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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10 장. 의녀문(醫女們) - (1) (70/225)



〈 70화 〉10 장. 의녀문(醫女們) - (1)

독고진이 남궁원청을 알게된 것은 그의 아들, 남궁진 때문이었다.


하오문주 은약벽의 부탁에 따라 무림맹으로 향하는 남궁진을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던 독고진은 멀리서 한 사내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서책을 펼쳐들었다.


“…  새끼가 맞나?”


은약벽이 그려준 용모파기를 확인하자 얼추 맞는 것만 같았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독고진은 자신의 애병, 참마도를 들어올려 길을 막아세웠다.


사내가 멈춰서자 독고진은 서책의 용모파기와 그의 얼굴을 몇 번이나 비교했다.

“… 무슨 일이시오?”
“가슴팍에 창천이라 수 놓인 파란 무복, 용모파기도 얼추 맞고… 네가 남궁진이냐?”
“… 내게 볼 일이 있으시오?”

사실상 자신이 남궁진이 맞다고 인정하는 말을 내뱉자, 독고진이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크하핫, 있지. 그러니 멈춰세웠지.”
“… 좋은 용무는 아닌 듯 하오.”
“어… 일단 뭐 하기 전에 한 판 붙자.”


독고진이 바위에서 일어나 참마도를 어깨에 걸쳤다.

자신만만해보이는 그의 태도를 보고 남궁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오만방자하기 그지 없으신 분이구려. 내가 누군지 아시오?”
“검신 아들이라매. 왈가왈부 하는 건  좋아하니깐 검이나 뽑아.”
“… 존함이 어떻게 되오?”
“나? 독고진이다.”
“광마였군…”
“오? 붙을 마음이 생겼나?”

남궁진이 칼을 뽑아들자 독고진이 자세를 낮췄다.

그 모습을 보고 남궁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 기이한 자세군.’

근래 들어 독고진이라는 자가 무림 백대 고수들에게 시비를 걸고다닌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설마 자신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리라고는 상상도  했다.

“… 무림 백대 고수 몇 명을 이기니 자신의 강함을 착각…”
“아, 존나 시끄럽네!!!”

갑자기 독고진이  소리를 치며 달려들었다.


내려치는 그의 일격을 검을 뽑아 막자, 남궁진이 저절로 이를  깨물었다.


‘무… 무겁다!’

발이 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독고진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오? 이걸 막아?”
“크윽…! 무슨 연유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챙!


남궁진이 칼을 휘둘러 독고진을 멀찍이 쫓아내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대충 하지는 않겠소이다.”
“크하핫, 와라!

남궁진과 독고진이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둘의 싸움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얼핏 동수를 이루는 듯 보였다.


검신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고, 어릴 때부터 벌모세수와 영약을 지원 받으며 무림 제일의 환경에서 커 온 남궁진은 독고진의 공격에 금세 익숙해졌다.


하지만 승부가 진행될수록 남궁진은 조금씩 그의 술수에 말려들었다.


“크하핫!  하는구나!”
“이익…!”

독고진은 남궁진이 가지고 있던 모든 상식을 파괴하는 존재였다.

깔끔한 일격? 없었다.

정해진 규칙을 따라 움직이는 검격? 매번 새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고진은 이기기 위해 어떤 짓도 꺼리지 않았다.

“눈에  들어간다!!”


독고진이 발 끝으로 땅의 흙을 퍼올려 눈에 뿌리자 남궁진이 팔을 들어 막아섰다.

“젠장! 비겁한 수를…!”
“이기면 상관없지!”


슈육!


또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강렬한 참격이 다가오자, 남궁진은 막기를 포기하고 옆으로 피하면서 독고진의 허리를 가르려 했다.

그러자 독고진이 오히려 한 발짝 내딛으며 그의 검에 자신의 허리를 갖다댔다.

파삭!

  깊숙히 허리를 가를 수도 있었으나 독고진이 거리를 좁힌 덕에 얕은 상처만 입은 것을 보고 남궁진은 소름이 돋았다.

‘싸움의 귀신이다…’

허리에서 피를 뿜어대면서 독고진이 도를 다시 한  들어올리는 순간.


“한 번 더!”

그가 또 다시 발 끝으로 땅을 파내는 것을 보고, 남궁진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콰직!


“크억!”
“크하핫! 솔직한 새끼구만, 이거!!”


예상했던 흙은 날아오지 않고, 그의 발이 남궁진의 배에 꽂혔다.

배에 느껴지는 고통을 느끼며 남궁진은 이를 악물었다.


‘멍청했다... 적의 말을 믿었단 말인가!’


바닥에 넘어진 남궁진이 다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독고진이 달려들어  다시 위에서 아래로 거격을 내리쳤다.

“일어나면!”

쾅!


“안 되지!”


쾅!

“겨우 붙잡았는데!!”
“크윽…!”

쾅!!

 번.  한 번.

독고진의 참마도가 남궁진을 내려칠 때마다 그의 몸이 바닥으로 박혀들어갔다.

“어쭈, 버텨?”
“으윽…!”


내리치는 독고진의 일격을 막아내는 것으로도 이미 남궁진은 손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를 참아내고 남궁진이 또 다시 검을 들어올리자, 독고진이 씨익 웃었다.

“너는 살려주마!! 기개가 마음에 드는군!!”


다시 한 번 독고진이 도를 들어올려 내리쳤고.


콰직!

“크헉…!”


결국 남궁진의 검이 부러졌다.


내리치던 독고진의 도는 그대로 남궁진의 머리 옆에 꽂히며 승부가 났다.

서로가 가진 바를 모두 끌어내 싸웠지만, 경험의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독고진이 참마도를 들어 어깨에 들춰메고는 웃으며 물었다.

“내가 이겼지?”


무예는 남궁진이  뛰어났을지 몰라도, 혈투에선 독고진이 훨씬 위였다.


남궁진이 패배의 굴욕감에 몸을 떨며 내뱉었다.

“크윽…! 죽이시오.”
“뭔 개소리야? 살려준다니깐?”
“… 내가 무림맹에 가는 것을 막기위해 온 것이 아니었소?”
“시발, 네가 그 똥통에 들어가서 뒹굴겠다는데 내가 그걸 왜… 아.”
“…”
“잠시만.”

독고진이 품을 뒤적거리더니 서책을 꺼내들었다.

한 장씩 넘겨가며 무엇을 찾다가 독고진이 웃었다.

“아, 여깄군.”


독고진이 남궁진의 머리 맡에 쪼그려앉고는 물었다.


“너는 당문세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 예?”
“대답!!!!”
“벼… 별로 좋아하지 않소.”
“왜?”
“… 무인이 독을 쓰는 것은 조금…”
“좋군. 다음은… 무림맹주가 되고 싶냐?”
“… 이런  왜 물으시는 거요?”


독고진이 짜증 가득한 눈으로 남궁진을 쳐다보다 참마도를 들어올렸다.

“그러게. 시발, 그냥 목이나 칠까?”
“되… 되고 싶소! 그리하여 썩어빠진 무림맹을 바꾸고 싶소이다!!”
“흐음… 좋은 대답이군. 그리고 다음은…”

그 후로도 독고진은 몇 가지 질문을  물었고, 그 때마다 남궁진은 성실히 대답했다.


그저 광인의 질문이라며 웃어넘길 수도 있었으나 남궁진은 직감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대답 여하에 따라 자신의 생사가 결정되리란 것을.

마침내 마지막 질문이 끝나자 독고진이 남궁진의 멱살을 붙잡아 그를 흙바닥에서 퍼올려주었다.


“…”
“뭘 꼬라봐? 뒤질래?”
“아… 아니오…”
“콱 씨.”


독고진이 다시 바위에 걸터앉자, 남궁진은 그의 칼을 막느라 얼얼해진 자신의 손목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 그럼 난 이만 가도 되오?”
“어딜 가, 새끼야? 너 그… 그… 아, 시발.”

독고진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갑자기 얼굴이 환해졌다.


“근묵자흑! 이 새끼야.”
“… 예?”
“너도 시발 그 똥 통에서 구르다보면 똥물에 튀겨죽일 새끼가 되겠지?”
“나는  그럴 것이오.”
“아냐아냐. 내가 봐왔는데, 사람은 쉽게 변해.”
“허나…”
“변한다고!!”
“크윽…!”

독고진이 사자후를 내뱉자 나무에 걸린 나뭇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갑작스런 그의 큰 소리에 귀가 얼얼해진 남궁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아… 시발. 야, 남궁진.”
“… 예, 대협.”
“대협이라 부르면 뒤진다. 내가 광증이 있어. 그래서 광마, 이해했나?”
“… 이해했소.”
“나는 되묻는 게 존나 싫어. 내가 말을 두 번 하는 것도 존나 싫고.”
“…”
“대답!!!”
“ㅇ… 예!”

남궁진이 대답하자, 독고진이 참마도를 들고 바위에서 일어났다.

“엎드려.”
“어… 어떻게요?”
“그냥 시발 엎드려!”


독고진이 또 다시 소리치자 남궁진이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그의 옆에 선 독고진이 참마도를 비스듬히 잡아들었다.


“고마워해라. 내가 몇 대 때려줄게.”
“… 예?”
“시발, 사람은 쉽게 변해.  변할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존나 큰 상처가 있어야해. 그러니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않고 상처를 만들어주마.”
“그… 그게 무슨…”
“이렇게!!”


쾅!


독고진이 참마도의 도면으로 남궁진의 볼기짝을 후려쳤다.

“크억!”
“정신이 들어?”
“드… 듭니다! 들고 말고요!”
“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덜 맞았군. 그래선  돼.”
“아… 아니, 좀!”


쾅!

“크어억…!”
“그래도 기골있는 놈이구만. 한 대만 더 때리마.”
“대혀어어어어업!!!! 대협!!!!”
“대협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쾅!

독고진이 마지막  번째 일격을 후려치자, 남궁진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축 늘어졌다.


“… 뭐야, 야. 얌마.”

발 끝으로 남궁진을 툭툭 건드렸음에도 아무 반응을  하자, 독고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시발… 죽었나?”


그래도 죽이지 않고 살리고 싶었는데 뭔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몰라 슬그머니 그의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다행히도 미약한 숨결이 느껴졌다.

“아… 시발.”


독고진이 그냥 목을 내려칠까 고민하다가 결국 남궁진을 들춰멨다.

“… 안휘성에 산다고 했지? 가깝군.”

일단 잘 사는 집의 자식이니 집에 데려다주면 알아서 고쳐주리라 생각하고 독고진은 안휘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남궁세가는 안휘성에서 유명했기에 독고진은 금세 남궁세가를 찾아갈  있었다.


남궁세가의 대문 앞에선 독고진은 정문을 지키는 호위무사들을 무시하고, 그 앞에 멈춰서서 숨을 끌어모았다.

“검신 있소이까!!!!”
“크윽…!”


그의 거대한 외침소리에 호위무사들이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진이 툴툴거렸다.

“뭔 시발 명문세가 정문을 지키는 새끼들이 이리도 허약하냐?”
“누군가?”
“으헉, 시발!”

갑작스레 자신의 귓가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독고진이 기겁하며 돌아봤다.

그 곳엔 그저그렇게 생긴, 하지만 제법 차려입은 노인이 나뭇가지를 들고 독고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 영감님은 누구시오?”
“자네가 들춰메고 있는 아이의 애비일세.”
“… 나이 차가 꽤 나시는구려.”
“클클클, 그렇지. 그보다 내 묻고 싶은 게 있네만.”
“하시오.”
“내 아들을 두들겨 팬 게 그대인가?”
“맞소.”


독고진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남궁원청이 당황했다.

“어… 노부가 누구인지는 아는가?”
“검신 아니오? 강호에서 제일 강한 사람 중 하나.”
“크… 크하핫! 노부가 누구인지 아는데도  아들을 두들겨 팼다고 당당히 시인하는가?”
“팬 건 팬 거니 어쩌겠소. 허나 걱정하지 마시오. 죽지 않게 때렸고, 나도  놈이 마음에 들어서 대충 훈계한 것 뿐이오.”
“훈계?”

남궁원청의 한 쪽 눈썹이 휘익 올라가자, 독고진이 웃으며 말했다.

“무림맹의 쓰레기들과 친해지면  놈 또한 쓰레기가 되지 않겠소? 내가 그렇게 되지 말라고 조금 때렸소이다.”
“오… 그렇구만. 고맙구려.”

남궁원청이 포권하자, 독고진도 마주 포권하며 그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헌데… 자네 이름이 뭔가?”
“독고진이라 하오.”
“아~, 광마였군. 이제야 이해가 가네.”
“무엇이 말이오?”

독고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궁원청의 온 몸에서 기운이 폭사했다.

“노부 앞에서 어찌 그리도 당당할  있음을 말이야.”
“크윽…!”
“노부의 자식을 훈계해줘서 고맙네, 광마.”
“크으윽…!”

남궁원청의 거대한 기운에 독고진의 무릎이 꺾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점점 낮아지기 시작하자, 독고진이 참마도를 뽑아 땅에 꽂고는 지지대로 삼아 몸을 지탱하며 일어섰다.

“과연… 검신…!!”
“내 기운을 받아내면서도 노부에게 이를 드러내는가? 크하핫,  아들 놈보다 낫도다!”

남궁원청이 또 다시 크게 웃더니 자신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를 쳐다보았다.


“음… 좋네. 이것도 인연이겠지.”
“무슨…”
“노부가 가진 재주를 보여줄 터이니 이것으로 서로 셈을 치루도록 하지.”

남궁원청이 나뭇가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나뭇가지를 내리그었다.


“죽으면 자네가 모자란 걸세.”

독고진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나뭇가지의 궤적이 끝에 이르는 순간.

“!!”

독고진은 식겁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허억…! 허억…!”

별 것도 아닌 나뭇가지를 그저 휘두르는 것에 불과하였으나 독고진은 방금 진심으로 자신이 죽을 것이라 여겼다.

온 몸에서 땀이 새어나오며, 그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남궁원청이 웃으며 남궁진을 업어들었다.


“클클클, 그래도 꽤나 하는 친구구만. 다음에 또 보세나, 광마.”
“이… 이게 무슨…”
“심검(心劍)일세. 또 피할 자신이 있으면 찾아오게나. 내가 차를 대접해주지.”

멍하니 바닥에 엎드려 남궁세가의 대문이 닫히는 것을  뒤, 독고진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한참을 그 곳에서 머무르다 해가 지고난 뒤에 독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면서 그는 다짐했다.


‘괴물 영감탱이군… 안휘성엔 다시는 얼씬도  한다.’


그게 살면서 유일하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고진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두려워하게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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