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3장. 파저강 - (1)
중원의 중심부, 안휘성 내부의 합비.
남궁진은 평소와 같이 무림맹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 때, 창 밖으로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매가 날아들었다.
‘… 매?’
개방이 급한 일에만 쓰는 전서응(傳書鷹)이었다.
“… 무슨 일이기에 전서응을 보낸 것이지.”
매의 발에 묶인 종이를 펼쳐보고, 잠시 후.
남궁진이 탄식했다.
“허어…. 밖에 누구 있느냐?”
“예, 맹주님.”
“맹에 들어와계신 각 문파의 장로분들을 회의실로 소집해다오. 급한 일이다.”
“…예!”
전령이 밖으로 장로들에게 달려나가는 것을 잠시 보던 남궁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참 무심하여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푸르렀다.
“… 다시 또 피가 일겠구나.”
남궁진이 힘 없는 발걸음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 각 문파의 장로들이 다 모이자, 남궁진이 입을 열었다.
“… 오늘 이리 불러모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묵선(默仙) 어르신에게 급한 부탁을 받아서 이런 수고를 끼치게 되었소이다.”
“… 개방 방주가 맹주에게 갑자기 무슨 부탁을 했소?”
“… 척살령을 부탁했소.”
“척살령!”
남궁진의 말을 듣자, 장로들이 웅성거렸다.
“개방의 방주 어르신께서 요청할 정도면 흉악한 놈이 분명할 터. 왜 즉시 령을 내리지 않은 것이오?”
“… 저는 이에 대해 잠시 장로분들과 얘기를 나눠보고자 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말이오? 아니…, 대체 누구길래 그런 선택을 한 것이오?”
“… 광마 독고진과 그의 여식이오. 빙제 백련휘가 빙궁의 신물을 도둑 맞았다는군.”
남궁진이 독고진의 이름을 꺼내자, 녹색의 무복을 입은 노인이 탁상을 내리치며 일어났다.
쾅!
“독고진, 그 개자식에게 딸이 있었다고?!”
“믿을 수 없군…. 그 천하의 망종 놈이 딸이 있다니….”
“필시 길가다 만난 아녀자를 강간하여 얻은 자식일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전한 정신의 여인이 그와 혼사를 치룰 리가 없습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장로들이 독고진의 이름이 나와 시끄러워지자, 남궁진이 목소리에 내공을 살짝 담아 나즈막히 말했다.
“다들 조금만 진정하시지요.”
“… 진정?”
다른 이들은 남궁진의 말을 듣고 잠잠해졌으나, 유일하게 녹색의 무복을 입은 노인만은 남궁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진정하라고? 우리 당문에게 패악질을 부린 그 개자식의 이름을 듣고?”
“… 장로께서는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시죠. 척살령은 한 무인의 존재를 강호에서 지워버리는 무시무시한 힘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광마 같은 개자식에게 써야겠지!”
당문의 장로가 다시 한 번 탁상을 내리치며 다른 장로들에게 말했다.
“광마 그 놈에게 곤혹을 치른 것이 우리 당문 뿐이오? 그저 우리 당문이 가장 심하게 당했으니 내가 대표해서 말하리다! 모용세가만 하더라도 그 원한을 잊었소이까?”
“… 잊을리가요. 허나 저는 어디까지나 가주 어르신의 대리입니다.”
“개방은 어떻소?! 그 놈의 손에 죽어나간 장로가 몇 명이오?!!”
“…”
“무당, 화산, 종남, 그리고 현 무림맹주의 가문인 남궁세가 또한 곤혹을 치뤘소! 그런 악랄한 자가 아직까지 강호에 돌아다니는 게 문제가 아니요?!”
“… 앉으시지요.”
“위치만 알려주시오! 내가 직접 가서 그 놈을 손수 녹여드리리다!!”
“앉으라고 하였소.”
남궁진이 조금씩 내공을 끌어올리자, 당문의 장로가 그의 눈치를 보고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가 조금은 진정된 듯 하자, 남궁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큰 자의 의견대로 할 것이라면 무림맹은 필요없소. 저 사파 놈들처럼 우리도 그냥 쌈박질이나 한 번 하고 가장 강한 무인의 의견을 따르지요.”
“그런 말이 아닌 걸 알지 않습니까, 맹주!”
“그러니 더더욱. 대화를 합시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척살령, 반대입니다.”
“맹주!!”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장로들이 다시 시끄러워지자, 남궁진은 손을 들었다.
“… 진정하시오. 광마 독고진에게 척살령을 내리는 것은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오. 허나, 그 자식은 무슨 잘못이오?”
“악귀의 자식 또한 악귀가 될 확률이 높지 않겠소?”
“… 그렇다면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아미타불…. 소승 또한 맹주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요.”
머리를 파르라니 깎은 스님이 말을 이어나갔다.
“허나 세상에는 때론 계도마저 불가능한 자들 또한 있소이다. 독고진 시주가 그러하지요.”
“…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 자의 광증이 죽기 전까지 가라앉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
장내의 의견은 확고해보였다.
“하아…,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소? 광마 독고진에게는 척살령을 내리고, 그 여식에겐 어디까지나 생포해오라고 공문을 내리는 게 저는 옳다 생각합니다.”
“소승도 맹주의 의견에 동의하오.”
“광마의 여식이 붙잡힌다면 저희 아미파에서 철저히 계도하겠어요.”
“… 모용 세가는 대세를 따르겠소.”
“화산 또한 동의하오.”
하나, 둘 씩 장로들이 동의의 뜻을 밝히자, 마지막으로 남은 당문의 장로에게 남궁진이 물었다.
“… 당문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냥 둘 다 죽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오. 허나, 다른 장로들의 의견을 따르리다.”
“…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남궁진이 당문의 장로에게 예를 표한 뒤, 장내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럼 금일부로 광마 독고진에게는 척살령, 그 여식에게는 추포령을 내리겠습니다. 장로들께서는 각 문파에 이 의견을 전달하여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알았소.”
“그럼 이만, 자리를 파하겠습니다.”
남궁진이 먼저 밖으로 나가자, 다른 장로들도 하나, 둘씩 떠나갔다.
회의장의 밖에 나오자, 당문의 장로가 개방의 장로에게 전음을 보냈다.
[천비개(天飛匃). 잠시 나 좀 보고 가시게.]
“…”
천비개 장로가 주변을 둘러보다니, 당문의 장로에게 다가갔다.
“… 무슨 일입니까?”
“정말 묵선 어르신이 보낸겐가?”
“…”
천비개 장로가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 설마요. 묵선 어르신은 이미 실무에서 손 떼신지 오래입니다. 후개가 다 맡아서 처리하고 있죠.”
“역시…. 묵선 어르신의 성정을 생각했을 때, 절대로 척살령을 요청할리 없다고 생각했다네.”
“크큭,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묵선 어르신의 이름이 무거워지죠.”
천비개의 눈이 분노로 반들거렸다.
“저는… 독고진 그 개자식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 또한 그렇다네. 필요한 게 있다면 당문에게 연락하게. 우리 또한 도와줄터이니.”
“어차피 척살령이 선포되었으니 이제 조만간 놈의 시체가 맹으로 들어오겠죠.”
까드득.
천비개가 이를 갈았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내 친히 그 놈의 다리를 분질러서 이 곳까지 기어오게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
“… 아직도 아픈가? 그 다리?”
“아프지요…. 매일 밤, 아픕니다….”
천비개가 비어있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메만졌다.
“놈의 시체를 보면 조금 기분이 나아질 듯 하군요.”
“… 전에 줬던 약은 다 먹었나?”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 하지만 슬슬 다 떨어질 때가 되었죠.”
“그럴 줄 알고 내가 조금 챙겨왔네.”
당문의 장로가 소매를 뒤적거려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내주었다.
“…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 당문이 개방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받고 있는데.”
천비개가 재빨리 그 주머니를 챙겨 소매에 집어넣었다.
“허허…, 그보다 이 약이 참 좋습니다. 당문의 비전이라 그런지, 고통이 싹 사라지더군요.”
“뭘 그런걸 가지고…. 다음에도 약이 필요하면 또 말하게.”
“예,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천비개 장로가 고개를 숙이고 지팡이와 함께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당문의 장로가 혀를 찼다.
“에잉, 쯔쯔…. 그래도 한 때 개방의 후개 후보였던 자가 저렇게 망가졌는가….”
한 때 하늘(天)을 날아다니는(飛) 거지(匃)라고 불리며 강호에서 두 번째로 빠른 자라고 명성이 자자하던 자가 광마에게 한 쪽 다리를 잃고 사람이 바뀌었다.
정면 승부만 피하면 경신술이 약한 광마를 이겼을지도 모르지만, 끝끝내 정면에서 대들어서 결국 멍청하게 다리를 잃은 후, 무림맹으로 기어들어온 천비개는 당문의 장로를 만나고 점점 타락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주는 약이 중독성이 강한 마약인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들러붙는 꼴을 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우스워 매번 웃음을 참는 게 곤욕이었다.
“… 그보다 그 개자식에게 딸 년이 있었다라….”
당문의 장로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이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실수로 죽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겠군…. 아니면 실험체로도 괜찮겠고….”
본가에 이 소식을 전할 생각에 신이 난 당문의 장로가 들썩이는 어깨를 숨기지 못 하며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
올빼미를 통해 전달된 편지를 보고, 허관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독고 소저. 저희 조졌는데요?”
“… 또 왜?”
“무림맹에서 소저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는데요?”
“…나한테?”
“… 예.”
“시발, 줘 봐.”
“봐도 모르십니다, 암어로 적혀있습니다.”
“… 쓸데없이 철저한 새끼들. 읽어.”
“… 예.”
허관영이 다시 편지를 붙잡고는 그 내용을 읽어주었다.
“무림맹에서 광마 독고진에게는 척살령을, 그 여식에게는 추포령을 내렸다. 무림맹주 검선 남궁진이 직접 선포한 것이며, 그에게 제의한 것은 개방의 방주, 묵선으로 추정된다.”
“… 검선? 묵선? 그 새끼들이 나섰다고?”
“… 친한 것처럼 얘기하십니다?”
“아…, 그냥 워낙 유명한 놈들이니깐.”
독고령은 대충 허관영에게 둘러대며, 침을 삼켰다.
강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가 둘이나 끼어있었다.
검선과 묵선.
하나는 오대 세가의 수장격인 남궁세가의 현 가주기도 한 남궁진.
다른 하나는 개방의 방주이자 무림에서 가장 빠르다고 하여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거지라 불리는 묵선 무영개(無影匃).
하지만 독고령은 그 둘의 이름을 듣고, 오히려 의구심이 생겼다.
‘… 남궁진이야 어차피 장로들의 의견을 지 이름으로 발표하는 새끼니깐 그렇다 치더라도 묵선은 왜?’
묵선이라고 하면 협객으로 그 이름이 드높은 고수였다.
젊은 시절부터 수없이 많은 협객행을 통해 그 명성을 쌓은 자였고, 그렇기에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무게가 실렸다.
그런 자가 척살령 같이 흉흉한 의견을 먼저 제시했으리란 생각은 안 들었다.
‘… 개방 새끼들도 뭔가 있긴 있구만.’
개방이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 이유야 많았기에 독고령은 고민을 끝내고 다시 허관영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쩔껀데?”
“… 예?”
“하오문은 뭐 어떻게 행동한다, 그런 거 없어?”
“… 저희는 지켜봐야죠.”
“박쥐 같은 새끼들. 그러니깐 니들이 회색 문파라고 욕을 쳐먹는거야, 으이구….”
“에이…, 그래도 광마면 대마두 아닙니까? 오히려 좋은 일 같은데….”
“뒤질라고, 누구 앞에서…”
“아…,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허관영이 자신의 입을 찰싹찰싹 때리자, 그 모습을 보며 독고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시발. 주변에 믿을만한 새끼가 없네. 하나는 둔치, 하나는 색마, 하나는 얼빵하기까지 하고….”
“…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의리없는 새끼야, 광마가 너희 하오문한테 이득을 얼마나 줬는데 이제와서 내팽개쳐?”
“… 저는 잘 모르는 내용입니다.”
“나중에 느그 문주한테 꼭 물어봐라. 니네가 가지고 있는 기루 중에 반 절은 광마가 세운거야, 새꺄. 알았어?”
“… 예.”
허관영이 영 믿지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독고령은 자신이 광마였던 시절 하오문과 어떤 일들을 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참았다.
“새끼야, 일단 여기부터 빨리 빠져나가자. 모용세가 새끼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 그게 들리십니까?”
“내가 새꺄, 또 기감 하나는 어마어마해. 그러니깐 너는 내가 가르키는 방향대로만 움직이면 돼.”
“… 제가 마부인데 이제는 말이 되게 생겼군요.”
허관영의 등에 다시 업힌 독고령은 그의 머리를 툭툭치며 말했다.
“그래, 달려라! 이럇!”
“히… 히이잉!!”
“크큭, 재밌는 새끼구만. 이거. 가자!!”
“예!”
허관영이 다시 또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