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11장. 자각 - (1) (78/225)



〈 78화 〉11장. 자각 - (1)

기절한 노극명을 둘러메고 약제실로 돌아가자, 그 모습을 발견한 운영이 기가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 또 팼습니까?”
“패… 패긴 누가 패! 이 새끼가 갑자기 넘어졌…”

독고령의 말꼬리가 운소홍을 보자 길게 늘어졌다.

“어요…”
“노… 노 공자는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아마도?”
“잠시 내려주세요. 제가 볼게요.”

독고령이 바닥에 노극명을 내려놓자, 운소홍이 그의 옆에 달라붙었다.

“어… 어쩌다 이렇게…”
“… 너… 넘어져서 돌부리에 머리를 턱을…”
“잠시 기절하신 거면 다행일텐데…”
“…”

운소홍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노극명을 살피자, 독고령은 괜히 죄책감을 느꼈다.

[운영, 잠시 밖으로 나와라.]

독고령이 전음을 보내자, 그가 조용히 뒤따라 나왔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운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 팼죠?”
“팼다.”
“… 그렇게 마음에 안 듭니까?”
“저 새끼 애비랑 나랑 사이가  안 좋아. 내가 약할 때  새끼한테 쳐맞은 것도 있고.”
“… 노극명은 우리 딸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요?”
“아잇, 시발. 소홍이 정도면 그래도 나도 뭐라 말 할 수 있잖아.”
“하아… 광마. 가만보면 내가 아니라 광마가  과보호입니다.”
“…”

독고령이 침묵하자 운영이 말했다.

“거, 어차피 광마도 위 공자랑 잘 지내면서  그럽니까?”
“이익…! 시발, 진짜. 그 놈의 위일청은 왜 계속 튀어나와?!”
“음? 어떻게 얘기가 안 나옵니까? 누가봐도 독고 소저는 위 공자의 여인인데요?”
“흐엑?!”

독고령이 얼굴을 붉히자, 운영이 웃으며 말했다.

“으하핫, 보십쇼. 말만 나오면 얼굴이 붉어지는 게…”
“뒤… 뒤진다!”
“주먹은 쥐지 마시고요, 제발. 저 일반인이라 진짜 미친듯이 아픕니다.”
“… 시발.”

운영이 독고령의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뭐 하나 제의해도 됩니까?”
“… 뭐, 새끼야.”
“그냥 이대로 사는  별로입니까?”
“아니… 시발.  다 만나는 새끼마다 그 지랄이지?”
“누구한테 또 그런 말을 들었나보군요.”
“너, 하오문주, 그리고 검신 영감탱이까지 다 지랄이더라.”
“생각이 있는 자라면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뭐?”

운영은 표정을 굳히고, 진지하게 말했다.

“광마.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죠?”
“… 좀 됐지.”
“그 기간동안  했습니까?
“… 개새끼들을 족쳤지.”
“그리고요?”
“…”

독고령은 자신이 다른 무언가를 했는지 열심히 머리를 짜내서 생각해보았으나,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없죠?”
“없네.”
“광마… 평범한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평범하지 않은데?”
“이제라도 평범해질 생각은 없고요?”
“없어.”
“하아…”

운영이 가까이 다가와 독고령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한 마디만 해도 됩니까?”
“어차피 말 할 거 허락받지 말고 걍 말해. 말 뜸들이는 거 존나 싫어하는 거 알잖아.”
“이제 다 그만하면 안 됩니까?”
“…”
“그 정도면 오래 했습니다. 충분하지 않나요?”
“내 가족을 죽인 개새끼들이 아직도 살아있는데?”
“그 새끼들이 죽으면요?”
“그럼 평범하게 살게. 진짜로.”
“어떻게 평범하게요?”
“… 그냥 대충…”
“평생을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와서 평범하게 살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아, 시발! 그럼 뭐 어쩌라고?!”

운영이 답답하게 말을 뱅뱅 돌리자, 독고령이 소리쳤다.

“이 시발, 도대체  다 내 인생에 지랄이야, 지랄은!!”
“안쓰러우니깐요.”
“뭐가 안쓰러운데?!  안쓰러운데?! 왜 걱정하는데!!”
“… 친우잖습니까. 당연히 걱정되죠.”

운영이 손에 힘을 주어 독고령을 끌어안았다.

“뭐… 뭐하는…”
“이대로 도망칠 생각은 없습니까?”
“헛소리야.”
“해남에 섬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중 하나 골라잡아서 그냥 적당히 살다가 죽을 생각은 없어요? 아니면 하다못해 의술이라도 배워보는 건 어떤가요? 제가 제자로 받아주겠습니다.”
“미친 소리지.”
“위 공자와 알콩달콩하게 지내는 건요?”
“히익?!”

독고령이 당황하여 운영을 밀어냈다.

“미… 미미미… 미친 놈아! 나 남자야!”
“여자죠.”

운영이 단박에 독고령의 말을 반박하곤 말을 이어나갔다.

“독고진이 아닌 독고령, 아닙니까?”
“아… 아니야!”
“얼마 전까지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음…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광마?”
“뒤진다, 진짜.”

독고령의 협박을 무시하고 운영이 말했다.

“옆에서 보기엔 누가봐도 그렇고 그런 사이입니다.”
“캬아아악!!”
“맞아도 할 말은 하겠습니다! 솔직히 위 공자 좋아하죠?”
“너… 너어…!!”

독고령이 주먹을 꽈악 쥐자, 평소와는 다르게 운영이 당당하게 뒷짐을 지고 배를 앞으로 내밀었다.

“때리십쇼.  대 맞고 계속 얘기하죠.”
“너… 진짜 맞는다. 입 다물어…”
“어라? 왜  때립니까? 정곡을 찔렸습니까?”
“… 야!!”

독고령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원.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날뛰는 건 그만두시죠, 광마.”
“이익…!!”
“마음은 몸을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여인의 몸이 되었으니 여인의 마음가짐으로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나… 나는 남자야!!”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운영의 손가락이 독고령의 머리를 가르켰다.

“그렇게 분홍빛으로 머리를 물들이고요?”
“히익…!”
“어차피 숨길 수도 없는 거 이미 알 사람은   걸요?”
“아… 아니익…!”
“제가 조언 하나 하죠, 광마. 아니, 독고 소저.”

운영이 그녀에게 말했다.

“한동안 위 공자와 떨어져 지내보십쇼.”
“…”
“그럼 당신도 자신의 감정이 뭔지 대충 알겠죠.”
“나… 나는…!”

독고령이 또 다시 그 말을 꺼내려고했다.

‘나는 위일청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쉬운, 단 하나의 문장.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독고령이 차마 말을 마무리 짓지 못 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운영이 휙 몸을 돌렸다.

“됐습니다. 저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금세 깨닫게 되실 겁니다.”
“나느은…!”
“아예 소홍이랑 같이 주무시는 것도 괜찮겠네요. 한 번 고민해보세요.”
“…”

떠나가는 운영의 등을 바라보며, 독고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시발… 진짜 뭐냐고, 시발!!’

독고령은 괜히 애꿎은 맨땅에 화를 풀었다.




홀로 남은 독고령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아주 간단한 문장 하나.

‘나는 위일청을 안 좋아한다.’

기절한 노극명을 향해, 듣는 이라곤 오직 자신 하나 뿐인 곳에서  간단한  하나를 못 했다.

뒤돌아서는 운영한테 그  마디를 차마  꺼냈다.

“…시발.”

위일청만 생각하면 마음 속이 답답했다.

가슴이 아릿해지기도 하고, 가끔씩 심장이 빨리 뛰기도 하고,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은 독고령을 혼란케 만들었다.

“하아…시발.”

독고령의 머릿 속에 운영의 말이 계속하여 맴돌았다.

잠시 따로 지내보면, 금방 자신의 감정을  것이라고.

독고령의 성질 상, 답답한 일은 참을 수 없었다.

‘시발… 나는 위일청 안 좋아해, 새끼야.’

독고령은 그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생각이 정리되자, 독고령은 바로 위일청이 있으리라 생각 되는 곳으로 달려갔다.

쾅!

처소의 문을 박차고 들어간 뒤, 독고령이 선언했다.

“당분간 따로 지낼게.”
“응?”
“색마는 어딨어?”
“… 나갔어. 관영이도 나갔고.”

갑자기 쳐들어 온 독고령이 던진 말에 백리소현은 당황했다.

“그보다  매, 무슨 말이야? 따로 지내겠다니?”
“말 그대로야. 당분간 좀 따로 지내려고. 방도 구해놨어.”
“… 왜?”
“…  생각할 게 있어서.”
“…”

독고령을 쳐다 본 백리소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갑자기? 령 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냐, 그런 거.”
“그럼 왜…”
“그냥! 잠시만 좀 내버려두라…”
“…”

독고령이 애원하듯 말하자, 백리소현은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 혹시 혼자서 어디 가겠다는 건 아니지?”
“… 그건 아니야. 그냥… 진짜 잠시 혼자있을 시간이 필요해서 그래. 당분간 소홍이랑 같이 지내려고.”
“응, 알았어. 좀 아쉬워도 어쩔  없지.”
“하아… 미안하다.”
“아니야, 령 매가 왜 미안해.”
“… 여튼. 나중에  보자.”
“응, 오가면서 자주 들러.”
“… 보고.”
“밥은 같이 먹을거야?”
“… 그것도 보고. 나 간다. 색마랑 하오문한테도 얘기해주라.”
“응.”

독고령이 문을 닫고 떠나자, 백리소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지?”

분명 위일청과 독고령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둘 다 말하기를 거부한다.

비밀이 없었던 위일청은 비밀을 만들었고,

항상 모든 것을 솔직하게 내뱉던 독고령은 입을 다물고 혼자의 시간을 가지겠단다.

‘도대체 뭐려나…’

당사자가 아닌 백리소현은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어색한 별거가 시작되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