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9 장. 음란검(淫亂劍) - (2)
노순평에게 불려간 노극명은 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제가 신의를 모셔오라고요?”
“그래. 지금 가문에 네 놈 외에는 움직일 병력이 없다.”
“허… 허나 3년간 하인으로 살라고 하셨…”
“상황이 바뀌었다. 하나라도 손이 더 필요한 상황이니 운이 좋았음을 기억하거라.”
“가… 감사합니다!”
“가라! 이번에도 실패하면 하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 아버지!”
“장로님!”
“ㅇ… 예, 장로님!”
노극명은 신이 나서 밖으로 나왔다.
호위무사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 그는 몇 명의 무사들과 함께 강소성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주님의 명령이다! 지금부터 쉼없이 말을 갈아타며 강소성으로 향한다!”
“존명!”
그렇게 며칠을 쉼없이 내달려 강소성의 의녀문에 도착한 노극명은 예상 외의 답변을 들었다.
“어… 어쩌죠? 아버님은 지금 산동으로 가셨는데요?”
“사… 산동이요?”
“네. 어제 급한 환자가 생기셨다고… 하오문주께서 모셔갔는데요?”
“… 알았습니다.”
노극명은 허탈감에 빠졌다.
“조장, 마차는 어떻게 합니까?”
“… 가서 다른 걸로 조달해야지. 지금부터 쉼없이 말을 갈아타며 산동으로 향한다!”
“엇갈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것도 그렇군.”
“어차피 오는 길은 한정되어 있으니 차라리 길목에서 기다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게 낫겠군.”
결국 노극명과 함께 온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산동에서 강소로 이어지는 길목에 흩어져서 신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장, 신의를 모시는 마차를 발견했습니다!”
“어디냐?!”
“그… 그것이 말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 색마 위일청이 마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뭐?!”
여기서 갑자기 위일청이 튀어나왔다.
“저… 저희들만으로는 힘들 거 같은데 어떻게 하죠? 본가에 충원을 요청합니까?”
“…”
노극명은 고민했다.
그냥 가서 넙죽 절을 하고 신의를 모셔가면 안 되겠냐고 빌어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금세 그 포악한 악마의 딸에게 얻어맞은 허리가 욱씬거렸다.
“… 말이 통하는 놈들이 아니다.”
“그… 그렇게 위험한 놈들입니까?!”
“그래. 게다가 무공마저 뛰어난 놈들이지… 쉽사리 신의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흐음…”
노극명은 이번에도 실패하면 아무리 자신이 장로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놔두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어떻게든 성공시켜야한다…’
결국 노극명이 선택한 것은 납치였다.
“… 가서 잠행복을 하나 얻어오거라. 신의를 납치해야겠다.”
“될까요?”
“신의는 무공을 익히지 못한 자다. 놈들은 분명 도중에 말이 쉬게끔 마차를 세울 터이니 그 틈을 노려 재빨리 납치하고 전력으로 도망치면 괜찮을 것이다.”
“여… 역시 조장님이십니다. 조장님의 혜안에 감탄했습니다!”
“크큭, 이 정도는 모용세가의 무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하책에 가깝지.”
“바로 잠행복을 구해오겠습니다!”
“그래.”
수하가 가져온 잠행복으로 갈아입은 뒤, 노극명은 신의를 납치할 기회만을 노렸다.
그리고 그 시기는 금세 찾아왔다.
‘위일청과 여인들은 내렸군… 그 포악한 계집은… 마차 안에 남아있는건가?’
혹시나 신의와 같이 내릴까 싶어서 걱정됐지만, 다행히도 신의가 혼자 내리자 노극명이 뛰쳐나와 운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신의, 조용히 우리를 따라가면 나쁜 짓은 하지 않겠소. 오히려 호화로운 대접을 해드리라 약조하지.”
“읍! 읍읍!”
“부디 저항하지 마시오. 그럼…”
덜컥.
그 때, 마차 문이 열리며 독고령이 튀어나왔다.
당황한 노극명은 본능적으로 칼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금세 자신이 독고령과 싸워서 이길 수 없음이 떠올랐다.
‘그 때의 일격은… 나보다 몇 수 위였다.’
노극명이 어쩔 수 없이 운영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협박했다.
“얌전히 있지 않는다면 이 자의 목숨은…”
“너, 시발. 노극명이지?”
“…”
노극명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알았지?! 다른 정보원이 있었나?!’
허나 그의 생각과 달리 독고령은 간단한 대답을 내놓았다.
“병신아. 잠행복을 입을 거면 목소리라도 바꾸든가.”
“…”
노극명이 입을 꾹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독고령이 저번보다 훨씬 강대해진, 흉포한 기세를 내뿜으며 말했다.
“칼 내려. 콱 씨... 뒤질라고.”
”... 예.”
챙그랑.
노극명이 순순히 칼을 내려놓자, 독고령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저… 소저. 제가 진짜 신의에게 해를 입히려던 건 아니고…”
“입 닫아, 뒤진다?”
“… 예.”
“운영. 이리 와.”
“으하핫, 깜짝 놀랐습니다. 저 같이 나이 먹은 아저씨도 납치하려는 이가 다 있군요!”
“하아…”
운영이 실실거리며 독고령의 뒤로 숨자, 노극명이 무릎을 꿇었다.
“신의 어르신! 제발 저와 함께 가주십쇼!”
“이 새끼가 어디서 수작질을…”
“저희 가주께서 위독하십니다!”
“응? 저 자가 누구요, 독고… 소저.”
운영의 질문을 들은 독고령이 더 험학한 인상을 지으며 노극명에게 전음을 보냈다.
[입 닥치라고 했지?]
[허… 허나…!]
[혀부터 잘라줘?]
[죄송합니다.]
[콱 씨, 뒤질라고 진짜. 지금부터 입 열 때마다 손톱 하나야. 기억해.]
[… 명심하겠습니다.]
독고령의 협박을 들은 노극명이 벌벌 떨며 대가리를 박고 있자 운영이 재촉했다.
“그래서 저 자가 누구요? 환자가 있는 거 같은데…”
“아무 것도 아니야. 저 새끼는 그저… 음… 알지?”
“싸웠던 사람 중 하나입니까?”
“… 어.”
“그럼 치료해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아, 좀! 새끼야, 환자 좀 가려 받아!”
“가려 받았으면 독고 소저는 예전에 죽었겠군요.”
“… 시발.”
독고령은 후회했다.
‘아, 시발. 노극명 저 새끼를 죽여놨어야 하는데…’
운영은 환자를 가려받지 않는다.
환자가 누구든 간에 아프면 무조건 치료해준다.
아마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더라도 치료해 줄 미친 놈이 운영이었다.
그러니 마교주도 치료해주고, 마교주와 싸웠던 검신도 치료해줬겠지.
그리고 그런 운영의 성격을 잘 아는 독고령이었기에 더더욱 짜증이 샘솟았다.
막을 방법이 없을 줄 알고 있었기에.
‘아, 시발. 모용벽 그 개새끼가 아프면 그냥 골병 썩으라고 놔두고 싶은데…’
독고령이 어떻게 운영을 뜯어말릴까 고민하던 와중, 다른 일행들이 돌아왔다.
“독고 소저… 저 자는 누구입니까?”
“시발, 내가 무슨 사고라도 쳤다는듯이 얘기한다?”
“… 물 마시고 돌아왔더니 누군가 독고 소저에게 머리를 쳐박고 엎드려 있다면 대부분 소저가 문제라 의심하지 않을까요?”
“시발 새끼…. 이 새끼, 노극명이야.”
“예? 그 자가 어찌 여기에…”
“직접 보던가.”
독고령이 노극명을 걷어차 위일청에게 날려보냈다.
“커헉!”
“… 진짜 노극명이군요. 여기까진 왜 왔답니까?”
“운영 데리러 왔단다. 그러니깐 내가 시발 전에 죽이자고 했지?”
“독고 소저. 제발 의원 앞에서 남을 죽이겠다 같은 소리는 하지 마시죠.”
“시발…”
독고령은 온통 머릿속이 짜증에 가득 찼다.
‘시발… 아랫배는 아프고, 운영은 말을 안 듣고, 안 죽여서 후환을 남긴 새끼가 지금 돌아오고… 진짜, 시발’
독고령이 그냥 눈 딱 감고 노극명의 목을 칠까 고민하던 와중, 은관영이 소리를 질렀다.
“도… 독고 소저! 빨리 이리 와요!”
“… 왜?”
“빠… 빨리요!”
“응?”
은관영의 표정이 워낙 다급해보여 독고령이 다가가자, 그녀가 전음을 보냈다.
[피! 다리에 피가 새요!]
[으엑.]
독고령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아래를 쳐다보자, 은관영의 말대로 바지에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가… 강가로 가시죠. 갈아입을 옷도 챙겨서요.]
[시발, 알았다.]
독고령이 잔뜩 짜증 섞인 얼굴로 엉거주춤 움직였다.
‘아, 시발. 피 더럽게 많이 고였네.’
찝찝함 때문에 더더욱 짜증이 늘어났다.
“하아…, 시발. 나 강가에 좀 다녀올테니깐 일단 노극명 저 새끼는 포박해두든가 하고, 운영.”
“예, 독고 소저.”
“넌 시발 절대 저 새끼 말 듣지 말고 나 기다려라. 알았지?”
“글쎄요, 으하핫. 제 성격 알면서 그러십니다.”
“하아 시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자입니까?”
“… 저 새끼 가주가 모용벽이야.”
“아하…, 확실히 독고 소저가 싫어할만 하네요.”
“근데 넌 치료하러 갈 거지?”
“물론이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운영을 보고 독고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에라이, 시발.”
“여튼 다녀오십쇼. 하혈하시는 걸 보니 달거리 중이신듯 한데 잘 보중하시고요. 혹시 아프시면 약이라도…”
“좀 닥쳐, 새끼야!”
“… 예.”
“신의께서는 배려가 부족하시네요오…”
“으하핫, 딸만 둘이라 그런지 배려가 부족했군요.”
“근처에 있는 새끼들이 하나 같이 제정신이 아니네, 시발.”
“그 중 제일 미친 게 독고 소저 아닙니까, 으하핫!!”
“…”
명치 한 대만 존나 세게 때릴까 살짝 고민하다 은관영의 손짓을 보고 독고령이 참았다.
‘시발…’
이 몸은 참 불편하다 투덜거리며 독고령이 강가로 향했다.
“아니, 시발. 이렇게 피가 많이 나온다고?”
“… 원래 좀 많이 나오는 날이 있어요오. 그 뒤로는 그래도 양이 점차 줄어 들고요.”
“배도 아픈데 항상 이러냐?”
“가끔씩 좀 덜 아플 때도 있고요오.”
“시발…”
독고령이 몇 번이고 다리 사이를 씻어내고는 은관영에게 옷가지를 건네받았다.
“… 고맙다.”
“사매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죠!”
“지랄났다, 시발. 같은 내공 배웠다고 사매면 나는 염라도객 제자냐?”
“히이잉… 말만 좀 예쁘게 하면 참 귀여우실텐데요, 독고 소저.”
“그런 거 관심없다.”
독고령이 다시 속곳을 걸쳐 입고 강 밖으로 나왔다.
독고령이 달거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단 얘기를 듣고 은관영은 열심히 그녀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수해주었다.
“아마 오늘 내일이나 내일 모레까지는 하혈이 있을 거예요. 그 후에는 괜찮을 테니깐 속곳 밑에 덧댄 천은 자주 갈아주시고요오. 잘 때는 뒤척거려서 새어나올 경우도 있으니깐 밑에 천을 덧 대시거나 이부자리에 깔아두셔요.”
“… 어.”
“한 번 썼던 천은 물로 헹군 뒤에 나중에 삶기 전까지는 쓰지 마세요오. 몸에 안 좋아요.”
“… 오냐.”
독고령은 그저 얌전히 은관영의 말을 들었다.
다시 남자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익숙해져야할 일이라며 스스로 되뇌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와중, 갑자기 은관영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광마 어르신의 죄가 참 깊네요!”
“갑자기 왜?”
“근처에 여인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건 가르쳐줬을 텐데요오…”
“…”
독고령이 할 말이 없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자, 은관영이 그녀를 다독거렸다.
“너무 낙심은 하지 마시고요. 다들 겪는 일이니깐요오. 이럴 때 같은 여자로서 도와야죠!”
“… 오냐.”
“아, 그리고 달거리 중에는 월영신공을 운공할 때 조심하셔야해요!”
“왜?”
“달거리 전후로 성욕이 왕성해지거든요! 음기가 쉽게 끓어올라서 금세 부작용이 일어나요오.”
“아니, 시발. 이름은 신공인데 뭐 이렇게 하자가 많냐?”
“하자라니요! 오히려 그걸 핑계로 위 오빠한테 또 한 번…”
“캬아아악!!”
독고령이 짜증을 내자 은관영이 입을 다물었다.
“… 다 씻으셨으면 돌아가시죠오.”
“그래…”
“이따 주무실 때 자리 비워드릴까요?”
“응? 굳이?”
“수음이라도 조금…”
“뒤져억!!”
“꺄아악!!”
독고령이 진심으로 달려들자 은관영이 잽싸게 도망쳤다.
“캬아아악!!”
“히에에엑!!”
마차까지 금세 돌아온 은관영은 잽싸게 백리소현의 등 뒤로 숨었다.
“소현 언니이!”
“… 령 매, 또 관영이랑 싸웠어?”
“저… 저 음탕한 년이…!”
“응? 관영이가 또 뭐라 했어?”
“아… 아니이… 그…!”
“소현 언니! 오늘이나 내일 중에 독고 사매한테 위 오빠를 양보해드려야 할 거 같아요.”
“누가 네 사매야, 미친 년아!!”
“맞잖아아요오!”
은관영과 독고령이 백리소현을 사이에 두고 으르렁거렸다.
“어머, 령 매. 아직까지 같이하는 건 부끄러운가?”
“… 더 말하면 가만히 안 놔둬, 둔치…”
“알았어. 령 매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둘이서 하게끔 배려해줄게.”
“캬아아악! 아… 아니라고! 안 한다고!”
“뭘 말입니까, 독고 소저?”
“히이익!!”
밖의 소란을 듣고 마차 안에서 위일청이 튀어나오자 독고령의 머리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바뀐 머리색을 보고 위일청이 웃었다.
“아, 또 부작용이 일었습니까? 아까 한적한 곳을 봐뒀는데 지금이라도 가실까요?”
“미…, 미친 놈아! 그런 곳을 왜 알아놨어?!!”
“밖에서 하는 것도 또 색다른 쾌감이 있답니다. 아직 독고 소저에겐 이른듯 하지만 재능이 워낙 뛰어나시니…”
“캬아아악!!”
“생각해보니 처음도 밖에서 하지 않았…”
“뒤져라아아악!!!”
독고령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결국 소란이 진정되기 전까지 마차는 멈춰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