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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7장. 도(刀)를 아십니까? - (5) (50/225)



〈 50화 〉7장. 도(刀)를 아십니까? - (5)

방으로 돌아가자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위일청을 반겨주었다.

칼을 들고.

“위 오라버니, 왔어?”
“위 오빠아….”
“… 두 분은 왜 그러고 계십니까?”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소저를 보며 위일청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큭…, 도망칠 준비를 해두신 건가요?”
“응…”
“혹시 모르잖아요오…”
“마음만 감사히 받지요. 다 잘 해결된 듯 합니다.”
“진짜?”
“정말인가요?!”

꾸려둔 배낭을 바닥에 내려두며 두 여인이 위일청에게 안겼다.

“다행이다… 관영이한테 얘기 듣고 내내 걱정했어…”
“저도요…”
“… 그러십니까?”


문득 위일청은 머릿 속에 질문 거리가 하나 떠올랐다.

“백리 소저, 은 소저. 묻고 싶은  있습니다.”
“응?”
“뭐든지 물어보세요!”
“두 소저는 저를 사랑하십니까?”


갑작스러운 위일청의 질문에 두 명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 응. 사모하고 있어. 근데 갑자기 물으니깐 조금 부끄럽네…”

백리소현은 얼굴을 붉히며 포근한 미소와 함께 위일청에게 대답했고,

“무… 물론이죠오. 사랑하고 있답니다?”


은관영은 조금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음… 제가 말입니다. 사실 아는 분에게 사랑을 모른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
“음…”
“응? 다들 반응이 왜 그러십니까?”

두 소저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자 위일청이 오히려 당황했다.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결국 입을 연 것은 백리소현이었다.


“그… 위 오라버니.”
“예, 백리 소저.”
“… 나는 오라버니를 사랑해.”
“알고 있습니다.  번이나 말씀하셨죠.”
“하지만 그… 오라버니가 나를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

위일청은 백리소현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음… 알다시피 나는 평생을 장문인의 처소에 갇혀 살았어.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에 대해 잘 몰라. 하지만 이렇게 해주고 싶은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매번 위 오라버니에게 안겨. 가끔 내가 안아주기도 하고.”
“…”
“령 매도, 관영이도 마찬가지야. 나는 내내 ‘이렇게 누가 안아줬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어릴 때 딱 한 번, 기억도 희미한 어머니의 품이 참 좋았어. 그래서 위 오라버니도 안아주고,  매도 안아주고, 관영이도 자주 안아주는 거야. 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랑’이고.”
“… 예. 헌데…”
“하지만 위 오라버니는 교접을   외에는 나를 먼저 안아준 적이 없어.”
“예?”


백리소현은 인자하지만, 어딘가 씁쓸해보이는 미소로 그에게 답했다.

“나는 위 오라버니를 사랑해. 나도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이게 내 사랑의 표현 방식이야. 안아주는 거, 누군가와 따스함을 공유하는 것. 딱히 야한 일이 아니더라도 항상 그런 일들을 하는 거.”
“…그렇습니까?”
“응. 하지만  오라버니는 나를 사랑해?”
“사랑합니다. 정말로.”
“고마워. 하지만  오라버니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조금 다른  같아.”
“…”

백리소현이 더 말할 생각이 없어보이자 위일청은 은관영을 쳐다보았다.

“은 소저. 은 소저는 저를 사랑합니까?”
“네에… 그으… 아니요오…”
“네?”
“… 저는 사실 위 오빠를 사랑한다기보다 존경하고 있어요…”
“존경이요?”
“… 구해주셨잖아요.”
“…”


은관영은 귀까지 빨갛게 물들인 채로 고개를 숙이고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저어는… 오빠한테 귀여움 받는 걸로 충분해요오. 사랑까진 바라지도 않고요…”
“저는 은 소저를 사랑합니다.”
“듣는 것만으로도 기쁜 말이네요오. 하지만…”


은관영은 슬쩍 그의 눈치를 보았다.


“위 오빠가 저를 사랑하시는지는 조오금…”
“어떤 이유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 전에 제가 도중에 하오문에 돌아간다고 했을 때요오…”
“네.”
“… 표정이  변하셨어요.”
“네?”
“… 당분간 떠나있는다고 말했는데… ‘그냥 어디 가는구나’, ‘잘 다녀와라’ 정도였어요오…”
“…”
“저는 위 오빠랑 떨어지면 슬픈데… 위 오빠는 그렇지는 않을 거 같아요.”
“아니… 하…”


위일청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 독고 소저가 말하더군요. 사랑이란 것은 ‘이 사람 없으면 못 살겠다’ 싶은 감정이라고요. 두 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응.”
“네에…”


그리고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오라버니는 아마 내가 없어도 잘 살 거 같아.”
“그치만 위 오빠는  없이도 괜찮으실  같아요…”



*




내실로 들어선 독고령은 웃음을 감추지 못 했다.

“으흐흐… 야, 하오문주.”
“…예, 손님.”
“무림 역사상  번이나 환골탈태를 이루는 자가 또 있을까?”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일이지요.”
“내가 지금 그걸 해내보이지.”
“… 그렇게 되면 전 강호가 큰 손실을 입겠군요.”
“응? 왜?”
“이렇게 어여쁜 소저가…”
“남자의 몸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네 년의 볼기짝을 후려쳐주마.”

으름장을 놓는 독고령을 보며 은약벽은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그런 것도 좋아하셨나요? 나쁘지 않죠.”
“으… 음탕한 년아!!”
“후훗, 빨리 태양화리의 양기를 흡수할 준비나 하시지요. 저도 바쁜 몸이랍니다?”
“… 그래.”


독고령이 가부좌를 틀고 태양화리의 영단을 손 위에 올려두었다.

“내가 양기를 흡수할테니깐, 네가 밖에서 좀 도와줘.”
“그러지요. 근데 제 도움이 필요하시나요?”
“… 음기가 너무 강해서 그래.”
“네?”
“말했잖냐. 만년빙옥을 흡수했을 당시에 음기가 너무 세서  안의 양기가 거의 다 날아갔다고.”
“손님, 잠시만요.”


은약벽이 그녀를 멈춰세우자, 독고령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 왜?”
“그럼 흡수해봤자 소용 없는 거 아닌가요?”
“엉?”
“아니… 손님의 양기도 다 날려벌릴 정도의 강력한 음기인데 고작해야 태양화리의 영단으로 그걸 중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어요?”
“어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잠시 영단을 넘겨보시겠어요?”
“자.”

독고령이 휙 던져주자 은약벽이 손에 올린 뒤, 눈을 감았다.


태양화리의 영단이 잠깐 불을 일으켰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다시 눈을  은약벽이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손님.”
“왜?”
“이거 흡수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되겠는데요? 나중에 음심이 끓어오를 때를 대비해서 그냥 아껴두시지요.”
“앙?! 그게 무슨 헛소리야.”
“… 도선이 넘겨주신 것이라 그런지 상등품이라 담고 있는 내력이 많긴 해요. 아마 1갑자(60년)의 내공은 넘는 듯 하군요. 하지만 만년빙옥의 음기가 손님이 말한 대로라면 어림도 없어요.”
“시발, 한  시도나 해보자니깐?”
“그렇게 날리기엔 너무 아까운 영단인데요?”
“…”
“손님이 가지신 물건이니 선택은 존중해드리겠지만, 흡수하겠다고 하실 경우에 저는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그 말을 듣자 독고령이 벌떡 일어났다.

“아, 왜! 좀! 그냥 도와주라!”
“… 음기가 멋대로 날뛰었다면서요. 같이 죽으라고요? 더군다나 제가 가진 음기와 손님의 음기가 묘하게 다르잖아요.”
“그거야 네가 어떻게… 응?! 알지?”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만한 물건은 아닌 듯 한데요?”
“시발 진짜…”

은약벽이 다시 태양화리의 영단을 넘겨주자 독고령은 한참동안 그걸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아, 시발. 그냥 혼자서라도 할까?’

내공의 제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솔직히 은약벽이  도와주더라도 양기를 다룬 세월이 얼마인데 이깟 짐승이 쌓아둔 양기 하나 통제  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처음 환골탈태의 기억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은약벽의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환골탈태도 그냥 무난히 음기만 취하고 내력의 상승을 노렸으나 결과적으로 음기가  몸을 지배하며 절맥증 비슷한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자신의 몸으로 시험하자니, 그것도 약해진 몸으로 시험하자니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손님, 이렇게 하시는  어떤가요?”
“… 뭐?”
“어차피 보타문으로 가시는 길이니 신의 운영과 만나 상담하시죠. 강소성은 산동 바로 아래이니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
“게다가 운영은 내단 제조에도 지식이 있으니 태양화리의 양기를 무리없이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손님의 원인 모를 병에 대해서도 답을 찾아줄 수 있을지 모르고요. 아시잖아요,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의원인지?”
“쓰읍…”


독고령이 고민하는 듯 하자, 은약벽이 살짝 답답한  말했다.


“손님의  같은 성정은 아시지만, 그래도 위험을 감수하기에 지금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알지. 아는데…”

독고령이 우물쭈물거리며 말했다.


“… 시발, 그러면 당분간  색마랑 같이 다녀야하잖아. 내일 그… 그거도 해야하고.”
“아하…”

은약벽의 미소가 깊어졌다.

“부끄러우신가요?”
“아… 아니! 그건 아닌데… 하아… 맞지. 망측한 짓거리잖아.”
“어머, 서로 사랑하는 선남선녀가 알콩달콩 지내는 모습이 왜…”
“캬아악!  그 새끼 안 좋아한다고!”
“후훗, 그렇다면 그런 걸로 알고 있을게요. 부끄러워하시는 손님의 모습도 보기 좋으니깐요.”
“아니라고!!”

독고령이 또 길길이 날뛰었음에도 은약벽은 그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네요. 저는 이 모습이 더 보고 싶었거든요.’

은약벽은 사실 독고령에게 거짓말을 했다.

허공섭물과 같이 내공의 제어력이 중요한 기술을 주력으로 쓰는 그녀가, 그것도 자신이 평생을 쌓아왔던 음기를 다루는 일이 힘들 리가 없었다.


독고령이 지금 당장이라도 태양화리의 양기를 취하겠다고 어떻게든 우겨댄다면 은약벽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마음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모처럼 이리 귀여운 처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위일청과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은약벽은 기분도 좋아졌고, 부럽기도 했다.

‘저는 항상 궁금했답니다. 손님이 복수를 끝내면, 모든 목표를 달성한다면 어떤 삶을 영위하게 될지 말이지요.’


그리고 그 궁금증은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기도 했다.

하오문주에서 물러나고, 자신이 뜻하는 바를 다 이루었을 때.


그녀는 스스로 남들처럼 평화로운 삶을  수 있을지 확신할  없었다.

‘그러니 부디 그 모습을 오래 간직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손님.’

독고령은 그녀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은약벽은 다시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어쩌시겠어요, 손님?”
“뭐… 뭐가.”
“방으로 돌아가서 주무실 예정인가요? 보아하니 위 공자를 열심히 피해다니시던 낌새시던데, 아닌가요?”
“…”

독고령이 대답을  하고 얼굴을 붉힌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머리가 뿌리에서부터 조금씩 연분홍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은약벽은 가슴이 아렸다.


‘너… 너무 귀엽네요!!’


당장이라도 독고령을 껴안고 잔뜩 귀여워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은약벽은 대답을 기다렸다.

긴 침묵이 끝난 뒤, 독고령이 눈도  마주친 채 조용히 웅얼거렸다.

“… 워줘.”
“네? 잘 안 들리는데요?”
“아이씨! 너 상단전 열렸으면 천리통도 뚫렸을 거 아니야! 좀 재워달라고!!”
“후훗, 알았어요. 대신 조건이 있답니다?”
“또 뭔데…”
“저는 옆에 사람이 없으면 잠을 못 자요.”
“지랄하지 마!”
“어머, 진짜랍니다? 관영이라도 부를까요?”
“아이, 씨발 진짜아…”


독고령이 칭얼거리자 은약벽이 웃었다.

“후훗, 그러니깐  방에서 주무실 거라면 내내  품에 안겨있으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아무 짓도 안 할게요. 딱 손만 잡고 자는 거예요.”


독고령의 머리가 완연히 분홍빛으로 물든 것을 보며 은약벽은 그녀가 어떤 대답을  지 미리 알 수 있었다.


“… 지… 진짜 손만 잡고 자는거지?”
“그럼요. 저도 약속을 참 잘 지킨답니다?”
“시발…”

독고령이 포기한 듯 중얼거리자 은약벽이 더 이상은 참지  하고 그녀를 껴안았다.


“뭐… 뭐해! 미친 년아!”
“아으~, 왜 이렇게 귀여우실까 우리 손님. 남자일 때도 한  제가 안겼어야 했는데.”
“으… 음탕한 년아!!”
“후훗, 이리 와요. 이대로 바로 자러 가죠. 아니지, 먼저 씻을까요? 제가 씻겨드릴게요.”
“캬아아악!”
“후후훗, 귀여우셔라.”


그렇게 독고령은 밤새 은약벽에게, 야한 쪽이 아닌 건전한 방향으로, 잔뜩 귀여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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