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5장. 예절 교육 - (3)
위일청이 돌아온 이후, 독고령은 내내 불편했다.
괜히 그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빨리 뛰는 것이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 위 오빠. 제가 닦아드릴게요.”
“오라버니, 옷은 나한테 줘.”
“고맙습니다. 은 소저, 백리 소저.”
위일청이 옷을 벗자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자연스레 그의 옆에 달라붙어 손을 움직였다.
백리소현은 젖은 옷의 물기를 짜낸 뒤 벽가에 걸어두어 물기를 말렸고, 은관영은 수건을 가져와 위일청의 몸을 닦아냈다.
“헤헤…, 비가 오면 일찍 들어오시지 그러셨어요오.”
“그래도 세 소저께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듯 하여 제가 끼어들 틈이 안 보이더군요.”
“아니야, 위 오라버니라면 언제든지 끼어들어도 상관없어.”
“맞아요오. 그쵸, 독고 소저?”
“어?!”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독고령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어… 어. 그… 그렇지.”
“헤헷, 봐요. 독고 소저도 괜찮다고 하잖아요오.”
“후후, 알겠습니다. 다음부턴 그리하지요.”
여자가 셋이나 있는데도 위일청이 아무렇지 않게 옷을 훌러덩 벗어버리자 독고령이 빼액 소리질렀다.
“야… 야!”
“아, 독고 소저. 미안합니다, 방이 하나라….”
“어차피 언젠간 볼텐데 미리 봐두시는 건 어때요오?”
“으… 음탕한 계집 같으니라고!!”
“헤헷.”
독고령이 얼굴을 붉히며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나는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계속하여 거슬렸지만, 독고령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쳐다보며 그 소리를 무시하기 위해 애썼다.
“시발… 왜 선실은 하나만 잡은거야?!”
“미안합니다. 우리가 갑작스레 올라탄 손님이라 선실이 하나 밖에 없다더군요.”
“시발….”
“아, 독고 소저! 예쁜 말만 쓰시라니깐요오?”
“캬아아악!!”
“독고 소저, 옷을 다 입었으니 돌아보셔도 됩니다.”
독고령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뒤돌아보자 위일청이 옷을 다 입은 채 바닥에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처음부터 그러했다는듯이, 그의 좌우로 은관영과 백리소현이 위일청에게 팔짱끼고 앉아있었다.
“… 뭐하냐.”
“그냥 앉아있는데요오?”
“응응.”
“하아…”
독고령이 다가가 위일청과 마주 앉는 순간.
갑자기 은관영이 바닥을 내리쳤다.
탕!
“까… 깜짝이야!”
“독고 소저! 여인이 그렇게 앉으면 안 되지요!”
“ㅁ… 뭐?”
독고령은 평소 앉는대로 가부좌를 틀어 앉았으나 그 모습을 본 은관영이 질색했다.
“상스럽게! 그렇게 앉으시면 다리와 속곳이 다 보이잖아욧!”
“… 그럼 뭐?”
“가지런히 무릎을 받쳐 앉으시지요.”
“아니, 시발. 그냥 편한데로 앉으면 안 되냐?”
“안 됩니다, 독고 소저.”
은관영에게 한 말이었지만, 대답은 위일청에게 돌아왔다.
“왜 안 되는데?”
“… 독고 소저는 지금부터 자신을 숨기셔야 하니깐요. 그리고… 하아….”
“뭐, 새끼야.”
“앞으로도 이런 식이시면 저희는 이동 중에 내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특히… 검후님과 만나게 되면 정말 곤란해질테고요.”
“아, 시발.”
그제서야 독고령은 왜 이제와서 자신의 언행을 가지고 난리치는지 깨달았다.
절강성에 위치한 보타문의 문주, 검후(劍侯) 서교는 예의에 아주 민감한 여자였다.
남에게 예의를 강요하지는 않으나 예의의 기본이 안 되있는 자는 만나주지도 않기로 유명한 여자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일화가 황보세가주와의 다툼이었다.
황보세가주가 절강성을 지나며 보타문에 들렀을 당시 거대한 체구의 그는 발 밑을 신경쓰지 않고 문턱을 밟은 적이 있었는데 그를 본 검후가 끝까지 그를 만나주지 않았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했다.
‘성격이 아주 지랄 맞은 년이겠지.’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런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아다닐 정도라면 그녀는 확실히 독고령이 가장 싫어할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거기 도착하면 너한테 구결을 알려주든가, 아니면 그 구결이 필요한 아이를 밖으로 데려오든가.”
“… 단순히 그 문제 뿐만은 아닙니다. 이동 중에 문제가 생길 것도 염려하시지요.”
“아, 왜! 시…”
“어?! 지금 나쁜 말 하려고 하셨죠오?”
“… 간이 촉박한데 굳이?”
은관영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색임을 확인한 독고령은 억지로 말을 돌렸다.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은관영의 그 손짓에는 당하고 싶지 않았다.
독고령에게 선택지가 있다면 은관영에게 다시 애무당하는 것보다 분근착골을 선택할 것이 분명했다.
‘시발…, 그 짓거리를 또 당한다면….’
잠깐의 상상으로 독고령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고통이 낫지,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기분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독고령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일청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히려 이렇게 시간이 나는 시기가 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배 위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 것 없고, 산동으로 가는 1주일의 시간을 독고 소저에게 할애하려고 합니다.”
“… 차라리 무공에 대한 토론을…”
“그러려면 내공이 필요하시겠군요. 소녀경의 준비를…”
“예절 교육 좋지. 전부터 스스로의 품행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어.”
“…”
독고령이 소녀경의 이름을 듣는 순간 태도를 싹 바꾸는 것을 보며 은관영이 웃었다.
“후후훗, 그렇다면 저 은관영이 또 등장할 차례로군요!”
“나도 도와줄께, 령 매.”
“저는 두 분이 모르는 나머지를 맡겠습니다. 이 쪽으로는 저보다 나머지 두 소저께서 더 뛰어나시긴 하지만요.”
“하아….”
그렇게 독고령은 원치 않는 예절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
광마 독고진은 화전민의 자식이다.
처음 글자를 배우게 된 이유도 자신의 원수가 옷에 대문짝만하게 새기고 다닌 글자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배우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들의 위치를 찾기 위해 배우고는 했다.
그 후로 우연히 구양신공과 수라나찰도법의 비급이라는 기연을 얻은 후로 독고진은 그 책을 읽기 위해 글선생을 찾아다녔다.
이 글선생이란 작자들은 대부분 사파의 도박장에 찾아가면 있었다.
어줍잖게 글을 배워서 사파의 무인들에게 기생하며 무공을 배우지 못한 일반인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작자들이기에 독고진은 거리낌없이 그들을 고문하여 많은 글자를 배웠고 그 덕분에 글을 제대로 익혔다.
하지만 그 후로 독고진은 ‘사람다움’에 대해 배울 시간이 없었다.
사랑을 알기에는 복수심이 너무 컸고, 평화를 즐기기에는 독고진이 가는 곳마다 그 스스로 자신이 있는 장소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당연히 예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가 아는 예절이라고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희끗한 머리의 노인네들 중 무공을 배우지 못 한 자에게는 존댓말을 하고, 무공을 배운 새끼라면 자신의 원수들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따진 뒤에 조진다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그였기에 은관영과 백리소현에게 ‘제대로 된 예절’을 배우는 4일은 지옥 같았다.
‘시발…, 내가 당문의 그 좆같은 새끼들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독고령은 진심으로 당문 놈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며 사천에 천라지망을 펼쳤던 때가 그리워졌다.
일단 백리소현의 예절 교육은 당문이 날리는 비도보다 날카로웠다.
“령 매, 어깨는 항상 펴고, 다리는 좀 더 좁게 해야돼.”
“이… 이렇게?”
“아니. 좀 더 안으로….”
“어… 어딜 만지는 거냐!”
“안 만지면 모르잖아…. 령 매, 엉덩이는 흔들리면 안 돼. 천박해 보인단 말이야….”
“아니… 그…!”
백리소현의 말과 손은 독고령의 사혈을 노리는 것만 같았다.
가장 남의 손이 닿지 않았으면 하는 거북한 곳을 정확히 노려들어와 지속적으로 자세를 교정했다.
특히 허벅지 안쪽에 그녀의 손이 들어오자 하단전이 욱씬거리며 머리가 분홍빛을 띌 때마다 수치스러움에 죽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이었나 셀 수 조차 없었다.
“후후…, 령 매는 온 몸이 성감대구나?”
“캬아아아악!!!”
하지만 그런 백리소현도 은관영보다는 나았다.
은관영의 교육은 당문이 오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제조해놓은 독과 같았다.
그녀의 교육에는 역사가 담겨있었다.
“자, 걸어보세요.”
“…”
백리소현의 교육은 두루뭉실하기 짝이 없었으나 일반적이었다.
앉을 때는 다리를 벌리지 마라.
걸을 때는 일정한 걸음걸이를 유지하며 목을 펴고 턱을 당겨라.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인중을 쳐다봐라.
등등.
아주 기본적이지만, 독고진은 몰랐던 것들 뿐이었다.
허나 은관영은 기녀들이 모인 하오문의 소문주 후보답게 체계적인 교육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을 독고령의 어깨와 머리 위에 올린 것이었다.
“움직이다가 쏟으시면 실패에요오…. 그 상태로 선실을 한 바퀴 도셔야 성공이고요오….”
“이게 진짜 효과가 있다고?”
“항상 의식하면 되요오. 참고로 이건 하오문에 갓 입문한 문도들이 모두 받는 기초 중의 기초랍니다아?”
“… 씨.”
찰싹.
독고령의 입에서 욕지꺼리가 튀어나오려던 순간, 은관영의 손이 매섭게 움직이며 그녀의 엉덩이를 회초리로 때렸다.
“꺄악!”
쨍그랑.
“나쁜 말 할 때마다 회초리 맞을거예요오.”
“캬아아악!!”
“… 그 의미불명의 으르렁거리는 것도 추가할까요?”
“…”
독고령은 점차 은관영과 백리소현에 의해 길들여졌다.
난폭한 야생성은 인간다움으로 바뀌었고, 어디 누구 하나 죽일 사람 없는지 찾아다니는 것만 같던 살인귀의 눈빛은 표독한 여인의 눈빛 정도로 약화되었다.
타고난 미모가 있었기에 의복을 잘만 입혀두면 이름 있는 세가의 여식과 같은 기품을 가질 듯 했고, 무엇보다 무예의 재능이 뛰어났다.
환골탈태를 이뤄낸 후에 날카로워진 기감은 자신의 몸을 다루기 더 쉽게 만들었고, 처음엔 어려웠던 자세교정 또한 무공을 수련하는 일부라고 생각하자 금세 익숙해졌다.
‘이건 어디까지나 보법의 훈련이다….’
어느새 독고령의 어깨와 머리 위에 놓인 물 잔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녀의 걸음걸이는 기품있어졌다.
예절 교육이 길어질수록 독고령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광마 독고진’이 아닌 ‘여인 독고령’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것이 단 하나 있었다.
바로…
“하으읏!! 위… 위 오빠아… 더…. 더 깊게 찔러주세요옷…!”
“후우… 그러지요!”
“히아앙!!”
살과 살이 부딪히며 내는 철퍽거리는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애액 소리가 독고령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시… 시발! 좀…! 하루라도 쉬라고!!’
바로 남녀의 운우지락이었다.
은관영과 백리소현은 밤이면 밤마다 위일청에게 안겼고, 위일청은 그 둘을 거절하지 않았다.
위일청의 정력은 절륜하기 짝이 없어 한 번 관계를 갖기 시작하면 해가 뜨기 직전까지 이어졌고 백리소현과 은관영 둘 다 축 늘어지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첫 날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으나 두 번째 날 또 다시 이어지자 독고령은 이를 따졌다.
“저… 적당히 해, 이것들아!! 같은 방 안에서 남사스럽게…”
“어머, 독고 소저도 언젠가 하실 일인데요오? 미리 봐두시는 건 어떠세요?”
“맞아, 령 매. 우리 둘이서 감당하기엔 위 오라버니가 너무 절륜해서…”
“… 미안합니다, 독고 소저. 제가 익힌 심법이 특이해서…”
“캬아아아악!!!”
결국 독고령을 배려해준 위일청이 은관영에게 시켜 귀를 막을 무언가를 만들어주었으나 애석하게도 그녀의 기감은 아주 날카로워져 있었다.
귀마개를 귓구멍에 쑤셔박더라도 예민해진 독고령의 청각은 밤새 그 모든 소리를 들었고 매일 밤 이어지는 백리소현과 은관영의 교성과 열락의 냄새는 괜히 독고령마저 흥분되게 만들었다.
‘제발… 이제 그만…!’
“하으윽…! 이… 이제 그마안…! 위… 위 오빠아…!”
“크윽…!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으읏…!!”
은관영의 길게 이어지는 간드러진 신음 소리를 들으며 독고령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 끝났군.’
백리소현은 진즉에 기절한지 오래였고, 은관영마저 나가떨어졌으니 이제 곧 위일청도 잠에 들 것이다.
또 하루를 이렇게 넘겼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독고령이 본격적으로 잠을 청하려던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일청의 발소리를 들었다.
“… 독고 소저. 주무십니까?”
“…”
쿵. 쿵. 쿵. 쿵.
독고령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혹시나 호흡으로 자신이 안 자는 것을 알아차릴까봐 억지로 눈을 꼭 감고 있자, 위일청의 손이 가까워졌다.
‘아… 안 돼…!’
독고령이 잔뜩 몸을 움츠리며 긴장했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위일청의 손은 몸에 닿지 않았다.
“… 이불은 잘 덮으셔야지요.”
“…”
쿵. 쿵. 쿵.
조금씩 심장 박동 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우….”
잠시 후, 위일청이 잠에 들자 독고령이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보았다.
“…”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은관영을 자신의 품에 안은 채, 위일청이 잠을 자고 있었다.
백리소현은 독고령의 등 뒤에 있었고, 그녀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 본 독고령은 안심하며 몸을 돌렸다.
‘… 다들 자는군.’
모두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한 독고령은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계속 독고령을 신경쓰이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기에 그녀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존나 간지럽네.’
다리 사이가 간지러워 계속 두 허벅지를 비비고있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 독고령은 손을 바지 속으로 집어넣어 계속 간지러웠던 가랑이 사이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