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3장. 파저강 - (3) (19/225)



〈 19화 〉3장. 파저강 - (3)

모용세가의 무인이 칼을 뽑아드는 순간, 독고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




‘허관영 개새끼…’

무인은 칼을 앞으로 하여 천천히 거리를 좁혀들었다.




“웬 놈이냐!”
“아이고, 나리….”
“허튼 소리 하지 말거라! 감히 여기가 어디라…”


무인의 말이 끝나기보다 더 빨리 허관영의 손이 움직였다.



“커억!”


모용세가의 무인은 소리도 지르지 못 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허관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독고령을 보고 멋쩍게 웃었다.




“하하…, 이게… 왜  통할까요…?”
“…”



허관영은 어색한듯 웃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독고령은 마음이 뒤숭숭했다.

‘… 뭐하는 새끼지, 이거?’

여자의 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기감은 여전히 날카로운 독고령이었다.

허나 그녀의 기감을 완전히 벗어난 공격을 허관영이 펼쳤다.

아마 혈도를 제압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하오문 내에서  정도로 빠른 손속을 가진 자를 독고령은 알지 못 했다.

‘… 너무 찝찝한데.’

정체를 알지  하는 자를 믿고 다니는 것은 찝찝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독고령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관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소저?”
“빨리 치워, 새끼야. 들키겠다.”
“예. 하지만 제 계획대로 됐습니다!”
“… 아깐 시발 그냥 근처 주민인 척 하고 지나가자매?”
“예. 그러기 위해서 모용세가의 무복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정말로요.”
“…”


둘러대는 솜씨가 거지 같았다.



쓰러진 무인의 옷가지를 벗긴 뒤, 허관영이  옷을 챙기고는 말했다.



“그럼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 그래.”


허관영이 나무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독고령은 고민에 빠졌다.

‘… 허관영을 믿어도 되나?’



위일청이 보장한다고는 했으나 하오문이란 새끼들은 기본적으로 박쥐 새끼들이다.


돈이 되는 정보라면 사파든, 마교든 상관없이 정보를 팔아대고 처녀의 부랄도 구할 수 있다는 흑시(黑市)에도 한 몫 끼고 있다.



그런 곳의 문도인 허관영이라면 이득만 맞을 경우 언제든지 자신을 배신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감이  좋았다.


사람들은 감이라고 하면 단순히 비웃기 마련이지만, 오랜 시간 수라장에서 살아돌아온 독고진은 자신의 감을 가장 우선했다.



분명 자신이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이 본능적으로 경고해주는 것이 ‘감’이었다.



그 때, 허관영이 돌아왔다.



“독고 소저. 저 왔습니다.”
“… 그래.”



모용세가의 무복으로 갈아입은 허관영을 미심쩍게 쳐다보자, 그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안 어울리나요?”
“… 아냐. 그보다 너….”
“쉿.”

갑자기 허관영이 독고령의 입을 틀어막았다.


“… 상당히 많은 수의 무인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말을 듣고 집중하자, 그의 말대로 허관영이 왔던 방향에서 많은 수의 인원이 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허관영에게 가지고 있던 의심이 독고령의 마음 속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 새끼, 고수다.’

위일청보다 기감이 좋은 게 지금의 독고령이었다.




근데 허관영은 도대체 어떤 영문인지 독고령보다 감이 좋았다.



“… 이 쪽으로 오는군요. 설마….”


그 때, 독고령이 팔을 휘둘러 연검을 꺼내들었다.



챙!




뒤에서 갑자기 기습해들어온 무인의 검을 막아낸 뒤, 독고령이 일어서며 외쳤다.



“들켰… 컥.”


목 뒤에 고통이 느껴지더니 독고령의 의식이 끊겼다.










독고령이 다시 눈을 뜨자, 찌릿한 고통과 함께  몸이 구속된 불편함이 느껴졌다.



 몸을 구속하는 밧줄을 확인한 독고령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가의 오두막 같았다.

“아…, 소저. 일어나셨나요?”
“…”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보자, 그 곳엔 밧줄로 포박당한 허관영이 있었다.



“… 씹새끼야.”
“죄송합니다….”
“시발….”

독고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들켰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의  뒤로 접근하는 누군가를 느끼긴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기감이 아무리 좋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못 하면 아무 의미 없었다.



독고령은 분명 공격을 인식했음에도 피할  없었다.

‘쓰레기 같은 몸…. 젠장.’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남에게 손을 빌려야하는 답답함.

원하는  있다면 그냥 자기가 알아서 다 하던 독고진이었으나, 독고령이 된 이후 무엇 하나 자기 맘대로,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시발….’



짜증이 극에 이르렀을 무렵,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독고령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했다.

“풉.”


나타난 이는 오른쪽 뺨이 크게 부풀러 올라있었다.

웃음을 주최하지 못 하는 독고령을 보며, 노극명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웃음이 나오나?”
“노순평의 자식, 맞나? 하긴. 노순평의 손이 맵기는 맵지.”
“…”


노극명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발을 들어올렸다.



“커흑…!”
“주제 파악 못 하고 건방을 떨고 있군.”
“끄으윽….”

노극명의 발이 정확히 독고령의 명치에 꽂혔다.



독고령은 숨조차 쉬지 못 하고 꺽꺽거리며 고통을 견뎌냈다.




‘시발…,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통인지….’

고통에 바닥을 기는 독고령을 보며 노극명이 그녀의 앞에 쪼그려앉아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빨간 머리, 날카로운 눈매, 걸걸한 입. 이 정도면 아무리 봐도 네 년이 맞단 말이지.”
“큭… 뭐가…!”
“네가 광마의 여식, 맞지?”
“!!”
“놀랐군. 나도 놀랐다. 광마  새끼한테 딸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짜악!

노극명이 독고령의 뺨을 갈겼다.



“무림맹에서 특급 공문을 보냈더군. 색마와 함께 돌아다닌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싸했는데 말이지.”
“…”
“하! 그 걸걸한 입도 이런 상황에선 조용해지는군.”
“… 어떻게 알았지?”
“응?”
“… 어떻게 이리 빨리 알아낸거지?”
“아아…. 궁금한가?”
“…”

독고령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자, 노극명이 씨익 웃었다.




“알아서 뭐하게?”
“… 시발 새끼.”
“크… 크큭큭…. 크하하핫!!”

노극명이 크게 웃더니, 독고령의 얼굴을 들어 흙바닥에 쳐박았다.

“열심히 짖어라, 멍청한 년. 이대로 모용세가에 끌려가 네 년은 노예가 될 테니깐.”
“크윽…!”
“아,  아비가 혹시 널 버리더라도 걱정 말도록.”


노극명의 눈에 음심이 가득 차 있었다.




“돈은 비싸게 받을 수 있어보이는구나, 크하하핫!”

노극명이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잘 감시하고 있어라. 우리 모용세가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다.”
“예!”




노극명이 나간 뒤, 독고령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시발 아무 것도 아닌 새끼가…!’




독고진의 몸이 었다면 노극명따위 몇  명이 있더라도 혼자서 다 쳐죽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고작해야 독고령이었다.



쿵. 쿵.


독고령이 분을 못 이기고 바닥에 머리를 박기 시작하자, 허관영이 그녀의 머리와 흙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 자해는 그만하시지요, 소저. 이 또한 저의 책략입니다.”
“시발 새끼가! 너는 지금 이 상황에도 그딴 말이 튀어나오냐!!”




분노한 독고령이 머리로 허관영의 코를 듣이받으려고 하자, 허관영이 이마로 그녀의 이마를 받아내며 전음을 보냈다.



[네. 그대로 화를 내시면서 들어주시면 됩니다. 노극명에게 정보를 흘린 건 접니다.]

“… 뭐?”



[밖에 경비가 둘 있습니다. 계속 욕이나 하시죠, 소저.]


그 말을 듣고, 독고령은 대충 떠오르는 욕들을 다 퍼붓기 시작했다.

“똥 물에 튀겨버릴 고자 새끼!”


[그건 좀 상처받는군요. 여튼, 파저강을 아무에게도 안 들키고 빠져나갈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고수의 존재도 무시하지  하죠.]



‘… 노순평. 그리고 혹시 모를…’



[모용 가주가 오면 아무리 옥면공자라도 끝입니다.]



독고령 또한 그 말에 동의했다.

노순평과 모용벽은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현 무림맹주인 검선 남궁진과 몇 번이고 동수를 이뤘던 자였으니 독고진 또한 쉬이 그에게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 끝까지 싸우면 무조건 내가 이기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독고령이 다시 욕을 내뱉기 시작하자, 허관영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차라리 일부로 잡히고는 시간을 버는 게 나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무슨 개소리지?’




독고령의 표정에서 그런 생각이 보이자, 허관영이 멋쩍게 웃었다.




[원래 잡아둔 물고기는 안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숨겨둔 비장의 수가 있지요.]



그 말이 끝나자, 허관영의 몸이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우둑. 우두둑.


뼈가 으스러지는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고 잠시 후, 허관영의 모습이 전혀 달라졌다.

은발의 머리카락, 붉은 눈, 새하얀 피부.




그리고 조금이지만 부풀어오른 가슴.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의 눈이 경악에 차올랐다.




‘축골공(縮骨功)!’

뼈와 장기 등의 크기와 위치를 조절하여 몸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절기.



그제서야 허관영의 자신감이 이해가 갔다.



‘아니 근데 시발 이 새끼도 여자였어?’



독고령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허관영이 웃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후훗, 놀라셨나요?”
“…”
“일단 밖에 있는 두 놈들부터 제압하고 다시 올게요, 소저.”
“어…, 어. 그래….”

허관영이 머리를 휘날리며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커억!”
“억!”



잠시 후, 두 경비를 쓰러뜨린 허관영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

“… 만나서 반가워요, 독고 소저. 그동안 정체를 숨겨서 죄송합니다.”
“어…, 어. 그래….”
“하오문의 소문주 후보, 은관영이라고 합니다.”


허관영, 아니 은관영이 두 손을 포개 공손히 인사를 하자 독고령이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 ‘은’관영?”
“원래는 성이 없는 아이지만, 소문주 후보가 되며 ‘은’씨 성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아하….”
“미숙하지만, 옥면공자를 보필하라는 문주 님의 명에 따라 모습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이해해주시겠지요?”
“…”
“후후, ‘허관영’을 대하듯이 대해주셔요, 소저.”
“아잇, 시발…. 그게 말이 쉽지…, 아!”




독고령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 야, 근데 어떻게 나가냐 우리?”
“후후, 다 방법이 있답니다?”



은관영은 기절시킨 두 경비를 쳐다보다가 조금  덩치가 큰 쪽을 골라잡았다.




“… 이걸 이렇게, 이렇게 하면…”
“오…, 너 좀 쩐다.”
“감사합니다, 소저. 근데 독고 소저, 저도 궁금한  있는데요.”
“뭐?”
“우리 문주님이랑 아세요?”
“아니.”
“… 그럼 혹시라도 나중에 문주님 만나면 ‘떡 친다’ 같은 표현은 좀 자제를…”
“아잇, 시발. 빨리 일이나 해.”
“머… 머리는 때리지 마시구요!  같이 연약한 소녀한테…”
“지랄한다. 허관영 대하듯이 대하라매.”
“히잉….”




그리고 잠시 후….


*


노극명은 기분이 좋았다.

“크흐흐….”


아버지에게 혼이 날 때까지만 해도 우울해져 있었지만, 광마의 여식을 잡은 이후로 그는 기세등등했다.


다름 아닌 모용세가의 원수의 딸이다.



그런 여인을 붙잡았으니 이제 아버지가 자신을 보는 눈 또한 달라질 것이다.

게다가 모용세가로 돌아가면 어떤 포상을 받을지 상상도 안 갔다.



‘게다가 무림맹의 포상금도 있다고 했지.’

운이 좋았다.

하필이면 자신이 가는 방향으로 무림맹의 전서구가 지나가고 있었고,



하필이면 전서구가 피곤해서 잠시 내려앉은 것이 자신의 머리 위였으며,

하필이면 그 전서구가 전하는 편지가 광마의 여식에 관한 소식이었다.

“이건 하늘이 나를 도움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기세가 등등해져있던 노극명은 금세 모골이 송연해졌다.


“조… 조장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잡아둔 놈이 도망쳤습니다.”
“뭐라고?!!”


노극명이 퍼뜩 일어나 그 둘을 가둬둔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의 시선에 쓰러져있는 두 호위 무인들이 보였다.


“이… 이런….”


노극명이 부들거리며 오두막을 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다행히도 광마의 여식은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노극명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다른 한 놈은 어차피 상관없었다.



결국 핵심은 독고령이었기에 노극명은 쓰러져있는 그녀를 보며 비웃었다.



“쯔쯔쯔…, 얼마나 인망이 없었다면 혼자 도망을 쳤단 말인가.”



노극명이 자신고 함께 따라온 다른 무인들을 가르키며 말했다.


“너, 그리고 너. 너. 이제부터 셋이서 이 오두막을 지키거라. 누구도 얼씬  하게 하거라.”
“존명!”
“그리고… 저 년은 다치지 않을 정도로 괴롭혀도 상관없다.”
“흐흐흐…, 알겠습니다.”




경비로 지목된 무인들의 눈에 음심이 가득찼다.



노극명은 쓰러진 두 무인을 걷어차 일으켰다.

“끄윽… 여긴….”
“헉!”
“한심한 놈들 같으니라고….”



기절한 무인들이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하자, 노극명은 그들의 발을 걷어찼다.

“새끼들아. 너희들은 모용세가로 돌아가면 내가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알았느냐?”
“… 옙!”
“죄송합니다!”
“하아…. 둘 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예.”



두 경비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노극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가  실수를 할 뻔 했구나.”



하늘이 도운건지, 다행히도 광마의 여식은 그대로 오두막에 남아있었다.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노극명은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운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고.







두 경비 무인들이 터덜터덜 걸어가다, 도중  명이 옆으로 갈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이가 물었다.

“이보게, 춘평. 어디 가는가?”
“소피 좀 보고 오겠네. 먼저 가있게.”
“… 알았네. 하아….”



다른 무인은 그대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춘평이라 불린 자는 숲으로 들어가더니 주변을 살피고는 윗옷을 깠다.

그러자 그의 배에 매달려있던 독고령이 튀어나왔다.

“푸하, 숨 참느라 뒤지는 줄 알았네.”
“보셨죠? 제가 이렇게 멀리보고 계책을 마련한 거라니깐요?”
“지랄났다.  임마, 내가 여자인 줄 알면 못 때릴줄 알지?”
“… 아니예요?”
“내 아빠가 누구?”
“… 광마 어르신요.”
“그 분 밑에서 자란 내가 남자든 여자든 가려가면서 패겠냐?”
“히잉….”
“시발,  얼굴로 그딴 소리 내뱉지 마. 징그럽다.”
“… 네.”

은관영이 다시 여자의 몸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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