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11장. 자각 - (4) (81/225)



〈 81화 〉11장. 자각 - (4)

위일청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나가는 독고령을 보며, 방에 남은 세 여인은 히죽거렸다.

“저거 봐, 령 매도 은근히 좋아한다니깐?”
“그쵸오? 아까 등 떠밀 때 저항이  약해지더라니깐요?”
“진짜요?”
“네에. 가만 보면 독고 소저가 제일 약았어요오.”
“그치?  매가 가만보면 진짜 사랑스러워, 후훗.”

얘기하고 있는 둘을 보며 운소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두 소저는 괜찮으세요?”
“응?”
“어떤거요?”
“독고 소저가 위 공자랑  되면 음… 남은 두 분은 위 공자를 뺏기는 거잖아요.”
“영웅은 삼처사첩이라잖아.”
“저는 첩으로도 괜찮아요오.”
“아하…”

운소홍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분도 무공을 배우셨죠?”
“응, 대충은.”
“네에, 그렇죠.”
“그럼… 몰래 따라가볼까요?”
“응?”
“엣?!”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는 호신술로 배운거라서 은잠술이랑 경공 위주로만 배웠거든요.”
“아, 저도 은잠술은 자신있어요오!”
“으음… 나는 걸릴 거 같아서 안 갈게. 둘이 갔다와서 얘기해 줘.”


백리소현이  발짝 빼자, 운소홍이 은관영을 쳐다봤다.


“은 소저, 가실 껀가요?”
“네에! 그보다 그냥 관영이라고 불러주세요오. 제가  어릴걸요?”
“그래도 되나요?”
“네에, 그게 좋아요오.”
“응. 그럼 백리 소저, 저희는 갔다 올게요?”
“응응. 어땠는지 꼭 얘기해줘?”
“네.”
“제가 그림도 그려올게요오!”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가는 운소홍과 은관영을 바라보며 백리소현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은잠술이라… 나도 무공 수련을 좀 해야하는데…’


최근 독고령의 무공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고, 은관영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보다 강했다.


앞으로도 위일청과 같이 다니기에 지금의 자신은 짐이 되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백리소현의 가슴  켠이 아려왔다.

‘… 내가 계속 옆에 있으려면 노력해야겠지.’

처음엔 독고령에게 먼저 사일검법을 가르쳐줬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녀가 자신보다 이해도가 높은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역으로 독고령에게 사일검법을 묻기 시작하다보니, 더 이상 ‘언니’라고 불러달라 쉬이 조를 수도 없었다.

‘… 이런 생각할 시간에 검을 휘둘러야겠지.’

지금처럼 남는 시간에 부지런히 노력해야 그 둘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음?”
“아… 안녕하세요.”
“위일청과 같이 있던 처자구만.”


검신, 남궁원청이 그 곳에 서있었다.

“어… 어쩐 일로 찾아오셨어요?”
“그냥 시간이나 조금 죽이려고 왔네. 헌데 안에는 아무도 없구만.”
“네. 령 매랑 위 오라버니는 지금 밖에 나갔어요. 잠시 마실을 나간다고 해서요.”
“그렇구만. 흐음…”

남궁원청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그녀가 들고 있는 검에 멈춰섰다.

“검을 휘두르러 가던 참이였나?”
“아, 네…”
“같이 휘두르겠나?”
“네?”

갑작스러운 남궁원청의 제안에 백리소현의 눈이 커졌다.

“제… 제가요?”
“노부가 늙고 나니 남는 게 오지랖 밖에 없어서 말일세, 클클.”
“가르침을 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백리소현의 흐리멍텅한 눈에 생기가 깃들자, 남궁원청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구만. 그럼 노부와 잠시 어울려주겠나?”
“네!”
“그럼 같이 가세나, 클클.”


남궁원청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백리소현이 그를 따라갔다.


손에 든 검을 꾹 쥐면서 백리소현이 다짐했다.


‘나도 뒤쳐지지 않을게,  매.’



*

“…”
“독고 소저.”
“녜… 녜헷?!”
“아까부터 말이 없으셔서요. 괜찮으십니까?”
“으… 아… 그…”

독고령이 허둥거리자 위일청은 멋쩍게 웃었다.


“괜히 저만 기대했나 봅니다. 소저께서 같이 나가자고 먼저 청하시길래 조금 들떠있었는데 말이죠.”
“흐엑?! 아니… 그…”


독고령이 우물쭈물거리며 그의 소맷자락을 꾸욱 붙잡았다.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람 앞에서 ‘사실 내가 말한  아닌데요?’ 라고 말하며 거절하기에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그… 저… 으으…”
“돌아가시겠어요?”


웃으며 자신을 배려해주는 위일청의 얼굴에 묘한 씁쓸함을 느끼자 독고령은 가슴  켠이 아려왔다.


‘아니, 시발… 진짜아…’

이런 얼굴을 하고 말을 걸면 도대체 누가 그냥 돌아가겠냐고 말하겠는가.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독고령이 자그맣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에요.”
“다행이군요. 그럼 이 쪽으로 가실까요?”
“어… 어디 가는 건데요?”
“독고 소저가 뭘 좋아하는지 저도 좀 애매하군요. 꽃구경을 즐기실 거 같진 않으신데 그렇다고 여인과 함께 대장간을 가는 것도 조금…”
“가요! 대장간!”
“…”

위일청이 당황했다.

“어…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대장간 좋아요! 병장기를 보러 가는거죠?”
“… 예. 인근에 제법 실력이 괜찮은 대장장이가 있다 들어서요.”
“어딘데요?”
“이 쪽으로 가시죠.”

위일청이 앞서걷자 독고령이 그의 소매를 붙잡은 채,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습을 훔쳐보던 두 명의 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니, 정인이 될  모르는 남성분과 대장간을 간다니…”
“그러게요오… 독고 소저가 좀 특이한 줄은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럴 줄은 몰랐네요. 일부러 꽃이 예쁘고 사람이 한적한 길을 골랐는데요오…”

은관영이 고민에 빠졌다.

“으으… 이대로 뒀다간 그냥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오…”
“관영아, 이건 어때?”
“어떤거요오?”
“일부러 그런 상황들을 연출하는 거지.”
“응?”
“그러니깐…”

운소홍이 은관영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자, 점점 둘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재밌겠네요오.”
“그치?”
“그럼 해보죠! 두 분은 걷고 있으니깐,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야겠어요오!”
“그래, 빨리 가자.”







대장간으로 향해걷는 와중, 독고령과 위일청은 서로 말이 없었다.


두 명  공통된 고민거리를 껴안고 있었기에.


‘… 무슨 말을 해야하지.’
‘무슨 말을 꺼내야할까요.’


막상 이런 상황이 오자, 서로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뭐라도 말해야겠네…’


독고령이 마음을 먹고 입을 열려던 순간…


“그…!”
“저…!”


서로 말이 겹치자, 둘 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머… 먼저 말해요…”
“독고 소저가 먼저 하시지요.”
“시… 싫어요. 별 얘기도 아니고…”
“저도 별 얘기 아닙니다.”
“아…  말할 거예요!”
“크큭, 알았습니다. 제가 먼저 말하지요.”

위일청이 웃으며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독고 소저는 뭘 좋아하십니까?”
“으헷?!”
“가면 갈수록 반응이 다양해지시네요.”
“어… 그… 병장기랑… 영약이랑… 나쁜 놈들 때리는거요?”
“…”

독고령의 말을 들은 위일청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궤를 달리하시네요, 독고 소저.”
“… 이상해요?”
“예, 정말 이상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지네요.”

위일청이 발걸음을 멈추자, 독고령이 따라 멈추었다.


“독고 소저는 천축에 도착하신 뒤에 어쩌실 생각입니까?”
“… 글쎄요.”
“생각해두신 바가 없으십니까?”
“…”

생각해보니 독고령은 그 뒤의 일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축에 도착하여 뇌음사의 신물을 훔친다면 그 뒤에는 남자로 돌아간다.


광마 독고진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위일청에겐 적당히 감사함을 표하고, 점창파를 조지고,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당문의 개새끼들을 다져주고… 모용세가의 집을    박살… 내는 건 좀 고민해봐야겠군.’


독고령은 문득 자신이 정말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이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그저 하루하루 복수를 위해 쓰레기들을 때려잡을 뿐인 삶이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솔직히 답했다.

“… 생각해 둔 건 없어요. 그냥…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 같아요.”
“그렇습니까?”
“…”
“…”

독고령의 대답 이후로 둘 사이의 이야기가 다시 끊겼다.


 때.

그녀의 머리 위에 있던 나무 위에 있던 꽃이 떨어져 독고령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위일청이 피식 웃었다.

“어울리시는군요.”
“뭐… 뭐가요?”
“머리에 꽃이 피셨군요.”

위일청이 슬쩍 그녀의 머리에 손을 뻗어 꽃을 붙잡아 독고령에게 보여주었다.


“독고 소저의 머리색이랑 어울리시는군요.”
“흐엣?!”

독고령의 머리가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위일청이 웃었다.

“지금도 잘 어울리시고요, 크큭.”
“그… 그만 말하세욧!”
“죄송합니다. 헌데 몇 번을 봐도 참 아름다운 색입니다.”
“그…  말도 그만해요…”
“아름답다고요?”


위일청이 독고령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이상해요,  말…”
“아름다우신  사실이니깐요. 독고 소저의 머리색도, 독고 소저도.”
“흐… 흐아아… 그… 그런  좀 하지 마요!”
“크큭, 죄송합니다.”

위일청이 다시 그녀의 머리 위에 꽃을 올리며 말했다.

“독고 소저의 반응이 워낙 재밌어서요.”
“이… 이익…!”
“매번 참 다양한 표정이십니다, 소저.”
“그… 그만 놀려욧!”
“예, 크큭. 하지만 예쁘다고 말한  진심입니다.”
“후엑?!”


독고령이 안심하려던 찰나 다시 기습을 당하고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 모습을 보고 위일청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보세요, 소저. 이렇게 반응이 좋으신데 제가 쉬이 포기하겠습니까?”
“지… 진짜아…”

독고령이 칭얼거리며 그의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자, 위일청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다시 가실까요?”
“흐… 소… 손…”
“이제부터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니깐요.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아… 으아…”


위일청의 말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독고령의 기감은 매우 뛰어났고, 위일청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뛰어난 기감의 소유자였다.


무공을 어느정도 익힌 두 사람이 그저 인파가 많다고 서로를 잃을 리는 절대 없었다.

“으으…”

하지만 독고령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는 그의 손을 더욱 세게 쥐었다.


“이… 잃어버리면 곤란하니깐요…”
“예.”


위일청이 그녀의 손을 꼬옥 붙잡고는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둘의 모습이 거리로 사라지자, 수풀에 숨어있던  여인이 튀어나왔다.

“어머어머어머!”
“잘 됐네요, 소홍 언니!”
“그치, 관영아? 봐봐. 결국 꽃이 중요하다니깐?”
“으으으~ 독고 소저, 평소에는 그렇게 말괄량이 같더니 이럴 때에는 또 약았어요오!”
“그러게. 흐으~, 너무 재밌네.”
“빨리 따라가죠. 놓치겠어요.”
“응응.”


운소홍과 은관영이 또 다시 독고령이 갔던 길을 뒤쫓기 시작했다.



*

“독고 소저, 괜찮으신가요?”
“네.. 녜헷!”
“잘 붙잡고 오세요.”
“으으… 네에…”

독고령이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장의 인파는 생각보다 많았다.

“대장간은 이 쪽이라고 합니다.”
“아… 네.”


인파를 뚫고 들어간 골목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후우… 이제 사람이 좀 없네요.”
“그러게요…”


위일청이 붙잡았던 독고령의 손을 놓고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는 다시 독고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실까요?”
“… 네.”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잡을 변명거리도 없었지만, 독고령은 자연스레 그의 손을 붙잡았다.

“골목이 좁으니 조심해서 들어가시지요.”
“… 네.”


골목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만한 좁은 공간이었다.


그 비좁은 공간을 지나며 독고령은 자신이 붙잡은 손을 바라보다가, 앞서걷는 위일청의 등을 쳐다보았다.

“…”

누군가 자신의 앞을 걸으며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음을 알아갈 즈음, 갑자기 위일청이 멈춰섰다.


“으엑!”


독고령이 위일청의 등에 부딪히고는 그의 등을  때렸다.

“왜… 왜 갑자기 멈춰요?!”
“독고 소저.”
“… 네.”
“여기엔 오고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군요.”
“네?”

위일청이 뒤돌아서고는 붙잡은 독고령의 손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자연스레 벽으로 밀어붙여지자, 독고령이 그를 올려다보며 당황스러운 듯 말했다.

“위… 위일청?”
“이럴 때 하필  이름으로 부르시네요.”
“으… 아… 아니이…”

위일청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할 말이 있습니다.”
“지… 지금요?”
“예, 꼭 지금요.”
“이… 이런 자세로요…?”


위일청은  팔로 독고령을 막고는 벽에 밀어붙인 상태였다.

“예, 이 상태로요.”


그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지며 그의 숨결이 얼굴에 닿았다.

그러자 독고령은 그 날 밤이 또 다시 떠올랐다.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던 위일청.

가까워지는 숨결, 맞닿은 코.

그리고…

“으으…”


그 날의 연장선과 같은 상황 속에서 위일청의 얼굴이 조금씩 다가왔다.


“하으으… 그…”
“말하지 마세요, 독고 소저.”
“흐읍.”
”더는 못 참겠군요.”


그의 말을 듣자, 독고령이 입을 다물고는 눈을 꼬옥 감았다.

그녀의 손이 자신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았다.


‘으으…!’


위일청의 코가 독고령의 코를 살짝 스쳤다.

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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