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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6장. 하오문 산동지부 - (3) (41/225)



〈 41화 〉6장. 하오문 산동지부 - (3)

하오문주 은약벽.

그녀를 보고 가장 먼저 독고령의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 조졌군.’

광마 독고진에게 친우라고 불릴만한 인간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의 옆에는 어디까지나 동업자 뿐이었다.


독고진이 쳐죽일 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하오문주 은약벽.

독고진이 크게 다칠 때마다 그를 치유해준 의원 운영.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당문의 피해자인 살수 무명.

운영과 무명은 같은 남자기도 했거니와 사사로운 이야기를 할 정도의 관계는 아니였다.


무명을 만나면 항상 짤막하게 누구를 죽였고, 누구를 죽이겠다는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운영을 만날 때는 제발 좀 그만 다치고 오라며 자신을 타박하는 것을 그저 묵묵히 듣는 관계었다.

하지만 은약벽은 달랐다.

그녀는 항상 독고진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독고진 또한 그녀와의 대화가 기분 나쁜 적이 없었다.

독고진과 은약벽은 유독 서로 대화가  맞았다.


“손님은 무슨 연유로 무림을 다 뒤집어 엎으려고 하시나요?”
“뭐?”


독고진이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되물었다.


“손님께서 무슨 연유로 무림을 그렇게 헤집고 다니시는지 궁금하다 여쭸어요.”
“시발, 좆 같은  때려부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지?”
“아하핫, 좋은 이유네요. 좆 같다라….”
“…”


여인의 입에서 ‘좆’이란 단어가 나오자 독고진이 살짝 당황했지만, 그녀의 한기 어린 눈매가 금세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 무림은 너무 좆같은 곳이지요. 쓰레기들이 참 많은… 쓰레기들의 집합소.”
“사연이 있어보이는군.”
“듣고 싶으신가요?”
“아니. 필요없다.”


독고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또한 상당한 은원이 있어보이니 그걸 알고있는 것만으로 충분해. 개같게도 사람이 불행해지는 원인은  천차만별이고 하나하나 좆 같은 사정 밖에 없더군. 거기에 네 사연을 더 해봤자 짜증만 치솟을 뿐이지.”
“후훗, 현기(賢氣)가 깃든 말씀이네요.”
“호랑말코 새끼들도 아니고 현기는 무슨. 그보다 다음은 어디지?”
“손님께서 이리 강해질 지도 몰랐기에 조금 도박수를 던져보고자 해서요.”

은약벽이 언제나처럼 서책을 던져주자 독고진이  책을 펼쳐보았다.


“… 남궁세가?”
“무림계의 정점이자 살아있는 신, 검신이 그 곳에 있답니다.”
“검신을 죽이라고?”
“아하하핫, 손님은 정말 아직도 주제를 잘 모르시네요.”


은약벽이 건방진 말을 내뱉었지만, 독고진은 신경쓰지 않았다.


검신이  검신이겠는가.


한 자루의 칼로 신화를 쓴 인물이기에 검신이었다.

독고진 또한 일단 생각없이 말을 내뱉었지만, 검신과 대적할 생각은 없었다.


“검신의 아들이 조만간 무림맹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협의지문이라 불리는 창천남궁세가 역시 무림맹의 오물덩어리와 같이 지내다보면 더러워지겠지요.”
“근묵자흑. 맞나?”
“…”

독고진이 사자성어를 내뱉자 은약벽의 눈이 커졌다.


“… 실례했습니다. 손님께서 그런 말을 아실 줄은 몰랐네요.”
“시발. 나도 요즘 글을 배우고 있거든?”
“좋네요. 아무튼 남궁세가의 젊은 대공자를 만나고 오셨으면 좋겠네요.  이립을 넘긴 자가 벌써 ‘검제’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혹시나 성정이 옳지 못한 자라면 그 자리에서 죽이시죠. ”

무림제일인의 아들을 죽이라는 말을 담담히 내뱉는 은약벽을 보며 독고진은 씨익 웃었다.


“만약 그 새끼가 내 마음에 든다면?”
“음…, 볼기짝을 치고 오시는  어떨까요?”
“크하핫. 그리하지. 길잡이는 준비시켜놨나?”
“예. 마굿간에서 대기하고 있답니다.”
“다음에  보지. 살아있다면 말이야.”
“부디 악운이 함께하기를.”


은약벽의 인사를 뒤로한 채, 독고진은 기루를 나섰다.


그 날, 남궁세가의 대공자를 만난 독고진은 생각보다 기개 넘치는 그가 마음에 들었기에 살려주었다.

대신 약조한 대로 그의 볼기짝을 후려쳤고 그 사실을 아는 자는 강호를 통틀어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훗날 볼기짝을 맞은 남궁세가의 대공자가 무림맹주가 될 줄도 몰랐지만, 그 일은 한참 뒤의 이야기였다.

*



“차가 안 맞으시나요?”
“… 별로 안 좋아하오.”
“어머, 말투가 상당히 특이하시군요.”
“그… 예절을 잘 지킬 줄 몰라서 그래…요.”
“음…, 첩자라면 어설프네요. 아니면 일부러라도 저를 흔들어 보려는 귀여운 노력일까요?”
“…”

새삼스레 자신이 ‘독고진’이던 시절 은약벽과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리고 지금으로 돌아오자 현재의 몸이 얼마나 미천한지 깨달았다.


‘미치겠군….’


단순히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만 같았다.


날카로워진 기감이 끊임없이 눈 앞에 앉아있는 은약벽의 존재를 경고했다.


이 자는 맹수다.

궤를 달리하는 존재다.

너의 목숨을 언제든지 쉽사리 취할 수 있는 자라고.

“차가 별로면 술이라도 드릴까요?”
“… 아니요.”
“말투에서 어색함이 느껴지는 데 그냥 편히 말하시는 건 어떨까요? 듣는 저도 답답하네요. 손님의 딸이 ‘정녕’ 맞다면, 저에겐 조카 같은 존재니깐요.”
“… 그러지.”

은약벽의 넘실거리는 존재감에 타는 목마름을 참을 수 없던 독고령이 드디어  잔에 손을 올려  한 모금을 넘기자, 갑작스레 그녀가 치고 들어왔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인가요?”
“커헉….”

독고령이 목에 사레가 들려 찻물을  토해냈지만, 그 물이 마주 앉아있는 은약벽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 정말 어설프네요. 이럴수록  고민은 깊어지고요.”
“크흠…. 크흠.”

허공에 넘실거리는 찻물을 보며 독고령은 다시  번 그녀의 무공 실력을 실감했다.

자유자재로 주변의 물건들을 다루는 허공섭물.


말은 쉽지만, 방금처럼 갑자기 누군가 입에서 뿜어내는 물방울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자신의 내공으로 제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걸 아주 당연하게 해내는 시점에서 은약벽의 강함이 새삼스레 다시 느껴졌다.

독고령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자, 은약벽이 의뭉스러운 미소를 띄었다.


“그래서 대답은 안 하실 생각인가요?”
“무… 무슨 소리인지 전혀…”
“말했잖아요. 당신이 누구냐고요?”
“나… 나는 독고진의 딸, 독고령이다!”


독고령이 어떻게든 외치자, 하오문주가 두 팔을 탁상에 올리고 고개를 가까이하며 물었다.


“그럼 자당은 누구신가요?”
“어… 그…  모른다! 어릴  돌아가셔서…”
“태어난 곳은 화산이었는데 그럼 혼자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 화전민이 되어 밭을 일구며…”
“어머. 젖먹이 아이가 밭을 일굴 수도 있었나요? 보호자는 누구셨죠?”
“그… 근처에 나를 거둬주신 분이…”
“독고진 손님과는 언제 재회하신거죠?”
“요… 요 근래에…”
“그런데 수라나찰도법과 구양신공은 언제 들으셨죠?”
“만나고  뒤에…”
“거기까지.”

은약벽이 독고령의 완맥을 낚아챘다.

“움직이면 죽일 거예요.”
“그…”
“더 이상 그 되도않는 거짓말을 한 번만  해도 죽일테고요.”
“…”

독고령이 입을  다물고 있자 붙잡힌 팔을 통해 은약벽의 내기가 들어왔다.


‘… 시발.’


은약벽의 내기가 그녀의 몸을 샅샅이 휘젓기 시작하자 독고령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렸다.

결국 더 이상 숨길 겨를이 없음을 깨달은 독고령이 순순히 사실을 말하려던 순간.


“실은… 그… 내가…”
“이럴 수가…”
“…”


알아차린 것은 은약벽이  빨랐다.

“… 독고진 대협… 본인이었나요?”
“시발…”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을 하는 독고령을 보며 은약벽이 붙잡고 있던 완맥을 놓았다.

“… 어떻게 알았냐?”
“손님의 구양신공의 내기와… 막대한 음기. 저기… 음…. 잠시만요.”

갑자기 은약벽이 손을 들어올려 독고령의 말을 제지했다.

“제가 맞춰볼게요. 기다리세요.”
“…  봐.”
“만년빙옥은 취하셨죠?”
“어.”
“… 만년빙옥이 정말 신물이라 영향을 받으신 건가요?”
“아예 못 받았다고는  하겠군.”
“빙궁의 신물에 여인이 되는 사술이 걸려있는지는 몰랐네요. 그보다 절맥증 비슷한 무언가도 앓고 계시고요.”
“그… 하.”


독고령이 두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술  가져올 수 있나?”
“… 많이 필요해보이시네요.”

은약벽이 손을 휘둘러 허공섭물로 술병을 하나 가져왔다.

“손님께서 좋아하시는 오량주예요.”
“… 그거 말고, 백주는 없냐?”
“네?”
“… 이 몸이 워낙 쓰레기 같아서 술을  못 마시거든….”
“…”

은약벽이 아무 말 없이 새로운 술병을 가져왔다.

그녀가 독고령의 잔에 술을 따라주자 독고령이 한 번에 들이키고는 말을 시작했다.


“하아…, 시발. 그러니깐…”

독고령은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환골탈태, 위일청과의 만남, 모용세가와 있었던 일들을.




*


“크흑…! 그러니까안…! 시바아알…, 내가 그… 그 조그마한 년한테…!”
“… 취하셨군요, 손님.”
“아이씨!  봐! 나 안 취했어!!”
“…”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어느  연붕홍색의 머리가 된 독고령이 반 쯤은 울면서 은약벽에게 울부짖었다.

“시바아알…, 내가! 내가 그 음탕한 년한테 희롱당했다니깐?! 응?”
“… 관영이도 나쁜 뜻으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크흐흑…, 시바알. 내가 내공을 잃은 것도 좆 같은데… 어! 그런 꼬맹이한테…!”
“…”


가만히 놔두면 밑도 끝도 없이 주정을 부리겠다 판단한 은약벽은 내공을 끌어올리며 독고령에게 경고했다.

“… 가만히 계셔요.”
“응?”

퉁!


“우… 우웨에엑!”


은약벽이 강제로 그녀의 몸 안에 삼매진화를 일으켜 술기운을 다 태워버리자 독고령이 거하게 바닥에 게워냈다.

“끄으윽…, 고… 고맙다….”
“별 말씀을.”
“냉수 좀 주라.”
“여기 있어요.”

은약벽이 건네준 냉수를 벌컥이며 들이신 뒤, 독고령이 다시 이지를 되찾았다.

“… 추한 모습을 보였군.”
“더 추한 모습도 많이 봤답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네요.”
“… 시발.”
“후훗…, 천하의 독고진이 이런 어여쁜 소녀가 되었을 줄이야….”

은약벽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어여쁜 연분홍이네요. 음심이 끓어오…”
“다… 닥쳐!”
“… 하긴. 남성일 때도 이 쪽으론 전혀 관심이 없던 분이셨죠.”

은약벽은 내내 기분이 좋은듯 해실거리며 웃었다.

“참 재밌네요. 환골탈태로 남성이 여성이 되다니.”
“내공만 안 잃었다면 재밌었겠지.”
“어머…, 욕심도 많으셔라. 제가 봤을 때는 예전보다 더 좋은 육체인데요?”
“… 뭐?”


독고령으로선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하자, 은약벽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환골탈태를 한 무인의 육체를 직접 보는  처음이지만, 확실히 좋은 몸이네요. 기경팔맥을 막고 있는 탁기만 치운다면 세맥이 활성화되어있고, 근육의 질도 좋아보이고, 어떤 무공도 대성할 거 같네요. 무엇보다 정순한 음기도 있고요.”
“그것도 시발 끌어쓸 수가 있어야 쓰는 거지.”
“후훗, 손님께서는 참 남한테 관심이 없으시네요.”
“뭐가?”

은약벽이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허공섭물로 자신의 칠현금을 들고왔다.

“제가 뭐라 불리시는지 있으셨나요?”
“… 음존.”

음공(音功)을 쓴다고 하여 음존(音尊)이라 불렸지만, 음란하다(淫)고 하여 음존(淫尊)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이 은약벽이었다.

의외로 그녀는 자신을 음란하다 부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손님께서는 싫어하실지 모르지만, 음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기반으로 한 무공은 의외로 세상에 많답니다?”
“헛소리 아냐?”
“그럴 리가요.”

은약벽이 금을 튕기기 시작하자, 독고령의 등에 소름이 올라왔다.

“연주자는 악기에 감정을 실어야 일류랍니다. 현의 울림에 기다림, 슬픔, 애절함을 담는 것은 기본이죠. 그리고 당연히…”
“흐읏…!”


박자가 바뀌고는 요사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금의 소리를 듣는 순간, 또 다시 독고령의 하단전이 욱씬거리며 그녀의 머리가 분홍색으로 바뀌었다.

“음심을 싣는 것 또한 가능하답니다.”
“… 그 얘기를 왜…”
“보아하니 새로운 육체에 걸맞는 내공심법을 찾고 계신  같은데 배워보실래요?”
“어…?  꺼?”
“예.”

은약벽이 다시  번 현을 튕기자 이번엔 구슬픈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먼 길을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달을 쳐다보는 여인의 한이 실린 심법이랍니다. 음기를 다루는 데 참으로 최적화된 심법이죠.”
“… 이름이 뭔데?”
“월영신공(月影神功)이죠.”
“!!”

신공을 선뜻 가르쳐주겠다고 하자 독고령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그래도 괜찮은가?”
“물론이랍니다. 손님이 저희를 도와준 은혜가 있으니 이 정도야 베풀어드리죠. 다만…, 이 신공 또한 손님이 익혔던 구양신공처럼 문제가 좀 있어서요.”
“… 무슨 문제?”


은약벽이 금을 치우고는 자신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10성을 이루기 전까지는 정기적으로 양기를 취해주어야 한답니다? 안 그러면 음심이 통제가 되지 않아서 아무 남성이나 붙잡고 매달리게  답니다.”
“야… 양기라니…”
“쉽게 말하자면요…. 남성의 ‘정액’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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