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8 장. 그냥 한 번 벌리시지요? - (3)
“광마”
“왜?”
“그냥 한 번 벌리시지요?”
“뭘?”
“다리 말입니다.”
“…”
독고령이 잠시 자신이 뭔가 잘못들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다리를? 무슨 뜻이지?”
“그거 있잖습니까, 그거.”
운영이 손가락의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아 그 구멍 사이로 반대쪽 검지를 집어넣었다.
“음양교합이요.”
“…”
독고령이 일어남과 동시에 그의 턱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뒤져엇!!”
“크억…”
“소… 손님!”
“이 미친… 야! 오늘 시발, 검신이고 나발이고 내가 너를 회뜨고야 만다! 이리 와, 이 새끼야!!”
“하… 하오문주! 나 좀 도와주시오!”
“캬아아악!!”
독고령이 연검을 뽑아들어 휘두르자, 은약벽이 그녀를 제압했다.
“손님, 제발! 얌전히 좀 있어봐욧!”
“크르르르…”
“… 어째 짐승에 가까워졌군요, 광마. 옛날에도 짐승 같더라니 이젠…”
은약벽이 운영의 입을 찰싹이며 때렸다.
“입! 좀! 다물어욧!”
“… 죄송합니다.”
“손님도 좀 진정하시고요!”
“후욱… 후욱…”
잠시동안 일어난 독고령의 난동을 간신히 제압한 은약벽이 말했다.
“독고 소저. 운영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예요.”
“그럼 더더욱 저 새끼를 죽이고 싶은데?”
“아 좀! 얌전히 들어봐욧!”
“…”
은약벽이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독고령이 움츠러들었다.
“이번에 손님이 쓰러진 거 기억나요?”
“기억이 어떻게 나냐, 쓰러졌는데.”
“맞을래요?”
“… 계속 해 봐.”
“여튼. 제가 손님의 하단전에 자리잡은 음기를 너무 우습게 봤어요. 손님도 아시겠지만, 심법의 성취에 따라 다룰 수 있는 내공이 더 많아지는 건 아시죠?”
“알지.”
“그리고 지금 손님의 월영신공은 아직 1성. 하지만 음기가 너무 사나워요. 자기 멋대로 날뛰기도 하고, 통제도 안 되다보니깐 부작용이 금세 나타나고, 더 심하게 나타난 결과가 어제의 혼절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나도 동의합니다, 광마.”
“… 그래서?”
은약벽이 조금 머뭇거리며 독고령의 눈치를 봤다.
“화 안 낼꺼죠?”
“… 말해 봐.”
“진짜 날뛰면 안 되요?”
“아이 씨, 답답하게. 말해 봐.”
“… 월영신공의 성취를 빠르게 올릴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음기를 다룬다?”
“그것도 있고, 손님의 목숨을 위해서도요. 어제 손님은 모르셨겠지만, 온 몸의 세맥이 얼어붙어가며 난리였답니다?”
“…”
온 몸의 세맥이 얼어붙는다는 얘기를 듣자, 독고령은 자신이 환골탈태를 하던 때를 떠올렸다.
“… 그러고보니 내가 환골탈태 할 때도 음기가 날뛰어서 세맥들을 얼리려 들었지.”
“그걸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극양지기로 막은 거고요?”
“그래. 이젠 거의 안 남아서 천회혈에 한 줌 보존한 게 다고.”
“흐음…”
“그래서 신의가 한 말이 나온 겁니다.”
“… 다리 벌리라고?”
운영이 말했다.
“듣자하니 양기만 주입 받으면 된다고 하고 몸 구석구석 탁기로 막힌 곳이 많은데 위 공자가 그걸 뚫을 수 있다더군요. 일석이조 아닙니까, 광마? 목숨도 구하고, 힘도 되찾고.”
“그렇긴 한데…”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음양교합 한 번 하면! 으잉?! 다 해결되잖아요. 뭘 그리 고민… 컥!”
은약벽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배려가 없네요, 신의. 여인에게 초야는 중요한 문제임을 모르시나요?”
“… 제가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아니, 그래도 속은 그 독고진이잖아요. 그냥 강해지기 위해서 언제든지 처녀 정도야… 컥!”
이번엔 은약벽이 그의 목젖을 후려쳐 말을 끊었다.
“이런 이가 딸만 둘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손님을 신의의 딸이라고 생각해봐요. 그딴 말이 나오나요?”
“… 평생 내 옆에만 데리고 살겠지요. 어디 남정네 놈이…!”
“…”
버럭 화를 내는 운영을 보며 독고령이 한탄했다.
“야… 너 진짜 개새끼다.”
“시끄러워요, 광마. 지는 혼인도 못 했으면서.”
“콱 씨!”
“아무튼!”
은약벽이 둘을 말려세우며 하던 말을 마저했다.
“손님은 월영신공의 성취를 빨리 올려야해요! 음기도 충분하고, 깨달음도 있으니깐 금방금방 성취가 오르겠지만… 부작용이 문제예요.”
“진짜 개 같은 심법 가르쳐줬네. 지금이라도 갈아타면 안 되냐? 어차피 1성인데?”
“이미 손님의 내공은 그 길을 기억했는데 오히려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겠죠.”
“아, 시발.”
“어떻게 밖에서 얻어 온 내공도 그렇게 손님과 닮았나요? 야생마처럼 마구 날뛰는 것이 손님이랑 다를 바가 없네요.”
“으하핫, 어릴 때 헤어진 가족 아닙니까?”
“입! 좀!”
“죄송합니다…”
은약벽이 서책을 이용해 운영의 이름을 찰싹찰싹 때리며 그의 말을 틀어막았다.
“아무튼… 신의는 잠깐 나가봐요. 여기까지 와주셨으니깐 여독도 좀 푸시고요.”
“두 분이서 나눌 얘기가 있나보군요. 그럼 저는 좀 자겠습니다. 밤새 잠을 못 자서 피곤하군요.”
“밖에 나가 관영이란 아이를 찾으시지요. 그 아이가 방을 내드릴 겁니다.”
“예. 여튼 광마. 오랜만에 만나 즐거웠습니다, 으하핫. 비밀은 함구하겠습니다만 아내한테는 슬쩍 말할지도 모릅니다?”
“오냐. 와줘서 고맙다.”
“별 말씀을요.”
운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독고령이 그를 멈춰세웠다.
“그… 딸은 잘 있고?”
“요즘 저 대신 의원을 이끄느라 죽으려고 합니다, 으하핫. 빨리 시집이라도 보내야하는데 말이죠.”
“… 그렇군. 그건 나중에 얘기하지. 피곤할텐데 말이야.”
“으하핫, 광마. 확실히 변했군요.”
“… 내가?”
“예. 매번 가족 얘기는 제가 먼저 꺼냈던 거 같은데 이번엔 먼저 물어보시네요?”
“새끼야, 어차피 귀에 피가 날 때까지 얘기할 거잖아.”
“그렇지요, 크큭. 이따 시간 좀 넉넉하게 잡아두십쇼.”
“… 시발.”
운영이 보는 사람마저 기분좋게 만드는 웃음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특실 안에 은약벽과 독고령, 단 둘만 남게되자 독고령이 먼저 물었다.
“뭔 얘기하려고?”
“손님.”
“어.”
“… 그냥 한 번 벌리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니, 시발…”
“진심이랍니다.”
독고령은 발작이라도 하며 따져들고 싶었지만, 은약벽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꾹 참았다.
“… 시발, 말해 봐.”
“이럴 땐 손님의 광증이 사라진 게 참 다행이군요. 차분한 얘기도 나눌 수 있고요.”
“잡소리 빼고.”
“… 저는 지금 상황이 예측이 안 되서 더 두렵답니다.”
“인생이 시발 어디 자기 뜻대로 되냐? 나도 시발 내가 여자가 될 줄 몰랐는데.”
“하지만 내공은 다르지요? 같은 심법을 배운 이는 다 비슷하답니다. 하지만 손님만 다르군요.”
은약벽이 천천히 독고령을 설득했다.
“제가 처음 손님에게 월영신공을 가르쳐드린 이유는 어디까지나 하단전의 그 막대한 음기를 사용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어서였죠.”
“… 근데?”
“제가 월영마공을 개선해서 만들었지만, 이런 부작용은 처음 봐요. 더더욱 손님의 부작용이 단순히 음심이 끓어오르는 걸로 끝이 아니라 목숨이 위험해지기까지 했으니깐요.”
“그게 왜… 후우. 왜 내가 색마랑 떡을 치는 이야기로 가냐고.”
“몸을 막고 있는 탁기를 없애고, 안전하게 월영신공의 성취를 높일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니깐요.”
“이익…!”
독고령이 발작할 것 같아서 은약벽이 그녀를 제압하려 들기보다 먼저.
독고령이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시발….”
“… 손님.”
“뭐?”
“한 번 죽을 위기를 겪고 오시니깐 사람이 바뀌셨네요? 화를 참으시다니… 놀랐어요.”
“뭔 시발 누굴 개망나니로 아냐?”
“아니였나요?”
“…”
주변에 믿을 새끼 하나 없다 생각하며 독고령이 말했다.
“… 됐고. 성취 올리는 법이나 얘기해 봐.”
“의외로 순순히 이야기를 들으시네요?”
“네가 시발 그렇게 좆 같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지랄하냐?”
“예?”
“나 간다?”
“아... 아니요. 일단은 조금씩 음기를 일주천을 해보시겠어요? 월영신공의 길을 따라? 제가 생각해둔 바가 있어서요.”
“오냐…”
하오문주의 이야기를 듣고 독고령은 가부좌를 튼 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하며 독고령은 하단전에 자리잡은 음기를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 남자에게 다리를 벌리라니…’
남정네에게 다리를 벌리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금세 온 몸에 소름이 돋아오르며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기분 나쁜 감각과 반대로 현실이 계속하여 그녀에게 색마와 관계를 가지길 강요하고 있었다.
진즉에 이해는 하고 있었다.
그에게 다리 한 번 벌려줌으로서 얻을 이득이 얼마나 많은지 진절머리 나게 들었다.
게다가 은약벽과 운영의 발언을 믿기도 했다.
운영은 말이 많아 입으로 화를 사는 인간이었으나 병에 관해선 허튼 소리를 한 적이 없는 믿을만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다리를 벌리라 종용했다.
게다가 은약벽마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진지하게 다리를 벌리고 빠르게 월영신공의 성취를 올리라 얘기하고 있으니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여겨졌다.
‘시발… 진짜 개 같은 몸…’
환골탈태 이후 자신의 새로운 몸에 몇 번이고 짜증이 얼었지만, 이번만큼 짜증났던 적은 없다.
몇 십년을 남정네로 살아왔기에 그래, 시발.
까짓 거 처녀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당장 뒤질 수도 있다는데 다리 좀 벌려줄 수도 있는거지.
그냥 눈 딱 감고 다리 한 번 벌리는 걸로 모든 게 해결된다면 할 만하다.
그런데 막상 그걸 진짜 해야한다고 생각이 드니 온 몸이 다 떨렸다.
기쁜건가?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쁜 거 같지도 않았다.
전에 은약벽과 은관영을 통해 느꼈던 쾌감은 새로운 종류의 쾌락이었다.
단순히 남을 꺾고, 이겨내는 것보다 더한 쾌감.
그보다 훨씬 기분 좋은.
쾌감.
“흐윽…!”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고, 하단전이 욱씬거리며, 다리 사이가 간질거렸다.
“… 손님?”
발 끝부터 저려오며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흐읏…!”
“소… 손님?!”
독고령의 머리가 순식간에 분홍빛으로 바뀌었다.
한 번 월영신공을 따라 몸 내부를 일주천해봤던 음기는 그 길을 따라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년빙옥의 거대한 음기가 지나가기에 그 길은 너무나 비좁았다.
그렇기에 강제로 비집고 밀고 나가기를 반복하며 도중도중 나있는 다른 길, 세맥들마저 집어삼키며 음기는 멋대로 일주천을 시작했다.
“하으윽…!”
“손님!”
“음기가…! 멋대로…!”
“심마가 찾아왔나요?”
“아니익…! 으읏…! 일주천 하다가…!”
독고령이 허리를 파들거리며 간드러진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흐으읏…!”
“아….”
“이거… 왜 이런…!”
“잠시만요! 해결 방법이 있어요!”
은약벽이 무언가를 가져와 독고령의 입에 따라주었다.
“물이랑 섞긴 했지만 아무래도 효과가 있을 거예요.”
“…”
어딘지 익숙한 맛이었다.
은은한 향이 묘하게 사람의 기분을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들뜨게하는 기이한 냄새였다.
‘… 왠지 익숙한 냄새인데…’
하지만 효과가 있었기에 독고령은 별 생각않고 은약벽이 건네준 무언가를 다 마셨다.
“… 조금 진정이 되시나요?”
“어…. 근데 이거 뭐냐?”
“그… 건 나중에 얘기드리고요. 방금 일주천 하셨을 때 어떘나요?”
“…”
“이 약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일주천 어땠어요?”
은약벽이 답을 재촉하자 독고령은 찝찝함을 뒤로하고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 시발, 분명 내가 조금만 끌어쓸려고 했거든?”
“네.”
“근데 갑자기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그래. 잡심이 계속 들더라, 시발. 일주천을 하는 데 딴 생각을 다 하게 되네.”
“야한 쪽으로요?”
“…”
“그게 원래의 부작용이랍니다.”
“아니, 시발…. 그럼 뭐야?”
“역시…”
“혼자서만 알지 말고 시발 같이 좀 알자.”
은약벽이 갑자기 독고령에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합니다. 제가 의도한 실수는 아니였어요.”
“뭐 또 왜?”
“… 원래 남자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상한 성벽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자주 쓰는 방법이었는데…”
“뭐?”
“아무래도… 월영심법을 전수해주면서 저랑 같이 밤을 보내셨잖아요?”
“그…! 게 왜…”
독고령이 순간 그 날이 떠올라서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 아무래도 여인이 둘이었던데다가… 마침 그 날이 보름이었단 말이죠?”
“…”
“음기가 너무 과했나봐요… 그 때문에 쓰러지신 듯 하고요.”
“… 해결책.”
은약벽이 독고령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 역시 한 번 벌리시는게…”
“하아, 시발. 개 같은 거. 뒤질란다, 그냥.”
독고령이 칼을 뽑아 자신의 목에 들이대자 은약벽이 기겁하며 막아섰다.
“소… 손님! 조금만 참으시고…!”
“캬아아악! 놔, 시바아알!!!”
그 후로 반 시진(1시간) 가량 투닥거리고, 은약벽이 열띤 설득을 마친 뒤에서야 독고령이 특실에서 나왔다.
‘시발…! 시발시발시발!!!’
속으로 끊임없이 욕을 뇌까리며 독고령은 기루의 1층으로 향했다.
멀리 색마가 앉아있는 게 보이자, 독고령이 외쳤다.
“시발! 야, 색마!”
“독고 소저… 깨어나셨군요.”
“그… 시발…!”
“…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욕만 뺀다면요.”
“오… 오늘 밤 같이 자자!!”
쨍그랑.
누군가 떨어트린 찻 잔 소리가 기루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