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7장. 도(刀)를 아십니까? - (7) (52/225)



〈 52화 〉7장. 도(刀)를 아십니까? - (7)

조용했던 조찬이 끝난 뒤, 팽 가의 대공자가 거의 다 왔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기루의 1층에 모여 가볍게 차를 즐기고 있었다.

팽유덕, 황보기, 그리고 은약벽은 다른 탁상에 앉아 차를 즐기고 있었고,


은관영은 위일청의 옆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백리소현은 독고령의 뒤에 앉아 그녀를 껴안고 있었다.


“…  매. 괜찮아?”
“응? 뭐가?”
“… 오늘은 껴안아도 안 날뛰길래.”
“아아…, 좀 피곤해서 그래.”
“…”

어딘지 힘이 빠진듯한 독고령을 보고있자, 백리소현은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 어제  대화 이후로 무언가 있었나보네.’


갑자기 위일청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뒤, 이른 아침 먼저 방을 나선 뒤에 내내 이 상태다.

독고령도, 위일청도.


둘  눈에 띄게 풀이 죽어있었다.

위일청이 풀이 죽은 이유는 쉬이 짐작이 갔다.


 동안 자신이 믿고 있던 상식이 깨져버렸으니 충격도 컸으리라 싶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으면 어젯 밤엔 은관영도, 백리소현도 껴안지 않고 홀로 잠을 잤으니 그가 느꼈을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독고령이 이렇게 된 것은 백리소현도 조금 의외였다.


‘… 령 매도 위 오라버니를…’

백리소현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자 그 곳엔 어딘지 축 처진 독고령의 뒤통수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백리소현이 손을 들어 독고령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 왜?”
“으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백리소현은 빨리 독고령이 기운을 찾길 바라며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백리소현의 손길을 즐기고 있던 독고령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 어이, 둔치.”
“응?”
“물어볼 게 있다.”
“뭔데?”
“… 어제부터 가슴이 아파.”
“어떻게?”
“… 가슴 안쪽이 쿡쿡 아려.”
“…”

그 말을 듣자 백리소현도 가슴이 아려왔다.

‘… 령 매도 역시 위 오라버니를…’

그녀는 대답없이 독고령을 꾹 안아주었다.

“… 뭐야, 시발. 대답을 하라니깐?”
“아냐. 령 매, 금방 나을거야. 시간이 해결해줄거야.”
“아니, 시발… 아닌  같은데…”
“내가 그 때까지 위로해줄게.”
“위로는 또 무슨…”


독고령이 무슨 헛소리냐고 막 날뛰려던 순간.

누군가 기루로 들어왔다.


“… 다들 모여계셨습니까?”
“크하핫, 어서 와라. 아들!”
“격조하셨습니까, 아버님. 그리고…”

거대한 풍채에 걸맞게 시원한 웃음을 흘리며 그가 인사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팽문휘라고 합니다.”



*



팽문휘를 보는 순간, 은약벽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 제기랄. 진짜 도선 저 인간은…! 도대체 누가 누구를 기만한다고…!’


팽문휘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하북 사나이다운 호방함을 유지하면서도 그게 과해 타인에게 부담을 주진 않았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예의가 깃들어있고, 보고 있다보면 어딘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자연스레 주변인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는 사람, 그게 팽문휘였다.

‘도대체 저런 아비 밑에서 어떻게 멀쩡한 자식이 태어난거죠?’


은약벽이 급히 고개를 돌려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크하핫, 어떤가? 독고진의 여식.”
“뭐가?”
“내 아들 말일세. 마음에 들지 않는가?”
“마음에 들긴 무슨.”

독고령은 팽문휘를 쓰윽 훑어보았다.

‘근골도 괜찮고, 저 정도면 칼도 좀 쓰겠네. 그리고…’

“어?”

독고령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야… 너.”
“네?”
“이거 칼….  좀 보자.”
“…”

팽문휘가 자신의 아버지를 슬쩍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시지요.”

팽문휘가 등에 달려있던 자신의 도를 건네주자, 독고령이 받아들었다.


“와… 씨… 미쳤네? 운철로 만든거냐?”
“크하핫, 독고진의 여식이 칼을 좋아했구만. 내가 선물을 잘못 들고 왔어.”
“칼 싫어하는 무인이 어딨냐?”

독고령이 정신없이 팽문휘의 도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가볍다고? 게다가 날도 잘 살아있고…’


문득 자신이 두고 온 참마도가 떠올랐다.

투박한 형태의 거도긴 했지만 그래 보여도 묵철로 만든 도였다.

지금이야 선택지가 없어서 위일청에게 받은 연검을 쓰고 있었지만, 몸만 괜찮다면 익숙한 도를 쓰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팽문휘가 가지고 있는 도는 독고령의 마음에 쏙 들었다.


독고령이 물었다.


“근데… 팽 가는  더 묵직한 도를 선호하지 않았나?”
“그렇긴 합니다만 또 가벼운 도로도 충분히 무게를 담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 생각했습니다.”
“베기가 조금 아쉽긴 하겠는데?”
“대신 그만큼의 빠르기를 손에 넣겠지요.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 그런지 무거운 도를 쓸 경우엔 허점이 많이 드러나더라고요.”
“무기로 자신의 허점을 막을 수 있다면 그도 좋지. 이야…  좋네. 잘 봤다.”
“드릴까요?”
“어?”

독고령이 놀라서 팽문휘를 쳐다보자 그가 시원한 웃음과 함께 답했다.

“보아하니 소저께서는 도를 아는 분 같군요. 그런 분에게 쓰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아니…. 이거 운철로 만든 거잖아?”
“소저의 말대로 저희 가문은 무거운 도를 쓰는  이상적입니다. 슬슬 칼을 바꿀까 고민하던 차였지요. 그렇게 되면 그 도는 더 이상 안 쓰일 터이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도를 아시는 분에게 쓰이는 것도 좋겠지요.”

팽문휘를 바라보던 독고령의 가슴이 또 한 번 욱씬거렸다.


‘아, 시발. 이 새끼 존나 괜찮은데?’

팽유덕의 자식 새끼라고 부정적인 생각만 잔뜩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제법 괜찮은 놈이었다.

“어이, 도선. 나 이거 진짜 받아도 돼?”
“그러시게나. 아들이 결정한 일이니  나는 참견  하겠다네.”
“크큭, 고맙다.”
“대신 소저,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엉?”

팽문휘가 독고령을 보며 말했다.

“저와 잠시 거닐면서 이야기라도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으…”


독고령이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자, 팽문휘가 말을 덧붙였다.

“하하, 그렇게 피하시지 말고요. 그저 도에 대해 조금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너도 ‘도를 아십니까?’ 같은 개지랄을 떨게?”
“… 저희 가문이 그 쪽으로 좀 과하긴 합니다. 그리 과하게 몰아붙이진 않겠습니다. 그저 여성 도객을 가족 외엔 처음 만나뵈서 그렇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있어서요.”
“… 뭐 물어보려고?”
“실은 제 여동생이 요즘 벽에 가로막혀서 제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여인의 몸과 남성의 몸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언을 구하고자 합니다.”
“…”

독고령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러자 팽문휘가 손을 뻗었다.

“그럼 유성도는 다시 제가 가져가는 걸로…”
“내가  조언 하나는 기깔나게  해주지.”
“그… 러시군요.”
“가자! 장원으로 가는 게 좋겠지? 칼도  휘두르고.”
“… 예.”


독고령이 신나서 앞서 걷자, 팽문휘가 그 뒤를 쫓아 걸어갔다.


밖으로 나서는 두 명을 지켜보며 은약벽이 입을 열었다.

“능구렁이가 따로 없군요, 도선.”
“으응? 내가 말인가?”
“… 저 도(刀).  보던 건데요? 팽문휘는 원래 더 큰 도를 쓰던 걸로 기억하고요. 게다가 누가봐도 여성용으로 제작된 듯한 칼이네요?”
“크하핫, 딸 아이 주려던 걸 급하게 빼돌리긴 했지.”
“영약에, 좋은 칼에… 얼마나 준비를 하신 건가요?”
“전부  했지.”

도선이 씨익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나는 말일세. 진심으로 독고진의 여식이 탐나거든.”
“…”

은약벽이 잔에 담긴 차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보지요.”
“크하핫, 그러시게.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거든 내 꼭 하오문주를 초청하겠네.”


이죽거리는 도선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돌린 은약벽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이익…! 모처럼 손님이 위 공자랑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도선을 너무 우습게 봤다.

독고령의 귀여운 모습에 한 눈이 팔려 조금 느슨해진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하필 독고령과 위일청의 사이가 틀어진 것도 절묘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공자인데…’

슬쩍 뒤를 돌아 위일청의 안색을 살펴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침울한 표정이었다.


‘답답해 미치겠네요, 진짜!’


위일청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독고령은 위일청과 같이 있을  유독 귀여웠다.

게다가 독고령만큼 감정적인 이가 위일청과 함께 있다면 그도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변화가 독고령과 위일청이 굳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은관영과 백리소현에게 좋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은 바램도 있었기에 독고령에게 기대가 컸다.

‘무슨 수라도 써야하는데…’

은약벽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했다.


‘무슨 수라도… 아!’

은약벽의 머릿 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내실로 향하던 그녀의 발걸음이 휙 돌아서서 윗 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옆에 있는 문도를 손짓으로 불러세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문주님?”
“통소 있나요?”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가져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통소를 가지러 하오문도가 급히 움직이자, 은약벽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팽유덕을 노려보았다.

‘할  있는 것은 모두 하시겠다고 했죠, 도선? 나도 마찬가지랍니다.’

은약벽은 가만히 당하고 있어 줄 생각이 없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의 감정을 넘어 심령까지 제압하는 음존의 음공.

은약벽 또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쓸 생각이었다.

*


“후우…”


짝짝짝.


독고령이 휘두르는 도를 보고 옆에서 팽문휘가 박수를 쳤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감탄하게 되는군요. 어찌 그리 깔끔한 일격인지.”
“뭘 이런 걸 가지고.”
“이런 거라니요! 강호의 도객들이 보면 염라도객이 환생했다 칭찬할 정도입니다.”
“호들갑은…”

독고령은 대충 대답하며 그의 칭찬을 넘겼다.

‘새끼야, 내가 도만 몇 년을 휘둘렀는데.’

독고령은 새삼스레 자신의 손에 쥐어진 도를 바라보았다.


유성도.


운철로 만든 도답게 가볍고도, 튼튼하고, 균형도 잘 잡혀있었다.

베는 맛에 묵직함이 조금 덜해서 살짝 아쉬웠으나 지금의 몸으로도 휘두르기 좋았기에 독고령은 기분이 좋아졌다.


‘수라나찰도법도 조금 펼쳐볼까?’


어차피 팽문휘가 봐도 알아볼 수도 없을 테고 양기야 천회혈에 조금 남아있으니 끌어다 쓰면  초식 정도는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독고 소저.”
“응?”
“혹시 저희 가문에 방문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때, 독고령의 가슴이 또 욱씬거렸다.


‘… 시발,  이러네.’

욱씬거리는 가슴의 통증을 무시하고 독고령이 말했다.

“… 내가 왜?”
“제 동생에게   가르쳐주십사 부탁드리려고요. 같은 여성이면서, 도객이니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독고 소저에게 관심도 있기도 하고요.”
“관심은 무슨…”
“돌려말하지 말 걸 그랬군요. 제가 독고 소저에게 반했습니다.”
“미친 놈.”


독고령이 욕지꺼리를 내뱉었음에도 팽문휘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처음엔 아버지가 맺어준 짝이라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크게 마음도 없었고요. 허나 막상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이 이상의 여인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하아… 시발. 왜  주변에 다 제정신인 새끼가 없지?”
“… 그렇게 싫으십니까?”

팽문휘의 말을 듣는 순간.

또  번 독고령의 가슴이 욱씬거렸다.

‘… 무슨 병이라도 걸린  아니야?’


독고령이 헛소리 하지 마라고 말하며 팽문휘를 쫓아내려던 찰나.

멀리서 통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음?”

듣기만 해도 애달픈 소리가 독고령의 마음을 괜히 심란하게 만들었다.

“독고 소저, 저에게 기회를 주시지요.”
“아니, 무슨 헛소리를… 이럴거면 칼 그냥 가져가, 새끼야.”
“… 소저. 저는 절대 그냥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미친 놈.  대 맞아야 돌아갈래?”
“그것도 괜찮군요. 차라리 비무라도 하심이 어떻습니까?”
“어쭈? 자신 있다 이거지?”

새파랗게 어린 놈이 먼저 비무를 제의하자 독고령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음기도 다룰  있으니 내가 질 리가 없겠지.’


팽문휘는 쉽게 물러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긴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겠지.’


독고령이 도를 던져주며 말했다.


“이렇게 하자. 내가 이기면, 더 이상 찝적거리지 마. 귀찮아 뒤지겠으니깐. 그리고 그 유성도도 내가 가진다.”
“제가 이기면요?”
“네가 알아서 정해. 내가 질 리가 없거든.”
“… 그런 자신감 넘치는 모습마저 매력적이시군요.”
“크하학! 미친 놈. 도선의 아들이 맞네.”

독고령이 손의 연검을 풀어 늘어뜨렸다.


하단전에 자리 잡은 만년빙옥의 음기를 월영신공을 써서 조금씩 음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귓가에 계속 들려오는 구슬픈 음색이 조금은 거슬렸다.

“준비되셨습니까?”
“물론이지.”
“3초를 양보해드릴까요?”
“헛소리.”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팽문휘가 뛰어드는 순간.


“오냐!!”

독고령이 내공을 끌어올리면 연검을 휘둘렀고.


‘… 어?’

독고령이 쓰러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