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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4장. 청니와 - (4) (28/225)



〈 28화 〉4장. 청니와 - (4)

둘의 싸움이 길어지자, 백리소현은 어느새 자리를 비웠다.

빠악.

“이…!”


퍼억!


“좀… 쓰러져요옷!”


처음에는 서로의 무리를 나누는 전투였다.

독고령이 한 수를 펼치면, 은관영이 그 한수를 되받아치고.

은관영이 한 수를 펼치면, 독고령이 그 한수를 되받아치는.


매우 비무 다운 비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은 점점 개싸움으로 변했다.

“아악…!! 머리 잡지 마요오!!”
“네가…! 캬아악!!! 먼저 잡았잖아!!”


허리가 풀린 은관영의 기초 체력은 독고령보다 좋았으나, 첫 일격을 허용한 것이 너무 컸다.


초반에 시종일관 밀리던 것을 독고령보다 우월한 기초 체력으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었다.

반면 독고령은 원래부터 체력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둘  비틀거리며 힘 없는 주먹을 서로에게 날리고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도박판까지 열렸다.

“붉은 소저에게 두 냥 걸겠소!”
“작은 소저에게 세 냥!”

그리고 사람이 모여 시끄러워지자, 결국 방에 있던 위일청마저 그 소리를 듣고 나와 둘이 싸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 이게 무슨….”
“캬아악! 죽어엇!!”
“좀…! 쓰러져요옷!!”

서로의 머리칼을 붙잡고, 한 번씩 주먹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며 행인들이 환호했다.

“어지간한 사내 놈들보다 훨씬 사내다운 소저들이구나!!”
“멋있소, 붉은 소저!! 지지 마시게!!”
“체격이 다가 아니오!! 가호지세로 밀어붙이시게!!”


위일청은 혼란에 빠졌다.

‘아니…,  소저에게 분명 독고 소저를 맡겼거늘. 왜 둘이서 생사결에 가까운 싸움을 하고 있는건가….’

가만 놔두면 누구 하나 죽겠다 싶어서 위일청이 막으려는 순간, 누군가 그를 가로막았다.

“…  돼.”

백리소현이었다.


“… 백리 소저.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음…. 관영이랑 령 매랑 비무 중이야.”
“행인들은 또 뭐고요?”
“… 나도 잘 몰라. 자, 약방에서 약초들 사왔어.”
“하아…, 백리 소저. 지금이라도 말리는 게…”
“아니야.”


백리소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완고한 눈으로 위일청에게 말했다.


“… 지금 말리면 안 돼. 차라리 끝을 보는  나아.”
“…”
“안 그러면 둘이서 계속 싸울건데?”
“하아….”

그 때, 독고령이 몸을 비틀거렸다.


“커억….”

갑자기 무너지는 형체가 아무래도 다리가 풀린듯 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관영이 그녀의 턱을 노리고 아래에서 위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걸로 끄읕…!”

하지만 독고령은 무너지면서도 은관영의 옷깃을 붙잡고 자신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빠각!

“크헥….”

그 일격으로 은관영이 뒤로 넘어졌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주먹이 독고령의 턱을 살짝 스쳤다.


“케엑….”

독고령이 실 풀린 인형처럼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행인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누… 누가 이긴건가?”
“이러면 비긴게 되지 않는가?”
“어이, 도박꾼! 도박꾼은 어디 있지?!”
“승패가 갈리지 않을 경우는 어찌 되는겐가!!”


도박판이 벌어졌단 소리를 듣고 모인 행인들은 주최자를 찾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후우…,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싸움을 봤구려.”
“그러게 말이오. 피가 끓어오르는군.”
“나도 한 때 저런 싸움을 했었지. 비록 소녀의 몸이지만, 그 혼이 어지간한 사내들보다 뛰어난 자들이도다!”

어부들은 가슴 속에 깊은 감명을 얻은듯 저마다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고, 누군가는 쓰러진 독고령과 은관영에게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그 모든 광경을 보며 위일청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백리 소저.”
“… 응.”
“… 둘  챙겨서 올라가죠.”
“… 응.”

위일청은 고개를 들지 못 했다.

*

“으….”

온 몸이 욱씬거렸다.


 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고, 눈은 부어서 시야가 뿌옇게 가려졌다.


“아…, 으….”


독고령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누군가 천천히 그녀의 이마를 눌렀다.


“… 일어났어?”
“… 둔치.”
“조금 누워있어. 외상이 너무 심하데….”
“…”


그제서야 독고령은 떠올렸다.


“… 누가 이겼냐?”
“응?”
“내가 이기지 않았냐?”
“… 비겼어.”
“무슨…, 아아아….”


발작하듯 일어나려던 독고령이 통증을 느끼고 다시 누웠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백리소현이 향을 피웠다.

“… 마음을 진정시키는 향이래. 일단 가만히 있어.”
“시발….”
“후훗…, 이렇게 얌전히 있으면 참 예쁜데.”
“날뛰어 봐?”
“할 수 있겠어?”
“…시발.”
“히힛, 령 매는 할 말이 없으면 욕하더라.”
“닥쳐.”
“봐봐, 또 그런다.”


백리소현이 소소히 웃고있자,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 지랄 맞은 성격이니 그렇죠.”

독고령의 시야에 갑자기 은관영이 불쑥 튀어나왔다.

“… 몸도 약하면서 뭐 그리 무리하셨어요?”
“아… 아니. 네가 왜 살아서 걸어다니냐?”
“… 죽일 생각이셨어요?”
“그러려고 때렸지. 그럼 봐주면서 패냐?”
“으이구, 말하는  참 밉게 말하네요.”

은관영이 피식 웃었다.

그녀 또한 이곳저곳 얼굴이 멍이 들어있었지만, 누워서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독고령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아보였다.

“운기를 할 줄 아는 무인과 절맥에 시달리는 독고 소저의 몸이 같을 줄 알았어요?”
“… 시발.”
“또또. 할 말 없으면 욕부터 뱉으시네요.”
“너 코피 난다.”
“앗!”

은관영이 자신의 코에 손가락을 찍어 확인하더니, 울상을 지었다.

“히이잉…. 소현 언니이….”
“이리 와, 관영아.”
“흑흑….”
“지랄한다, 지랄을. 아아아….”

백리소현이 은관영의 코를 자신의 소매로 닦아줬다.

그 때, 객실의 문이 열렸다.

“… 일어나셨습니까?”
“여, 색마.”
“하아…, 진짜…. 독고 소저는 혹시 역귀입니까?”
“뭐, 새끼야?”
“잠깐 풀어두면 어디서 문제를 일으키시는군요.”
“내가…! 아아아…, 시발. 내가 아니라 하오문이 덤빈거거든.”
“하아….”


위일청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좀 그… 하아…. 아닙니다.”
“뭐, 새끼야?”
“… 은 소저는 잠시 저랑 얘기 좀 합시다. 백리 소저, 독고 소저를 부탁합니다.”
“응.”
“네,  오빠.”


은관영이 일어나 위일청을 따라 나가는 걸 보며 독고령이 물었다.

“야, 둔치.”
“… 응?”
“… 내가 이긴  맞지?”
“그게 중요해?”
“… 하긴.”

독고령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새끼, 좀 치더라.”
“… 후후훗.”
“왜 웃냐?”


백리소현이 실실 웃더니 독고령의 옆에 누웠다.


“…  매. 지금 못 움직이네?”
“또 뭘…”
“내가 빨리 나으라고 안아줄게.”
“아, 좀…! 아아아…, 아파. 아파아파아파.”
“후후후, 빨리 나아라. 빨리 나아~.”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옆에서 계속 웃고 있었다.


아마 이 광경이 꿈에 나올 거 같다 생각하며, 독고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



“… 죄송해요오.”
“하아…, 아닙니다.”

위일청의 객실에 들어가자, 은관영은 일단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 어떻게  일입니까? 아니…, 그보다. 둘이 그렇게 과격하게 붙을 이유가 있었습니까?”
“독고 소저가아… 계속 저를 도발하니까안….”
“하아….”


위일청의 머리가 지끈지끈 쑤셨다.

“… 앞으로도 계속 싸울겁니까?”
“그건 아니고요오….”

은관영이 슬쩍 위일청의 눈치를 살피며 한 마디 덧붙였다.


“… 독고 소저가 더 안 덤벼들면요오….”
“… 무공도 안 배운 소저입니다.”
“마… 말도 안 돼요! 이거 봐요!”

은관영이 자신의 상처를 가르키며 말했다.


“아니…, 주먹이 정확히 딱! 혈도를 노리고 들어온다니깐요?!”
“… 절맥을 앓는 여인이기도 하고요.”
“절맥이 언제부터 저렇게 쌩썡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 되었나요오….”
“하아…, 그러게 말입니다.”

위일청 또한 궁금했다.


그는 살면서 총 세 명의 절맥증 환자를 만나보았다.

하나는 백리소현, 두 번째는 보타문에 있는 검후의 제자,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독고령이었다.

백리소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가누는 것 조차 힘들어했다.


보타문에 있는 검후의 제자 같은 경우, 세 번 이상 검을 휘두르면 지쳐서 식은 땀을 흘리고는 했다.

근데….

‘독고 소저는 왜 저렇지?’

혹시 자신이 병을 잘못 파악한 게 아닌가 싶어 위일청이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런 그의 속내를 모르는 은관영은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실망하셨을까? 실망하셨겠지?’


자신을 믿고 부탁한 건데 그걸 지키기는 커녕, 오히려 가르칠 대상과 쌈박질을 했다.


은관영이 스스로 생각해봐도 너무 터무니 없었다.

‘… 버림 받을까?’


위일청이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혹시나 이번 사건으로 실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걱정이 점점 커져, 은관영의 가슴을 옥죄었다.

결국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흑… 흐윽….”
“은 소저…?”
“죄송해요오…, 제가 잘못했어요오….”
“… 저 화 안났습니다, 은 소저.”
“그… 그치마안….”
“… 이리 와요.”

위일청이 은관영에게 손짓했다.


그 손짓을 보고도 우물쭈물하는 은관영을 보며 답답해진 위일청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껴안았다.

“하아…, 은 소저. 왜 울고 그러십니까….”
“…죄송해요오.”
“… 뭐가 죄송하단 말입니까. 그냥 치고 박은 거잖아요.”
“… 실망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왜 은 소저에게 실망합니까. 그 동안 도와준 게 얼마인데.”

위일청이 은관영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며 달랬다.


“… 독고 소저가 조금 괴팍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히끅…, 걔가요?”
“전에 백리 소저가  보였을 때 화내는 걸 봤지 않습니까. 만난지 얼마 안  사람에게 그렇게 정을 붙이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귀는   서툴 뿐이죠.”
“…”
“저는 은 소저 또한 독고 소저와 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은 소저에게 독고 소저를 부탁한겁니다.”
“… 죄송해요오.”
“뭐가 죄송하다는 겁니까? 못 친해질 거 같나요?”
“… 그건 아닌데에…, 독고 소저가 워낙 저를 싫어하니깐….”
“…”

 말을 듣고, 위일청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그렇던가요?”
“… 아냐.”

백리소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독고 소저는요?”
“… 재웠어. 안 그러면 계속 날뛸까 봐.”
“잘 하셨습니다.”

위일청의 품에 안겨있던 은관영이 고개를 돌렸다.

“소현 언니이….”
“… 왜 울고 그래, 관영아.”
“히이잉….”
“뚝.”

백리소현이 위일청과 같이 은관영을 안아주며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 령 매는 그냥 관영이한테 이기고 싶은 게 다인 거 같았어. 이젠 그것도 크게 집착 안 하는 거 같고.”
“네…?”
“자기 전에 관영이 얘기하면서 웃더라. 잘 싸운다고.”
“하…, 무슨….”

은관영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마치 독고령이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가 아닌가.

자신은 그래도 10년간 박투술을 익힌 무인이다.

오히려 그럼 자신과 비등하게 싸운 그녀가 더 대단하거늘.

“… 독고 소저도  싸우던데요.”
“봐봐, 이렇게 서로 인정해주면 좋잖아.”
“… 싫어요.”
“그럼 위 오라버니가 싫어할텐데?”
“…”


은관영이 위일청을 쳐다보자, 그가 장난스럽게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두 분이 계속 싸우시면 저는 싫을 거 같군요.”
“… 히이잉.”


은관영이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 알았어요오…. 알아서 기어다닐게요오….”
“… 응?”
“어차피 비긴 싸움이잖아요오…. 내가 독고 소저를 조금 깍듯이 대하면 되죠…. 그 쯤이야 뭐.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어요오….”

은관영이 위일청의 눈치를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  오빠한테 막말만 안 하면요.”
“… 힘들어 보이네요. 하지만 걱정마세요, 은 소저. 독고 소저에게는 산동으로 가면서 예절도 좀 알려드릴테니깐요.”
“… 알았어요오….”

살짝 침울해진 은관영을 보며, 백리소현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 그럼 독고 소저도 관영이 소원 들어줘야겠네?”
“아, 맞아요! 비긴 거니깐 서로 들어주면 되겠네요!”
“… 둘이 내기라도 했습니까?”
“네! 제가 지면 제가 독고 소저한테 알아서 기어다니기로 했어요.”
“… 은 소저는요?”

그러자 대답은 백리소현이 했다.


“…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고, 관영이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아…, 방중술을 부탁했던 거 말이군요.”
“네, 맞아요!”


은관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위 오빠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게 만들어 놓을게요! 소현 언니한테 배운 것 처럼요!”
“후후…. 나도 도와줄게, 관영아.”
“헤헷. 네, 언니.”

은관영과 백리소현이 웃는 것을 보며, 위일청 또한 미소지었다.

“예,  분이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처녀를 받기 전에 독고 소저가 어느정도 성에 익숙해지는게 우선이니깐요.”
“… 응.”
“네! 이번엔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욧!”

그렇게 독고령이 모르는 곳에서 그녀의 스승이 될 여인이 두 명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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