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5장. 예절교육 - (6) (38/225)



〈 38화 〉5장. 예절교육 - (6)

잠에서 깨어난 독고령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또야?”


쓰러지면서 어디에 들이받기라도 했는지 머리가 깨질것만 같았다.

“아니…, 씹….”
“아, 독고 소저. 일어나셨어요오?”
“…”


자신을 반기는 은관영을 보는 순간, 의식을 잃기 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헐거벗은 백리소현.


그녀의 신체를 일일히 가르키며 어디를 만져아 기분이 좋아지는지 얘기하는 위일청.


그와 더불어 자신의 수음 방법을 공유해주는 은관영.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독고령이 얼굴을 붉히며 빼액 소리를 질렀다.

“으… 음탕한 년!”
“하아… 또 그러신다. 어제  배우셨으면서  그러셔요오. 음탕한 게 아니라니깐.”
“그… 그게 음탕한 게 아니라면…!”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빨리 정신차리고 짐을 챙기셔요.”
“뭐?”
“내려야해요. 산동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벌써?”
“네.  오빠는 소현 언니랑 벌써 밖을 구경중이랍니다?”


자신의 짐을 다 챙긴 은관영이 독고령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다가오자 독고령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왜… 왜! 가까이 오지 마!”
“이리 와보셔요. 내리려면 준비를 해야하니깐.”
“무슨…!”
“머리카락 색을 바꾸셔야죠.”
“… 뭐?”
“아잇 참. 독고 소저, 벌써 잊으셨어요? 소저는 지금 추포령이 걸린 몸이라구욧! 그렇게 티나는 머리색으로는 금세 들켜요오.”
“아….”


독고령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관영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왜요오?  뭔가를 기대하셨나요오?”
“허… 허튼 소리!”
“헤헷, 나중에 숙소를 잡으면   많이…”
“캬아아악!!”
“알았어요, 그만 놀릴게요오. 뒤돌아보셔요.”
“시발….”
“아, 욕도 줄이시고요. 이제 곧 제 사형제랑 만나니깐요.”
“하오문의 파수꾼?”
“네에. 당사자는  별명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요.”

은관영이 독고령의 머리 주변의 혈도에 내기를 흘리자, 그녀의 머리카락이 뿌리부터 분홍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다행이네요.”
“뭐가?”
“독고 소저의 머리색이 내공의 영향을 받는거 같아서요오…. 혹시나 싶어서 당부드리는건데 부디 밖에서 야한 생각은 하지 마셔요? 머리색이 갑자기 바뀌면…”
“죽엇!!”

독고령이 주먹을 휘두르자, 은관영이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 이거 보세요오.”

은관영이 자신을 손가락질하자, 독고령이 자신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았다.


또 다시 분홍색이 되었다.

“… 제발 진정하시고요. 아셨죠?”
“시바아아알!!!”

은관영은 스스로 말하면서도 ‘진정’이란 단어가 독고령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 나오셨습니…까?”

선실의 밖으로 나온 독고령을 바라보며 위일청의 목소리에 의문이 생겼다.

“… 왜 숨어계십니까?”
“그게 있잖아요오…, 독고 소저가 계속 위 오빠를 떠올리면… 컥!”
“다… 닥쳐!”


독고령의 주먹이 은관영의 옆구리에 박히자,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좀… 사람답게 지내시면  되나요오….”
“캬아아악!!”
“… 예절 교육이 다 의미가 없어졌어요오.”
“무슨 일이야, 관영아?”


백리소현이 다가와 은관영의 작은 체구 뒤에 몸을 숨긴 독고령을 바라봤다.

“령 매, 왜 그러고 있어?”
“그게 있잖아요오….”
“캬아악!!”
“…”


계속 발작하듯이 화를 내는 독고령을 보며 은관영은 백리소현에 전음을 보냈다.


[독고 소저가 위 오빠만 보면 머리가 분홍색으로 바뀌어서요오…]
[어머나]
[… 어떻게 하죠? 차라리 재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오?]
[부끄러워하는  귀여워서 보기 좋긴 한데…. 음….]


백리소현은 손가락을 뺨에 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독고령에게 다가왔다.

“령 매, 령 매.”
“한 번만 불러.”
“아예 분홍색 머리로 내내 돌아다니는 건 어때?”
“뭐?!”


독고령은 기겁했다.


타인은 그 의미를 모르더라도 독고령에게 있어서 이 연분홍색의 머리는 수치스러울 뿐이었다.

음심을 잔뜩 느끼고 있다는 증명과도 같았는데 이 머리로 돌아다니라니.

“둔치.”
“응?”
“미친 거냐?”
“히힛, 어차피 남들은 그냥 령 매의 머리를 보고 ‘예쁘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길걸?”
“…”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타오를듯이 붉은 머리와 이렇게 어여쁜 분홍색의 머리는 주는 인상이 전혀 다르잖아. 안 그래? 오히려 당당하면 무림맹의 사람들도 모를 걸?”
“아… 아니…. 하지만 어떻게….”
“내가 좋은 방법이 떠오른 게 있거든, 히힛.”


백리소현이 생글생글 웃었다.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게 분명한 그 상쾌한 미소를 보면서도 어째서인지 독고령은 불안해졌다.

“… 시발.”
“입은 다물고 있어야 되겠다, 령 매.”
“…”
“그러니깐…”


이야기를 다 들은 독고령은 백리소현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 거절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배를 가라앉히려는 듯이 날뛰었다.


하지만 결국 다른 수가 없었기에 그녀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백리소현의 말을 따랐다.


*




산동의 끝자락.


위해에 도착한 황보세가의 소가주, 황보윤은 부두에 앉아 질겅질겅 빙당후루를 씹고 있었다.


“…  짓거리를 정말 내가 해야하오?”


 하나의 빙당후루를 다 먹어재낀 황보윤은 자신의 옆에 앉은 거지를 바라보며 물어봤다.


“하아…, 맹의 령이 떨어졌소. 어찌 안 움직일 수가 있겠소.”
“내 솔직히 개방의 사결제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한마디 하겠소.”
“솔직함은 황보세가의 장점이지요.”
“나는 광마의 여식을 보더라도 딱히 사로잡을 생각이 없소이다. 오히려 몰래 식사를 대접하면 모를까.”
“크하핫, 역시 황보세가답소.”
“막말로 광마와 척을 먼저 진 것은 개방 아니오? 하오문과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정보를 주길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그 또한 맞는 말이오. 허나 소가주, 잊고 있는 것이 하나 있군.”
“그게 무엇이오?”

개방도가 자신의 허리에 묶인 4개의 매듭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척살령을 선포하신 것이 우리 방주, 묵선 어르신임을 잊으셨소?”
“… 그래서  이상하단 말이오. 묵선 어르신의 인품을 모르는 자가 강호에 어딨소이까?”
“나는 방주 님의 판단을 파헤치는 불경을 저지르기보다는 그냥 따르겠소이다.”
“하긴. 나도 우리 가주님이 당장이라도 누구의 목을 베어오라고 하면 그냥 가져다 바치긴 할테지.”
“아랫 것들의 삶이란  다 그런 것 아니겠소?”
“그도 그렇소. 아, 저기 배가 또 하나 들어오는군.”


황보윤이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멀리서 들어오는 배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오리까, 아니면 향주가 가겠소?”
“이전엔 내가 갔으니 이번엔 소가주가 다녀오시오.”
“그러리다.”

황보윤이 발에 내공을 불어넣고는 무릎을 구부렸다.


쾅!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날아올라 배 위로 안착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구의 사내가 떨어지자 선원들이 놀라 혼비백산하였다.

“흐… 흐어억!”
“맹에서 나왔소이다! 지금부터 배의 모든 분들은  모에게 적극적으로 협주해시길 바라오! 나로 말하자면…”

황보윤이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며 말했다.

그의 주먹이 때린 곳에는 황보세가의 상징인 우뢰(雷)가 수놓아져있었다.

“대 황보세가의 소가주, 황보윤이라 하오!”
“뇌… 뇌룡권성(雷龍拳星)!”
“부끄럽지만 그 이름이  모를 가르키는 별호요. 선장은 어딨소이까?”
“저… 접니다.”

뱃사람 중 하나가 앞으로 걸어나오자 그를 바라보며 황보윤이 물었다.

“혹시 이 배에 붉은 머리의 괄괄한 성격을 한 소저가 있소이까?”
“…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


파지직.

황보윤이 주먹을 쥐자 극에 달한 양기가 뇌기를 띄어 전기가 튀었다.


“본 모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뭔지 아시오?”
“모… 모르겠습니다.”
“흐릿한 것이오.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확실한 대답을 해주시오.”
“그것이….”


 때,  남성이 세 여인을 이끌고 휘적휘적 걸어나왔다.

“황보세가의 소가주를 여기서 뵙는군요.”
“… 누구시오?”
“부끄럽게도 강호에서는 ‘옥면공자’라고 불립니다.”
“…  대협이셨구려.”

황보윤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포권하자, 위일청이 상쾌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선장이 저 때문에 곤란해있는  같아서 이리 제가 나왔습니다.”
“무슨 말이오?”
“제 동료 중 하나가 분홍색의 머리를 띄고 있어서 헷갈릴 것 같군요.”
“하! 세상에 분홍빛의 머리를 한 여인도 있소이까?”
“저도 신기하더군요. 직접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러지요.”


황보윤이 위일청을 바라보자, 그의 뒤에서 부끄러움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여인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마… 만나뵈어 반갑습니다. 그…”
“빨리 말하시지오.”
“려… 령 아라고 하옵니다.”
“허어….”


자신을 ‘령 아’라고 소개한 여인을 보며 황보윤은 감탄했다.

‘저리 아름다운 여인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이나.’

황보윤 또한 명문세가의 자식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다른 세가와 많은 교류를 나눴고 그 중에는 강호에 미모로 자자한 유명한 여인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여인도 위일청이 데리고 있는 세 여인과는 비할 바가 안 됐다.

은색의 머리에 체구가 작지만 어딘지 소녀의 풋풋함을 간직한듯한 아리따운 소저.


밤 하늘과 같이 아름다운 검은 머릿결에 풍만한 여성의 상징을 보고 있자니 포근함을 느끼게 만드는 정숙한 소저.

그리고 연분홍색의 신비한 머리색과 함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것이 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워 끓어오르는 미음을 주체하기 힘들게 만드는 소저까지.


황보윤은 잠시 넋을 놓고 세 소저를 구경하다 자신이 온 목적을 깨닫고 다시 물었다.


“그… 성이 없소?”
“화… 화전민의 자식이옵니다.”
“아…, 미안하오. 내가 실례했군.”
“아닙니다….”

말 끝마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보윤의 가슴 한 켠이 간질간질했다.

‘어찌 저리 사랑스러운 여인이 다 있는가….’

절로 남성의 보호욕구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모습에 황보윤의 심장이 다 뛰었다.

“그런데  대협.”
“예.”
“… 왜 계속 령 소저의 손을 잡고 계신 것이오?”
“아…, 하하. 그… 소저가 낯을 많이 가립니다. 그렇다보니 제게서 떨어지려들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 그렇소?”
“예에. 그쵸, 령 아?”


위일청의 시선이 령 아에게 향하자 황보윤 또한 자연스레 그녀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음?’

 순간 그녀의 눈매에서 야수의 눈길이 보였지만 잠시 후, 그녀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ㅇ… 예에….”
“참으로 부끄러움이 많은 소저인 듯 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확인이 끝난 황보윤은 위일청에게 다시 포권했다.


“협조해주셔서 고맙소,  대협. 나중에 태산을 들릴 일이 있다면 꼭 황보세가를 찾아오시오.  번은 느긋하게 위 대협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군요.”

위일청 또한 그의 인사에 포권하며 답했다.

“하하, 제가 그리 갈 일이 있다면 꼭  번 그리 하겠습니다.”
“… 그럼.”

황보윤이 다시 배를 박차고 육지로 돌아가는 순간, 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시바아아알!!!”


분명 아까 봤던 연분홍 머리의 소저의 목소리인듯 했다.

하지만 황보윤은 이를 무시했다.

설마 그리 어여쁜 소저의 입에서 그런 흉한 말이 튀어나올까 싶었기에.


*

“죽여주마아…! 캬아아악!!”
“… 진정하시지요, 독고 소저. 덕분에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독고령이 살기가 담긴 눈으로 배의 돛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돛대에 머리를 들이박으려고 하자 급히 백리소현이 말렸다.

“령 매, 조금만 진정…”
“캬아아악!!!”
“위 오라버니.”
“수면향보다 차라리 아혈을 제압하는게…”
“캬아아악!!”

독고령은 방금까지 조신한 소녀를 연기하며 부끄러움에 죽을 것만 같았다.


더 짜증나는 것은 고작 위일청의 손을 잠시 잡고 있었다고 머리가 내내 연분홍으로 바뀌어 있던 점이었다.


‘내가… 내가 음심을… 시바아아아알!!!’

손만 잡힌 것만으로도 음심이 끓어오르는 음탕한 몸이 되어버렸단 생각에 독고령은 정신이 날아가다 못  허해졌다.


독고령의 눈이 어딘가 초점 잃은 동공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배가 부두에 멈춰서며  번 흔들렸다.


“령 매. 일단 진정하자…, 이제 육지야.”
“시바알… 나… 나느은….”
“응응. 다 알지. 령 매는 야한 아이가 아니야.”
“끄어어어….”
“…”

독고령의 정신이 날아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보고있다가 위일청이 고개를 돌려 은관영을 쳐다보았다.

“… 그나저나 은 소저.”
“네.”
“무림맹의 이목은 어떻게 속인 겁니까? 분명 제가 독고 소저와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을텐데요.”
“헤헷, 다 방법이 있지요. 아, 저기 계시네요.”


은관영이 배에서 내리자 허리에  개의 매듭을 묶은 거지가 다가왔다.

그를 가르키며 은관영이 소개했다.

“자, 이 분이 제 사형이자 하오문의 파수꾼! ‘은호’ 사형이랍니다?”
“…오랜만이야, 사매.”

개방도로 위장하고 있던 은호가 우울한 미소와 함께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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