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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8장. 그냥 한 번 벌리시지요? - (2) (56/225)



〈 56화 〉8장. 그냥 한 번 벌리시지요? - (2)

강호에서 제일 괴팍한 인물을 꼽아보라면 사람들의 입에서 여러 이름이 오르내리곤 한다.

만나는 이마다 ‘도(刀)를 아십니까?’ 하고 물어보는 도선 팽유덕.

광증이 도졌다하면 주변 일대를 아작내놓으면서도 무공을 배우지 않은 양민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 광마 독고진.

가는 곳마다 여인과의 풍문이 끊이지 않는 색마 위일청.


환자라면 악인이든, 선인이든 일단 고쳐주는 신의 운영.

등등 여러 이름이 오르내리곤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약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모두 하나 같이 신의 운영을 꼽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운영은 무공을 배운 적이 없는 인물이었으니.




진료를 끝낸 운영을 보며 옆에서 은약벽이 물었다.

“… 어떤가요?”
“별  없네요. 몸에 이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보다… 으하핫! 진짜 광마 맞습니까?”
“나 맞다고 시발…”
“아니 참, 크큭. 보고도 안 믿기네요. 그 독고진이 이렇게 귀여운 소녀가 되었… 컥! 아픕니다, 아파요…”
“뒤진다, 진짜?”
“아니. 예전에는  때리시더니 왜 때리고 그러십니까?”
“새끼야, 나도 지금 약해빠졌는데 좀 때릴 수도 있지.”
“으하핫!  독고진이 자기 입에서 약하다는 말이… 아! 아악! 아픕니다, 그만 하십쇼.”
“좀! 너는! 닥쳐!”
“자꾸 그러면 검신 어르신한테 이릅니다?”
“시발 새끼…  물에 튀겨죽일 새끼… 등신 애꾸 새끼…”


독고령이 몸을 일으키자 운영이 히죽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검신 어르신은 무서우신가 봅니다?”
“또 맞을래?”
“내공만 빼고 때리시는 거라면 오히려 저희 딸 내미가 투정부리는  같아 귀엽… 악! 죄송합니다, 그만 까불게요.”
“콱 씨…”
“하아… 손님. 그래도 신의께서 밤새 제 등에 업혀오셨으니  친절히 대해주시죠.”
“맞습니다! 어찌나 무섭던지 원… 주변 풍경이 휙휙 바뀌는 게 아주 그냥 죽는 줄 알았습니다!”
“…”


독고령이 툴툴거렸다.

“하여간 착해 빠진 새끼.”
“으하핫, 욕에도 독기가  빠지셨군요.”
“방정맞게 웃지  마. 새끼야.
“기뻐서 그럽니다.”


운영이 따스한 눈빛으로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이제 안 싸우실 거 아닙니까?”
“…”
“… 아닌가요?”


운영의 따스한 눈빛이 휙 돌변하자, 독고령은 식은 땀을 흘렸다.

‘아, 시발. 조졌네…’


아니나 다를까 운영의 잔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에라이, 젠장! 이래서 무인들이 다 똑같단 말입니다! 맨날  놈의 쌈박질이 뭐가 좋다고 허구헌 날 다치고만 오고!”
“아… 아니, 저기… 운영. 잠시만 내 말을 조금…”
“거 참! 이럴거면 저는 왜 부르셨습니까?! 고쳐놔도 또 다쳐서 올텐데.”
“그… 아니이… 나도  좋아서 싸운다기보다 애들이 들러붙어서…”
“누가 들러붙습니까?! 그냥 부탁하시면 제가 까짓거 검신께 고개 한 번 숙여드린다니깐요? 검신 어르신이 싸움을 말려주실텐데  굳이 싸웁니까!”
“아니 그 놈의 영감탱이는 왜 계속…”
“안 되겠습니다. 이 참에 못 움직이도록 제가 미리 다리를 분질러놓죠.”
“야 이 미친 놈아! 너 의원이야, 이 새끼야!!”
“아, 맞네요. 까먹을 뻔 했습니다. 다른 걸로 하죠.”


운영이 자신이 들고 온 전낭에서 굵직한 대침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걸 보자 독고령이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었다.

“너…  시발…! 내가 그거 싫다고 했지?!”
“그러니깐 싫으면 저한테 오지 마시라니깐요?”
“아니 시발! 침이 왜 필요한데! 야! 하오문주! 저 새끼 막아!!”


독고령이 은약벽에게 매달렸으나 오히려 그녀가 허공섭물로 독고령의 몸을 제압했다.


“신의께서 원하시는 곳에 한 방 꽂아주시지요.”
“으흐흣, 어디가 제일 아프면서 좋을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아악! 야! 나 시발 저거 진짜 싫다고!!”
“으흐흐, 아픈 만큼 몸에 좋답니다?”
“시발! 시발시발시발!!!”
“순순히 받아들이시죠, 광… 아니지. 소저.”
“시바아아아알!!!!”

독고령의 비명이 기루에 울려퍼졌다.

*


독고진과 운영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미친듯이 비가 내리던 날, 우연히 비를 피해 들어온 운영은 낡은 사당 안에서 상처입은 독고진을 만났다.


“넌 뭐야, 시발?”
“선객이 있었군요. 숨이 거치신데 혹시 다치셨습니까?”
“꺼져. 가까이 오지 마.”


독고진이 으르렁거렸으나 운영은 신경쓰지 않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전 의원입니다. 상처를 보여주시면…”
“꺼지라고!”

독고진이 칼을 휘두르자, 운영의 이마에 실선이 그어졌다.

하지만 그의 격렬한 거부에도 운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의원입니다.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지요.”
“다음엔 목을 베어주마.”
“베시지요. 벨 수 있는 자라면 진즉에 베었겠죠.”
“… 허튼 소리로 보이나?”

독고진이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그 때, 밖에 천둥이 치면서 운영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왼쪽 눈엔 흉측한 흉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너… 눈이…”
“아, 예. 예전에도 이런 만용을 부리다가 한 쪽 눈을 잃었지요.”
“독안의생(獨眼醫生)…”
“이름을 알고 있으시니 다행이군요. 저는 그 별호가 별로라서요. 의원치고는 너무 흉흉하더라고요, 으하핫.”
“…”
“상처를 보여주시겠습니까?”


독고진은 결국 포기하고 그에게 자신의 치료를 맡겼다.


운영이 화섭자를 이용해 낡은 사당 안에 불을 일으키고는 독고진의 환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독에 당하셨군요. 환부를 조금 도려내겠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손님이 요즘 장안의 화제인  ‘광마’ 같군요. 맞습니까?”
“… 상처만 보고 그걸 아나?”
“알지요. 이런 독을 쓰는 건 당문 밖에 없을 테니깐요. 어이쿠, 움직이지 마십쇼.”


운영은 말이 많은 사내였다.

치료 내내 이런저런 잡다한 얘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독고진의 귀에서 피가 나는 듯 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번에  딸이 태어났더라구요.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 어린 것이 꼬물거리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런 행복한 얘기는 집어치우고, 우울한 얘기나 하지. 눈은 어떻게 잃었나?”


운영의 입을 다물게 할 생각으로 꺼낸 가시돋힌 말이었으나 소용없었다.


“으하핫, 별  없습니다. 오늘처럼 상처 입은 무인을 만나 뭣도 모르고 상처를 치료해주겠다 손을 뻗었다가 눈을 잃었지요.”
“… 미친 놈이군.”
“제가요? 눈을 뺏은 자가 말입니까?”
“둘 다.”
“으하학, 맞습니다.”

운영이 꺽꺽대며 웃자, 독고진은 역시 미친 놈이 맞구나 확신했다.


그가 환부에 붕대를 감기 시작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또 상처를 입은 사람만 보면 참지를  해서요.”
“단명할 놈이군.”
“자주들 그러시더군요. 허나 제가 봤을 때는 환자 분이  단명할 상입니다.”

붕대를 다 감은 운영이 독고진을 바라보았다.

“무인들 중에서 자신이 만독불침이란 헛소리를 하는 이도 있지만, 저는 그걸 믿지 않습니다. 독이란 것은 결국 체내에 남아서 안에서부터 몸을 파괴해나가지요. 그래서 당문을 다들 무서워 하지요.”
“치료해준 것은 고맙지만 오지랖은 사양하겠네. 그보다 누가 네 눈을 파냈지?”
“예?”
“치료해준 셈은 치뤄야지. 네 눈을 도려낸 자의 눈알을 도려내주마.”
“크크큭…, 괜찮습니다.  자는 이미 죽어서요.”
“… 네가 죽였나?”
“예? 제가요? 설마요. 마교의 교주를 어떻게 제가 죽입니까?”
“… 뭐?”

독고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눈을 파낸 자가… 마교의 교주라고?”
“아, 예. 이제는 ‘전대’ 마교주네요.”
“허풍이 심하군.”
“으하핫, 그럴 줄 알고 제가 항상 구명줄을 준비해두지요.”


운영이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낡고 오래된 종이였다.


“읽어보시지요.”
“…”


종이를 건네 받은 독고진은 횃불의 불빛에 의존하여 글씨를 읽어나갔다.

[이 자는 강소성에 사는 ‘운영’이란 자로서 무림맹주 남궁원청의 은인이다.  자를 잘 돌보는 자에겐 내 친히 감사를 표할 것이나 혹여나  자가 해를 입는다면 내 이름을 걸고 구족을 멸할 것이다.]

“거… 검신(劍神)…”
“으하핫,  근래 들어 그렇게 불리신다고 하더군요.”
“…”

독고진은 새삼스레 운영을 다시 쳐다보았다.

“아니…, 마교주랑 무림맹주를 둘 다 치료해준 거냐?”
“예. 저는 그런 놈이라서요.”
“… 미친 놈이군.”
“으하핫, 말했지 않습니까. 자주 그런 얘기를 듣는다고요.”

운영이 나무 판자를 하나 주워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이걸 근처의 약방에 가서 보여주시면 내줄 겁니다. 환부에 자주 발라주시죠.  싸우라고 말하고 싶지만… 음… 결국 또 싸우시겠죠?”
“… 그럴테지.”
“하아… 어쩔 수 없군요. 크게 다치시면 강소성으로 찾아오십시오. 정 못 오시겠다면 전서구라도 보내시고요. 제가 찾아가지요.”
“그래도 괜찮은가?”
“으하핫, 뭐  수 있겠습니까. 옷깃만 스치더라도 인연이라 하는데 오늘 이렇게 저희 둘이 만난 것도 인연이겠죠.”
“… 나는 돈이 없다네.”
“돈은 필요없습니다.”
“…?”


독고진은 이해를 못 하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무엇이 필요한가?”
“음… 가끔 가다 뭐 영물의 내단이나 좀 주워다 주시지요. 저  많습니다, 으하핫.”
“… 정말 별난 놈이군.”
“뭐, 어떻습니까.”

운영이 자신의 짐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가  잦아들었군요. 저는 가보겠습니다. 환자가 또 있어서.”
“…  근처엔 산적들이…”
“다 아는 사이라 괜찮습니다. 그보다 환자께서는 하루 더 머물다 가시죠.”
“…”

독고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운영이 크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으하핫, 그럼 다시는 보지 맙시다! 다치지 말고 장수하시고요.”
“살펴가게.”
“예, 그럼.”


그렇게 독고진과 운영은 만났다.


당시의 인연이 어떻게 더 이어질 지는 아무도 몰랐다.



*




과거를 추억하며 차를 마시던 운영이 자조하며 웃었다.


“그랬던 광마가… 하아… 그 뒤에 제가  받아주면 안 됐는데요. 으하핫.”
“… 시발, 네가 영단 찾으면 달라매.”
“그렇게 많이 찾아오실  몰랐죠. 훔쳐올 줄도 몰랐고요.”
“…”

그 뒤로 독고진은 조금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괜찮은 영단, 영약을 얻을 때마다 강소성에 찾아가 운영에게 가져다주고는 했다.

처음엔 ‘언제든지 상처를 입으면 와라! 치료해주겠다!’라고 하던 운영도 나중가서는 ‘거, 시발. 어차피 고쳐줘도  다칠 거 왜 계속 옵니까!’라면서 타박하곤 했다.


독고진이 찾아올 때마다 가지고 있던 상처들을 떠올린 운영은 진절머리를 내며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그래서 앞으로도 또 싸우고 다니신다고요?”
“아니… 내가 싸우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추살령 까짓 거 지워드릴까요? 검신 영감님께 부탁만 하면…”
“오…?”


독고령은 귀가 솔깃했지만, 은약벽이 부정했다.

“아마 안 들어주시겠죠. 검신께서 아들이 무림맹주가  때 얼마나 많이 반대하셨나 기억 안 나시나요? 세습제는 원치 않으신다고 난리도 아니였죠.”
“… 하긴. 공평치  한 일을 싫어하시긴 하죠.”
“그보다 신의께서 보시기에 독고 소저의 몸은 어떤가요?”
“모릅니다!”

운영은 깔끔하게 부정했다.


“저는 뭐… 무학에 재능이 없어서요. 월영신공이라고 했나요?”
“예.”
“그건 아마 하오문주의 진단이 맞지 않겠습니까? 애시당초 남자가 여자로 변한 시점에서 제 지식을 벗어난 지 오래입니다.”
“환골탈태하신 몸은 몇 번 보셨잖아요.”
“그래도 성별이 바뀌진 않았습니다. 지금 무림맹주이신 남궁진 대협도 환골탈태 할  그냥 근육의 질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  더 좋아지셨죠. 조금 젊어지셨고요. 헌데 이건…”

운영이 실실 웃으며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뭐 새끼야?”
“정말 모르겠네요. 음기가 좀 많다고 여성이 된다니… 상상도  해봤습니다.”
“내단은요?”
“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양기가 뛰어난 이에게 음기의 내단을 처방해주는 것은 중화를 위해서죠. 그 자는 여전히 양기가 더 뛰어날겁니다. 음양이 역전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요.”
“…”


은약벽은 신의마저 아무런 해답을 못 내놓자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 때, 운영이 독고령을 보며 말했다.

“광마.”
“왜?”
“그냥  번 벌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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