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4장. 청니와 - (1) (25/225)



〈 25화 〉4장. 청니와 - (1)

양유맥을 개통한 이후, 독고령은 몸이 좋아질 줄 알았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 졸려 뒤지겠네.’

지금까지 시체와 같이 죽어있던 몸에 양기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피곤함이 더욱 자주 느껴졌다.

일단 심법을 고르지 못한 지금.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양기의 량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자 은관영의 등에 안긴 채, 여러 번 양기를 움직여보았다.

하지만 하단전에 자리잡고 있는 음기가 얼마나 괴팍한지, 조금만 양기를 운용하면 바로 위로 올라와서 양기들을 잡아먹곤 했다.

일반적으로 음기는 여성, 밤, 오행의 물(水),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면

양기는 남성, 낮, 오행의 불(火), 생명과 연관이 많았다.

양기가 넘치는 인간일수록 생명력이 넘치기 마련이였지만, 그 양기를 조금만 움직이면 금세 하단전의 음기가 죽어라 양기를 잡아먹고는 하니 독고령의 피로감만 늘어났다.

‘… 조금만 더 졸까.’

하지만 그녀의 바램과 달리 반 쯤은 졸면서 은관영의 어깨에 매달려있던 독고령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 령 매. 일어나.”
“응?”
“… 도착했어.”
“벌써?”

독고령이 은관영의 등을 툭툭 치자, 그녀가 독고령을 내려주었다.

“히이잉~. 저를 아직도 허마로 부리시나요오….”
“새끼야, 말이 얼마나 착한 짐승인데 너를 말에 비교하냐.”
“너무해요…, 흑흑.”


은관영이 우는 척하며 두 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위일청에게 스리슬쩍 달라붙었다.


그런 은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일청이 말했다.


“힘내시죠, 은 소저.”
“흑흑…,  오빠아….”
“어이구, 지랄났다. 지랄났어….”


위일청에게 안겨 자신의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은관영을 보며 독고령이 혀를 찼다.

“하오문주의 소문주는 연기력으로 뽑냐?”
“… 덕목 중 하나죠.”
“엥?”
“그리고 하오문주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안목이라고요! 독고 소저는 하오문에 대해서도 잘 모르시면서….”
“콱 씨, 뒤질라고.”

독고령이 주먹을 쥐어 어깨 위로 들어올리자, 은관영이 잽싸게 위일청의 등 뒤로 숨었다.


“왜… 왜요! 맞잖아요! 저보다 하오문을  아시는 건 아니잖아요?!”
“… 색마. 나와라. 내가 지금  년에게 복수전을 치뤄야겠어.”
“두 소저 다 진정하시고….”

그 때, 은관영이 얼굴을 쭉 내빼고는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메-.”

은관영이 자신의 눈을 손가락으로 잡아 내리면서 혀를 내밀자, 독고령의 머리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 하하…. 하하하…. 내 인생의 반도  산 것 같아보이는 핏덩이가…”
“헤헷,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시면서 그러세요? 언니 소리가 듣고 싶으신거예요?”
“… 뒤졌어!”

독고령이 졸면서 양기를 계속 움직인 이유는 자신이 얼마 만큼의 양기를  수 있나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독고령은 그 적정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양유맥을 통해 몸에 도는 양기를 빼서 오른쪽에 담아 은관영에게 내지르는 순간.

“그만 하시죠.”


위일청이 독고령의 손을 금나수로 붙잡았다.

“ㄴ… 놔!”
“… 은 소저랑 더는 안 싸우겠다고 약조하시면요. 그리고  소저도 그 쯤 하시죠.”

은관영 또한 독고령에게 순순히 맞아줄 생각은 없었는지 어느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위일청의 제지를 들은 은관영은 손을 내리며 자세를 풀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저는  오빠 말은 잘 듣는 착한아이니깐요!”
“…”
“하지만  오빠가 저런 망나니와 같이 다니는 이유는  모르겠네요!”
“하아…, 은 소저.”

위일청은 은관영을 말리면서도 독고령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독고령은 팔을 휘둘러 연검을 꺼내들었다.


챙.


“… 가만히  놔두마.”
“여튼 저는 먼저 가서 객잔을 잡을게요! 본문에 보고도 해야해서 이만!”
“거기 서!!”
“메-, 잡을 수 있으시면 잡아보시던가요.”
“캬아아악!!!”


은관영이 경신술을 이용해  멀리 도망치자, 독고령은 분한 마음에 바닥을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시발!! 내가 저런 어린 년한테 놀아나다니… 갸아아악!!!”
“… 독고 소저도 좀 진정하시고….”
“진정?! 내가 지금 진정….”


털썩.


갑자기 독고령이 바닥에 쓰러지며, 그 뒤에서 백리소현이 튀어나왔다.

“… 혈도를 제압했어.”
“…  하셨습니다. 일어나면 그냥 기절하신 걸로 하죠.”
“… 응.”


위일청이 독고령을 들춰메고는 은관영의 뒤를 따라갔다.





‘… 시발.’


요즘 따라 자주 기절한다 생각하며 독고령이 몸을 일으켰다.

‘아, 시발…. 마지막에 분명 누가 뒷목을 친 거 같았는데….’

혹시 혈도를 제압당했나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머리에 열이 너무 올라 그냥 쓰러진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지금의 몸이 워낙 유약하다보니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 시발.”
“… 독고 소저는 말을 조금 곱게 하셔야해요.”
“… 네가 왜 여기 있냐?”
“같은 방을 쓰니깐요?”

은관영이 뒤돌아보며 독고령에게 말했다.


“지금 아직 서신을 덜 썼으니깐, 조금만 조용히 있어주세요.”
“이게…!”
“하아…, 독고 소저.”


은관영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저는 약자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어요. 정말로요.”
“내가 약자라고?”
“네. 독고 소저는 약자예요. 소현 언니보다도 훨씬 약하고, 저잣거리의 삼류 무인들보다 약해요.”
“뒤질라고…!”

독고령이 손을 뻗는 순간, 그녀의 시야가 한 바퀴 돌았다.


콰당!

어느 새, 독고령은 바닥에 쳐박혀 은관영에게 완전히 제압당해 있었다.

“크윽…!”
“이거 보세요. 내공만 쓰면 독고 소저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예요. 내력이 너무 약하잖아요.”
“끄으윽…!”
“이해가 안 가네요. 위 오빠는 도대체 왜 독고 소저에게 목숨을 거나 모르겠어요.”
“너…! 진짜 내가 반드시…!”
“여튼 위 오빠가 독고 소저의 편에 선 이상, 저 또한 독고 소저와 같이 행동할 거예요. 하지만.”


은관영이 독고령의 귀를 살짝 깨물었다.

“꺄항!”
“어머, 귀여우셔라. 아무튼 더 이상  오빠와 저희 하오문을 모욕하는 언사를 한다면 저는 못 참아요.  오빠에게 조금 미움받더라도 독고 소저를 괴롭힐 거예요.”
“이익…!”
“그러니깐 오늘은 여기까지만.”


은관영이 독고령을 풀어주었다.


독고령이 다시 자세를 잡고 그녀를 노려보자, 은관영은 여유로운 미소를 보여주며 그녀에게 웃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덤비셔도 되긴 하지만, 많이 아플 거예요?”
“… 너 뭐야?”
“말했잖아요, 하오문의 소문주 후보. 은관영이라니깐요?”
“…”

독고령은 당황했다.


그 동안 그녀가 보여준 얼빵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은관영이 살기를 띄며 말했다.

“위 오빠에게 한 번만  결례를 범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
“그럼 더 이상 방해하지 마세요오, 알았죠?”

은관영이 다시 평소의 얼빵한 모습으로 돌아온 뒤, 독고령에게 등을 보이며 서신에 집중했다.

그 모습을 한참 노려보던 독고령은 주먹을 바닥에 내려찍었다.


쾅.


“… 시발.”


독고령이 밖으로 나가자, 은관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아…, 위 오빠도 하필 왜 저런 여자를 주워서 고생일까요오….”


은관영이 기지개를 펴다가 그대로 바닥에 눕고는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그녀의 손이 꿈틀거리더니 잠시 후, 평소의 고운 손이 아닌 흉측한 화상을 입은 손이 드러났다.


그 손을 매만지며 은관영이 중얼거렸다.


“위 오빠…, 위 가가….  상공…. 꺄아악!!”


부끄러움에 은관영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바닥을 뒹굴거렸다.

그러기를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은관영은 다시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

쏴아-. 끼룩끼룩.

바닷가에 나와 바다소리를 들으며 독고령이 앉아있었다.


‘… 시발.’


자신의 처량함이 평소보다 훨씬 쓰게 느껴졌다.


한 번 손을 섞어본 은관영은 확실히 뛰어난 무재를 가지고 있었다.

박투술을 오래 익힌 게 티나기도 했으며 제법 무리가 깊어보였다.

드문드문 그녀가 광마였던 시절 맞붙었던 소림의 백팔나한장이 떠오를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

하지만 그냥 얼빵한 년인 줄로만 알고 있다가 이런 수모를 당하니 독고령은 속이 쓰렸다.

무력감. 패배감.


오랜만에 느껴본 감각들이었다.


“에잇, 시발.”
“… 령 매.”
“우왁, 시발!”
“…   곱게 써어.”
“… 너까지 그러냐?”


독고령이 툴툴대자, 백리소현이 물었다.

“관영이가 때렸어?”
“응?”
“… 아니야?”
“… 봤냐?”
“…!”

백리소현이 잠시 멍하니 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반응 존나 느리네 진짜!”
“… 관영이가 사고칠 줄은 알았는데 벌써 그랬을 줄은 몰랐어.”
“뭐?”
“…”

백리소현이 독고령에게 다가오자, 그녀가 질색하며 뒷걸음질 쳤다.

“또 껴안으려고 그러지?”
“응.”
“아, 시발. 좀! 제발!”
“… 싫어?”
“아니, 그… 굳이 맨날 껴안고 얘기해야해?”
“… 응.”
“시발! 시발시발시발!!”
“… 얌전히 안겨있으면 관영이 얘기해줄게.”
“응?”


백리소현이 다시 한 번 말했다.


“… 얌전히 안겨있으면 관영이 얘기해줄게.”
“무슨 얘기? 약점?”
“음….”


백리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약점….”
“안아라.”

독고령이 두 팔을 벌리자, 백리소현이 그녀의 뒤로 들어가 독고령을 껴안았다.


그리고는 모래사장에 앉아, 독고령의 머리 위에 자신의 턱을 올렸다.

“후후후…,  매.”
“얘기나 해, 빨리.”
“… 음.”

백리소현이 잠시 입을 벌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 장난치냐?”
“아니. 음…, 내가 이야기를 잘 못 해서….”
“아무튼 얘기해 봐. 약점은 내가 알아서 파악할게.”
“… 관영이는 창녀의 자식이야.”
“…”

독고령의 입에서 시발 소리가 나오려다가 들어갔다.

아니, 약점 얘기를 해준다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관영이는 아빠가 누군지 모른데. 엄마랑 태어났을 때부터 내내 기루에서 자랐어. 아마 기루의 손님 중 하나가 아버지였겠지.”
“…  얘기를 내가 꼭 알아야 해?”
“응. 관영이는  오라버니랑 계속 붙어있을거니깐.”
“아니…, 개인사잖냐.”
“상관없어. 관영이는 좋아하는 얘기야.”
“…”

은관영도 상당히 미친년이구나 생각하며 독고령이 백리소현에게 이야기를 더 하라고 손짓했다.


“음…, 그러던 어느 날. 관영이의 어머니가 손님에게 돈을 못 받았어.”
“…”
“그 손님이 무인이였나 봐. 호위들이 손님에게 돈을 받아내려다가 역으로 당하자, 결국 그 돈을 받기를 포기했나 봐.”
“… 근데?”
“관영이가  손님한테 돈을 받으러갔어.”
“하아….”

독고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주 좆같은 비극 중 하나였다.


“… 손님은 전낭을 화로에 집어던지고 가져가라고 했지. 관영이는 그걸 꺼냈데.”
“화상을 입었겠군.”
“… 응. 그래서 하오문에서 축골공을 배웠다고 하더라.”
“그런데  얘기를  계속 하는거지?”
“…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야. 이 때,  모습을 보고 한 남자가 나타나서 외쳐.”

백리소현이 남자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손을 뻗었다.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무공을 익힌 자가 한낱 어린아이를 핍박하는가! 하면서.”
“그 사람이 은관영을 도와준거야?”
“응. 관영이의 어머니한테 돈도 돌려주고, 그 무인을 혼쭐내기도 했지.”
“…”

독고령은 이야기의 흐름상,  남자가 아는 사람 같았다.

“그 때 나타난 남자가 색마겠군.”
“… 응. 이후에 위 오라버니가 관영이를 하오문주에게 데려다주었어.”
“색마가 강호 초출 때 얘기냐?”
“응.”

그 말을 듣고, 독고령은 은관영에 대해 조금 이해가 갔다.

‘… 조금은 나랑 닮았군.’


은관영이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얼마나 뼈를 깎는 수련을 했는지 알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녀의 자식이 어느새 하오문의 소문주 후보까지 올라갈  없을 터였다.


“… 관영이한테 위 오라버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야. 아마 하오문과 위 오라버니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위 오라버니를 고를 정도로.”
“… 그렇겠네.”
“그러니깐 관영이 앞에서는 위 오라버니에 대해 말하는 걸 조금 조심하면….”
“결국 색마가 문제네.”
“… 응?”

독고령이 일어나며 백리소현의 품에서 벗어났다.


“지금 바로 색마를 만나러 가마.”
“… 왜?”
“뭐긴 뭐야.”

독고령이 씨익 웃었다.

“내가 은관영을 조져놓겠다고 얘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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