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11장. 자각 - (6)
스스로의 연심을 마주한 독고령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 나는 위일청을 좋아한다.’
전부터 약간씩 느끼고는 있었지만, 막상 직면하게되자 이상한 기분이었다.
‘… 근데 뭘 어떻게 해야하지?’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고 싶단 생각은 크게 없다고 떠올리는 와중.
“흐읏…”
하단전이 욱씬거렸다.
위일청을 좋아한다고 자각한 순간부터 머릿속에선 계속 그의 새끼손가락이 떠올랐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으면 먼저 제게 오시지요.]
[새끼손가락을 움켜쥐면, 그 날 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그가 한 말이 떠오르자, 독고령의 머리가 분홍색으로 화악 변했다.
“으으…”
부끄러움에 독고령이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비틀어댔다.
‘아니, 시발… 그… 으아…’
위일청이 밤에 찾아오겠다는 얘기는… 아마도 분명 야한 쪽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처녀였다.
‘초야를 치른다면… 그 큰 거를 넣는다고?!’
막상 그 생각을 떠올리자 지레 겁부터 났다.
‘존나 아프겠지. 아니, 시발. 그게 진짜 기분이 좋다고?’
독고령은 혼란에 빠졌다.
전에 백리소현의 말에 따라 수음을 하며 막에 손가락을 닿았을 때, 찾아왔던 통증이 떠올랐다.
‘아… 존나 아플 거 같은데…’
그러다 문득 이런 고민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독고령이 발작했다.
“캬아아악!!!”
혼란에 빠진 독고령은 또 다시 변명거리를 찾아헤맸다.
‘아니, 시발… 그… 좋아하면 무조건 그걸… 해야하나?’
근데 생각해보니깐 상대가 색마였다.
색마.
무림에서 주로 성을 탐하길 좋아하는 자에게 자주 붙는 멸칭 중 하나였다.
게다가 위일청은 정말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이상, 밤일을 거르지 않았다.
그의 절륜한 정력은 이미 여행을 다니면서 몇 번이고 확인했다.
‘아… 으아…’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혼자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독고령은 이 쪽의 전문가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
“으엑?”
“… 뒤진다, 진짜.”
“버… 벌써 돌아오셨어요오?”
“아까 미행하던 거 다 알고 있었어.”
“히이익…”
처소에 돌아오자마자 은관영을 바라보며 살벌한 내공을 피워올리자,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내공 없이 박투로는 안 되나요오…”
“잘못했지?”
“네에… 그… 그러니깐 멍만 안 들게끔…”
“그럼 나 좀 도와주라.”
“… 어떤거요?”
“그게… 음…”
막상 은관영에게 물어보려고 하자, 독고령은 말문이 막혔다.
‘… 뭐라고 말해야하지?’
원래는 좋아하는 사람한테 뭘 해줘야하나 물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은관영에게 물어보려고 하자 할 말이 없어서 망설여졌다.
그 때.
“응? 령 매, 언제 왔어?”
“… 왔냐, 둔치?”
백리소현이 젖은 머리를 말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 어디 갔다왔냐?”
“응. 수련 좀 한다고. 령 매는 잘 다녀왔어?”
“흐엑?!”
“뭐야? 오라버니랑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무 일도 없었어!”
“… 그래?”
백리소현은 당황하여 뺨을 붉히는 독고령을 보고 그저 미소지었다.
“제가 도중까지 따라가다가 놓쳤어요오…”
“근데 아무 일도 없다고 돌아왔구나… 헤에~?”
“지… 진짜 아무 일도 없었거든?!”
독고령이 어떻게든 모른 체 넘어가려고 하자, 백리소현은 그녀의 거짓말을 웃어넘기며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한동안 따로 지내겠다더니?”
“아… 아니… 그…”
독고령이 머리를 긁적이며 단어를 골랐다.
‘아, 시발… 어떻게 말해야지?’
스스로의 감정을 직면했지만 그럼에도 막상 이것을 입 밖으로, 그것도 타인에게 밝히는 것은 부끄럽고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누군지도 알고, 몸도 섞는 여자들이다.
혹시라도 들키면 얼마나 놀려댈지 상상이 안 갔다.
결국 독고령은 열심히 머리를 굴린 끝에 말을 꺼냈다.
“그… 그으… 이… 이건! 내가 아는 사람 얘기야!”
“헤에~, 누구?”
“그… 그러니까안…”
독고령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주변의 아는 사람 이름을 꺼냈다.
“소… 소홍이 얘기.”
“응, 소홍 아가씨 얘기구나. 뭔데?”
“그… 그러니깐… 소홍이가… 위… 아니, 노극명을 좋아하잖아?”
“응, 그래서?”
“그으… 소홍이가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조…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점점 작아지는 독고령의 목소리와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바닥만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 그리고 분홍빛 일색으로 물들어가는 독고령의 머리칼을 보며 백리소현과 은관영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꾸욱 참았다.
‘위 오라버니 얘기구나.’
‘위 오빠 얘기네요오, 귀여우셔라.’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말을 꺼냈다.
“음… 그러니깐 령 매… 가 아니라 소홍 아가씨가 노 소협한테 무얼 해줘야하나 물었다는 거지?”
“어, 그렇지…”
“많이 좋아한데?”
“으헷?!”
“령 매 말고, 소홍 아가씨.”
“아… 그…”
독고령의 눈이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 조금?”
“후훗, 그렇구나.”
“그… 뭐… 뭐 어떻게 해야하냐…?”
“글쎄에… 가장 궁금한 건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냐겠지?”
“응?”
그 말을 듣자, 독고령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고백은 받았데?”
“으… 어.”
“어머어머어머.”
“진짜요오?”
“그… 그렇다니깐?”
독고령이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고 자신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는 걸 보고 백리소현과 은관영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껴안고 싶네, 령 매…’
‘약았어요, 독고 소저어!! 맨날 날뛰다가 그러시면 곤란해요옷!!’
둘이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오?”
“그… 아… 아무 말도 안 하고 나왔어.”
“으응?”
“에엑?! 왜요?”
“아… 아니… 그… 마… 말이 안 나와서… 뭘 해야될 지도 모르겠고…”
독고령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다.
“그… 그 때는 확신… 그런 게 없어서… 일단 도망쳤어…”
“하아… 위… 아니, 노 소협이 상처받았을 수도 있겠네요.”
“흐엑?!”
갑자기 독고령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 상처 받는다고?”
“그쵸. 독고 소저는 고백 같은 거 먼저 안 해보셨죠?”
“어… 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데요오… 그렇게 힘들 게 꺼낸 말이 거절당한다면 상처받죠.”
“아…”
독고령이 고개를 푹 떨궜다.
“미움… 받을까?”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으며 묻는 독고령을 보고 백리소현이 은관영을 째려보았다.
[봐봐, 령 매는 섬세해서 좀 살살 말해야한대두!]
[그… 그치마안 사실이잖아요오…]
[잠깐 가만히 있어.]
[히이잉… 네에…]
은관영을 조용히 만들어둔 뒤,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령 매.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을거야.”
“그… 그래?”
“응응. 그래서 령 매… 가 아니라, 소홍 아가씨는 뭐 어떻게 하고 싶데?”
“어?”
“보통 정인이랑 같이 하고 싶은 일 같은 거 있지 않아?”
“아… 으…”
독고령이 우물쭈물 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잘… 모르겠어…”
“응? 잘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아… 그… 잘 모르겠어…”
“그래?”
“… 어”
독고령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고 백리소현도 고민에 빠졌다.
‘… 그냥 딱 품에 안기라고 하고 싶긴 한데 너무 이른가?’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으로 고민하고 있는 독고령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지켜주고 싶은 보호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상대가 그 위일청이었다.
성욕의 화신, 하루라도 밤일을 거르지 않는 남자.
사랑이라곤 하반신으로 하는 게 훨씬 익숙한 남자.
그 때, 은관영이 옆에서 말했다.
“그…! 상대방이 약간 야한 거 좋아하잖아요. 아예 그 쪽으로…”
“흐엑?!”
“싫어요오? 기분 좋긴 하잖아요오.”
“아… 그… 그치만…”
독고령이 몇 번 입을 오물거리다 거의 들리지 않게, 아주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괘… 괜찮을까?”
“당연히 괜찮죠! 위 오빠는 그러면 엄청 기뻐할걸요?”
“위… 위일청은 상관없는 얘기거든!”
“어디까지나 예시죠, 예시.”
능청맞게 대답을 넘기며 은관영이 말했다.
“원래 정인과 지내는 건 낮에는 따사롭게, 밤에는 뜨겁게 보내는 법이라고요오.”
“그… 흐아… 그… 야한 거 꼭… 해야해?”
“꼭은 아니야, 령 매. 무조건은 아니지.”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은관영과 살짝 떨어트려 놓았다.
“그치만 사랑하는 사람한테 다 주고 싶으니깐… 더는 사랑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깐… 그렇다보니 야한 일까지 하게 되는거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이끌리기도 하고.”
“으으…”
“전에도 말했잖아, 령 매. 원래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당연하게 음심이 끌어오르는 거라니깐?”
“그… 그런가…?”
“그런거야, 령 매.”
백리소현이 독고령을 끌어안으며 토닥여주었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보는 것도 좋아.”
“그… 으…”
“야한 게 하고 싶으면 하면 돼. 굳이 그걸 거부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잖아? 야한 짓을 하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쾌감을 쉽게 못 잊는 건 어쩔 수 없지.”
“하으으…”
“령 매는 어떻게 생각해?”
“으… 나… 나느은…”
독고령이 부끄러운 듯 백리소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무언가를 웅얼거렸다.
“조… 좋긴 해.”
“후훗, 그치?”
아직은 조금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얘기하는 독고령을 꼭 껴안으며 백리소현이 웃었다.
“그러니깐 그… 운소홍 아가씨한테도 그렇게 말해봐. 마음 가는 데로 해보라고.”
“어? 아... 어.”
“음… 령 매한테 말해준 방법도 있는데 이제 곧 해가 지기도 하니깐, 어떻게 남자 분을 부를까…”
“아… 그… 지… 지금 당장은…”
“아! 그러면 안 돼요오. 원래 이런 일은 한 번에 처리해야해요오!”
“흐엑?”
독고령이 당황하자 은관영이 열렬히 그녀를 설득했다.
“기호지세예요! 흐름이 중요하다고요!”
“그… 그치만…”
“고백하고 차인 남성분은 하룻밤이 지나면 그대로 마음이 차게 식을걸요?”
“흐엑?!”
“지금 빨리 안 돌려놓으면 다시는 못 볼 지도 몰라요오!”
“아…”
다시는 못 본다는 한 마디에 독고령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그치만 어떻게…”
“령 매, 이렇게 말해봐.”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여주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 그걸로 충분해?”
“응, 진짜로.”
“…”
독고령이 미심쩍은 듯이 백리소현을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여전히 배실배실 웃고 있었다.
“미… 믿는다?”
“진짜라니깐. 야한 말도 아니잖아.”
“그… 렇긴 한데…”
“나머지는 령 매… 말고, 운소홍 아가씨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면 될거야.”
“… 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독고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그럼! 나는 이제 자러갈게!”
“응, 후훗.”
“히힛, 잘 가요. 독고 소저~.”
히죽거리는 둘을 보고 독고령이 혹시나 들켰나 싶어서 뺨을 붉혔다.
“지… 진짜 내 얘기는 아니고! 아… 아는 사람 얘기야.”
“알지.”
“알죠, 헤헷.”
“가… 갈게.”
“응.”
“잘 가요오~.”
독고령이 문을 박차고 나가자, 방에 남은 두 명의 여인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꺄악! 어떻게 해, 령 매. 진짜 너무 귀여워!!”
“큰일이네요오, 진짜아아! 저건 말도 안 되죠오… 낮에는 그렇게 날뛰면서 위 오빠 앞에서만 얌전해지다니…”
그렇게 한동안 난리법석을 피우다가 흥분을 가라앉힌 두 명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 하겠지?”
“하지 않을까요오?”
“오늘 밤, 령 매가 진짜 여인이 되려나…”
“또 기절할 수 있지도 않을까요오.”
“근데 이번에 위 오라버니가 먼저 고백했으니깐 끝을 보지 않을까?”
“그건 아닐 거 같은데요오… 위 오빠가 먼저 처녀를 안 가져가겠다고 약속했잖아요오.”
그 말을 듣자 백리소현이 씨익 웃었다.
“그치, 위 오라버니가 먼저 가져가지는 않겠다고 했지.”
“네?”
“하지만… 령 매가 먼저 다가가는 경우는 약속에 어긋나지도 않는데?”
“흐에에!!”
은관영이 입을 벌리며 놀랐다.
“그… 그럼 진짜로오…”
“글쎄. 지켜봐야지. 자세한 건 내일 아침이 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밤은 궁금해서 못 잘 거 같아요오…”
“어쩌겠어. 그래도 이제 조만간이네. 령 매가 우리랑 같이 밤을 보내는 것도.”
“그렇겠죠오?”
그 후로도 백리소현과 은관영은 한참을 독고령과 위일청이 어떻게 될 지를 상상해가며 쉬이 잠을 이루지 못 했다.
*
위일청이 슬슬 잠을 청할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 안에 있어요?”
“음?”
“드… 들어가도 되나요?”
“독고 소저신가요?”
“… 네.”
“들어오시지요.”
위일청의 허가가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독고령이 안으로 들어왔다.
“… 무슨 일이십니까, 이 늦은 시간에?”
“그… 저어…”
독고령은 백리소현이 가르쳐준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백리소현을 믿었기에 독고령은 옷깃을 꽉 붙잡고 그에게 말했다.
“제… 제 방에서… 차나 한 잔 마시고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