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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화 〉10장. 의녀문(醫女們) - (3) (72/225)



〈 72화 〉10장. 의녀문(醫女們) - (3)

“도… 동행자예요…”
“동행자라…”


남궁원청은 독고령의 대답을 듣고, 싱글벙글 웃었다.


“… 좋은 대답일세.”
“아… 아니… 그…! 그냥 같이 가는 사이일 뿐, 진짜 아무 사이도…!”
“알았네, 클클.”


독고령이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고 허둥지둥 변명을 하는 것을 보며 남궁원청이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와중, 밖으로 나갔던 운영이 다기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광마의 머리색이 바뀌었군요.”
“오, 그래. 안 그래도 노부도 궁금했는데 저 머리색은  바뀌는 건가?”
“아, 저건 광마가…”
“캬아악!!”
“… 감정의 극심한 변화를 느끼면 변합니다.”


그래도 한 때는 친구였던 독고진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운영이 거짓말로 둘러댔다.

“크하핫, 참으로 신기한 몸이구만.”
“젠장, 금세 원래대로 돌아갈테니깐 차는 그  받겠소.”
“음? 남자로 돌아갈 방법도 생각해둔 게 있는가?”
“… 극음의 기운을 가진 신물을 흡수하여 이 꼬라지가 되었으니, 극양의 기운을 가진 신물을 흡수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겠소?”
“흐음…”


남궁원청이 턱에 손을 올리곤 고민에 빠졌다.


“… 그게 그렇게 되는가?”
“나도 모르겠소. 시도해봐야 알지.”
“신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남자가 여인으로 변한 순간 생각하길 포기했죠.”
“하긴… 뭐, 일단 알았네.”

대화가 마무리되자 독고령이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도 되겠소?”
“그러시게. 노부는 조금 더 치료를 받아야하니.”
“그보다 그 상처는  그런 것이오? 전대 천마랑 싸운지 꽤 오래되지 않았소?”
“그래서 말했지 않았나, 저주라고.”
“… 그렇군.”


독고령이 뒤돌아서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의 귓가에 운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르신. 이제 슬슬 한계인 듯 합니다.”
“클클, 진즉에 죽었어야 할 송장을 살려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지.”
“슬슬 아드님한테도 얘기하시지요.”
“조만간 얘기해야겠군.”
“일단 누으시죠. 할  있는 한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고맙네.”

둘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들은 독고령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런 괴물 같은 영감탱이도 결국 죽긴 죽는군.’


한 편으론 쉬이 납득이 가기도 했다.


저렇게 큰 상처를 입고 지금까지 용케 살아있다 싶었을 정도니.


괜히 마음이 심란해져서 생각에 빠진 와중, 한 소녀와 부딪쳤다.

“아으…. 죄… 죄송합니다!”
“… 죄송까지야.”


독고령은 그냥 지나가려고 했으나, 소녀는 비켜주지 않았다.


“… 뭐 할 말 있냐?”
“저… 저기… 혹시 할아버지 어딨는지 아시나요?”
“니네 할아버지가 누군데?”
“사람들이 검신이라고 불러요.”
“엥?”

그 말을 듣자 독고령이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제 갓 10살을 넘었을 법한 아이를 보며 독고령이 남궁원청의 말을 떠올렸다.

[이 참에 손녀랑 위일청을 맺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독고령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쌌다.


‘노인네한테 속았군.’

이런 어린 아이와 위일청의 혼약을 맺는다?

헛소리에 가까웠다.


“하아…”
“… 언니? 괜찮아요?”
“어? 아… 괜찮아. 그… 니네 할아버지는 지금 볼일이 있으니 다른 데 가서 놀아.”
“어디서요?”
“어…”


독고령이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어 당황하고 있는 와중, 멀리서 누군가 다가왔다.

“어머, 소소야.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소홍 언니!”

탕약을 들고  여인은 운영의 장녀, 운소홍이었다.


남궁소소가 쪼르르 달려가 운소홍의 다리를 붙잡았다.


“언니, 할아버지 어딨어?”
“음… 할아버지는 지금 침 맞고 있을거야.”
“아프지 않아?”
“안 아프려고 맞는 거야. 그보다…”

운소홍이 고개를 들어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광마 아저씨의 따님이시죠? 얘기 들었어요.”
“… 어.”
“후훗, 아저씨한테도 딸이 있다니깐 신기하네요. 잠시만 소소를 돌봐주시겠어요?”
“…”


독고령은 물끄러미 운소홍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참 고운 얼굴이었다.

웃을 때 초승달을 그리는 눈이 예쁜 아이였다.

하지만 그 고운 얼굴을 가로지는 하나의 검상이, 독고령의 가슴을 욱씬거리게 만들었다.




*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독고진은 근처의 사파를 한바탕 뒤집어 엎고는 제법 큰 상처를 입어 운영을 찾아갔다.

운영의 기나긴 타박을  듣고난 뒤, 침대에 누워 다음엔 누굴 조져야 할 지 고민하고 있을 즈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손이 그의 볼을 찔렀다.


“… 건들지 마라.”
“제… 제성해여!”
“…”

독고진이 몸을 일으키자, 조그마한 아이가 쪼르르 달려나가 운영의 뒤로 숨었다.

“으하핫, 광마. 그 험악한 얼굴 좀 어떻게  됩니까? 애가 매번 찔러보지 않습니까?”
“시… 하, 젠장. 어린애 앞이라 욕도 못 내뱉겠군.”
“소홍아, 저 아저씨 얼굴이 그렇게 신기하니?”
“…”


어린 운소홍은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으나, 독고진에겐 오히려 짜증만 불러일으켰다.

당문에게 죽은 막내를 떠올리게 했기에.

“… 애는 좀 치워.”
“어린아이는 싫어합니까?”
“…어. 꼴보기도 싫다.”
“이런… 알았습니다. 소홍아, 밖에 나가서 엄마한테 갈래?”
“응.”


소홍이가 밖으로 달려나가자 그제서야 독고진이 다시 몸을 눕혔다.


“시발…”
“의외군요, 광마.”
“뭐가?”
“그래도 어린아이는 조금 배려해주시는군요.”
“배려는 무슨, 시발. 그냥  자게 냅둬.”
“예에. 이따 침도 놔드리겠습니다.”
“… 좀 얇은 걸로 놔라.”
“우모침을 하도 맞아서 작은 침은 듣지도 않는다면서요?”
“아, 시발. 근데 대침이 적당히 커야지, 새끼야!”
“으하핫, 알았습니다. 적당히 큰 걸로 준비하죠.”
“시발…”


운영이 밖으로 나가자 독고진은 괜히 몸을 뒤척였다.

상처가 욱씬거리는 것도 짜증났지만, 괜히 화가 끌어올라 얌전히 누워있기도 힘들었다.

소홍이를 볼 때마다 죽은 막내가 떠올랐고, 막내가 떠오를 때마다 당문에 대한 분노가 끌어올라 광증이 도질 것만 같았다.

‘당분간 운영은 보러오면 안 되겠군…’

하다못해 소홍이가 좀 더 자랄 때까지만.


자신의 여동생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만 자란 뒤에 와야겠다 다짐하며 독고진은 잠을 청했다.



‘… 뭐지?’

 중에 독고진이 눈을 뜬 것은 이상한 기척을 느껴서였다.

어딘가 끈적한 살의가 느껴지자 독고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죽어랏!!”
“그걸로 죽겠냐?!!”


콰직!


독고진이 주먹으로 칼을 내려치는 누군가의 얼굴을 뭉갰다.

피곤죽이 된 암살자를 확인하고는 독고진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발… 벌레 새끼들이 여기까지 쫓아왔나?”


당시의 독고진은 미숙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을 미행하는 놈이 있는 지도 몰랐고, 혹여나 있다고 하더라도 다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자 그 생각이 금세 사라졌다.



“우… 움직이지 마!”
“아… 아저씨…!”

나가서 본 광경은 소홍이의 얼굴에 칼을 대고 벌벌 떠는 사파 놈이 독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 그 칼 내려.”


그 광경을 본 독고진의 목소리는 분노에 가득차 있었다.


“만약 그 아이의 몸에 흉터 하나라도 남으면 넌 죽는다.”

독고진의 온 몸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사파 놈이 소홍이의 얼굴에 더더욱 칼을 가까이 가져다댔다.


“야… 얌전히 안 있으면…!”
“죽여주마!!”


독고진이 한계까지 부풀어오른 근육을 움직여 그에게 달려들었다.


퍼석!

사파 무인의 머리통이 터지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만, 독고진은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버러지 새끼들이…!”
“흐… 흐아아앙!!”
“어…?”

독고진이 당황하여 뒤를 돌아보자, 소홍이의 얼굴에 사선이 그여져있었다.


“소… 소홍아…”
“아빠아아…”
“이익…!!”

그녀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자,  다시 광증이 끌어올랐다.

“모조리… 죽여주마…!!”
“흐아아앙!!”

울고 있는 운소홍을 뒤로 하고, 독고진은 자신을 뒤쫓아온 모든 사파놈들을 죽였다.


그도 모자라 인근의 사파가 존재하는 한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하며 그 날부터 주변의 모든 사파를 부숴놓기 시작했다.

결국 강소성에  하나의 사파도 남지 않았을 즈음, 독고진은 다시 운영에게 찾아갔다.


“… 소홍이는?”
“괜찮습니다. 좀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목숨을 건졌군요.”
“…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닙니다. 제가 방비를  해서 그렇지요. 안 그래도 제게 치료를 받은 몇몇 분들이 호위를 자청하며 찾아왔기에 받아들였습니다.”
“… 젠장.”

운영과 얘기를 할수록, 독고진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답답함에 밖으로 나오자, 우연히 그 앞을 지나던 소홍이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아저씨. 그…”
“…”


하지만 운소홍은 더 이상 옛날의 운소홍이 아니었다.

여전히 활기차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칭칭 붕대를 감은 얼굴을 보고 독고진은 그녀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 후로 독고진은 운영에게 찾아가는 것을 조금씩 줄였다.

세월이 지나, 운영의 집이 의녀문으로 바뀐 뒤에는 아예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가 독고령이 되기 전까지는.



*




“독고 소저?”
“어? 아… 미안. 잠시 딴 생각을 좀…”
“후훗, 아저씨랑 많이 다르네요. 여튼, 소소 좀 잘 부탁드려요. 저도 아버지를 조금 도와야해서요.”
“… 어.”

운소홍이 무릎을 굽혀 남궁소소와 눈높이를 맞췄다.

“소소야.”
“응, 언니.”
“저기 빨간 머리 언니랑 잠시 놀고 있을래?”
“우웅… 알았어.”


남궁소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운소홍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착하네, 우리 소소. 이따 당과 줄게.”
“응!”
“독고 소저. 잘 부탁드려요.”
“노력하마…”

운소홍이 남궁소소의 손을 붙잡아 독고령에게 건네주었다.


손 안에 남궁소소의 작은 손이 들어오자, 독고령은 두려움에 손을 붙잡지 못 했다.

그녀에게 어린 아이의 손은 너무나도 작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서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
“잠깐만.”



뒤돌아 떠나는 운소홍을 보며 독고령은 오랫동안 품었던, 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던  질문을 하기 위해 그녀를 멈춰섰다.


‘독고진’일 때는 차마 두려워서 물어보지 못  질문을.

“네?”
“… 묻고 싶은 게 있어.”
“어… 뭔지 알 거 같네요. 얼굴에 이거요?”

운소홍이 들고있던 탕약을 내려놓고 자신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검흔을 쓸어내리는 걸 보고 있자,  움직임을 따라 독고령의 가슴이 칼로 베인 것만 같았다.


여인에게 얼굴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 중요한 얼굴에 저런 흉흉한 검상이 자리잡고 있었고, 독고령은 그 검상이 생긴 이유가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운소홍의 입에서 어떤 원망의 말이 나와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 생각하며 독고령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렇지 않았다.

“음… 사실  거 없어요. 그냥 장난을 치다가 베였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요.”
“하… 하지만…!”
“그래도 독고진 아저씨가 절 구해줬으니깐요.”
“… 원망하지 않아?”
“원망요? 제가요?”
“… 어.”
“구해주셨는데 제가 원망을 왜 해요?”
“네 얼굴에 칼을 그은 새끼는 독고진을 쫓아왔던 거였는데?”
“그  제가 밤에 일어나 돌아다니지만 않았다면 안 붙잡혔겠네요.”
“허튼 소리!”

독고령이  소리를 지르자, 운소홍은 되려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 책망하는 말을 바라시나요?”
“그래! 차라리 욕을 해!”
“이런 걸 보면 아저씨 딸이 맞나보네요. 아저씨랑 똑같으세요.”
“그런  말고…!”
“제가 욕을 하면, 소저의 기분이 조금 편해질까요?”
“…”


독고령이 말문이 막히자, 운소홍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 독고령.”
“령. 예쁜 이름이네요.”
“…”
“독고령, 제 상처를 만져보시겠어요?”
“뭐?”
“원래 잘 안 허락해주는데, 독고 소저한테는 허락해줄게요. 만져봐요.”
“하… 하지만…”
“빼지 마시고요.”

운소홍이 독고령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얼굴에 올렸다.

“…”

그녀의 손을 따라 독고령이 상처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어떤가요?”
“… 그냥 상처잖아.”
“하지만 따스하죠?”
“어?”
“…  날 죽었으면 차가웠겠죠.”


운소홍이 독고령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중에 광마 아저씨한테 전해주세요.”
“… 뭐라고?”
“다음에 오면 볼을 찌르게 해달라고요.”
“뭐?”


독고령이 당황하자, 운소홍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게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광마 아저씨의 볼을 그렇게 찔러보고 싶더라고요.”
“미친… 아니, 정신이 나간 소리네.”
“그쵸, 후훗? 광마 아저씨가 아직도 저한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느끼신다면, 그렇게 전해주세요. 볼을 찌르게 해주면 용서해주겠다고요.”
“… 그걸로 돼?”
“네, 그걸로 충분해요. 제가 의원을 이어받은 뒤로는 한 번도 안 찾아오시더라고요.”
“…”
“그러니깐 독고 소저도 너무 저한테 미안해하지 마세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깐요.”


운소홍이 독고령을 껴안고는 그녀를 토닥여주었다.


“아셨죠?”
“그래…”
“그럼.”

운소홍이 껴안고 있던 독고령을 놓아주고, 놓아둔 탕약을 다시 들었다.


“이만 가볼게요. 이따 좀 더 얘기해요, 독고 소저.”
“… 어.”
“그리고 소소도  봐주시고요. 어린애는 좋아하시나요? 광마 아저씨는 싫어하셨는데.”
“…”

독고령은 물끄러미 남궁소소를 내려다보았다.

어린아이는 여전히 좋아하지 않았다.


작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하여 익숙하지 않았다.


 때마다 당문에게 죽었던 막내가 떠올라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만, 노력은 해보마.”


조금은 바뀌어보고자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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