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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6장. 하오문 산동지부 - (2) (40/225)



〈 40화 〉6장. 하오문 산동지부 - (2)

“관영.”
“예, 문주님.”
“독고령은 가짜입니다.”
“… 예?”


은약벽이 새로운 서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붓을 쥐고는 서책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며 담담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독고령은 섬서성 화산의 인근 지역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 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20여년 전에 광마 독고진이 그 인근에서 머문 기억이 없어요.”
“…”




독고령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기억은 흐릿해지기 마련이다’라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상대가 하오문주 은약벽이었다.


그녀의 기억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그저 그런 중소 문파에 불과했던 하오문을 고작 한 세대만에 개방에 비견될 정도의 정보조직으로 키워낸 것은 오롯이 은약벽의 공이었다.


“뭐…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여인과 하룻밤을 보냈다고 하면 말이 안  것도 없지만, 문제는 그 시기의 독고진은 약했단 말이죠.”
“그게 무슨…”
“독고진은 오로지 복수심만으로 강호 무림의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무인입니다. 말은 쉽지만 그 정도로 강렬한 분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무림에 흔치 않아요. 그러니 정점에 올라섰겠죠. 한 눈  성격이 아니예요.”

은약벽이 슬쩍 고개를 들어 은관영을 쳐다보았다.

“게다가… 잃을 게 하나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던 이가 알고보니 피붙이가 있다니요.”
“… 모르고 지내지 않았을까요?”
“그 쪽도 생각해봤지만 더더욱 말이  됩니다.”


은약벽이 방금까지 쓰고 있던 서책을 은관영에게 던져주었다.

“읽어보세요.”
“이건…”
“독고진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내용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서책에는 은약벽과 독고진이 나눈 대화가 빠짐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당문의 독강시에게 당해 눈이 손상되었죠. 당문도 참 대단하죠? 강시와 같은 자연의 이치에 벗어난 존재에 극양의 기운을  할 생각을 하다니요.”
“… 그래서 빙궁의 신물을 얘기하셨군요.”
“네.  그래도 새외무림 또한 언젠가는 다 멸망시켜야할 존재니 이 참에 손님의 눈도 고칠  겸사겸사 빙궁을 지워버리려고 했지요.”

서책을 읽는 은관영을 향해 은약벽은 말을 계속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딸의 이야기는 커녕 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요.”
“… 확실히 이상하군요.”
“20년이나 모르고 지냈던 딸을 우연히 만났다고 가정하면  사람의 성격 상 혼자 둘 리가 없죠. 무예를 모르는 자에겐 한없이 무른 사람이였으니깐요.”



은약벽의 말이 조금씩 빨라졌다.



“더군다나 병도 있는 자라고 들었습니다. 독고진은 신의와 안면이 있으니 당장 신의에게 찾아갔겠죠.”
“…”
“헌데 영약을 찾으러 간 손님은 행방불명, 그리고 그 곳에서 갑자기 독고진의 여식이라 주장하는 자가 나타나더니 무림맹은 추살령을 공표했군요. 20년을 숨겨왔다면 너무 허술하게 들통났군요.”




은약벽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아… 재밌어요. 너무 재밌네요.”
“…”
“독고진은 좀 있으면 독존을 죽이고 사천을 혼란으로 몰고 갈 패였어요.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독고진이 사라져버렸네요. 하!”



은약벽은 재밌다고 말하면서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모습을 보고 있는 은관영은 등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신경질적으로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짜증나는 것은 독고령의 존재 그 자체네요.”
“… 어떤 점이…”
“너무  같아요.”
“예?”




탕!




은약벽이 탁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 오만방자하여 예의를 모르는 말투하며 세상을 오시하는 듯한 태도,  던져주면 덥석 물어버리는 호승심, 보고 있으면 활활 타오르는 불을 떠올리게 만드는 눈매까지! 너무 진짜 같단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가짜인데.”
“…”


은관영은 그제서야 은약벽의 짜증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아차렸다.


어떤 상황을 당면해도 하오문주는 옳은 해답을 내놓는다.




그렇기에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하오문을 대형 문파로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답과 현실이 상반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분명 가짜라고 생각되는 독고령.


하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정말 독고진의  같은 독고령.



“관영.”
“… 네.”
“옥면공자와 독고령이 나눈 계약 내용이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수라나찰도법과 구양신공도 알고 있단 애기인데 진위여부는요?”
“위 대협께서 수라나찰도법은 확인하셨다고 했습니다. 진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 옥면공자는 독고진과 손을 섞은 적이 있었죠. 하아… 미치겠네요.”



은약벽이 몸을 크게 뒤로 젖히고는 쌓인 서책 위로 발을 올렸다.


조금은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은관영은 문주가 정말 많이 지쳤음을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일은 정말 오래간만이군요.”
“… 발이라도 주물러드릴까요?”
“그래주면 고맙겠네요.”
“넵….”

은관영이 은약벽의 옆에 잽싸게 달라붙어 그녀의 발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 죄송해요, 문주님. 안 그래도 바쁘신데 이런 문제까지 직접 나서게 되시다니…”
“관영, 내가 말했죠? 우아하게 수면을 떠다니는 백조의 아래는…”
“부지런히 발을 휘젓고 있음을 기억하라 이르셨죠.”
“잘 기억하고 있네요, 관영. 우리는 정보 조직입니다. 손님들은 우리에게 정보를 사러오죠.”
“… 네.”
“그러니깐 우리는 모르는  있으면 안 되요. 모르는 걸 티내서도 안 되고, 모르는 걸 알아내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상대가 알게해서도 안 되요.”
“그래야 손님이 저희를 경외하니깐요.”
“맞아요.  기억하고 있군요.”




그녀가 다시 몸을 일으키자, 은관영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은약벽이 다시 새로운 서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관영.”
“예, 문주님.”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세요. 차와 옷, 그리고 그동안 독고령을 관찰한 기록을.”
“… 독고령과 이야기를 나누시려고요?”
“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당사자와 모습을 드러내고 얘기하는 게 제일 편하겠네요. 진짜라면 춘부장과 제가 나눈 약속을  테니 호의를 살  있고, 가짜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심문하면 되니깐요.”
“네, 알겠습니다.”




은관영이 내실을 나가려던 찰나, 잠시 발걸음을 멈춰섰다.



“저… 문주님….”
“무슨 일인가요, 관영?”
“그… 독고 소저 말인데요오….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죠?”
“… 예의가 좀…”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아까 겪어봤으니 상관없어요. 사리분별도 못 할 정도만 아니라면 상관없어요.”
“… 사리 분별을 잘…”
“…”

은관영이 저렇게까지 말하자, 은약벽은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염두하죠.”
“… 네.”
“아, 그리고 관영.”




은약벽이 살짝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금(琴)을 하나 가져다주시겠어요?”
“아…! 네!”



은관영이 밝아진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은약벽은 다시 붓을 들고 서책을 펼쳤다.




*




한 편  둘이 어떠한 얘기를 나눈지도 모른 채, 독고령은 백리소현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독고령이 칼을 휘두른 뒤, 백리소현에게 물었다.



“그러니깐 이렇게. 어때?”
“…”
“왜 대답이 없어?”
“령 매.”
“어.”
“… 진짜 천재 아니야?”



백리소현의 입이 벌어졌다.



“어… 어떻게 알았어? 진짜 구결만 보고 마지막 절초를 떠올린거야?”
“그냥 딱 보면 나오지 않냐?”
“…”
“여튼 네가 좀 해 봐. 형은 대충 따라 했는데 내기를 어떤 경로로 다뤄야할지 감이 안 온다.”
“응. 그러니깐…”




그렇게 둘이서 한참을 사일검법의 마지막 절초, 후예사일의 완성을 위해 힘을 쏟고있는 와중 은관영이 찾아왔다.

“독고 소저.”
“어, 왔냐? 일 보러 간다더니…”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 뭐 잘못 먹었냐? 왜 이리 공손해?”
“간다고 하시면 일단 목욕부터 하시지요.”
“…”



갑자기 예를 차리며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은관영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찝찝했다.


“… 중요한 일이야?”
“네.”
“하아…, 둔치. 나머지는 나중에 하자. 어차피 막혀서 답이 안 나오기도 했고.”
“응. 잘 다녀와,  매. 나는 조금만 더 있을게.”
“그래. 안내해라, 하오문.”
“네.”
“…”




은관영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묵묵히 자신을 안내하자 독고령은 더욱 불안해졌다.


‘아니, 진짜 뭐가 있나?’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건 은호나 산동지부의 지부장 정도였다.

굳이 자신을 만나자고 하는 이유도 대충 자신이 광마 독고진의 딸이라고 그랬으니 인사치레나 하는 정도겠지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느낀 것은 욕실에 들어서는 순간이였다.



“… 뭐냐.”
“최대한 깨끗이 씻기도록.”
“”네!””


욕실엔 열 댓명 정도 되는 인물이 독고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야! 하오문! 너 무슨…!”
“어머, 참으로 예쁜 머릿결이군요.”
“살결도 보드라우셔라….”
“흐읏…! 어… 어딜 만지는거야!”
“이거 보세요. 머리색이 분홍색이랍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응? 아까는 붉지 않았나요?”
“캬아아악!!”

열 댓명의 여인에게 시달리며 정갈하게 목욕 재계를 마친 뒤에는 사람들이 들러붙어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고 이런저런 옷을 걸쳐봤다.




“이 색은 어떤가요?”
“이 쪽이 더 예쁠 거 같은데요.”
“아니, 그냥 대충 아무거나…”
“안 되요! 여성의 의복에 대충이라니요!”
“…”


그렇게 한참을 시달린 뒤, 한  연분홍으로 바뀐 머리카락이 다시 붉은 머리카락으로 바뀔 즈음 독고령은 그들에게서 풀려났다.

다시 은관영을 만나자 독고령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어이, 하오문. 시발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
“귀한 분을 만나러 가는 자리라 그래요. 예절은 못 챙기시더라도 의복 정도는 차려입고 가야죠.”
“뭔 시발 무림맹주나 마교주가 오더라도 이 지랄은  하겠다.”
“…”
“뭐야, 진짜 둘  하나라도 찾아왔어?”
“따라오시죠.”
“…”



입을 꾹 다무는 은관영을 보고 독고령의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감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 호랑이 굴에 기어들어가고 있나?’




지금이라도 몸을 내뺼까 싶어 뒤를 돌아보자 아까까지 자신의 의복을 입는 것을 돕던 10여 명의 여인이 미소와 함께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다.

“앞으로 가시지요.”
“… 시발.”


독고령이 툴툴대며 앞으로 나섰다.



어딘지 찝찝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하오문이다.




광마 독고진 시절 근 30년 간을 함께한 문파다.


입으로는 툴툴거리긴 헀지만, 적어도 그간 거래해 온 하오문은 신의를 아는 문파였다.


“… 이 쪽으로.”
“야, 하오문…. 정말…”
“따라오시지요.”
“…”


기루의 위로 오르는 계단이 아니라 아래로 향하자 독고령의 믿음이 금세 사라졌다.



하오문을 어줍잖게 아는 자들은 기루의 주인이 위 층에 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하오문을 제대로 아는 자들은 기루의 진정한 주인이 아래층에 기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역을 앞세워  층에서 만나게 하고 진짜 주인의 판단은 지하에서 하는 그 습성을 독고령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무슨 거물을 만나게 하려고 이러는거지?’



은호가 생각보다 대단했나 의문이 들던 와중,  앞에서 은관영이 멈춰섰다.

“독대를 원하셨습니다. 홀로 들어가시지요.”
“… 무슨 하오문주라도 만나…”



말을 하던 도중, 독고령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하오문주! 은약벽이 직접 온 건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체감되었다.


생각해보니 하오문주는 위일청과도 안면이 있고, 독고진과도 안면이 있다.

본인이 직접 못 올 이유가 없었다.



‘시발…, 조졌네.’

말  마디 없어진 자신을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와중에 독고진의 딸이라 자청하는 이가 등장했으니 직접 못 올 이유가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독고령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그… 내가 속이 좀…”
“…”
“혹시 변소가 어딨지? 내가 잠시 거길…”



드르륵.



아무도 손대지 않은 방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금을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갑자기 누군가 독고령을 떠민 것처럼 그녀의 몸이  안으로 튕겨들어갔다.




“크엑!”
“미안하군요. 도망치려는 거 같아서요.”
“…”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들자  곳엔 익숙한 얼굴의 한 여인이 금을 튕기고 있었다.

자신의 불안이 현실이 되자 독고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후훗, 만나서 반가워요. ‘자칭’ 독고진의 딸, 독고령 소저.”
“…”
“사람들이 저를 보고 일컫기를 음존(音尊)이라고도 부르고, 음존(淫尊)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이렇게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독고령을 방 안으로 끌어들인 것과 같이 허공섭물로 금을 치우고 일어서며 은약벽이 말했다.



“하오문주. 은약벽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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