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6장. 하오문 산동지부 - (1) (39/225)



〈 39화 〉6장. 하오문 산동지부 - (1)

“자, 이 분이 제 사형이자 하오문의 파수꾼! ‘은호’ 사형이랍니다?”

은관영이 거지를 가르키며 소개하자 독고령이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놈이?’

거지가 인피면구를 벗어던지고는 말을 꺼냈다.

“… 오랜만이야, 사매. 위 대협도 처음 뵙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은 소협.”


은호가 우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이자, 위일청이 웃으며 화답했다.

“옆에 계신 분은 백리소현 소저시겠군요.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저도요. 관영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은호의 피곤해보이는 눈이 독고령에게 향했다.

“저희 하오문의 은인이신 독고진 어르신의 따님이시라고요?”
“은인이었던 적은 없는 거 같은데?”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산동에서는 관영이와 함께 제가 모실 예정입니다.”

은호가 독고령의 퉁명스러운 대답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그녀의 마음 속에 의심의 꽃이 피었다.

‘… 저게 진짜 그 하오문의 파수꾼이 맞나?’

독고진이 이름을 아는 무인은 크게 두 종류였다.


정말 강해서 누구나 이름을 알 정도거나 독고진의 원수거나.

적어도 은호는 전자에 속하는 쪽이었다.

강호의 야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도 알 정도의 강자.


은호의 이름이 강호에 알려퍼진 것은 사파 때문이었다.

하류 인생들이 모여서 만든 문파인 하오문은 문도의 특성 때문에 유독 많은 시비에 시달렸다고  중에서도 특히 사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들이 운영하는 창관이나 도박장에서 일하던 자들을 문도로 받아들여 보호의 손길을 뻗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음이 당연했다.

사파는 하오문이 빼간 문도들에게 있지도 않은 빚을 지우고는 다시 내놓으라며 끊임없이 하오문을 괴롭혔고 때로는 무력행사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력행사를 막아낸 것이 은호였다.


하오문의 정보력으로 그들을 습격했거나 습격할 예정인 사파의 근거지를 알아내면 그 곳엔 반드시 은호가 찾아갔고 다음 날이 되면 그 근거지는 사라져있었다.

사파와 하오문의 분쟁은 결국  측의 우두머리인 하오문주와 구룡방주의 대결 끝에 하오문주가 승리하며 조용해졌으나 호사가들은  일전에 대해 논하기보다 은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길 더 좋아했다.

누구도 그 정체를 모르는 하오문의 비밀병기.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후기지수.

그게 바로 은호였다.


하지만 지금.

독고령의 눈에 비치는 자는 왜소하기 짝이 없었다.

축 처진 어깨, 피곤함에 거뭇해진 눈가, 생기없는 말투.


‘저 자가 정말 그 놈이 맞나?’

역시 강호의 호사가들 놈의 이야기는 믿을 것이  된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독고령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묘한 사내였다.

무림에서는 겉모습과 속내가 전혀 다른 이가 한둘이 아니었음을 독고령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고령의 열렬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은호는 나른한 말투로 위일청과 일행에게 말했다.


“마차를 준비해두었으니 일단 타시지요. 곧 제가 위장하고 있던 진짜 향주가 올 예정입니다. 그 전에 자리를 뜨고 싶군요.”
“그러시지요.”

은호가 은관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매, 마차를 몰아주겠어?”
“아…!”


은관영의 입이 잠깐 벌어졌다가, 닫혔다.

“네. 제가 몰게요오.”


마차로 향한 뒤, 은관영이 오랜만에 마부 허관영의 모습으로 변하고는 마부석에 앉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아?”
“잘 부탁합니다, 허 마부.”
“네엣!”


은관영의 채찍질에 말이 투레질을 하며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

“…”
“…”

마차 안은 갑갑했다.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앉아 서책을 보고 있었고 백리소현은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위일청 또한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눈을 감고 있었기에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 했던 독고령이 입을 열었다.

“은호, 맞나?”
“… 예.”
“너가 정말 하오문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걔가 맞아?”

그 말을 들은 위일청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하아…, 독고 소저. 예절 교육의 의미가 없어졌군요.”
“아이씨, 근데 궁금하잖아. ‘그 파수꾼’이라는데?”
“… 저는 파수꾼이란 말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매번 뒤처리만 하는지라…”


은호는 피곤한지 눈가를 매만지며 대답했다.

“그보다 저는 독고 소저가 궁금합니다.”
“내가?”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뭐?”
“출생지 말입니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셨습니까?”
“… 갑자기? 내 정보라도 캐내려드는 거냐?”
“예. 문주님께서 궁금해하시더군요.”
“…”


너무나도 당당하게 당신에 대한 정보를 알고싶노라 말하는 은호를 보며 독고령은 당황스러웠다.


그가 아는 하오문도의 인상은 대부분 은관영과 비슷했다.

어딘지 속을  수 없는 능글맞은 놈들의 집합소.

은호 또한 은관영과 마찬가지로 하오문주의 제자라기에 그럴 줄만 알았다.

“… 니네 문주님이 궁금해하면 내가 이것저것  알려줘야 하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문주님이 궁금해하시면 무림맹주의 오늘 식사 목록이나 마교주의 속곳 색깔까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저희 하오문도지요.”

은호의 눈이 독고령에게 향했다.

“보아하니 저에 대해 궁금하신 게 많으신 것 같습니다.”
“별난 새끼네, 이거.”
“제가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은호가 씨익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자 독고령의 피가 끓어올랐다.


‘한 번 붙어보고 싶군.’


은관영은 어디까지나 아니꼬와서 때려주고 싶었지만, 은호를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무인의 호승심이 샘솟았다.

하지만 금세 독고령은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는 우울해졌다.

‘… 이딴 쓰레기 몸으로 붙기엔 또 그렇고.’

또 다시 여인의 몸으로 변해버린 것이 원통해질 무렵, 은호가 갑자기 한 쪽 소매를 걷어올려 팔뚝을 내비쳤다.


“독고령은 사실 남자다.”
“뭐… 뭐?!”
“이거 보시지요.”

은호가 자신의 팔뚝을 가리켰다.

 모습을 본 위일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발진이 생겼군요.”
“예, 저는 태생적으로 거짓말을 못 합니다.”
“… 뭐?”


은호가 자신의 팔뚝에 일어난 붉은 반점을 긁적이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는 거짓말을 하면 이렇게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곤 합니다. 하나 더 해볼까요? 백리소현의 가슴은 매우 평평하다.”

은호의 팔뚝에 일어난 붉은 반점이 더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모습을 본 위일청이 은호를 제지했다.

“그 쯤하시지요. 괴로워 보이시는군요.”
“괜찮습니다. 익숙해서.”

은호가 다시 소매를 내려 팔뚝을 가리고는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저는 문주님의 명령을 반드시 수행하고 싶습니다. 허나 보시다시피 거짓말을 못 하는 몸인지라 정보를 캐내기엔 부적절한 몸입니다. 그래서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독고 소저.”
“해 봐.”
“제 질문에 하나씩 답해주시면 저도 독고 소저의 궁금증을 하나씩 해결해드리지요. 어떻습니까?”
“…”

독고령이 턱에 손을 얹고는 고심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해 될 것이 없는 거래이며 무엇보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지  한다는 점이 좋았다.

자신은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는 입장이였으니.


“그럼 독고 소저께서 먼저 질문하시지요.”
“너는 얼마나 강하지?”
“… 어려운 질문이군요. 소저께서는 무림맹의 강호 백대 고수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신, 선, 존, 제, 왕, 군, 성. 이거 맞나?”
“아시는군요. 저는 그 중에서 ‘제’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하…!”

당당히 자신이 노순평보다 강하노라 얘기하는 것을 보며 독고령의 피가 끓었다.

‘아, 젠장…! 뒤끝없이 싸울 수 있는 상대가 눈 앞에 있는데!’


독고령이 아무리 평생을 복수를 위해 살아왔던 복수귀라고는 하나 그 또한 무인이었다.

강자와 붙을 수 있다면 당연히 붙고 싶은 호승심 또한 존재했다.


더군다나 하오문은 자신과 인연이 있는 문파였음에도 이런 자를 몰랐다는 게 더 후회됐다.

“이제  차례군요.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음….”

독고령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섬서. 화산 인근에서 태어났다.”
“그렇군요. 다음 질문 하시지요.”
“광마 독고진과 싸울 경우 몇 수를 버티리라 예상하지?”
“… 어려운 질문이군요.”

은호가 잠시 고민하다가 신중히 대답했다.


“춘부장을 무시하는 발언은 아닙니다만, 음…. 제가 들은 정보를 기반으로 했을 경우 아마 30수 안에 제압당할듯 합니다.”
“30수라….”

상당히 겸손하게 말했다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적절한 답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채운 독고령은 이후 신나서 하오문에 도착하기까지 은호의 대답에 이리저리 대답해주었다.


물론 다 거짓말이였지만.




*


마차가 멈춰서고 문이 열리자 화려한 기루에 수없이 많은 기녀들이 나와 위일청과 일행을 맞이하였다.

“”귀인을 뵙습니다!””
“…  소협, 이렇게까지는…”

위일청이 당혹스러움에 은호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문주 님의 총애를 받는 분에게 허튼 대접을 했다가는 하오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이지요. 어서 내리시지요.”
“그래도….”
“기루는 비워놨습니다. 손님께서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대접할 것입니다.”
“하아….”


위일청이 곤란함에 한숨을 내쉬자 은호가 그를 설득했다.

“위 대협. 저희는 그저 할  있는 최선을 다하여 대협을 모시라는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 부디 거절치 마시지요.”
“…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문주님께 말씀드려 이런 과분한 대접은 삼가해달라 해주십쇼.”
“알겠습니다.”

은호가 머리를 숙이자 위일청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가 내리자마자 주변에 많은 기녀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바라는 것이 많은 눈초리였기에 그를 알아차린 은호가 위일청에게 귀띔했다.

“위 대협, 머무시는 도중 혹시 저희 아이들에게 은총을 내려주시면 기뻐할 것입니다.”
“… 저는 따로 거절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위일청이 백리소현과 은관영, 그리고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나는 괜찮아. 한동안 오라버니를 너무 많이 상대해서 조금은 쉬고 싶어….”
“저는 일이 많아서요오….”
“나는 왜 쳐다보냐, 새끼야?”


세 명의 동의를 얻은 위일청이 고개를 끄덕이자, 은호가 기녀들에게 눈치를 줬다.


“그럼 여독을 풀고 계시지요. 사매, 지부장을 만나러 가자.”
“네, 사형.”


은호와 은관영이 기루의 안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독고령이 다른 이에게 물었다.


“혹시 욕실은 어딨지? 몸을 씻고 싶은데.”
“아, 미리 준비해놨습니다. 이 쪽으로 오시지요.”
“령 매, 같이 씻을까?”
“싫어. 혼자서…”
“같이 씻자아~.”
“드… 들러붙지 마아!!”


독고령과 백리소현이 아웅다웅하는 것을 보며 위일청이 웃고있자 그의 옆에도 기녀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대협…, 소녀가 술을 대접해드리고 싶사옵니다.”
“저의  잔을 받아주시지요….”
“제가…!”
“한 분씩 천천히 받겠습니다.”
“그럼  쪽으로 가시지요.”


몰려드는 기녀들의 인파에 위일청의 신경은 금세 그들에게 쏠렸다.








기루의 지하로 은호와 은관영이 내려가자 그 곳에 모여있던 수많은 인파들이 멈춰섰다.

“소문…!”
“됐습니다. 인사는 생략하죠. 내실은 비었습니까?”
“예.”
“일들 보시지요. 관영이는 따라오거라.”
“네에….”

은호의 말에 다시 인파들이 일을 시작하였다.

은호가 내실로 들어서자 그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하며 나체가 되었다.


그의 몸이 꿀렁거리며, 관능적인 여성의 몸으로 바뀌자 은관영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 문주님.”
“내가  줄은 예상치 못 했나요?”
“…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마차에 올라타서야 확신했습니다.”
“후훗, 어떻게 알았나요? 얘기해보세요, 관영.”
“… 사형은 제게 마부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마부를 자처할 사람이지요.”
“영특하군요. 관영, 옷을.”
“네.”

은관영이 내실에 걸려있는 옷을 가져다 은약벽의 몸에 걸쳐주었다.

“은호는 다른 곳에 보냈답니다. 생각보다 요녕의 일이 커졌더군요.”
“그렇군요오….”


앞섶을 여미지 않은 채 상석에 앉아 보고로 올라온 서책들을 넘기기 시작하며 은약벽이 말했다.

“관영.”
“예, 문주님….”
“독고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신가요, 주관적인 평가가 필요하신가요?”
“둘 다 듣지요.”
“객관적으로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오래 살지 못 할 팔자입니다. 같이 지낸 이의 영향 때문인지, 악운이 좋아서인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로 오만방자합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한 자입니다.”
“주관적으로는요?”
“… 문주님께서 거둬주십사 청하고 싶습니다.”


은약벽의 손이 멈췄다.

“어마어마한 고평가를 하네요, 관영.”
“가진 바 재능이 너무 뛰어납니다.”
“흐음… 그런가요?”


은약벽이 두 팔을 탁자에 올리곤 턱을 괴며 말했다.


“관영.”
“예, 문주님.”
“독고령은 가짜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