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9 장. 음란검(淫亂劍) - (3)
다시 마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좀 흐른 후.
결국 참다못한 위일청이 입을 열었다.
“저… 독고 소저.”
“뭐.”
“… 계속 그렇게 가실 셈입니까?”
“그럼?”
“그… 그치만…”
위일청이 곤란한 표정으로 노극명을 쳐다보았다.
“사람을 발 받침대로 쓰는 것은 조금…”
노극명은 마차의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독고령은 그 위에 발을 올려둔 채 가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거북한 광경이라 위일청이 말을 꺼낸 것이였으나 오히려 그게 노극명에겐 독이 되었다.
독고령이 발을 들어올렸다가 노극명의 등을 내려찍었다.
“커헉!”
“야, 노극명.”
“…”
“새꺄, 말해도 손톱 안 뽑을테니깐 대답해.”
“ㅇ… 예, 소저!”
“불편하냐?”
“전혀 아닙니다! 매우 편합니다!”
“어쭈? 편해?”
“아… 그… 그 뜻이 아니라! 제가 신의께 저지른 죄에 의한 마음의 빚보다 이렇게 벌을 받는 것이 훨씬 편하단 뜻이었습니다! 전혀 안 편하죠!”
노극명이 재빨리 변명을 쏟아내자, 독고령이 위일청에게 턱을 치켜들었다.
“들었지?”
“… 그런 상황에서 말하면 누구나 저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한 번 더 물어봐?”
“… 죄송합니다. 그만 말하지요.”
“콱 씨. 노극명, 너는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운영만 없었어도 그냥…”
“시… 신의 어르신, 감사합니다!!”
“…”
운영이 멋쩍게 고개를 숙여 그의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 때, 마차가 멈춰서며 마부석의 창문이 열렸다.
“저… 저기요오. 앞에 가로막는 놈들이 있는데요?”
“엥? 누가?”
“… 노극명을 찾는데요오…”
“응?”
그 말을 듣고 노극명이 고개를 들어올리려 하자 독고령의 발이 다시 움직였다.
“새끼야, 설명해.”
“그… 저와 함께 온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있습니다.”
“… 혼자 온 게 아니라?”
“그래도 신의를 모시러 온 건데… 컥!”
독고령이 그의 옆구리를 후려찼다.
“요즘엔 모시러 올 때 잠행복을 입고 칼을 들이대나?”
“허… 허언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콱 씨. 말 똑바로 해, 뒤지기 싫으면.”
“ㅇ… 예, 소저!”
“저 새끼들 다 돌려보내. 안 그러면 죄다 팔다리가 따로 놀게끔 만들테니깐.”
“예… 예!”
독고령이 다리를 치워주자, 노극명이 일어나 마차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운영이 입을 열었다.
“… 이보게, 광마.”
“의 여식.”
“… 의 여식.”
“말해.”
“아무리 그래도 좀…”
“야이씨, 넌 네 목에 칼을 들이댄 새끼도 용서하냐?”
“용서가 아니죠. 그만큼 급했으니 칼이라도 뽑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아… 답답해 뒤지겠네, 진짜.”
독고령이 운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너 그렇게 살다가 단명한다고.”
“그거야 그 때 가서 생각할 일이죠.”
“… 야. 너 모용벽이 어떤 새끼인지는 알아?”
“잘 모릅니다. 그냥 광마의 원수인 줄만 알죠.”
“그 개새끼는 자기보다 아랫 것이라 생각하는 자는 벌레만도 못 하게 생각해.”
“그렇습니까?”
“그래서 벌레 죽이듯이 가볍게 사람을 죽이는 개새끼가 모용벽이야.”
“그렇군요.”
“그런 개새끼라면 그냥 죽도록 놔두는 게 낫지 않을까? 오히려 네가 그 돌봐주면 치료해야할 환자가 늘어날 걸?”
“…”
하지만 독고령의 설득에도 운영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사람이라도 교화의 여지는 있을 거라고요.”
“하… 시발. 교화될거면 진즉에 했다니깐?”
“아직 저를 못 만나보지 않았습니까.”
“아 이 새끼야, 좀! 너 시발 남은 눈 하나도 파여야 정신차릴래?!”
답답함에 독고령이 들고 일어섰다.
“좀 새끼야… 제발! 너 그러다 진짜 어느날 뒤져! 그러면 네 딸은?”
“… 아직 안 죽었잖습니까.”
“시발 진짜…”
“모용벽이 정말 천하의 죽일 놈이라 저를 죽인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이렇게 살아온 덕분에 제가 죽으면 원수를 갚아줄 벗도 생겼고요.”
“…”
운영의 말을 들은 독고령은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시발 새끼…”
“으하핫, 매번 할 말이 없으면 욕으로 끝내십니다 그려.”
“몰라, 개새끼야. 뒤지든가 말든가 시발…”
독고령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노극명이 들어왔다.
“저… 소저.”
“뭐, 새끼야.”
“다른 놈들은 다 돌려보냈습니다. 헌데 그… 저희 애들이 실수를 저지른 듯 합니다.”
“또 뭐?”
“… 근처의 녹림도들과 손을 잡았다는데요?”
“풉.”
독고령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 했다.
“녹~림~도~? 도는 무슨 새끼야. 산적 새끼들이 무슨…”
“… 죄송합니다. 혹시나 놈들이 찾아오면 제가 잘 알아서 타이르겠습니다…”
“오냐. 빨리 타, 새끼야. 너 하나 때문에 마차가 멈춰야겠냐?”
“ㅇ… 예!”
노극명이 잽싸게 마차에 올라탔다.
“… 앉아?”
“아… 죄송합니다.”
잠시 의자에 앉았던 노극명이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자연스레 그 위로 다리를 올린 독고령이 마부석을 두드렸다.
“어이, 하오문! 출발!”
“네에.”
“…”
그 광경을 보고 다른 일행들은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저 성격 더러운 독고령이 또 얼마나 날뛸지 잘 알고 있었기에.
*
‘아, 시발. 계속 아프네…’
꾸준히 느껴지는 하복부의 통증은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가끔씩 짜증날 정도로 아플 때는 간간히 노극명을 걷어차며 화를 삭혔지만, 그럼에도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 운영.”
“예.”
“… 그… 약 있냐?”
“아, 달거리 약이요?”
“새끼야, 말 좀 가려서 해.”
“당장은 없고… 음… 침이라도 좀 놔드릴까요?”
“으… 그건 싫은데…”
“애도 아니고 침을 무서워하고 그러십니까?”
“너 존나 큰 것만 쓰잖아.”
“예. 그래야 무서워서라도 다음에 또 안 다쳐서 오지 않겠습니까?”
“쓰레기 새끼.”
“한 발 놔드려요?”
“… 꺼져. 시발, 곧 나아지겠지…”
“으하핫, 그 독고…령이 고통을 못 견디네요.”
“뒤진다, 진짜.”
“… 다물겠습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던 와중, 마차가 또 다시 멈춰섰다.
은관영이 마부석의 창문을 열고는 뒤를 돌아봤다.
“저… 저기요오…”
“또 왜?”
“… 산적들이 찾아왔는데요?”
“…”
독고령이 노극명의 옆구리를 툭툭 걷어찼다.
“해결하고 와.”
“예, 소저!”
노극명이 방금처럼 마차에서 내렸다.
“… 령 매, 저렇게 부려먹어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시발 지가 꼬우면 어쩔건데?”
“…”
백리소현은 차마 독고령을 설득시킬 말을 찾지 못 했다.
“… 독고 소저. 그래도 귀한 집 자식인데…”
“그 귀한 부모는 남의 집 자식을 막 대했고.”
“…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그럼 좀 가만히 있어, 짜증나니깐.”
“… 예.”
위일청이 입을 다물고 백리소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 오늘 따라 독고 소저의 기분이 많이 나빠보입니다?]
[달거리 중이잖아. 위 오라버니가 조금 감내해.]
[그걸 감안해도 평소보다 좀 더 지랄 맞으신…]
그 때, 밖에서 천둥이 치는듯한 거대한 외침이 들렸다.
“독고진의 자식은 어디있나!!!!”
그 소리를 들은 일행은 자연스레 독고령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도… 독고 소저. 저희 그냥 조용히…”
“령 매, 절대 날뛰지 마고…”
“광마! 제발 적당히…”
하지만 모두의 애원과 다르게 독고령은 마차의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섰다.
“어떤 개새끼가 나를 찾아 짖어!!”
“… 위 오라버니, 도와줘.”
“… 노력해보겠습니다.”
위일청이 독고령을 따라 마차에서 내리자, 그 곳엔 바닥에 엎어져있는 노극명과 거대한 도끼를 든 산적 대장, 그리고 녹림도들이 보였다.
산적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왔다.
“네 년이 독고진의 자식이냐?”
“그래. 너는 시발 뭐하는 새끼길래 남의 이름을 찍찍 쳐불러?”
“혈부귀를 아느냐?”
“혈부귀?”
어딘가 익숙한 별호에 독고령이 머리를 갸웃거리자, 뒤에서 위일청이 말했다.
“혹시 그 자 아닙니까? 전에 소저를 납치했던 녹림도요.”
“아…, 그 존나 작은 양물을 가진…”
“소저. 말을 좀 가려서 하시지요.”
“뭐, 시발. 사실이잖아.”
독고령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녀의 앞에서 그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산적 대장의 얼굴은 터질듯이 붉게 달아올랐다.
온 몸의 핏줄이 징그럽게 솟아오르며 그가 외쳤다.
“네 년이 녹림십걸 중 하나… 그것도 내 동생을 죽였느냐?”
“… 엥? 그 새끼가 진짜 녹림십걸이라고?”
“그래!! 네 년이 죽인 게 맞냔 말이다!!!”
“그래, 내가 죽였다. 새끼야, 어쩔래?”
도끼를 든 사내가 달려들며 외쳤다.
“혈채를 갚겠다!! 으아아아!!”
묵중한 무게의 도끼가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내려오는 것을 보며 독고령이 허리춤에 매달린 유성도를 뽑아들었다.
‘무기를 시험해보기 딱 좋군.’
내려치는 도끼의 궤적을 피하며, 내공을 끌어올리고는, 도를 휘둘렀다.
챙!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짧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한 번 손을 섞은 이후, 둘의 반응은 명백히 갈렸다.
“이… 이럴 수가…”
“명검이긴 하네.”
독고령의 도가 깔끔하게 그의 도끼를 베어버렸다.
산적 대장이 얼이 빠져 멍하니 자신의 도끼를 쳐다 보고 있자, 독고령이 말했다.
“새끼야, 너 그 … 그 새끼 이름 뭐였지, 색마?”
“조창일 겁니다.”
“그래, 조창. 넌 시발 그 새끼랑 무슨 관계냐? 가족 관계면 내가 봐주고, 그냥 의형제 정도면 목을 따주마.”
산적은 빠르게 현실을 깨닫고 흙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가… 가족입니다!”
“너 시발, 이름이 뭔데?”
“조… 조강입니다!”
“너도 녹림십걸이냐?”
“ㅇ… 예.”
“녹림도 시발 다 죽었다. 이런 새끼가 녹림에서 제일 강한 열 명 중 한 새끼라고?”
“… 독고 소저, 원래 녹림은 녹림왕 빼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수준이 떨어지잖아. 뭔 일 합도 못 버티고 말이야.”
독고령이 조강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툭툭치며 말했다.
“내가 봤을 때 너는 산적질하긴 글러먹었다. 그치?”
“ㅇ… 예, 맞습니다!”
“가서 착하게 살어 새꺄. 화전민이라도 하든가. 덩치 보니깐 체력은 좋겠네.”
“사… 살려만 주시면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래, 살려는 주지. 살려는…”
독고령의 발이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줄게!!”
“커헉!”
“새끼야, 사람을 빡치게 만들어놓고 대가리 한 번 숙이면 다야?!”
“소… 소저!”
위일청이 급하게 독고령을 뒤에서 붙잡았다.
“아, 시발! 좀 놔 봐! 저 새끼가 감히 누구 이름을 멋대로 쳐불러?!!”
“소… 소저! 조금만 진정하시지요!”
“시발, 그냥 콱! 놔! 어차피 시발, 운영도 저기 있으니깐 딱 죽기 직전까지만 팰게! 응?!”
“소저… 제발…!”
독고령이 마침내 위일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즈음.
“캬아아악! 오늘 여기서 걸어서 나갈 새끼는 한 놈도…!”
“소… 소저!”
위일청이 실수로 뒤에서 독고령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흐엑?!”
“소… 소저, 조금만 진정하시고…”
“미… 미미미… 미친 놈아! 어딜 만져!”
독고령이 거세게 팔을 휘두르며 위일청을 떼어냈다.
“소… 소저. 고의는 아니였습니다!”
“아아…. 아니! 야, 이 새끼야!”
“…”
독고령의 시선은 순식간에 녹림도가 아닌 위일청에게로 쏠렸다.
방금까지의 거센 기운은 금세 사라지고, 부끄러움에 발악하는 독고령만 남아있었다.
“그… 소저가 너무 거칠게 날뛰셔서 그랬습니다. 다른 의도는…”
“으… 음탕한 새끼! 색마 녀석아!!”
“…”
독고령이 얼굴을 붉히고, 분홍빛 머리를 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그 모습에 살기는 없었다.
그제서야 위일청은 깨달음을 얻었다.
어떻게 해야 독고령을 멈춰 세울 수 있을지.
“독고 소저.”
“ㅁ… 뭐?!”
“앞으로 소저가 날뛸 때마다 이런 식으로 말릴 겁니다.”
“흐엑?!”
“다음엔 엉덩이를 움켜쥐겠습니다.”
“미… 미미미…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소저가 난동을 부릴 때마다, 사실은 제 손길을 원한거라 생각하겠습니다.”
“저…저저저…!”
“그러니 더 이상 날뛰지 마시죠.”
“정신 나간 새끼야악!!”
독고령이 기겁하며 발을 휘둘렀지만, 위일청이 그녀의 발을 피하며 또 다시 뒤를 점했다.
그리고는….
“흐아앙!”
독고령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 그만 만져, 미친 놈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또 날뛰신다면…”
“아… 알았어! 그만해, 이 색마 새끼야악!!”
독고령이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연분홍으로 바뀐 머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 더는 안 날뛰실 겁니까?”
“…”
“그럼 얌전히 마차로 돌아가시지요.”
“시발…”
얼굴을 잔뜩 붉힌 채, 혹시나 또 다시 위일청이 만질까 싶어 엉덩이를 손으로 가리고는 독고령이 마차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방금 독고령의 엉덩이를 움켜쥔 손을 내려보며 위일청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독고 소저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군요.’
그의 오랜 고민거리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