잠시 망설이다가 젓가락을 위일청에게 뻗었다.


“드… 드셔보실래요?”
“고맙습니다, 령. 헙…”

위일청이 독고령이 건넨 음식을 받아먹고는 씹어삼키고 활짝 웃었다.

“맛있네요. 령도 한 입 하시죠.”
“아… 네.”


위일청이 음식을 건네자, 독고령이 고개를 내밀어 그가 건넨 음식을 받아먹었다.

“아… 맛있어요.”
“그렇죠?”
“… 네.”

그렇게 둘이서 한동안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길 반복하다보니 식사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아침을 다 먹고  뒤, 위일청이 자리에 앉자 그의 품에 안긴 독고령이 조금씩 졸기 시작했다.

“그… 일청…”
“네, 령.”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깨워요?”
“네, 그러지요.”
“… 불편해도 깨우고요.”
“가벼워서 괜찮아요, 령.”
“… 그럼 다행이고요.”

위일청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은 독고령은 눈을 감고 조금씩 쌔근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금세 잠에 빠져든 독고령을 보며 위일청은 피식 웃었다.

‘… 고양이를 키우는  같네요.’


잠든 독고령의 머리를 잠깐 쓰다듬다가 위일청은 서책을 펼쳐들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으면 깨우라고 했지만, 위일청은 먼저 독고령을 깨울 생각이 없었다.

‘편히 주무세요, 령.’

은근하게 느껴지는 독고령의 무게와 체온을 느끼며 위일청은 서책을 한 장씩 넘겼다.








그녀가 일어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으…”
“일어났나요, 령?”
“… 일청. 아…”


잠에서 깨어난 독고령이 황급히 자면서 흘린 침을 닦았다.

“죄… 죄송해요.”
“크큭, 괜찮습니다. 편히 주무셨나 보네요.”
“으아아… 오… 옷에도…”
“갈아입으면 되니 괜찮습니다.”
“하으으…”

부끄러움에 당황하며 위일청의 품에서 벗어난 독고령이 기지개를 켰다.


“아… 안 불편했어요?”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령이 걱정되더라고요. 침대에서 주무시지 그랬어요.”
“… 일청의 품이 좋은걸요.”
“…”


독고령의 말에 서로 볼을 붉힌 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위일청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 아. 령, 아까 신의께서 왔다 가셨습니다.”
“아, 진짜요?”
“내단이 완성되었다더군요. 일어나면 자신을 찾아오라 하셨습니다.”
“아… 네.”

아직 잠에서 덜  독고령이 멍한 머리로 ‘운영을 찾아가야지’라고 생각하다가…


몸이 굳었다.

“우… 운영이 왔다갔다고요?”
“네. 신의께서 잠시 들렸…”
“봤나요?”
“네?”
“봐… 봤냐고요. 저 자는 거…”
“아…”


위일청이 상큼한 웃음과 함께 독고령의 질문에 답했다.


“물론입니다. 보기 좋다고 웃으시던데요?”
“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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