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3장. 파저강 - (5) (21/225)



〈 21화 〉3장. 파저강 - (5)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친 이후, 독고령은 세상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요 근래 느끼지  한 편안함 또한 동시에 느껴졌다.

마치 포근한 이부자리에서 잠을 자는 것과 같은, 하늘에 붕 뜬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 여유로움을 느끼며, 독고령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였다.


‘…’

자신의 하단전, 회음혈 부근에 웅크리고 있는 새하얗고 차가운 음기를 느낀 뒤, 독고령은 기경 팔맥을 따라 일주천하듯 내부를 관조했다.

정수리 부근의 천회혈에 도달하자,  곳에서 광마 독고진 시절 쌓아뒀던 미세한 양기를 눈치챘다.


‘… 남아있었구나.’


환골탈태를 이루던 순간, 고자가 되더라도 머리는 살리겠다고 자신의 양기를 전부 천회혈로 보냈던 흔적이었다.


한 차례 만년빙옥의 음기가 휩쓸고 갔기에 남아있던 양기는 채 한 줌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정말 급할 때는  양기를 끄집어 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독고령이 저 얼마 안 남은 양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느껴지던 묘한 포근함은 사라지고, 물 속으로 끊임없이 빠져들어만 가는 답답함이 느껴지자 독고령은 사력을 다해 몸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답답함을 이겨내고, 흙을 뚫고 나와 햇살이 보이는 밖으로 나오자 그녀가 가장 처음  얼굴은 위일청이었다.


“… 시발! 커헉…, 켁…!”


독고령은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자신이 어떤 환경에 놓여있었는지 떠올렸다.


정신을 차린 독고령이 위일청을 보며 말했다.

“아이, 씨발…. 뒈지는 줄 알았네…. 왔냐?”
“하… 하핫….”
“… 뭐야? 왜 웃어?”
“한결 같으신 독고 소저를 보니 마음이 좀 놓여서요.”


위일청이 주저앉는 것을 보며 독고령이 그의 의복을 살펴보았다.

이리저리 자잘한 검상과 찢어진 의복, 거친 숨소리.


위일청은 위일청 나름대로 고초가 있었나보다 생각하며 그를 이해해주려던 찰나, 위화감이 들었다.


있어야 할 곳에 무언가 없는 느낌.


“… 색마.”
“예.”
“… 둔치는 어딨어?”
“그게…”
“너 이 새끼!!”


독고령이 위일청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어떻게 된 거야? 데리고 온다매!”
“독고 소저, 잠시 진정하시고…”
“어딨냐고!!”
“… 나 여기 있어.”

독고령이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자, 그 곳에는 흙투성이가 된 백리소현과 은관영이 서있었다.


백리소현이 배시시 웃으며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먼저 와서 나도 숨어있었어.”
“…”
“히히…,  보고 싶었어? 령 매? 걱정해준거야?”
“… 어이, 색마.”
“예, 독고 소저.”
“미리 말했어야지, 개새끼야!”
“…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으아아악!!”

독고령이 부끄러움에 몸서리치자, 백리소현이 그녀를 껴안아 말렸다.

“히히,  매. 빨리 소현 언니라고 불러줘.”
“잊어, 시발. 잊으라고! 잠깐 정신이 나갔다고!”
“히히힛, 령 매. 나도 령 매가 엄~청 좋아.”
“으아아악!”


독고령이 진정되기 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독고령이 진정하고 난 뒤, 색마는 어느새 펼쳐둔 기막을 거둬들이며 자세를 낮추었다.

“후우…, 먼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독고 소저께서는 소리를 지를거면 미리 언질을  주십쇼. 기껏 도망쳤는데 들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 시발.”
“히히…, 내가 잘 보살필게. 위 오라버니.”

독고령은 백리소현의 품에 안겨있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연약한 지금의 몸으로 백리소현의 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고, 그녀의 가슴은 푹신하여 기분 좋았다.

결국 독고령은 포기하고 백리소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독고 소저. 보아하니  소저와는 얘기 나누셨습니까?”
“하오문이고, 은여우의 제자고, 사실 여자였고.”
“충분하군요.”
“…  숨겼냐?”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하니깐요. 또한 은 소저의 축골공은 정말 비장의 무기입니다. 그녀의 축골공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것을 적들이 아냐, 모르느냐의 차이는 크죠.”
“… 이해하마.”
“헤헷, 위 오빠한테 인정받으니 뭔가 쑥쓰럽네요. 헤헤….”


은관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하는 걸 보고, 독고령이 괜히 발을 움직여 그녀에게 흙을 뿌렸다.

“그렇게 유능하면 진즉에 좀. 어?!”
“히잉….”
“하아…, 은 소저  그만 괴롭히십쇼, 독고 소저.”
“시발,  괴롭혔다고.”
“…”


위일청은 피곤함에 눈두덩이를 문지르면서도 어느새 익숙해진 일상과 같아서 괜히 미소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이 색마를 타박했다.

“새끼야, 웃음이 나와? 뒤에는 노순평, 앞에는 강에다가 모용세가들의 무인. 어떻게 뚫을건데?”
“아…, 죄송합니다. 먼저 설명부터 드릴 걸 그랬군요.”

위일청이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들더니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일 위에 ~ 표시를 세 개 그으며 그가 말했다.

“여기가 파저강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 표를 긋고는 옆에 ‘모용세가’라고 적었다.

“이 쪽이 모용세가의 본가에서 온 마중 병력이겠죠.”

-표 아래에 O를 그려놓았다.

“이 쯤에 저희가 있고요.”


마지막으로 O표 아래에 ?을 그렸다.

“이 ?가 노순평 선배가 이끄는 추격대입니다. 어디쯤 왔을지는 모르겠군요.”
“수는 줄여놨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한 열 댓명이었습니다.”
“흐음…, 그 정도면 많이 줄인 거 같네.”

색마가 그려둔 그림을 보며 독고령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냥 강가의 병력을 뚫고 수상비로 강을 넘어가는 건?”
“… 어렵습니다. 강가 너머에 모용세가의 충원 병력이 있을 지 모르니깐요.”
“뒤로 돌아가려면 노순평과 부딪혀야하는군.”
“그 쪽도 만만치 않죠.”
“… 그래서 네 계획은 뭔데?”


위일청이 왼쪽 아래로 화살표를 그으며 말했다.


“이 아래로 쭈욱 내려가다보면 파저강이 다른 강과 맞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곳까지 도망쳐서 강을 넘은 뒤, 이후 강을 따라 더 아래로 내려가면 청니와(青泥窪)라고 불리는 작은 어촌이 있습니다. 거기서 바다를 넘으면.”


위일청이 점을 찍었다.

“산동으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 가는 이유는?”
“독고 소저 때문이 크죠. 소저에게 추포령이 벌써 떨어졌을지는 몰랐습니다.”


위일청의 나뭇가지가 다시 파저강으로 돌아갔다.

그가 파저강의 왼쪽에 점을 찍고는 선을 그어 내려가며 말했다.

“여기가 요녕입니다. 이 곳엔 모용세가가 독고 소저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죠.”
“… 그리고?”
“이 아래에는 천진입니다. 개방의 총본산인 이 곳을 독고 소저가 지나는 것은 힘들 것 같군요.”
“… 그 뒤엔?”
“북경 인근의 하북팽가도 있죠. 광마 어르신이랑 팽 가주와는 천하제일도객을 두고 싸움이 잦다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  존재를 알면 나를 인질로 잡아서라도 싸움을 걸고 싶어하겠지.”
“그리고 저는 그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저 세 곳을 뚫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위일청이 다시 청니와에서 산동으로 이어지는 선을 그었다.


“산동으로 바로 넘어가면  문제없이 해안가를 따라 보타문까지 향할  있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뭔데?”
“광마 어르신과 척을  가문이 없죠. 산동 쪽에 있는 유력 가문이라고 해봐야 산동악가와 황보세가가 다 입니다.  중 황보세가는 광마 어르신이 모용세가를 조져놓은 덕분에 오대세가의 권좌에 올랐으니 악감정은 크게 없겠지요.”
“흐음….”
“그리고 가장  세번째 이유도 있습니다.”
“더  이유가 있어?”
“하오문이 있습니다.”
“…”

위일청이 은관영을 쳐다보자, 그녀가 설명했다.


“엣헴. 저희 하오문은 중원 곳곳에 여러 지부를 숨겨놨어요. 그 중에서 유독 큰 지부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산동 지부죠.”
“… 가면 뭐가 좋은데?”
“소녀의 본문에 얘기하여 위 오빠의 상황을 설명하고, 독고 소저의 이동을 도울 수 있죠. 그리고 위 오빠가 여유롭게 절맥의 치료도 가능하고요.”
“… 그 치료란 게….”
“헤헤….”

은관영이 씨익 웃으며 두 손가락을 모아 동그라미를 그린 뒤, 그 사이를 손가락으로 통과하려는 순간.


독고령이 그녀에게 발을 휘둘렀다.


“미… 미친 년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녀자가 그런 천박한 손짓을….”
“… 그렇다고 떡 친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게 그거야, 미친 년아!”
“령 매…, 진정해. 응?”
“하아….”


백리소현이 뒤에서 독고령을 붙잡아 쓰다듬자, 독고령이 잠시 발악하다가 금세 차분해졌다.

“하아…, 그래. 색마, 네 말대로 하자.”
“예. 그럼  출발할테니 준비하시지요.”
“… 추적은 뿌리칠 수 있냐?”
“아마 힘들겁니다. 지금처럼 제가 막고, 다시 여러분과 합류하는 식이겠죠.”
“끈질기네, 모용 세가 새끼들도….”
“어쩌겠습니까, 하하….”


위일청이 머리를 긁적였다.

“… 그래서 말인데요, 소저.”
“왜?”

위일청이 다시 기막을 펼쳤다.

 모습을 보고, 독고령은 색마가 또 자신이 소리를 지르며 발광할만한 말을 꺼내리란 것을 직감했다.

“… 저를 애무해주시겠습니까?”
“… 뭐?”
“말 그대로입니다. 혹시 저를 애무해주실 수….”
“이 시발, 미친 놈이!!”


독고령이 다시 발작하며 위일청에게 달려들려고 하던 차, 백리소현이 뒤에서 그녀를 껴안아 말렸다.

“령 매, 령 매. 진정하고 들어봐.”
“아니, 시발. 무슨 진정을…!”
“위 오라버니는 소녀경을 익혔다고 했잖아, 기억나?”
“그게 뭐, 시발!”
“…소녀경은 음양교합 중에만 내공을 쌓을  있는 기이한 심법이야. 그리고 지금  오라버니는 모용세가에게서 달아나느라 내공을 많이 소모했어.”
“…”
“그러니깐  매가 조금 도와줘야 해.”
“아니, 시발…. 여기 여자가 둘이나 더 있는데?”


독고령이 은관영을 가르키자, 그녀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저는 여기까지 오느라 내공을 많이 소진해서 힘들어요오. 게다가  오빠랑   하고나면 다음날까지 다리가 후들거려서  되요.”
“아니, 시발... 둔치, 너는?”
“… 나는 오기 전에 하고 왔어.”
“아, 시발.”

그제서야 독고령은 모용세가가 덮치기 전에 왜 백리소현과 위일청이 알몸으로 뒹굴었나 깨달았다.


“아니, 시발! 무슨 그런 좆같은 심법을 다 익혀서 시발…!”
“… 독고 소저, 시간이 촉박합니다. 노 선배가 덮치기 전에 내공을 미리 회복해두고 싶습니다.”
“무슨 시발…!”
“많은 부탁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냥  사정을 한 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소저께서는 그냥 제 양물을...”
“이 시바아아아알!!!!!”
“…  매. 령 매 밖에 없어….”
“독고 소저가 안 해주면 저희  죽어요오…. 저희가 옆에서 잘 가르쳐 드릴게요.”
“…”

독고령은 점점 궁지에 몰렸다.


‘아니, 시발. 진짜 내가 저 새끼랑 으으….’


생각만해도 독고령의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 때, 위일청이 백리소현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의 눈빛을 받은 백리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둘이 주고받는 신호를 의아하게 여기던 찰나, 백리소현이 갑자기 뒤에서 독고령을 휘감아 그녀를 제압했다.


“이… 미친! 둔치,  지금 뭐하는…!”
“… 미안해, 령 매.”
“아니, 시발!!”


위일청이 잽싸게 품에서 가루를 꺼내들더니 물에 섞어넣었다.

“… 미안합니다, 독고 소저.”
“너, 시발!! 그거 뭐야!!”
“… 미혼약입니다. 독고 소저께서 할 마음이 들게끔 만들어 줄겁니다. 약속 드린데로 이 곳에서 소저의 처녀를 가져가지는 않겠습니다. 상황이 정말 급박하여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익, 시발!! 야! 악!!”

은관영이 독고령의 입을 붙잡아, 강제로 벌렸다.

“히이잉…, 위 오빠. 빨리….”
“후우…, 정말 미안합니다. 독고 소저.”
“아아악!!!”

독고령은 끝까지 발버둥쳤지만, 결국 자신의 목에 들어오는 액체들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정신이 몽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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