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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화 〉7장. 도(刀)를 아십니까? - (1) (46/225)



〈 46화 〉7장. 도(刀)를 아십니까? - (1)

장원 내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맴돌았다.

하북팽가의 가주, 무애도선 팽유덕.


황보세가의 가주, 뇌력권존 황보기.

백도 무림의 두 절대고수가 갑자기 등장하자 모두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허나 침묵을 깬 것은 은약벽이 먼저였다.


“미치셨나요, 다들? 다른 문파의 담을 이리 함부로 넘으시다니요?”
“크하핫! 화내지 말게, 음존! 내  셈을 치루겠다니깐 그래.”
“허허…, 노부는 잘못이 없다네? 도선께서 가자고 하시니 그냥 마실이나 나올겸 따라온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권존! 가끔씩 이렇게 바람도 쐬줘야 정기에 좋지요?”
“허허헛.”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는 도선과 권존과 달리, 은약벽은 머리에 핏줄이 솟을 정도로 짜증이 올랐다.

‘어떻게 알아차린거지? 어디 정보망이 뚫린거야…!’

 그래도 개방과 물 밑에서 치열한 정보전을 치르고 있는 와중 계산 밖의 인물들이 찾아오니 은약벽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청객들은 장원을 구경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역시 하오문이  돈이 많소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보다… 누가 독고진의 딸이지?”
“!!”

팽유덕의 눈이 위일청 일행에게로 향하자 오금이 저려오며 단숨에 심령이 제압당했다.

‘이것이 절대고수의 기운인가…!’

위일청이 무지막지한 팽유덕의 기운을 받아내면서 바로 뒤에 있을 은관영과 독고령을 그 기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자 팽유덕의 눈에 흥미가 감돌았다.

“흐음…. 제법 기개가 있는 사내구만. 색마라는 별호가 멸칭이었구만, 그려.”
“감사합니다…, 크윽…!”

팽유덕의 강대한 기운을 감내하기에는 위일청이 힘에 부쳐 몸이 점점 낮아지는 순간, 그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자네. 도를 배워볼 생각이 없는가?”
“… 예?”
“보아하니 검수구만. 안타까운 일일세. 자고로 사내라면 도를 쓰는 것이 옳지.”


방금까지의 막대한 기운은 온데간데 업어지고, 팽유덕이 웃으며 위일청에게 다가왔다.


“생각해보게 자네. 검이란  말일세…, 호방함이 없지 않은가?”
“그… 그게 무슨…”
“이게 딱 이렇게!”


후웅!

팽유덕의 도가 한 차례 허공을 가르며 깔끔한 바람 소리가 터져나왔다.

“베는 맛이 모자라지 않은가. 자고로 사내라면 호연지기를 가져야하내만 그를 위해서라면 걸맞는 무기 또한 가져야하지 않겠는가?”
“그… 그렇군요.”
“그에 걸맞는 사내의 무기라 함은 무엇인가? 바로 도일세! 이 묵직한 손맛, 깔끔한 일격. 치졸하게 찌르기나 막는 것,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내라면 공격일변도! 하나의 길을 걷는 것이 사내대장부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


위일청이 얼이 빠져 대답을 하지 못 하자, 다시 한 번 팽유덕의 거대한 기운이 그를 덮쳤다.

“동의하지 않는가?”


팽유덕의 가공할 내공에 위일청의 표정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끄…. 끄윽…! 그…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 또한 도객이네. 검을 버리게.”
“… 예?!”
“무엇 하는가? 검을 안 버리고. 내가 도를 가르쳐주겠네.”
“허… 허나…”
“어허! 사내대장부가 일구이언을  셈인가?”
“…”

옆에서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독고령은 혀를 찼다.

‘… 미친 놈.’

이래서 팽유덕이 싫었다.


저 미친 새끼는 마치 도가 제일의 무기라는 것을 증명하지  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듯 주변의 모든 인물에게 도를 배우길 강요하고, 도가 최고의 무기라 인정하라고 지랄한다.


도객에겐 한없이 살갑게 굴며 가족을 대하듯이 말하면서 검수에게는 유독 까칠하게 굴고 여차하면 힘을 쓰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그래도 무공을 배운 새끼가 동네 양아치 짓거리나 하고 말이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독고령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하나 더 있었다.


“… 기운을 거두시지요, 도선.”
“음존. 내가 지금 이 자와 얘기를 나누고…”
“힘으로 제압하는 게 이야기라면 저도 도선과 담소를 나누고 싶어지는군요.”


은약벽이 숨길 생각도 없는듯 살기를 끌어올리며 허공에 칠현금을 띄워올렸다.

“장송곡은 취미가 아니지만, 그래도 연주할  안답니다? 어찌하시겠어요?”
“허허…, 음존의 권각술은 매섭지요.”
“…”

방금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권존이 한 발짝 튀어나오자, 은약벽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 노망이 나기엔 이른 나이 아니였나요, 황보세가주?”
“오늘 따라 말이 조금 거친 것을 보니 향간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였나봅니다?”

은약벽이 위일청과 보낸 하룻밤을 잊지 못 하고 한동안 그를 쫓아다녔다는 낭설을 얘기하며 황보세가주가 도발하자 그녀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머, 제가 맹주에게 얘기했다면 바로 권존의 자리를 뺴았기셨을텐데 역시 입으로 권존의 자리를 꿰찬 황보세가주다운 말솜씨군요.”
“한 번 확인해보시겠소?”
“하아…, 저는 음존이란 이름도 마음에 드는데 말이죠.”


꾸르릉!


황보기가  몸에 뇌기를 두르자 또 다시 벼락이 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긴장감이 차올라 언제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상황을 깬 것은 팽유덕이었다.


“크하핫, 농담일세. 농담.”
“허억… 허억…!”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가 검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안타까워 내가 조금 오지랖을 부렸구만, 크하핫! 미안하네, 음존. 권존, 자네도 뇌기를 거두게나.”
“도선! 내 오늘 저 년과 생사결을…”
“황보기.”


팽유덕이 차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뇌기를 거둬주게. 좋은 일로 찾아오지 않았는가?”
“…”

한 순간 팽유덕이 보인 차가운 모습에 당황한 황보기는 급하게 내공을 거둬들였다.

“크하핫, 이거이거. 미안하구만. 괜히 내가 하오문주의 심사를 뒤틀었구만.”
“…  점을 아신다면 어서 나가주시지요. 더 이상의 소란은 원치 않습니다.”
“온 김에 볼 일만 보고 가겠네. 만약 지금 바로 나가게 된다면 음… 이번엔 천진으로 놀러가봐야겠구만. 크하하핫!”
“…”


개방의 총본산이 있는 천진에 가겠다는 뜻은 독고령의 위치를 알리겠단 말과 같았다.

은근한 협박을 팽유덕이 내뱉자 은약벽은 짜증이 나면서도 그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 아이들에게 다상을 준비하라 이르지요.”
“기왕이면 술이 좋겠구만.”
“… 예. 관영, 두 분을 특실로 안내하세요.”
“네, 문주님.”
“크하핫, 권존. 자네도  잔 들텐가?”
“… 예. 마셔야겠군요.”
“그러지. 음존이 먼저 들어가있으라 얘기하니 지금은 얌전히 들어가네만…”

팽유덕의 눈이 정확히 독고령에게 향했다.

“도망치지 말게, 독고진의 여식.”
“… 시발.”
“크하하핫!!”

팽유덕이 황보기와 함께 웃으며 자신이 부수고 나온 기루의 구멍으로 들어가자 은약벽이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 미치겠네요.”
“…”
“위 공자, 괜찮으신가요?”
“… 네, 괜찮습니다. 하지만…”

위일청이 뒤를 돌아보자 은관영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 오줌 싸는  알았어요오….”
“… 팽유덕이 지랄맞긴 하지만, 그 내공은 무시무시하죠. 좋은 경험을 했다 생각하세요, 관영. 앞으로 저런 이들과 만날 일이 잦을 수도 있답니다?”
“히잉….”
“빨리 뒤쫓아가서 안내를 맡으세요.”
“…네에.”

멀어지는 은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은약벽이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저들이 무슨 연유로 찾아왔을지 짐작가는 바가 있으신가요?”
“시발…, 모르지.  미친 놈은 이유없이…”
“그래도 오대세가의 가주입니다. 이유없이 찾아올만큼 한가한 자들이 아니예요.”
“엥?”
“…”


독고령이 전혀 이해하지  하는 얼굴을 하자 은약벽이 전음으로 말했다.

[팽유덕이 손님에게 시도때도 없이 찾아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항상 꾸준히 목적을 가지고 찾아갔지요.]


“…?”

[수라나찰도법이요.]

“아….”

그제서야 독고령이 이해했다.


강호 역사에 도객의 이름이 새겨진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염라도객 주장.

평생을 숨어살며 누가 스승이고, 어디서 도를 배웠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강호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그가 살던 시기의 천마를 꺾고 마교의 준동을 막아낸 것.


천마를 꺾고 그 위세를 잃은 마교는 다시 십만대산으로 숨어들었고 강호는 염라도객의 이름을 칭송하였으나 그는 다시 은거하여 이후의 사정을 아무도 모른다.


모든 도객의 꿈과 같은 존재의 무공을 광마 독고진이 가지고 있으니 도에 미친 팽유덕이라면 독고진에게 시도때도 없이 달라붙을만한 이유가 있었다.

“… 안 좋은 기분이 드네요.”
“뭐가?”
“홀로 찾아왔다면 그러려니 할텐데 하필 황보세가주가 같이 찾아왔어요. 좋지 않네요….”
“… 둘이 그냥 옆 동네에 붙어사니깐 같이 놀러온 거 아니야?”
“하아…, 손님. 저들이 말은 그렇게 했어도 오대세가의 가주들이라니깐요? 도박으로 그 자리를 꿰찬  알았나요?”
“태어난 순으로 꿰찼으니 대충 그런 느낌 아닌가?”
“…”

독고령이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을 보고 은약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군이 하나 사라졌군요.  공자.”
“예, 문주.”
“… 동석해주시겠어요?”
“제가 말입니까?”
“네. 일단 머릿수는 맞춰야할 거 같아서요. 여차하면 같이 싸워주시겠어요?”
“그러겠습니다.”
“… 미쳤냐?”


순순히 승낙하는 위일청을 보고 독고령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너 쟤네랑 싸우면 죽을 걸?”
“헌데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까. 아까 말했던 사랑은 이런 거 아닐까요?”
“너 하오문주 사랑하냐?”
“말했잖습니까. 사랑한다니깐요?”
“아니, 시발…. 아닌  같은데….”
“저도 아니라고 생각한답니다. 하지만 도움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단 먼저 들어가있으시겠어요, 위 공자? 백리 소저에게도 사정을 좀 설명해주시고요.”
“… 네. 독고 소저, 이 얘기는 다음에  나눕시다.”
“아니, 시발. 다음이 안 찾아올… 읍!”

독고령이 더 떠들어대기 전에 은약벽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럼  이따 아이를 보내지요, 위 공자.”
“예, 문주님.”
“읍! 읍읍!!!”

위일청 또한 기루로 들어서자 장원에는 은약벽과 독고령 둘만 남았다.

“하아…, 손님. 제발 눈치 좀 챙기세요.”
“아니, 시발. 내가 눈치를 왜?”
“저 혼자서 도선과 권존을 어떻게 상대하나요?”
“그럼 색마는? 색마가 도선이랑 싸우면 10수도 못 버틸테고, 권존이랑은 한 50수 버티려나? 저 새끼 죽는다니깐?”
“그 50수가 저한테 필요해서 그래요.”
“그렇다고 저 새끼한테 목숨을 걸라고 말해?”
“네. 그렇게 부탁하면 목숨을 걸어주시는 분이 위 공자니깐요.”
“… 마음에 안 드는군.”

독고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 새끼는 널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고, 너는 그걸 이용해 먹는 거 아니야?”
“어머,  낭만적이네요. 저를 사랑한다 생각하며 목숨을 걸어주는 남성이라니.”
“그 뜻이 아니잖아!”
“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독고 소저가 막아주실래요?”
“이익…!!”
“보세요. 해답이 없으시죠? 저는 주어진 상황 내에서 최선의 답안을 도출해낸  뿐이랍니다?”
“시발. 시발시발!”
“후훗, 그렇게 떼를 쓰시는 게 어린아이 같아서 귀여우시네요.”
“캬아아악!!”
“일단 들어가지요. 그래도 무슨 이야기가 오고갈지 들어봐야 알테니깐요.”

날뛰는 독고령을 진정시키며 은약벽이 기루로 들어섰다.

독고령은 그 모습을 보며 부아가 치밀었다.


‘마음에  들어…, 하나 같이 마음에  드는군.’



“… 입어야 해?”
“네, 그렇답니다.”
“… 시발.”
“욕도 좀 줄이시지요. 도선의 심기가 상하면 소저 빼고  죽을 거랍니다?”
“그 새끼는 내가  좀 해도 괜찮을걸?”
“예. 하지만 주변의 이들에게 짜증을 내겠지요. 제발 제 목숨도 좀 신경써주시겠어요?”
“지도 아까 장송곡이 어쩌구저쩌구 그랬으면서…”

은약벽에게 투덜대면서도 독고령은 착실히 준비해둔 옷을 입었다.


나풀거리는 옷이 짜증을 치솟게 만드는 매우 여성스러운 옷이었다.

“어머, 여성의 의복에 대해서도 잘 아시네요?”
“닥쳐. 이러면 됐냐?”
“후훗,  고우시네요. 올라가실까요?”
“하…, 전장에 이딴 옷을 입고 가는 건 싫은데….”
“저 곳이 전장이라면 독고 소저는 반드시 죽을 거랍니다? 아니길 비셔야죠.”
“… 시발.”


기루의 꼭대기 층, 특실로 올라가자  곳엔 이미 위일청이 대기중이었다.

특실의 안에서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듣고 있자니 또 다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독고령은 침착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럼… 들어가실까요?”
“그러지.”
“예, 그러시죠.”


은약벽이 문을 열자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멈추었다.


“다들 나가보도록.”
“네, 문주님.”


방금까지의 웃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고요함이 맴돌자 팽유덕이 아쉬운 듯 말했다.

“이래서 하오문은 싫단 말이지…. 대놓고 기만하지 않는가?”
“어머, 저 아이들은 받을 돈만큼 일한 거랍니다.”
“에잉…, 쯔쯧. 그렇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나를 위해 웃는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 사나이라 그렇다네.”
“내시는 돈만큼 진심을 담을 터이니 조금  값을 치루시는 게 어떠신가요?”
“그것도 좋구만, 크하핫!”


팽유덕이 웃으며 술 잔을 들이켰다.


은약벽, 위일청, 그리고 독고령이 황보기와 팽유덕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연유로 이 곳에 왕림하셨을까요?”
“왕림까지야. 그냥 동네 마실이지. 안 그런가, 권존?”
“그렇지요. 마실 나온 겸, 며느리 구경도 하구요.”
“… 네?”

은약벽은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다.


“이보게, 독고진의 여식.”
“…  불러… 요?”
“우리 집에 며느리로 들어오지 않겠는가?”
“…”

담담히 말하는 팽유덕을 보며 독고령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미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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