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12장.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 (2)
위일청이 돌아올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서자 그 사이에 옷을 입은 독고령을 보고 위일청이 웃었다.
“아쉽네요. 좀 더 보고 싶었는데.”
“그… 그런 말 하지 마시고요…”
“예쁘니깐 더 보고 싶다고 하는거죠.”
“하으으… 지… 진짜…”
독고령이 옷고리에 손을 올리곤 물었다.
“저…정말 더 보고 싶어요…?”
“크큭, 그냥 계시지요. 농담이었습니다.”
“아잇… 그… 그런 걸로 농담하지 마세요… 헷갈린단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소저. 크큭… 반응이 너무 귀여우시니 그러죠.”
“씨이…”
독고령이 살짝 토라진 듯 입술을 내밀자, 위일청이 자리를 옮겼다.
“왜… 왜요?”
“삐지신 거 같아서요.”
“아닌데요.”
“맞는 거 같은데요?”
“아… 아니에요…”
“그럼 아닌 걸로 하죠. 같이 드시겠어요?”
“네?”
위일청이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툭툭 쳤다.
“싫으십니까?”
“… 치사해요.”
“예?”
“그… 그런 식으로 계속… 하지 마세요…”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시… 싫다고는 안 했어요…”
독고령이 슬금슬금 움직여 귀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그의 무릎 사이에 앉았다.
“이런 건 조… 좀 더 준비 시간을… 주세요…”
“다음부턴 그러겠습니다, 독고 소저.”
“… 네. 그리고…”
독고령이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두… 둘이 있을 때는 이름으로 부르셔도 돼요.”
“이름으로 불러드립니까?”
“그… 그러고 싶으면요… 이… 일청…”
“그러지요, 령.”
“흐읏… 지… 지금 말고요!”
“방금 막 불러달라고 하셨잖아요?”
“바… 밥 먹을 때는 빼고요.”
독고령이 위일청의 의아하게 쳐다보는 눈을 피하며 말했다.
“이… 이름 불리면… 다리 사이가 간지러워져서 안 돼요…”
“…”
대답을 들은 위일청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지금부터 있을 2주가 정말, 아주 많이 길게 느껴지리라고.
가볍게 아침을 해결한 뒤, 위일청은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 뭐하십니까, 소저?”
“그… 그냥요…”
독고령은 위일청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그의 소맷자락을 손가락 끝으로 살포시 잡고 졸졸졸 따라왔다.
“… 저 변소에 갈 겁니다.”
“가… 같이 가도 돼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 죄송해요.”
“그보다 계속 여기 계실 겁니까?”
“바… 바빠요?”
“그건 아닌데… 답해야할 전서가 있어서요.”
“아… 그럼 기다릴게요.”
“…”
위일청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으나 계속 독고령이 따라다니자 살짝은 곤란했다.
독고령이 귀찮은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약속한 2주를 깨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 연심을 자각한 여인은 정말 무섭군요.’
원래부터 문제가 있으면 저돌맹진하던 독고령이었고, 이는 사랑 문제에서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아직은 모든 게 부끄럽고, 민망한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쫓아다니고 있었지만 위일청을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독고령의 무자각한 말들이었다.
“그… 저기요…”
“예, 소저.”
“다… 다음엔 언제 해요?”
“… 네?”
“야… 야한 거요…”
“…”
“그… 저… 내… 내공에도 좋고… 일청한테도… 좋은 일이니깐…”
“2주 후…”
“2주는 너무 길어요!”
“…”
“매일매일은… 힘들겠죠…?”
살짝은 걱정섞인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독고령을 보고 있자니 위일청은 하초가 뻐근해졌다.
‘미치겠군요.’
쉴새없이 ‘나 잡아먹어주세요.’라고 끊임없이 유혹하는 독고령을 보며 위일청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후회했다.
‘… 왜 하필 2주란 말을 내뱉어서… 빌어먹을 소녀경.’
처음으로 자신이 배운 소녀경을 후회하며 위일청은 독고령을 가장 효율적으로, 상처받지 않게 쫓아낼 방법을 얘기했다.
“령, 잠시만요.”
“… 네, 일청.”
“여기 오래 있을수록 다른 두 소저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엣?!”
“백리 소저와 은 소저한테 말해도 상관없나요? 령이 부끄러우면 제가…”
“흐아아아!!! 아… 안 돼요!”
“… 아직은 들키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 주… 준비가 안 됐어요…”
“그렇군요. 그럼 아쉽지만, 이제 슬슬 나가시죠. 곧 은 소저가 찾아올 겁니다.”
“… 네.”
독고령이 시무룩해진 채로 방문에 섰다.
“그… 일청.”
“네.”
“자… 잠시만요.”
“음?”
독고령이 부르자 위일청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때.
쪽.
독고령이 까치발을 들어 재빨리 그에게 입을 맞추고는 문을 열었다.
“그… 그럼 나중에 다시 봐요!”
“…”
멀어지는 독고령을 보며 위일청은 눈을 질끈 감았다.
‘2주… 2주만…’
어떻게든 참아보고자 스스로 되뇌였지만, 위일청은 자신이 없었다.
*
위일청과 헤어진 뒤, 방으로 돌아온 독고령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어제 월영신공 돌릴 걸…’
어젯밤에는 정신이 없어서 월영신공을 전혀 운기하지 못 했던 게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독고령은 그 아쉬움을 금세 털어내고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 역시나.’
지난 번에 독고령이 생각했던대로 그녀의 내공은 또 한 번의 성장을 이뤄냈다.
양유맥, 양교맥, 음유맥, 음교맥에 이어 이제는 충맥까지 뚫렸다.
이제 남은 것은 대맥과 임맥, 독맥 뿐이었다.
게다가 하단전에 자리잡은 음기 또한 조금은 달라졌다.
‘얘는 또 왜 이러지…?’
이전까지만 해도 건드리면 미쳐날뛰는 야생마같던 만년빙옥의 음기는 어느새 얌전히 독고령의 의지를 따르는 유순한 말로 바뀌었다.
천천히 음기를 끌어올려 자신이 어느 정도의 음기를 쓸 수 있는지 확인한 독고령은 전체 음기 중 약 5할 가량이 한계임을 확인했다.
발전한 내공 덕분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독고령은 눈을 떴다.
‘사실상 남자였던 시절의 내공은 다 회복했네…’
독고진이었을 적엔 항상 검술과 심법의 성취에 비해 내공량이 부족해서 못내 아쉬움이 남았으나, 지금은 오히려 검술과 심법의 성취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많은 내공이 되었다.
‘불균형을 바로잡긴 해야하는데…’
이전에 쓰던 수라나찰도법이 하필 극양지기가 절초에 들어가다보니 지금의 음기가 넘치는 몸으로 온전히 못 쓰는 게 못내 아쉬웠다.
“… 남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독고령은 자신이 왜 이 길을 떠났는가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원래는 만년빙옥의 음기에 맞먹는 양기를 가진 신물을 찾아 남성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였으나 어젯밤 스스로를 자각한 이후,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 돌아가야하나? 굳이?’
새삼스럽게도 독고진이던 시절의 자신의 인생을 다시 떠올렸을 때, 독고령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이 남성으로 돌아갈 이유를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매일매일이 전투였던 삶.
소중한 사람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던 상처뿐인 삶.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이 딱 하나 있다면…
‘당문이랑 모용은 어떻게 조져야하나…’
그녀의 안에 여전히 꺼지지 않은 복수심 뿐이었다.
“…”
결국에 모용과 당문을 잡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압도적인 힘.
광마 독고진이었던 시절로 돌아가면 언제든지 그 힘을 다 온전히 끌어내리라.
하지만 독고령인 지금.
몇 번을 스스로에게 되물어도 과연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가 자연스레 위일청을 떠올렸다.
‘그냥 몇 번 더하면…’
아직까지 욱씬거리는 엉덩이에 신경이 쏠렸다.
어제 있었던 일은 너무나도 부끄럽고, 망측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었지만…
“흐읏…”
자연스레 다리가 배배 꼬일 정도로 기분좋은 일이기도 했다.
‘그냥… 사실을…말할 수는 없겠지….’
위일청과 처음 여행을 떠날 때 했던 약속들을 떠올리며 독고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엔 힘이 필요한데…’
위일청과 했던 약속 중 처녀를 주기로 한 약속은 갱신되었으니 상관없다.
구양신공이야 뭐… 까짓 거 넘겨줘도 이제는 상관없다.
하지만 마지막 약속인 점창파를 조지기로 한 것은 어떻게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으으… 천축에 내가 있다고 한 거짓말이…’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가 사라지자, 독고령은 자신의 거짓말을 어떻게 매꿔야할지 고민하다 결국 포기했다.
‘… 일단 천축까지 가서 생각하자… 어차피 힘만 있으면 되니깐…’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고민을 나중으로 넘겼다.
어차피 결국 필요한 건 힘이었기에 독고령은 칼을 쥐고 밖으로 나섰다.
*
수련을 위해 칼을 휘두르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다가 독고령의 눈에 이상한 조합이 보였다.
‘… 저 둘은 또 뭐야?’
마침 둘의 볼 일이 끝났는지 백리소현이 남궁원청에게 고개를 숙이며 그를 배웅했다.
땀을 많이 흘린 걸로 보아 백리소현이 남궁원청에게 가르침이라도 받은 모양새였다.
그 때, 남궁원청이 독고령을 발견했다.
“음? 자네도 수련할 곳을 찾아다녔나?”
“아… 좋은 아침, 령 매.”
“… 네.”
“클클, 부지런하구만. 노부가 자리를 비켜줌세.”
“…”
독고령이 고개를 까닥이자, 남궁원청이 웃으며 그녀를 지나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독고령이 백리소현에 물었다.
“… 저 영감님한테 검을 배우는거야?”
“응. 운이 좋았어, 히힛.”
수줍게 웃으며 백리소현이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내가 제일… 무공 실력이 뒤쳐지니깐. 뒤쳐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했는데… 네가 원한다면 나도 나중에 같이 도와줄게.”
“고마워, 령 매. 그보다 어제는 어땠어?”
“흐엣?!”
“소홍 아가씨랑 노극명 말이야.”
자신이 했던 거짓말이 떠오르자, 독고령은 어떻게든 침착하려고 애쓰며 말을 골랐다.
“아… 그… 그거… 그러니깐… 어… 자… 잘 됐어…”
“그럼 이제 소홍 아가씨랑 노극명은 정인이 된 거야?”
“흐앗?! 그... 글쎄...”
“응? 둘이 잘 됐다매.”
“그… 그렇긴 한데…”
“근데 정인은 아니야?”
“마… 맞을걸…?”
“그래?”
백리소현이 다가와 독고령을 껴안았다.
“축하해, 령 매.”
“흐엑?! 왜.. 왜 나한테…!”
“그럼 소홍 아가씨를 찾아갈까?”
“아… 그… 그건 또…”
“령 매는 거짓말을 참 못 하더라. 알고 있어?”
“어… 어?”
독고령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백리소현이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노극명과 소홍 아가씨 이야기가 아니라… 위 오라버니랑 령 매의 이야기 아니야?”
“아… 으아… 그…”
“솔직히 말해주는게 더 좋은데.”
“아… 하으으…”
독고령이 귀까지 붉게 물들이고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 미… 미안…”
“후훗, 괜찮아. 그런 솔직하지 못한 령 매도 귀엽거든.”
“그… 흐아아… 하… 하오문한테는 비밀로 좀…”
“어차피 관영이도 어제 눈치챘어.”
“흐에엑?!”
“그래서 어땠어?”
“ㅁ… 뭐가?”
“둘이서 뭐 했어?”
“아… 으아… 아니… 그…”
백리소현이 히죽히죽 웃으며 독고령을 바라보았다.
“아팠어?”
“아… 으으…”
“안 되겠다. 령 매, 우리 여인들의 시간을 가지자.”
“으… 응?!”
“어차피 령 매도 위 오라버니 좋아하잖아. 그럼 위 오라버니를 좋아하고, 함께 다니는 세 명으로서 서로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 그런가…?”
“응, 그렇지.”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손을 붙잡아끌었다.
“그럼… 솔직해지기 위한 준비를 해볼까?”
“어… 응?”
“같이 목욕하러 가자.”
“으엑?!”
“뺄 거야?”
독고령이 엉덩이를 뒤로 빼자, 백리소현이 아쉬운 듯 말했다.
“나는 그렇다 쳐도, 관영이는 위 오라버니를 10년 이상 좋아했는데~”
“으…”
“아아~, 갑자기 령 매가 굴러와서 위 오라버니의 옆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던 나랑 관영이를 밀어내면 어떻게 하지~~”
“아… 으아… 아니…”
“흑흑… 령 매, 믿었는데… 믿었는데에…”
백리소현이 쉴 새 없이 독고령을 밑어붙이자, 그녀는 조금씩 판단력이 흐려졌다.
“으… 아니… 나는…”
“령 매가 나한테… 이럴 줄은…”
“가… 갈게! 간다고…!”
“히힛, 알았어.”
“하으… 진짜아…”
“할 얘기가 많겠네~.”
“…”
신이 나서 독고령을 끌고 가는 백리소현과 달리 독고령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두… 둔치…”
“응?”
“어… 언니라고 부르면 좀 살살 해줄거야?”
“음… 히힛, 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