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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12장.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 (4) (91/225)



〈 91화 〉12장.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 (4)

독고진과 무명이 처음 만난 것은 사천과 호북의 경계에 위치한 당가 소속의 건물이었다.

독고진이 당가의 건물들을 모조리 박살낸 뒤, 마무리를 지으려던 순간.


그는 갑자기 나타났다.


“…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그대가 이 곳에 들어설 때부터 있었소.”
“시발, 살수냐?”
“… 그렇소.”
“그럼 잠깐만 기다려주라.”


독고진이 폐허 속에서  사내의 멱살을 붙잡아 끌어올렸다.

그가 자신이 들어올린 사내를 살수에게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이 새끼만 죽이고 얘기하자.”
“목만 내어주시오.”
“엉?”


무명이 손을 들어 당문의 장로를 가리켰다.


“손에 들고 있는 그 자. 당문의 비독각주가 맞소?”
“몰라. 그냥 당문 새끼라 조지는 건데?”
“…”
“어이, 당문.”

독고진이 장로의 얼굴을 후려쳐 그를 깨웠다.

“커헉…!”
“너 비독각주냐?”
“아… 알고  것이 아니냐?!”
“그렇다는데? 목은 왜?”
“의뢰를 받았소.”
“돈 받고 사람 죽이는 버러지냐?”
“… 의뢰를 받았소.”


무표정한 살수의 얼굴에 희미한 감정의 편린이 떠오르자, 독고진은 씨익 웃었다.

“좋아. 주지.”
“이… 이 미친 놈들ㅇ…!”


뚜둑.


비독각주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독고진이 그의 목을 으스러뜨리고는 축 늘어진 시신을 무명에게 내던졌다.

“가져가라.”
“… 감사하오.”

무명이 비독각주의 유해를 챙기려하던 순간.

독고진이 참마도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근데 누가 의뢰했는지  수 있냐?”
“필요하오?”
“궁금해서.”
“… 무슨 연유로 궁금하오?”
“음… 그게 말이지…”

독고진이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강호에 존재하는 모든 당문의 개새끼들은 내가 죽여야하거든?”
“… 광인이 맞았군.”
“근데 내가 죽일 새끼를 다른 새끼가 죽이면 기분이  좆같을 거 같아서.”
“3할만 떼어주시오.”
“음?”


무명이 독고진에게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부탁했다.

“내게 딱 당문의 3할만 떼어주시오. 놈들은 내가 죽이고 싶소.”
“…”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독고진은 당황했다.

아무리 그가 광증에 시달리고 있더라도 무명의 담담한  속에 담긴 절박함은 확실히 독고진에게 전달됐다.

“당문이 너에게 무언가를 했군.”
“양보만 해준다면 그대에게 뭐든지 드리리다.”
“무엇을 했지?”
“… 꼭 듣고 싶소?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닐텐데.”
“당문이 독을 써서 내 가족이 전부 죽었다. 아비와 어미, 형제들끼지 다 합쳐서 6명이었지. 막내는 고작 4살짜리였어.”
“그대가 당문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군.”
“고작 대가리  번 숙이는 걸로 내 복수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으리라 생각치 마.”

독고진이 핏발선 눈으로 참마도를 들어올렸다.

“그렇다면 너 또한 나한테 당문과 다를 바 없다.”

그의 살벌한 말을 들은 무명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 직접 보는게 빠를 듯 하오. 시간은 괜찮으시오?”
“가까운가?”
“그리 멀지 않지. 반나절이면 도착하오.”
“안내해.”
“따라오시오. 시체도 내가 들지.”
“… 오냐.”




무명과 독고진은 이동하는 동안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그제서야 무명이 입을 열었다.


“… 여기요.”
“그냥 동굴 같은데?”
“그대는 당문에 대해 얼마나 아시오?”
“음? 잠깐만...”

독고진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독을 만드는 개새끼들. 따끔한 침을 던지는 쓰레기 새끼들. 아무튼 뒤져야 할 좆같은 새끼들.”
“충분히 알고 있군.  곳은 그 쓰레기 놈들이 만드는 독 중 가장 흉악한 독을 만드는 곳이오.”
“뭐?”

독고진이 내공을 끌어올리자, 무명이 그를 제지했다.

“지금은 이미 끝났소.”
“… 아쉽군.”
“안으로 들어가겠소?”
“안내해.”

무명이 비독각주의 시신을 들고 동굴로 들어가며 말했다.

“당문에겐 두 가지의 비원이 있소. 하나는 극독지체(極毒之體)를 완성하는 것이오.”
“극독지체?”
“당문의 비전이라고 들었소. 무인이 단전에 내공을 쌓는 것처럼, 당문은 단전에 독도 함께 쌓아두지. 그 상태에서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면 극독지체를 이룬다더군.”
“헛소리 같은데?”
“그 헛소리에 400년 넘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 당문이오.”
“두번째 비원은 뭔데?”
“극독지체를 이룬 독인(毒人)을 배출하여 무림의 인정을 받는 것이오.”
“… 인정?”

동굴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독고진은 어딘가 께름칙했다.

기분 나쁜 습기와 당장이라도 귀곡성이 들릴 것만 같은 스산함이 머무는 곳이었다.


무명은 이미 이 곳을 여러번 들렀는지 익숙하게 화섭자를 꺼내들어 횃불에 불을 붙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백도 무림은… 고지식한 점이 조금 있소. 무예를 갈고 닦아 사람을 죽이는 백정과 다를  없는 놈들이 무예를 통해 수양을 쌓는다고 착각하는 병신들이지.”
“뭘 좀 아는 놈이구만. 동의한다.”
“하지만  착각을 붙들고 사는 쓰레기들 사이에 속해있어서 그런지 당문은 기이한 열등감을 품고 있소. 다른 백도의 무림인들에게 차별도 많이 받고.”

그의 말을 듣고 독고진이 피식 웃었다.

“하긴. 독도 쓰고, 암살도 하는 꼬락서니가 사파에 더 어울리긴 하지.”
“그래서인지 백도 놈들은 당문의 무공을 쉬이 인정해주지 않소. 당문의 독을 무서워하는 자는 있어도 당문의 편술이나 장법을 무서워하는 이가 어딨소?”
“실제로도  거 아니긴 하더군.”
“그래서 당문은 독인을 배출하여 천하제일인을 세상에 내고, 전 무림의 인정을 받길 간절히 원하고 있소. 독이 아니라, 무공도 인정받고 싶단거지.”
“버러지들이나  법한 생각이군.”

독고진은 당문의 생각이 우스웠다.


수없이 당문과 부딪혀 온 그였기에 독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무슨 개지랄을 떨든 그냥 무시하고 독이나 쓰면 될 것이지.’


계속 그런 병신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독을 안 쓰고 덤벼주면 차라리 좋으련만, 꼭 목숨이 위험해지면 독을 꺼내는 그들의 모순을 알고 있기에 독고진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래. 버러지들의 얘기는 잘 들었는데… 그게  곳이랑 무슨 상관이지?”
“말했잖소. 그들이 가진 가장 흉악한 독을 만드는 곳이 이 곳이라고.”
“응?”
“극독지체를 이루기 위해선 지독한 독이 필요하단 게 그들의 결론이였소.”

동굴의 끝, 절벽에 다다르자 무명이 멈춰섰다.

동굴의 절벽 아래로는 넓은 공동이 있었고, 뻥 뚫린 천장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절벽의 아래를 비추고 있었다.

아래의 넓은 공동을 슬쩍 쳐다 본 독고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뭔 백골이 저렇게 많냐…’

하나같이 어딘가 물어뜯긴 것이 짐승들이 먹어치운 듯 보였다.


‘잠깐…’

문득  기이한 광경을 어디선가 본 듯하자 독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문 새끼들 쫓다가 귀주에서 비슷한 걸 본 거 같은데…’


독고진이 고민에 빠진 지도 모르고, 무명이 비독각주의 시신을 절벽 아래로 내던지고는 절벽의 끝에 걸터앉았다.


“이 곳은 그 지독한  중 하나인 ‘고독(孤毒)’을 만드는 곳이오.”
“고독?”
“고독을 만들기위해서는 먼저 빛 하나 들지 않는 동굴에 중독시킨 사람들을 가둬두오.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도록 환각을 일으키는 독도 풀어두지.”
“…”
“중독시킨 사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소. 아직 젖을 떼지 못 한 아기도 있었고,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영감도 있었소.”
“… 그래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하나 주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여기에서 말하더군.”

무명이 자신이 앉아있는 낭떠러지 옆을 손으로 툭툭치며 말했다.


“오직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고.”
“… 뭐?”
“처음 하루는 다들 혼란스러웠지. 이틀째 되는 날, 사람들은 조금씩 이상해졌소. 그리고 사흘 째에 일이 터졌지.”
“…”


무명의 담담하던 말투는 조금씩 기이한 열기를 띠었다.

“아기가 너무 시끄러웠소. 어미가 먹은 게 없으니 젖이  나왔소. 사람들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 결국 가장 먼저 죽은 것은 아기와 그 어미였소.”
“무… 무슨…”
“나흘 째가 되던 날, 또 누군가가 죽었소. 칠공에서 피를 뿜어대더군. 그 때 다시, 당문의 사람이 와서 말하였소.”

무명이 허탈한 듯 말했다.

“… 붙잡힌 이들 중 1할은 피에 해독제를 섞어두었다고.”
“그럼…”
“배도 고팠고, 목도 말랐소.”
“…”


둘 사이에 짤막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 짧은 침묵 사이로 독고진은 기분 나쁜 땀이 자신의 등을 타고 흐르는  느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셋이었소. 살수와 무사와 노인이었지.”
“…”
“무사는 끝까지 아무도 죽이지 말자고 했던 자였소. 아마 정파의 무인이리라 생각하오. 환각독에도 꿈적않고 올곧은 사내였지.”

무명의 목소리가 조금씩 흔들렸다.

“살수는 그가 싫었소. 일단 자기 자신이 살아남는데 급급했던 사파인이었거든.”
“…”
“그 둘이 싸워서 이긴 것은 결국 살수였소. 무인은 아마 도를 쓰던 사람이 아니였을까 싶소. 근육이 그런 느낌이더군.”


독고진은 무명이 어떻게 그걸 알아냈는지 묻지 않았다.


“살아남은 살수는 마지막으로 남은 노인을 죽이기 위해 목을 붙잡았소.”


무명의 등이 조금씩 들썩였다.


“노인은… 부탁을 하더군.”
“… 뭐라고 하던가?”
“여기서 죽은 모든 이들의 복수를 의뢰하겠다고.”
“…”
“노인을 죽이고 나서야 살수는 깨달았지. 살수는 이미 죽어있었소. 그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기에 살아도   아닌 자가 되었거든.”

동굴의 스산함이 조금 더 짙어진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세상에 돌아갈 수 있음은 기뻤소. 마지막 희망을 가득 품고 살수는 쉬어버린 목으로  번이고 외쳤지. 나를 꺼내달라고, 이제 모두 끝났다고.”


무명이 피식 웃었다.

“허나 돌아온 것은 독무였소.”
“…”
“고독의 핵심이 여기 있었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만들어놓고, 마침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최후의 한 명을 독으로 죽이는 것이오.”


그제서야 독고진은 깨달았다.

스산함은 동굴이 품고 있던 것이 아니라, 무명이 내뿜고 있던 것임을.

“분노에 온 몸이  떨리고, 칠공을 통해 파고들어오는 독은 지독했지. 헌데… 이미 그의 단전에는 그보다 더 끔찍한 독이 있었소. 다른 이들을 통해 몸에 쌓인 지독한 독, 노인의 부탁을 이뤄야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죄책감.”
“… 그럼…”
“그 자리에서 모든 이들을 참하고 살수는 그들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나 알게 되었소. 살수는 극독지체를 이루지는 못 했지만, 그에 근접한 무언가가 되었지.”

무명이 몸을 일으켰다.


“6명이라고 했소?”
“… 그래.”
“나는 487명이오.”
“…”
“물론 가족  명이 모르는 이 100명의 목숨보다 귀하겠지. 여전히 내가 조금 부족한  하오.”

무명이 다시 한  무릎을 꿇으며 독고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하오. 나는 그 날 이후로 잠을 이루지 못 하고, 고기를 먹지 못 하오.”
“그러냐.”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을 때마다 그 날이 떠올라서 그렇소.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이 곳의 망령을 달래려고 천장도 뚫어보고, 무당에 찾아가 제령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소.”

무명이 고개를 들고 독고진을 쳐다보았다.


“허나 이 곳에 당문의 쓰레기를 갖다 바치면…  날 하루는 잠을 잘  있더군.”
“…”
“많은 것을 바라지 않소. 고독을 만드는 데 연루된 모든 이들을 죽이는 것만 허락해주시오. 내가 모은 정보에 의하면 그들은 당문의 3할이오.”


독고진이 그에게 손을 뻗으며 물었다.

“이름이 뭐냐?”
“없소. 사람이 되지 못한 무언가요.”
“그럼 무명(無名)이라 부르지.”
“편할대로.”
“당문의 가주만 죽이지 않는다면 네가 누굴 죽이든 관여치 않으마. 당문을 엿먹이는데 힘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마. 너는… 그래도 된다.”
“… 배려에 감사하오.”

무명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보다 귀주에도 여기랑 비슷한 동굴이 있는데 내가 그냥 지나쳤거든?”
“거긴 이미 끝난 곳 아니오?”
“알고 있었냐?”
“그렇소.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일단 한숨만 자게 해주시오. 섬서에 고독을 만드는 곳을  곳 알고 있소.”
“… 한시라도 빨리 가야하는 거 아니야?”
“아직 사람을 납치하는 단계였소.”
“시간이 조금 남았나보군.”
“태생이 살수다보니 한 번에 많은 이를 적대하는 것은 자신이 없소.”

무명의 말을 들은 독고진이 씨익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그건 내가 특기지.”
“그 쪽은 맡기겠소. 나는 그 곳의 관리자 놈을 죽이지.”
“그래. 어서 잠이나 자, 동업자 양반. 그래야 당문을 족치지.”
“… 동업자라.”

무명이 흙바닥에 몸을 눕히며 살짝 웃었다.


“썩 나쁘지 않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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