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화 〉3장. 파저강 - (7) (23/225)



〈 23화 〉3장. 파저강 - (7)

독고령의 의식이 돌아오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흔들림이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조금씩 흔들거리는 편안함.

‘… 머리 아파….’

머리가 깨질  같은 고통과 함께 독고령이 움찔거리자, 그녀를 안고 있던 거한이 먼저 반응했다.

“오, 독고 소저가 일어났나봐요.”
“… 령 매, 정신이 들어?”
“… 어.   줘봐.”
“여기.”


독고령을 안고 있던 거한이 그녀를 바닥에 내려주자, 백리소현에 물을 건네주었다.

물을 받는 순간, 독고령이 백리소현을 노려보았다.

“먼저 마셔봐.”
“… 이번엔 아무것도  넣은거야. 진짜로….”
“…”


독고령이 잠시 그녀를 노려보다가, 이내 물을 들이켰다.

시원한 물이 목을 넘어가자, 독고령의 정신이 돌아왔다.

“푸하…, 살  같네.”
“헤헤, 괜찮아요? 독고 소저?”
“… 너 하오문이지?”
“네, 관영이랍니다~.”

수염이 숭숭난 거한이 한  눈을 찡그리며 혀를 내밀었다.


 모습을 보자, 독고령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 개 같은 짓거리를 한 번만 더하면 다음엔 눈을 파주마.”
“히이잉…. 너무해요오….”
“농담 같지? 또 해봐, 아주 그냥 콱….”

 때, 독고령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가 잽싸게 주변을 살펴보자, 어디에도 위일청은 없었다.


“아,  오빠는 추격대를 막으러 가셨어요. 소저 덕에 엄청나게 내공을 회복하셨다고…”
“캬아악!! 닥쳐! 아무 말도 하지 마!!”
“… 히잉.”
“그 짓거리 한 번만 더 하면 눈을 파버리겠다고 했지?”
“… 미안하오, 소저.”

은관영이 목소리를 내려깔고 외형에 어울리는 걸걸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래서. 우린 어디 가는거야? 청니와… 맞나?”
“네, 거기로 가고 있어요.”
“… 령 매가 기절해서 놀랐어. 스스로 기절한 거긴 해도….”
“둔치, 너도 닥쳐.”
“… 히히, 령 매.”
“아, 좀! 껴안지 말고!!”


독고령이 질색을 하며 백리소현을 밀어내자, 그녀가 바닥을 굴렀다.


“… 어?”


얼마 전까지만해도 분명 그녀와는 무공을 배운 무인과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가 있었다.


독고령이 아무리 발악해도 백리소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당황한 것은 백리소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려… 령 매. 화났어…?”
“아니…, 그…. 잠깐만.”

독고령이 갑자기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자,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그녀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독고령이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회음혈의 음기는 정순하고, 대하와 같은 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12 경맥과 기경팔맥은 달랐다.


  얼어붙었던 맥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조금의 틈이 생겼다.


‘팔맥 중 양유맥이 뚫렸다…!’


양유맥이 풀리며 다시 양기가 돌 수 있는 통로가 생겼고, 그로 인해 독고령의 몸에 생기가 돌았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쓸  없었던 내공들을 운공하는 게 가능해졌다.

독고령이 다시 눈을 뜨자, 어느새 여자의 몸으로 돌아와있는 은관영과 백리소현의 눈동자가 보였다.


다시 눈을 뜬 독고령을 보며 은관영과 백리소현이 물었다.

“독고 소저…, 무슨  있어요?”
“… 령 매, 괜찮아?”
“양유맥이 개통됐다.”
“!!”

독고령의 대답을 들은 두 명의 눈이 커졌다.

“어…? 아니, 그… 절맥이 그렇게 쉽게 낫는 병이였어요?”
“…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한 가진 확실해.”

챙.


독고령이 팔에 묶여있던 연검을 뽑아 휘둘렀다.

그러자 근처의 나무 하나가 깔끔한 단면을 그리며 스르륵 무너졌다.


독고령은 스스로가 해낸 일이였음에도 그 광경을 쳐다보며 놀란듯 중얼거렸다.


“내공을   있어….”
“… 축하해,  매. 그럼 이제 사일검법….”
“언니라고 안 부를거다. 뒤진다, 진짜.”
“…”

백리소현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낙담하여 고개를 숙인 백리소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독고령이 웃어보였다.


“하지만 가르쳐주면 고맙게 배우마.”
“… 응. 사저로서 열심히 할게.”
“…”

사저도 결국은 언니 아니였나? 라고 생각하며 독고령은 진짜 이 둔치를 언니라고 불러야하나 고민되기 시작했다.


그 때, 은관영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도… 독고 소저. 태어날 때부터 절맥 아니였어요?”
“… 응?”
“아니…, 내공을 쓸 수 있는 것만으로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었는데요?”
“무슨 소리야?”
“이전에는 귀여운 토끼 같았는데 지금은 한창 자라기 시작하는  같은….”


빠악.

독고령의 손이 재빨리 움직여 은관영의 머리를 후려쳤다.

“히이잉…, 왜 때리세요오….”
“콱씨 뒤질라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범이였어. 알았어?”
“…네에.”


은관영이 맞은 부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뭐가?”
“… 원래는 독고 소저가 경신술을 못 펼쳐서 청니와로 가는 거였잖아요. 이렇게 되면 그냥 파저강 건너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
“굳이?”
“네?”

독고령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 쓸  있는 내공은 여전히 한 줌에 불과하다. 경험으로 메꾼다고 하더라도….’

독고령은 솔직히 털어놓았다.

“여전히 나는 짐덩어리다.”
“… 알고 계셨어요?”
“뒤질라고, 진짜!”
“아악! 아, 왜요오…. 독고 소저가 스스로 인정하셨잖아요!”
“맞는 말을 한다고 안 쳐맞는  아니야, 새끼야!”
“히잉….”
“…  매. 관영이 그만 괴롭혀….”
“마… 맞아요! 너무해요!”
“…”

은관영이 백리소현의 등 뒤에 숨었다.

백리소현이 은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령 매는 관영이한테 너무 가혹해.”
“뭐래…. 강한 새끼가 약한 척 하는 것도 꼴보기 싫고, 하오문 같이 음습한 문파에 속한 계집이 속내를 숨기고 귀여운  하는 것도 싫어.”
“… 관영이는 착한데.”
“착한 년이 하오문의 소문주라고? 하! 마교는 사실 인간미 넘치는 놈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게 어때?”
“저… 저는 소문주가 아니라 소문주 후보….”
“…”

우드득.

은관영의 말대꾸를 들은 독고령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주먹을 쥐었다.


“… 내 내공이 어디까지 통하나 마음 편하게 실험해볼 수 있는 년이 여기 하나 있었군.”
“히… 히이익! 소현 언니!!”
“오늘 뒤졌어…!!”
“꺄아악!!”

독고령이 은관영에게 몸을 날렸다.



*


추적해오는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뿌리치고, 다시 독고령과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위일청은 당황했다.


하나는 마지막으로 헤어진 지점에서 생각보다 멀리  나갔음에 놀랐고,  또 하나는 독고령의 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독고 소저?”
“뭐, 시발.”
“… 얼굴은 왜 그러십니까?”
“닥쳐.”

독고령이 아무 말도 해줄 거 같지 않자, 위일청은 백리소현을 쳐다보았다.

“백리 소저?”
“… 령 매의 양유맥이 개통됐어.”
“…! 진짜입니까?”
“… 응. 내공을 운용할 수 있어. 근데 관영이가  매랑 싸웠어.”
“그게 왜 그렇게 된겁니까?”
“…  매가 관영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덤벼들었는데 졌어. 그래서 저 상태.”
“닥쳐! 누가 져! 오늘은 그냥 여기까지만 하는거지!!”


독고령이 발작하듯 외쳤지만, 그 모습을 보고 은관영이 울상을 지었다.

“히이잉…,  아파요. 위 오빠….”
“…  소저가 이겼다면서요. 은 소저는 왜  꼬락서니입니까?”


독고령은 눈에 큰 멍을 하나 두고 있는 게 전부였지만, 은관영은 옷도 뜯어지고, 머리도 산발이 된 데다가 아까부터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내공의 양을 맞춰서 박투술(搏鬪術)로만 겨루자고 했는데 독고 소저가 죽자고 덤볐어요, 히잉….”
“… 박투술(搏鬪術)로요?”
“네에….”

위일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관영이 누구인가.


하오문의 소문주 후보이자, 하오문주 은약벽이 아끼는 제자 중 하나였다.


게다가 위일청이 알기로 은관영의 가장 큰 특기는 박투술이었다.

근접에서 빠르게 손과 발을 이용해 붙는 격투전에 가장 능한 것이 은관영이었는데 아무리 내공의 양을 동등하게 맞춰 겨루었다고 해도 이 꼴이 날 수 있는가.


“둘의 비무가 어떻게 진행된겁니까?”
“… 관영이가 내내 밀리다가 저  방으로 역전했어. 그래서 관영이 승이긴 한데….”
“하!”

위일청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평생 절맥을 앓던 여인이 양유맥 하나 뚫렸다고 박투술을 주력으로 쓰는 무인을 밀어붙였다고?’


위일청의 눈이 독고령에게 향했다.


독고령은 위일청과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의 그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 저 미친 놈….’

위일청의 얼굴만 보더라도 그의 거대한 양물과 자신의 얼굴에 묻은….


“독고 소저?”
“가… 가까이 오지 마!”
“혹시 팔을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미… 미친 놈아! 만지지 마!”
“…?”

독고령이 질색하며 자신을 피하자, 위일청은 당혹스러웠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끼지 않으셨었는데 갑자기  그러십니까?”
“꺼지라고, 미친놈아!”
“… 박투의 흔적을 확인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 그래도….”


독고령이 얼굴을 붉혔다.

혹시나 또 위일청이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동시에   없는 기묘한 감정이 가슴에서 끌어올랐다.


아니, 가슴보다 좀 더 아래쪽.

하단전이 위치한 곳이 또 다시 욱신거렸다.

“… 진짜로?”
“예, 정말입니다. 아아…, 혹시 아까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다… 닥쳐!!”


독고령의 손가락이 매섭게 위일청의 눈을 향해 날아왔다.


그녀의 손가락을 붙잡은 위일청이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뻗은 팔을 만지며 말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자신의 눈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떠올리며 위일청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 대단하시군요. 독고 소저.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아까부터 말을 더듬으시는데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냐, 시발놈아!!”

독고령이 이번엔 크게 발을 휘둘렀다.

매섭게 자신의 요혈을 찔러들어오는 솜씨를 보며, 위일청은 또 한 번 감탄을 내뱉었다.

“역시…! 광마 어르신의 여식다우십니다.”
“뭔 개소리야?!”
“공격 하나하나가 매섭군요. 본능적으로 어디를 후려쳐야 상대가 아픈지 아시는 거 같습니다. 독고 소저!”

독고령이 광마 독고진과 동일인물인 줄 모르는 위일청은 흥분하여 콧김을 내뿜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또… 또 무슨 음탕한 짓을 하…”
“하늘이 내린 기재십니다! 구음절맥만 치료하시면 얼마나 날아오를지 상상도  되는군요! 이 정도의 무재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 뭐?”
“소저, 당장 백리소저와 함께 무공 수련을 하시죠. 은 소저에게 박투술도   익히시고요. 무림에 다시 없을 기재를 제 눈 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그제서야 독고령은 위일청이 무슨 헛소리를 뱉고 있나 깨달았다.

그는 지금 독고령이 무림에 다시 없을 기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독고령이 한  광마라고 불렸던 독고진인지 모르는데다가, 태생부터 구음절맥을 타고난 연약한 소녀라고만 생각했기에 이런 오해가 발생한 듯 했다.

‘… 하긴.  같아도 신기하긴 했겠군.’


독고령의 오해 아닌 오해가 풀리자, 그녀는 다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우…, 운기라도 하며 진정…?’


그 때, 독고령의 머리가 멈췄다.


‘… 난 무슨 심법을 익혀야하지?’


이전까지 회음혈,  하단전에 틀어박혀 있던 만년빙옥의 음기는 움직일 수가 없어서 애초에 심법을 운용조차 하지  했다.


하지만 양유맥이 뚫리면서 축기가 가능해졌고, 이는 심법을 운용할  있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그는 기왕 새로운 심법을 쌓을 수 있게 된 거, 가능한 좋은 심법으로 내공을 채워넣고 싶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 구양신공은 지고의 심법이지만,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

기껏 광증이 없어졌다.

만약 아직까지 광증이 있었다면 그녀는 진즉에 객잔에서 노순평에게 덤벼들었다가 반토막이 나있었을 것이며, 그보다도 더 전에 산적에게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구양신공은 안 된다. 그렇다면….’


열심히 생각을 해보았지만, 심법에 관해서는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결국 독고령은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았다.

“… 너네들 심법 뭐 익혔냐?”
“저는 소녀경입니다.”
“… 나도 소녀경.”
“저도 소녀경이에요오….”
“…”


독고령은 일말의 기대를 품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 소녀경이란 게 혹시….”
“운우지락을 나누는 거죠..”
“… 음양교합.”
“떡치는 거에요, 헤헷.”
“시발.”

독고령은 심법을 익히는 것은 좀 더 나중으로 미루고자 마음먹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