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12장.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 (1) (88/225)



〈 88화 〉12장.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 (1)

중원의 중심부, 안휘성 내부의 합비.

무림맹의 첫 설립 이후, 서로의 교류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각 문파와 세가에서 파견된 장로들의 모임은 그 의미가 퇴색된  오래였다.

“크하핫! 더 마시게!”
“역시 당문입니다, 그려!”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나? 그리고…”

사천의 당문에서 파견된 맹의 파견장로, 당가위만이 오직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다.

그가 소매에서 슬쩍 약주머니를 꺼내보이자, 공동파에서 파견된 장로가 황급히 그 주머니를 낚아챘다.

“흠흠…. 항상 감사하오.”
“뭘 이런 것 가지고 그러는가? 나중에 술에 타서 먹어보게나. 아마… 더 좋아하게 될 걸세.”
“배려에 감사하오, 크큭.”
“헌데 천비개는 어디 갔는지 아는가?”
“아마 자신의 처소에 있지 않겠소?”
“흐음… 그렇구만.”


당가위가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금세 다시 웃으며 말했다.

“자자, 오늘 여기 모인 장로님들께서는 연회를 계속 즐겨주시오! 저는 잠시 물이나 빼고 오겠소이다.”
“크하핫! 꽃에 물을 주러 가는 것은 아니오?”
“제가  절륜해서 시간이 오래 걸릴 터이니 다들 알아서 즐기다 돌아가주시오, 크하핫.”
“그러겠소이다!”


장로들끼리 천박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당가위가 밖으로 나오자 그의 얼굴에서 방금까지 사람좋게 웃던 모습은 사라지고, 비열한 미소만이 남았다.

‘무림맹은 끝났군…’

하북의 팽가를 위시한 세력들과 소림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모든 장로들의 포섭은 끝났다.


이미 마약과 여자, 그리고 돈에 타락해버린 장로들의 꼬락서니를 보면 당가위는 매번 웃음을 참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천비개는 어딨는 거지?”


모용세가의 가주가 전대 방주였던 묵선을 꺾은 이후로 이탈자가 생겼다.


‘이 거지 새끼가 요즘 이상하단 말이지…’

어차피 언젠가 묵선을 쳐낼 예정이었고, 이는 천비개 또한 동의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묵선이 죽어버리자, 그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점차 자신과 만나는 교류를 줄여나가는 것이 영 마땅치 않았다.

“…”

당가위가 자신의 소매 속에 빛나는 비도를 확인하고는 얼굴을 굳히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천비개의 숙소에 도착하자 당가위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크흠, 크흠. 천비개, 안에 있는가?”
“누… 누구시오…”
“날세. 당가위.”
“가… 가주시오.”


천비개의  없는 대답을 무시하고, 당가위가 문을 열어재꼈다.


초 하나 켜두지 않고 어둠 속에서 몸을 떨고있는 천비개를 보며 당가위가 혀를 찼다.

“쯔쯔쯔… 그러게 말하지 않았는가. 약을 도중에 끊는다면 부작용이 심할거라고.”
“그… 그그그… 가시오…! 나… 나는 더 이상…”


선선한 날씨였음에도 천비개가 엄동설한 속의 추위를 겪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자, 당가위가 그의 눈 앞에 주머니를 하나 던져주었다.


“먹으면 편해질걸세.”
“거… 거절하겠소!”
“안 그러면 계속 지금과 같은 고통이 이어질텐데?”

당가위가 몸을 웅츠린 천비개의 앞에 앉으며 웃었다.


“추울테지. 몸의 떨림이 멎지 않겠지. 하지만 동시에 내부의 양기가 미친듯이 끌어올라 속은 불에 타는듯한 고통이겠지.”
“어… 어떻게 알고 있소?!”
“독을 만드는 자가 그 효능을 모르면 쓰나.”

당가위가 피식 웃으며 비도를 꺼내들었다.


비도의 날이 잘 서있는 것을 확인하며,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약을 먹는 순간, 기분이 몽롱해질걸세. 방금까지의 고통은 온데간데 없고, 온 몸에 활기가 넘치며 내공마저 늘어나지. 도대체 이걸 왜 거부하는가?”
“내…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소…”
“음?”
“묵선 어르신이 매일  꿈에서 나옵디다…”

천비개가 겁에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신을 이 땅에서 꺼내주지 않더라도… 후개를 잘 부탁한다고… 협객의 모임인 개방이 이대로 무너져선  된다고… 매일 밤 되뇌더이다.”
“크… 크큭… 환각일세. 그 또한 부작용…”
“약 때문이 아니오!!”

천비개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광기어린 말을 내뱉었다.


“죄책감이지! 죄책감일테지! 협이라는 기치 하나로 남에게 빌어먹는 거지 새끼들이 모인 것이 개방이오! 근데 내가 그 협의를 저버렸소이다!! 내가…! 내가 묵선 어르신에게 끔찍한 최후를 선사했다고!!!”
“그대가 죽였나?”
“뭐…?”
“죽인  모용세가의 가주, 검존일세. 묵선 어르신이 뭐… 그 이름에 비해 제대로 된 묘도 없이 죽었지만,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다 똑같지.”


당가위가 비도로 천비개의 머리를 훑었다.


“이보게, 천비개. 먼저 우리와 손을 잡은 것은 자네일세.”
“그리고 이제는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하오…”
“방해할 셈인가?”
“죽여주시오.”

천비개의 몸에 떨림이 멎었다.


“방해할 힘은 없지만, 적어도 이 죄책감 속에서 살 바엔 그냥 죽겠소.”

그의 말을 들은 당가위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푹.


당가위의 비도가 천비개의 목에 박혔다.

“커헉…”
“강시로 되살리기에도 비루한 몸. 그래도 살아 생전에 개방 쪽으론 많이 도움이 되더이다. 편히 보내드리지.”
“끄르륵… 내… 내가…”


목에서 피를 울컥대며 쏟아대는 와중에, 천비개가 당가위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개방에… 진실을 전했지… 크륵…”
“뭐?”
“크… 크큭… 쿨럭!”


입과 목으로 피를 쏟아내며 쓰러지는 와중에도 천비개는 웃었다.

웃는 낯으로 죽은 천비개의 시체를 보며 당가위는 얼굴을 찌푸렸다.

“… 뒤가  찝찝하구만.”


이제와서 그가 개방에 무언가를 전한다고 무언가 크게 바뀔 일은 없다.

내분으로 바쁜 와중에 돌아설 거지가 얼마나 있을 지도 모르겠고,  쪽은 모용세가가 잘 알아서 처리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분명 떨림이 멎었단 말이지…”


당문이 개발한 극독, ‘절독’이 파훼되었다는 생각에 당가위는 찝찝함을 감추지  했다.


절세의 고수더라도 먹힐 극악의 마약이었으나 분명 천비개는 마지막에 이지를 되찾았었다.


‘… 시신을 사천에 보내야겠군.’


지금이야 고작 개방 장로 하나지만, 만약 다른 장로들도 절독의 영향에서 벗어날  있다면 곤란하다.

모용세가가 생각보다 시기를 앞당겼기 때문에 당문도 그에 맞춰 속도를 높여야했다.


‘혹여나 문제될 만한 것들은 다 사전에 방지해두는 게 낫겠지.’

당가위가 휘파람을 불자, 야행복을 입은 무인 몇 명이 튀어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장로님?”
“이 자를 본 가에 보내도록. 화광반조일 수 있으나, 마지막에 절독을 이겨냈다.”
“존명.”

야행복의 무인이 천비개의 시신을 업고 떠나려던 찰나, 당가위가 물었다.


‘문제될 건 하나가 아니지…’


“그보다 광마와  딸 년은 어찌되었지?”

천비개의 시신을 들쳐업은 무인을 먼저 떠나보내며, 자리에 남은 무인 중 하나가 당가위에게 대답했다.

“… 광마는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 요란한 새끼가?”
“… 예.”
“딸 년은?”
“… 강소성에 있다고 합니다.”
“흐음…”
“아무래도… 함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정?”


당가위가 되묻자, 무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그 광마가 고작 추살령 하나로 이리 조용해진 것도 이상한 데다가… 딸 년은 온갖 요란한 행적을  벌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소 인근의 녹림을 소탕했다고 합니다.”
“흐음…”


무림 초출이 녹림을 때려잡는 거야 매년 들리는 이야기니 크게 거슬리지 않았지만, 추포령까지 내려진 광마의 딸이 그러고 있다는  이해가 안 됐다.


“근데  안 잡았나?”
“… 팽가와 황보세가에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자기들의 안마당이니 그 쪽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도선 그 자야 전부터 광마와 잘 지내던 새끼니깐 보호해줬나보군. 헌데 지금은? 강소도 지들 땅이라고 지껄이던가?”
“아닙니다. 지금은… 검신과 함께 있습니다.”
“검신?!”
“… 예. 의녀문에서 머무는 중이라 저희가 접근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

갑작스레 튀어나온 말에 당가위는 머리가 아파왔다.

‘왜 하필  영감이 끼어들었지…?’


그의 얼굴이 심각해진 것을 보고, 야행복의 무인이 눈치를 살폈다.

“그… 게다가 검신께서 추포령은 취소해달라고…”
“뭐?!”
“추살령은 유지하겠지만, 어디까지나 혈육에 불과한 자에게 추포령은 과하다 요청하셨다 들었습니다…”
“언제?!”
“아까 연회가 시작하기 직전에 전서구가 도착했… 커헉!”

당가위가 그의 목을 틀어잡았다.

“왜 보고하지 않았지?”
“여… 연회를 즐기시는 중이라… 끄륵…!”
“그런 중대한 사안이면 바로 얘기했어야지!!”
“죄… 죄송… 커헉…”


그가 힘없이 늘어지자 당가위가 손을 털며 다른 무인에게 물었다.


“어이.”
“ㅇ… 예!”
“이것도 치우도록.”
“조… 존명!”
“그리고 광마의 딸 년 말일세. 보름이 뜨기 전에 잡아오도록.”
“2… 2 주 안에 말입니까?”
“그래, 2 주. 아니지…, 아니야….”

당가위가 갑자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에게 맡길 바에 전문가에 맡겨야겠군.”
“…”
“살막에 연락을 넣거라. 내가 직접 보자고 했다고.”
“사… 살막에 말입니까?!”

무림계 최고의 살수들이 모인 살막의 이름이 나오자 무인이 당황했다.

“허… 허나 광마의 딸을 가주께서는 죽이지 말라고…”
“돈을 좀 더 쥐어주고 생포하라 요청하면 알아서 살려두겠지.”
“… 알겠습니다.”
“숨만 붙어있으면 상관없다 전하게. 가능한 빠른 시일내로 봤으면 좋겠다고 연락하고.”
“존명!”

남아있던 야행복의 무인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린 동료의 시체를 안고 떠나자, 당가위가 밤하늘을 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제와서 또 훼방을 놓게  수는 없지… 절대로…’

지독하게 당문을 괴롭히던 광마가 무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딸 년은 미친 년처럼 날뛰고 있다.


광마가 함정을 마련해  성격이 아님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당가위는  조심했다.

그런 자가 혹여나 함정을 팠다면 무언가 단단히 노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본가는 권신을 맞이하기 위해 바쁘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잘 해야겠지…’


당가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로잡혀 약에 찌든 딸 년을 마주한  놈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이냐, 독고진?’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상상한 것만으로 벌써부터 당가위의 기분이 좋아졌다.


*




“으음…”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며 독고령이 눈을 떴다.

“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위일청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금세 독고령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 어제…’


지난밤의 일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듯이 조금은 얼얼한 엉덩이와 나신으로 한 침대에서 자고 있음을 깨달은 독고령은 몸이 굳었다.

“흐아아…”

감정이 격해져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눈을 감은 채 잠을 자는 위일청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독고령이 조심히 자신을 껴안고 있는 위일청의 팔에 걸리지 않게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 가까이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네…’

위일청의 눈썹을 만지고 있을 즈음, 갑자기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 이… 일어났어요?”
“… 예, 소저. 뭐하십니까?”
“죄… 죄송해요. 만져보고 싶어서…”
“더 만지셔도 됩니다. 저도 어제 많이 만졌으니깐요.”
“흐엑?!”


독고령이 당황하자, 위일청이 씨익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어제 실신하셨길래 그 뒤에 제가 침대로 옮겼습니다.  뒤로 조금 만졌죠.”
“으… 흐아아… 죄… 죄송해요…”
“죄송까지야. 덕분에 저도 푹 잤습니다.”
“으으…”

독고령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려고 그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 저…”


독고령이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서 안절부절하고 있자, 위일청이 그녀를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일어나죠.”
“… 네.”

자신을 안아주는 위일청의 체온을 즐기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독고령이 물었다.

“그… 저기…”
“이름으로 부르시죠. 그, 저기,어이,새꺄 같은 거 말고요.”
“흐에엑?! 어… 어떻게 그래요…”
“뭐 어떻습니까?”


위일청이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는 장난스레 말했다.

“어제 스스로 말하셨잖습니까? 음란한 령이라면서요.”
“하으으… 그… 그건…!
“크큭, 농담입니다. 슬슬 일어나실까요?”
“지… 진짜아… 그런 걸로 놀리지 마세요…”


위일청이 몸을 일으키자, 독고령도 따라일어났다.


“아, 소저께서는 잠시 계시죠. 조찬을 가져오려고요.”
“… 네. 그…”


독고령이 머뭇거리다 일어나더니 위일청의 손가락 끝을 살짝 붙잡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소저?”
“하으으… 그으…”

독고령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들어 그에게 말했다.

“아… 그… 다녀오세요…”
“음? 예, 그러지요.”


독고령이 붙잡은 손가락을 꼬옥 쥐며 말했다.

“이… 일청.”
“…”
“이… 이름으로 불러보고 싶어서요…”
“… 정말이지. 아침부터 곤란하게 만드시고.”
“하읏…!”

위일청이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는 웃었다.

“금방 돌아올게요, 령.”
“하으으… 네에…”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