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10장. 의녀문(醫女們) - (7) (76/225)



〈 76화 〉10장. 의녀문(醫女們) - (7)

잠에서  뒤, 독고령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누군가의 손길이었다.


‘따스하네…’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기분좋은 손길을 느끼며, 본능이 이끄는대로  손에 뺨을 부비적거리며 눈을 뜬 순간.

“일어나셨습니까, 독고 소저?”
“흐엑?!”

바로 코 앞에서 위일청의 얼굴이 보였다.


“뭐… 뭐예욧?!”


독고령이 당황하며 몸을 일으키자 자신과 위일청, 둘 다 나신인 걸 깨달았다.

“히이익!!”

독고령이 빼액 소리를 지르며 이불을 끌어당겨 자신의 몸을 가렸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오히려 위일청의 알몸이 드러나 그녀가 눈 둘 곳을 못 찾고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려댔다.

“아… 그… 으으…!”
“크큭, 다행입니다.”
“뭐… 뭐가욧!”
“존댓말이 이제 입에 완전히 붙으셨군요.”
“이익…!”

독고령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없었다.

여기서 또 다시 반말을 내뱉는 순간, 이번엔 어떤 수모를 당할지 몰랐기에.


“일단 조금 진정하시지요.”
“그… 이… 뭐…”
“…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아니… 그…”


위일청이 미소를 띄고 자신의 말을 기다리자, 독고령은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다.


‘시발… 뭐지?’

그의 얼굴을 차마 마주볼 수 없었다.


당황한 독고령이 휙 몸을 돌리자, 위일청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마… 만지지 마요!”
“잠시만 엎드려보시지요.”
“시… 싫어요.”
“자꾸 그러시면  싫어하는 짓을  겁니다?”
“씨이…”


독고령이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는  꾹 참아내고 엎드리자 위일청이 무언가를 보여줬다.


“연고입니다. 발라드리지요.”
“어… 어디예요?”
“엉덩이요.”
“흐엑?! 제… 제가 바를게요!”
“아닙니다. 제가 발라드리지요.”
“하으으…”

독고령이 머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고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자, 위일청이 이불을 들어올렸다.

“… 어제 미리 발라둘 걸 그랬네요. 저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부… 부었어요?”
“조금 빨갛네요. 바르겠습니다?”


차가운 연고가 엉덩이에 닿자, 독고령이 베개를 꾸욱 붙잡았다.

“흐읏…!”
“괜찮으십니까?”
“차… 차가워서 놀랬어요.”
“다행이군요. 계속 바르겠습니다.”
“… 네.”

위일청이 손을 움직여 독고령의 엉덩이에 연고를 바르자,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독고령이 뭐라도 말을 꺼내 어떻게든  어색한 분위기를 쇄신해보고자 하려던 순간, 위일청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엑?”
“… 엑이 뭡니까. 반응이 이상하네요.”
“죄… 죄송해요.”
“죄송할 거 까지야… 어제 독고 소저의 볼기짝을 후려친 건… 음…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 무슨 욕심이요?”
“검신 어르신이 그렇게 하면 한  가르쳐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영감탱이가…!”

독고령이 다시 원래의 말투로 돌아가려고 하자, 위일청이 지긋이 그녀의 엉덩이를 눌렀다.

“… 더 때립니다?”
“아… 안 할게요…”
“… 그래서 어제 엉덩이를 때린 겁니다. 원래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그리고… 독고 소저가 하도 말괄량이처럼 군 것도 있고요.”
“…”

독고령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음에도 위일청은 계속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제 갑자기 사정한 것도 죄송합니다.”
“히익?!”
“… 반응이 여전히 다채로우시네요, 독고 소저.”
“그… 그걸 왜 얘기해욧! 마… 말하지 마요!”
“어떻게 안 말합니까? 소저에게 예의를 가르치겠다 해놓고 제가 멋대로 사정해버리고 말았는데요. 오히려 소저가 기분나쁘지 않으셨을까 당황했었습니다.”
“아… 안 나빴으니깐 그만 말해욧!”


독고령이 어떻게든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 위해 이야기를 끊었으나, 오히려 그게 실수란 걸 깨달았다.


“아… 아니, 그… 기분 좋았단 것도 아니고요!”
“크큭, 알겠습니다.”
“지… 진짜예요…”
“예.”
“…”

다시 둘 사이의 대화가 끊겼다.

그리고 위일청의 손이 독고령의 엉덩이에서 떨어졌다.

“…  발랐습니다.”
“… 네.”

위일청이 다시 이불을 끌어당겨 독고령의 엉덩이를 가려주었다.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은 아까보다 좀 더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위일청이었다.

“독고 소저.”
“녜… 넷?!”
“어제 밤에 말입니다.”
“그... 얘기하지 마세욧!”
“마지막에 있었던 일 말입니다…”
“그… 그건…!”


독고령의 머릿 속에서 겨우 한구석으로 치워둔 어제의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던 위일청.


눈을 뜨자 숨결이 닿는 위치에 있었던 그의 얼굴.


그리고 코와 코가 마주하는 순간.

“… 제가 독고 소저에게 입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흐엑?!”
“괜히 가슴이 뛰어서… 자연스레 그리 되더군요.”
“그… 그그그건…”
“어제 일로 저에 대한 신뢰가 조금 떨어지셨다고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저는 여전히 약속을 지킬 생각입니다.”
“무… 무슨 약속이요?”
“소저의 처녀를 받기로  것이요.”
“…”

독고령의 심장이 또 다시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베개를 꼬옥 움켜쥐었다.

“여전히 저희의 약속은 그대로입니다. 저는 소저에게 먼저 다가가 처녀를 받지 않겠습니다.”
“아… 네.”

 말을 듣자, 독고령의 긴장이 풀렸다.

안도의 한숨인지, 아니면 아쉬움의 한숨인지 모를 무언가를 내뱉으며 긴장이 풀린 독고령에게 위일청이 말했다.


“하지만 소저가 도저히 못 참겠다 싶으면… 먼저 제게 오시지요.”
“녜헷?!”
“독고 소저가 부끄러움이 많은 것도 압니다. 백리 소저와 은 소저랑 같이 하는 것이 아직 좀 버거운 것도 알고요. 하지만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때는…”
“흐읏…!”

위일청이 독고령의 새끼손가락을 움켜잡았다.

“몰래 제 새끼손가락을 움켜쥐세요. 그럼 그 날 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제… 제가 왜욧?!”
“…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굳이 찾아오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위일청이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며 말했다.

“그럼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욕조에 데워둔 물을 받아두었으니 몸을 씻고 나오시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 네.”
“이따 다시 뵙지요.”


탁.


방의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독고령이 고개를 들어 위일청이 나간 방문을 쳐다보았다.

‘뭐… 뭐야…’


그녀의 손이 자신의 가슴께로 향했다.

아직도 빨리 뛰는 심장의 박동이 독고령의 손을 거세게 때리고 있었다.

‘지… 진짜 뭐냐고오…!’

독고령은 혼란에 빠졌다.






밖으로 나온 위일청은 백리소현과 은관영의 처소로 달려갔다.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온 그를 보며  여인이 인사했다.

“응? 위 오라버니, 일어났어?”
“아,  오빠. 일어나셨어요?”
“아니요. 한 숨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엑?”


위일청이 다급히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 실례지만 지금 당장 하시죠.”
“뭐… 뭘요?”
“음양교합이요.”
“흐엑?!”
“밤새 서있어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저… 저는 지금 보고서 써야하는데에…”

은관영이 아쉬워하며 대답하자, 위일청은 백리소현을 쳐다봤다.

“백리 소저는요?”
“… 응. 알았어, 하자. 근데 갑자기 이렇게?”
“예. 빨리  발 뽑고 기분좋게 자고 싶습니다.”
“후훗, 령 매를 괴롭힌 게 아니라 오히려  매가 오라버니를 괴롭힌거야?”
“…”

백리소현의 말을 들은 위일청은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예. 덕분에 밤새 잠을 못 잤거든요.”
“어머, 무슨 일이 있었길래?”
“… 비밀입니다.”
“응?”

위일청의 대답을 듣자, 백리소현의 눈이 커졌다.


‘위 오라버니가  일에 관해서 숨긴다라… 뭔 일이 있긴 있었나보네?’


백리소현이 배시시 웃으면서 위일청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만… 위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하면 묻지 않을게.”
“… 예, 고맙습니다.”
“나 근데 아침엔  씻었는데…”
“상관없습니다.  쪽도 좋아하니깐요.”

위일청이 옷을 벗기 시작하자, 백리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응. 알았어.”

백리소현이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기자, 방 안은 금세 뜨거워졌다.

*



위일청이 받아둔 물로 목욕을 끝낸 독고령은 옷을 챙겨입으며 아쉬움을 느꼈다.


‘어제 월영신공 돌렸으면 최고였는데, 아이 씨…’

어차피 거쳐야 했을 일, 월영신공을 운공하지 못  게 못내 아쉬웠다.

좀 늦었지만 아직 음심이 남아있는 지금이라도 해볼까 싶어서 가부좌를 튼 순간, 독고령은 놀랐다.


‘엑…? 음유맥은  뚫렸지?’

지난 번에 이어 또 하나의 팔맥이 뚫려있었다.

양유맥, 양교맥, 음교맥에 이어 음유맥까지 뚫리자 독고령의 몸은 예전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게다가 또 하나 경탄할 만한 일이 있었으니…

‘… 이 새끼는 왜 잠잠해졌지?’

하단전의 음기가 상당히 고분고분해져있었다.


독고령이 슬며시 이전에 한계라고 생각한 양까지 끌어올려보았으나 전처럼 음기가 미쳐날뛰며 멋대로 세맥으로 퍼져나가지 않았다.


하단전에 있는 전체의 음기  4할 정도를 자유로이 운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독고령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  정도면 얼마나 하려나?’

은관영의 모든 실력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녀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 노순평은 좀 무리겠지만, 어지간한 떨거지는 다 잡겠군.’


독고령이 다룰 수 있는 내공이 늘어나자, 하루 사이 비교 대상이 확 뛰어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는 하단전의 음기 중 아무리 많이 가져다 써야 1할 정도였다.

그것도 충분히 많은 양이었지만, 전성기의 독고진에 비해선 한없이 모자란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전체의 음기  4할 가량이면, 전성기 독고진이 가진 내공의 총량의 8할 정도였다.


 정도면 더 이상 어디가서 빌빌댈 일은 없었다.


‘… 괜찮은데?’

독고령이 만족감에 차서 눈을  뒤,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까지 심법이나 검술의 성취가 낮은 건 아쉬웠지만, 그 쪽은 조금만 익숙해지면 금방 성취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히려 가진 무공 수위에 비해 내공이 과한 상황이 되었다.


“…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내공은 늘었지만, 갑작스레 이유도 모르고 내공의 상승을 이룬 것은 조금 찝찝했다.


안 그래도 자신을 여자로 바꾼, 정체불명의 음기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독고령이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되었나 열심히 고민해봤지만, 도출되는 답은 하나 뿐이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때문에 그런  같은데…’

그  때문이 아닌 이상 갑자기 다룰  있는 음기의 양과 음유맥이 뚫린 것이 설명이 안 됐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독고령은 결국 위일청과 야한 짓을 할수록 강해진단 얘기와 같단 것을 깨달았다.


“…”

독고령이 손을 들어, 위일청이 잡았던 새끼손가락을 쳐다보았다.


[몰래 제 새끼손가락을 움켜쥐세요. 그럼 그 날 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누… 누가 잡을 거라고라고 했나…”

듣는 이도 없었지만, 마치 스스로에게 되뇌이듯 괜히 혼잣말을 내뱉으며 독고령이 밖으로 나섰다.


*

독고령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하필 그 앞을 지나던 남궁원청을 마주쳤다.


“으엑.”
“… 노부를 보고  말이 그거 밖에 없던가?”
“…  주무셨어요?”
“음?”


독고령의 바뀐 말투를 듣고, 남궁원청의 한  눈썹이 올라갔다.

“… 잘 잤네.”
“네… 그럼 나중에 다시…”
“어젯밤에 뭐가 있긴 있었나보구만.”
“흐엑?!”


독고령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뿌리부터 분홍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남궁원청이 실실 웃었다.

“클클클, 노부의 선택이 맞았구만.”
“무… 무슨 개소리세요?”
“끝에 ‘요’만 붙이면  존대가 아니라네.”
“…”
“하아…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구만. 이해해주겠네.”

독고령은 도대체 그가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나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그 때, 남궁원청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마당에 자라있던 나무를 한 그루 발견했다.

“음… 신의에게 나중에 용서를 구해야겠구만.”

똑!

남궁원청이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손에 들고는,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독고령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가? 또   피해보겠나?”
“갑자기요?”
“어젯 밤 곤혹을 치뤘을 터이니 노부가 해   있는 게 이것 뿐이구만.”
“…”
“게다가 하룻밤 사이에 노부도 놀랄만큼 성취를 이룬듯 한데… 아닌가?”
“아직 좀 모자라긴 한데…”

독고령이 머리를 벅벅 긁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해 보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