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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10장. 의녀문(醫女們) - (4) (73/225)



〈 73화 〉10장. 의녀문(醫女們) - (4)

독고령이 남궁소소의 손을 꼭 붙잡는 것을 보고 운소홍은 웃으며 치료실로 들어갔다.


“탕약을 가져왔어요. 좀 늦었나요?”
“광마 놈의 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예까지 들리더구나.”
“어머, 그럼 소소가 어르신을 찾는 것도 들으셨겠네요.”

운소홍이 탕약을 건네자 남궁원청이 몸을 일으켜 약을 쭉 들이켜고는 말했다.

“전에는 얼굴의  상처가 어릴 때 생긴 거라고 둘러대더니. 노부에게 거짓말을 했었구나.”
“광마 아저씨는 그날 이후로 저랑  마주치려고 내내 피해 다니셨으니깐요. 남들이 알아봤자  좋을 얘기도 아니고요.”
“어느 순간부터 강소성 인근에 사파 놈들이  사라지더라니… 쯔즛. 말하지 그랬나, 운영? 그렇다면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내주었을 터인데.”
“으하핫, 괜찮습니다. 요즘엔 시비를 거는 자도 없고, 어르신이 소홍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영 걱정이 되는 게 노인네들의 안달이지. 소홍아, 성취는 좀 있었느냐?”
“으음… 그냥 적당히요?”
“크큭, 그래. 사람을 고치는 의원이 사람을 해하는 무학에 너무 심취하는 것도 그리 보기 좋은 일은 아니지. 그보다…”

남궁원청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문밖을 내다보았다.

“… 독고진의 여식이 어린아이와 잘 지낼까?”
“으하핫, 글쎄요. 괜히 소소가 이상한 물이 드는 거 아닙니까?”
“… 빨리 치료받고 나가봐야겠구먼.”
“저도 도와드릴까요, 아버지?”
“그래주면 고맙겠구나.”


애석하게도 남궁원청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


“… 언니?”
“어...? 어.”
“우리 어디 가요?”
“… 글쎄.”

자신의 손에 쥐어진 남궁소소의 작은 손을 마주잡고 독고령은 고민에 빠졌다.

‘… 어린애는 어떻게 돌봐야 하지?’

독고령은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이 가장 익숙한 방법을 택했다.

“어… 칼싸움이라도 할래?”
“칼이요?”
“… 너, 맹주 딸 맞지?”
“네. 우리 아빠가 무림맹주예요.”
“그럼 너도 좀 싸울 줄 알아야지.”
“그래야 돼요?”
“어… 음…”

어린아이는 뭐 그리 호기심이 많은지, 끊임없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되묻는 남궁소소를 보며 독고령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음… 그러니깐… 어…”


그때, 독고령을 구원해줄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앗! 독고 소저, 거기서 뭐하세요오?”
“야, 하오문. 잘 왔다.”
“응?”


독고령이 잽싸게 은관영을 불렀다.

“… 어린애한테는 뭘 해줘야 하냐?”
“… 그보다 그 애는 누군데요?”
“검신 손녀.”
“히이익! 미쳤어요, 독고 소저?!”
“엉?”
“왜… 왜 데리고 있어요오? 잘못하면 우리 다…”
“그런 거 아니야, 새끼야. 그냥 잠시 애를 맡아준 거야.”

은관영이 무슨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독고령이 사정을 설명하자, 그제야 은관영은 한숨 덜었다.

“흐에… 다행이네요. 독고 소저라면 납치…”
“뒤진다?”
“히잉…”

그때, 가만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소소가 독고령의 손을 잡아당겼다.


“언니.”
“응?”
“뒤진다가 뭐야?”
“…”

독고령이 당황하여 눈을 피하자, 은관영이 그녀를 질책했다.

“… 독고 소저는 일단 조용히 계세요. 이름이 뭐니?”
“남궁소소예요. 언니는요?”
“나는 은관영이야. 만나서 반가워.”
“이름이 예쁘네요, 언니.”
“너도, 히힛.”

금세 서로 쿵짝이 잘 맞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걸 보고 독고령은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 나한테는 낯을 가리더니…’

그런 독고령의 마음도 모르고, 남궁소소는 배시시 웃으며 은관영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소소는 뭘 좋아하니?”
“검이랑… 차요?”
“…”


답변을 들은 은관영이 당황하여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크하핫, 역시 남궁세가. 근데 아까 칼싸움하자고 했잖아.”
“싸움은 싫고요… 칼을 휘두르는  좋아요.”
“니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줬냐?”
“네! 칼을 더 잘 휘두르게 되면 할아버지가 칭찬해줘요!”
“으엑…”

은관영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 얘는 아무래도 독고 소저랑   놀겠는데요?”
“크하핫, 내가 이겼다.”
“… 뭘 이긴지 모르겠네요. 적당히 놀다가 돌아오세요.  오빠가 할 말이 있데요.”
“…


최대한 오래 있어야겠다 생각하며 독고령이 떠나는 은관영의 뒷 모습을 쳐다보았다.


“소소라고 했냐?”
“네.”
“그럼… 우린 저 쪽으로 가자. 저기에 괜찮은 마당이 있으니깐. 내가 검을 가르쳐줄게.”
“진짜요?!”
“그래, 크큭.”

그래도 검은 조금 자신 있었기에 별 문제없으리라 생각하며, 독고령이 신나서 남궁소소의 손을 붙잡아 끌었다.


*


치료가 끝나자 남궁원청이 다시 옷을 걸쳤다.

“고맙네, 운영.  매번 신세를 지는구먼.”
“신세는요, 무슨. 돈도 꼬박꼬박 얹어주시면서.”
“크하핫, 노부가 가진 게 힘과 돈밖에 없어서 말일세.”
“검신 어르신, 약재는 같이 오신 무인들한테 맡겨놓을까요?”
“그래주면 고맙겠구나, 소홍아.”
“예.”


남궁원청이 밖으로 나오고는 물끄러미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럼… 소소와 독고진의 딸은 어디 있으려나…’


이제 막 기감을 끌어올리려던 찰나.


“검신 어르신.”
“음…?”

위일청이 남궁원청에게 다가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부를?”
“예.”
“으음…”


치료도 끝났으니 소소를 데리러 가고 싶었으나 눈앞에 서 있는 위일청에게도 관심이 많았기에 남궁원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슨 연유로 노부를 기다렸는고?”
“… 실례인 줄은 알지만, 강호에서 가장 강한 무인을 기다릴 연유는 당연지사 아니겠습니까? 아주 약간의 가르침이라도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만.”


남궁원청이 잠시 수염을 가다듬으며 생각에 잠기자, 위일청은 잠자코 그를 기다렸다.


“… 노부 또한 자네에게 궁금한 게 많다네.”
“질문을 해주신다면 얼마든지 답하겠습니다.”
“광마의 여식과는 무슨 연유로 같이 다니는가?”
“독고 소저를 천축까지 데려다주면 저는 소저에게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가?”
“어…”


위일청이 대답을 망설이자 남궁원청이 웃었다.

“함구하겠네.”
“… 초야를 받기로 했습니다.”
“큭… 크큭… 크하하핫!!”

남궁원청이 크게 웃어 재끼자 위일청이 고개를 숙였다.


“그… 어르신. 제가 익힌 무공이…”
“아, 크큭… 알고 있네. 채음보양 비스무리한 무언가 아니였나?”
“… 예. 아무래도 처녀를 받아야지 좀 더 효과가 좋은지라…”
“아… 정말 재밌구만. 말년에 이런 즐거움이 생길 줄이야, 크큭. 나이만 아니었다면 자네들을 따라다닐 텐데 말이야.”
“…”


위일청이 영문을 모르고 남궁원청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남궁원청은 나이도 잊고 아이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광마, 그놈이 처녀를 바치기로 약조한 것은 필시 거짓이겠지.’

하지만 위일청과 지내며 분명 무언가 변화는 있었다.

남궁원청이 제일 처음 독고진을  순간 떠올린 것은 ‘길들여질 수 없는 야생마’였다.


살다보면 절대 누구도 등에 태우지 않는 야생마가 존재한다.


사람이 억지로라도 그 위에 올라타려고 하면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야생마.

독고진은 분명 그러했지만, 독고령은 조금 달랐다.


‘놈은 지금 한참 등에 탄 기수를 흔들어 떨어트리려고 발악 중이란 말이지…’

남궁원청은 독고령이 길들여지기를 바랬다.


나이를 먹으니 늘어나는 것은 감성뿐이라 그런 것인지, 독고진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삶이 안타까웠다.

가족도, 사랑하는 이 하나도 없어 남을 사랑하는 방법을 잊은 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기에 남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 밖에 모르는 자가 독고진이었다.

‘헌데 여자로 바뀌었단 말이지…’


하늘도 필시 그의 삶이 안타까워  번째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정도로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생각을 마친 남궁원청은 입을 열었다.


“위일청.”
“예, 어르신.”
“노부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했지?”
“… 그렇습니다. 혹여나 실례라면…”
“가르쳐주지.”
“!!”

위일청의 눈이 커졌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럼. 당연하지만 가문의 무공은 못 가르쳐준다네. 허나 먼저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벽을 깨기 위한 가르침 정도야 얼마든지 내려줄 수 있다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허나 조건이 있다네.”
“… 무엇입니까?”


남궁원청이 어린아이처럼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입에 띄웠다.

“오늘 밤, 독고령의 처녀를 받게.”
“… 죄송합니다. 불가합니다.”
“음?”
“독고 소저와는 약조했습니다. 천축에 이르기 전까지는 제가 먼저 손을 대지 않기로요.”
“허어…”

남궁원청이 탄식을 내뱉자, 위일청이 움찔했다.


“노부가 누군지 아는가?”
“… 검신 어르신이지요.”
“그런 이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잘 알고 있겠구만. 헌데 이 제안을 거절하는가? ‘색마’라고 불리는 이가?”
“… 제가 색마라 불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평가입니다. 저는 타인의 목소리보다 제 자신의 기준을 앞세우고자 합니다.”
“후회하지 않겠나?”
“스스로 정한 약속을 깨서 후회할 바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며 살겠습니다.”
“흐음…”

남궁원청이 위일청의 눈을 쳐다보았다.

‘노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드는구만.’


검신은 보면 볼수록 위일청이 마음에 들었다.

굳이 독고진과 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가르침을 내려줬을 자였다.


“내가 조금 천박한 질문을 해도 괜찮겠는가?”
“… 혹여 독고 소저와 어디까지 했는지를 여쭤보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네. 동침은 하는가?”
“… 합니다.”
“그런데 아직 초야는 받지 않았다?”
“예.”
“허어… 혹시 ‘색마’라고 불리는 것은 허명인가?”
“그… 것은 아닙니다. 밤 일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헌데도 독고 소저는 아직 자네에게 넘어오지 않았구만.”
“… 검신 어르신. 왜 독고 소저에게 그리 집착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위일청이 역으로 남궁원청에게 질문하자, 그는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늙다보니 생기는 것은 오지랖밖에 없더군. 그리고 광마에겐 개인적으로 미안함도 있고.”
“… 예?”
“뭐, 다른 얘기일세. 가르침은 내려주겠다만 일단  손녀부터 찾고 하지.”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네. 괜히 나이 먹고 젊은 여인의 처녀가 어쩌구저쩌구 하다 보니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구먼. 인연이라면 알아서 될 테지.”
“가… 감사합니다!”

위일청이 고개를 숙이자 남궁원청은 인자한 미소를 띠며 그에게 말했다.

“독고진의 여식을  부탁하네.”
“예.”
“그럼 일단 손녀부터 빨리 찾아야겠구만.”

남궁원청이 기감을 끌어올려 확장하기 시작했다.

금세 손녀를 찾자 남궁원청이 손녀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같이 가겠나?”
“예, 어르신.”


남궁원청이 앞서 걷자, 위일청이 그의 뒤를 쫓았다.

뒤따라 도착한 곳은 고즈넉한 장원이었다.


그곳에서 남궁소소가 구슬땀을 흘려가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남궁원청이 귀를 기울여 둘이 무슨 대화를 하나 슬쩍 엿들었다.

“옳지, 그렇게 해야 적이 쫄아.”
“쫄아가 뭐예요?”
“어… 겁을 먹는다? 상대가 굳어. 그러면 그때 다른 곳을 조지는거지.”
“아~, 이해했어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잠시 멍하니 있던 와중, 독고령이 먼저 남궁원청을 발견했다.

독고령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남궁소소는 금세 남궁원청을 발견했다.

“할아버지!!”

조르르 달려오는 남궁소소를 보며 자신이 무언가 잘못 들었구나 치부하고 남궁원청은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띄워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래, 소소야. 지루하지는 않았니?”
“응, 재밌었어요!”
“신세를 졌구만.”
“… 별일 아니었소. 나도 즐거웠고.”


독고령이 슬쩍 민망함에 고개를 돌리자, 남궁원청은 품에 안긴 남궁소소를 보며 물어봤다.

“그래서, 저 언니한테 무엇을 배웠느냐?”
“어떻게 해야 사람을 잘 조질 수 있는지요!”
“… 응?”


남궁원청이 남궁소소의 대답을 듣자 몸이 굳었다.

허나 남궁소소는 그런 것도 모르고 신나서 자신이 배운 것을 떠들어댔다.


“검을 휘두를 때, 검만 쓰면 안 된다고 언니가 그랬어요! 그래서 발을 쓰는 방법을 배웠어요!”
“그… 그렇구나.”

지극히 실전적인 방법을 가르쳐줬구나 싶어서 남궁원청이 안심하려던 찰나, 남궁소소가 말했다.

“그리고 누가 개새끼인지, 살려둬도 될 놈인지 구분하는 방법도요!”
“…”


남궁원청이 독고령을 노려보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피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위일청, 저 년을 붙잡게.”
“예, 어르신.”
“오… 오지 마, 색마 새끼약!!”


독고령이 재빨리 몸을 날려 피하려고 했으나 애석하게도 위일청은 이미 독고령을 다루는 데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흐읏…!”
“… 아이와 어르신이 보는 앞이라 살살했습니다.
“벼… 변태 새끼야!!”
“더 해드립니까?”
“…”

위일청이 침투경의 묘리로 독고령의 성감을 자극하자, 그녀는 금세 얌전해졌다.

남궁원청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 색마라는 게 허언은 아니였구만.’

그때, 남궁원청의 머리에 적합한 체벌이 떠올랐다.

[이보게, 위일청.]
[예, 검신 어르신.]
[약속을 조금 바꾸겠네. 자네에게 가르침을 내려주긴 하겠지만, 조건이 있다네.]
[… 처녀를 받는 것이라면…]
[저 년의 볼기짝을 후려쳐주게.]


남궁원청의 말을 듣는 순간, 위일청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 그냥 후려치기만 하면 됩니까?]
[여기서 말고, 이따 밤에 말일세.]

그 말을 듣자, 위일청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바로했다.

[…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내일 다시 보세나.]
[확인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노부에게 관음하는 취미는 없다네. 자네가 알아서 잘 하리라 믿겠네.]
[… 예.]

등을 돌려 떠나는 남궁원청을 바라보다 위일청이 고개를 내려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독고 소저.”
“… 왜, 개새끼야.”
“오늘 밤, 제 처소에 들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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