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2장. 색마지약 - (8) (16/225)



〈 16화 〉2장. 색마지약 - (8)

“… 왜 이러십니까, 진짜. 저 색마입니다.”

위일청이 어이없다는  말했다.

“저랑  번이라도 같이 밤을 보낸 여인 중 저를 잊는 여인이 있겠습니까?”
“… 미친 새끼. 네가 광마라고 불려야겠군.”
“… 진짜입니다.”
“여튼, 도주 경로나 설명해 봐. 어떻게 할건데?”

독고령이 묻자, 위일청이 창문 밖을 가르켰다.

“아직 포위망이 완전히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저와 백리소저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이, 독고 소저는 허 마부와 함께 멀리 도망치시죠.”
“다시 만날 곳은?”
“파저강 인근에 뱃사공들이 모이는 오두막이 있습니다. 허 마부가 그 곳까지 독고 소저를 옮길 것입니다. 거기서 다시 만나시죠.”
“…”

파저강이란 단어를 듣자, 독고령의 헛웃음을 뱉었다.

“하…, 결국  파저강인가.”
“…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냐, 아무것도. 고약한 농담 같지만, 네가 알고 한 말은 아니겠지.”

독고령이 창문 너머를 살펴보았다.

집중하여 밖을 바라보자, 모용세가의 무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조심스레 하나,  객잔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 허관영인가? 걔는 어디있는데?”
“저 여기 있습니다.”
“시발, 깜짝이야!”
“…”

허관영을 찾는 순간, 그가 객잔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등장하였다.

“놀래켜서 죄송합니다, 독고 소저.”
“… 시발, 내가 독고 씨인 건 개나 소나 다 아는구만.”
“… 저도 일단 하오문의 문도입니다.”
“닥쳐. 그래서 네가 나를 도주시킨다고?”
“예. 이래뵈도 은잠술과 경신술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잘 도망친다는 얘기로군. 무공은?”
“… 어지간한 무인들은 감당할  있지만, 2공자 정도 되는 고수는 감당키 어렵습니다.”
“… 가능한 싸움은 일어나지 않게끔 도망쳐야겠군. 알았다.”

독고령이 뒤돌아보자, 어느새 옷을  챙겨입은 백리소현이 다가왔다.

백리소현이 독고령의 손을 잡으려고하자, 그녀가 내뻈다.

“… 너 방금까지 그걸로 색마 만졌지?”
“… 닦았어.”
“뭘 닦았는데?”
“… 하얀 거?”
“시발, 손은 잡지 마라. 아니, 생각해보니깐…. 어이, 색마.”

독고령이 위일청을 호명하자, 그가 대답했다.

“예, 독고 소저.”
“너 이 새끼, 생각해보니깐 떡은  치고 있었어?”
“… 다음에 만나면 독고 소저의 언어 사용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눠봐야될 거 같습니다.”
“지랄 말고, 이 새끼 이런 급박한 상황에도 여인을 품을 생각이 들어?”
“오히려 백리 소저를 품었기에 알아차린 겁니다.”
“그건 또 뭔 헛소리야?”

그러자 위일청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 보통 제가 객잔에 머무르게 되고, 제 정체를 사람들이 알면. 꼭 한밤 중에 훔쳐보는 이들이 생깁니다.”
“… 근데 모용세가 새끼들은 안 훔쳐봤다?”
“… 예. 그래서 알아차렸죠.”
“에휴, 시발….”

독고령은 어째 위일청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새끼를 믿고 천축까지 가는 게 맞는가 의심이 피어올랐다.

“아무튼, 파저강? 거기서 다시 보자.”
“… 예, 소저.”
“그리고 둔치.”
“… 소현 언니.”
“…”

독고령은 잠시 그녀가 원하는 데로 불러줄까 고민하다가  끝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켰다.

“… 그건 아직 내가 좀 부담스럽고. 여튼 둔치, 좀 위험하다 싶으면 너는 바로 내빼.”
“… 걱정해주는 거야?”
“걱정은 무슨. 얼굴 아는 사람이 죽으면  자리가 사나워서 그래.”
“히힛…,  매….”
“아잇! 껴안지 좀 마!”
“히힛….”

백리소현이 잠시 독고령을 껴안고, 볼을 비벼댔다.

질색하는 독고령을 무시하고, 그렇게 볼을 비비적거리다가 백리소현이 말했다.

“… 다시 만나면 사일검법 가르쳐줄게.”
“언니라고 안 부를 거다.”
“그래도 가르쳐줄게.”

독고령은 백리소현을 잠시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 그래. 다시 만나면 가르쳐다오.”
“… 응.”
“가자, 하오문.”
“… 허관영이라 불러주시죠. 하다못해 허 마부가 정도가 좋습니다.”
“그래, 허 마부.”

허관영이 내려와 등을 내주자, 독고령이 자연스레 그 등에 안겨 팔을 둘렀다.

“출발할까요?”
“어이, 둔치.”
“… 응?”
“…  살아서 돌아와라.”
“… 응, 령 매.”
“가자.”
“… 예.”

허관영이 독고령을 엎은 채, 몸을 날렸다.

 모습을 바라보며 위일청이 투덜거렸다.

“거래를 한 건 저와 독고 소저인데, 어째 백리 소저가 독고 소저와 더 친하군요.”
“… 같은 여자끼리의 정?”
“다음 생에는 저도 여자로 태어나야겠군요.”
“히힛, 응….”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노골적인 기운이 밖에서 퍼져나오자, 색마가 검을 꺼내들었다.

챙.

마치 채찍처럼 바닥에 길게 늘어진 연검을 보며, 백리소현 또한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검을 뽑아들었다.

“백리 소저.”
“… 응.”
“제가 신호를 드릴 터이니, 그 즉시 도망치셔야 합니다.”
“… 알았어.”
“노순평 대협은 강합니다. 얼마나 묶어둘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군요.”
“…”

백리소현이 대답없이 검을 들어올려 기수식을 취했다.

잠시 후.

똑. 똑.

“위 소협, 거 안에 있소?”
“… 있습니다. 노 선배님.”
“들어가도 되겠소?”
“… 들어오실 생각 아니셨습니까?”
“허허…, 하긴.”

콰광!

객잔의 벽문을 부수고, 노순평이 안으로 들어왔다.

“노부가 마음이 들떠서 기운을 숨기질 못 하겠구만…. 자네 정도라면 진즉에 알아차렸겠지.”
“… 2공자 때문입니까?”
“응?”
“… 고작 2공자에게 쓴 소리   한  대문에 대 모용세가가 저를 핍박하려 드는 겁니까? 정파라는 이름이 아깝군요.”
“큭… 크하핫! 아…, 그렇군.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구만.”
“… 오해요?”

위일청이 인상을 찌푸리자, 노순평이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 숨길 수 있을  알았나?”
“… 뭘 말입니까?”
“자네가 광마, 그 개자식의 딸을 데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

그 말을 듣자, 위일청의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단순히 2공자의 명예가 훼손된 걸로 시비를 걸었다면 모용세가 측도 살수는 쓰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 조금 곤혹을 치루는 게 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광마의 딸을 찾기 위해서 온 것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모용세가의 모든 무인이 원하는 목이 바로 ‘광마 독고진의 목’이었다.

그 둘이 얼마나 지독한 원수지간인지 위일청은 노순평과의 짧은 만남으로도 체감할 수 있었다.

‘… 망했군.’

위일청은 잠시 백리소현을 쳐다보며 전음을 보냈다.

[적당히 기회를 봐서 도망치십쇼.]

위일청의 눈을 쳐다보던 백리소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노순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소협. 아니, 색마.”
“…”
“그 개자식의 딸 년은 어디 있지? 보이질 않는구만….”

노순평의 몸에서 흉폭한 살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삐그덕. 삐그덕.

유형화된 살기는 객잔 전체를 진동시키며 위일청을 압박하였다.

“그 년만 넘긴다면… 약조하지. 다른 일행은 털  하나 건드리지 않겠네. 아니, 오히려 우리 모용세가의 은인으로 대우할 것을 약조하겠네.”
“…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군요.”
“생각보다 말귀가 통하는구만.”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순간, 조금은 풀려가던 장내의 분위기가 다시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제가  여인들과의 약속은 단  번도 어겨본 적이 없는 사내라서요.”
“… 색마지약이라고 하던가?”
“노 선배께서 알고 계시니 영광입니다.”
“생각보다 아둔한 놈이였군.”
“많이 듣는 얘기입니다.”
“…”

노순평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는 그의 입에서 싸늘한 말이 튀어나왔다.

“둘 다  채로 붙잡아라. 그 년의 위치를 토해낼 때까지 내 친히 심문할 것이다.”
“””존명!!!”””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무기를 뽑아들자, 위일청이 검을 크게 휘두르며 객잔의 바닥에 선을 그었다.

촤아악!!

“이 선을 넘을 시, 그대들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소.”

잠시 서로 눈치를 보던 모용세가들의 무인을 바라보며 위일청이 덧붙였다.

“그러니 부디 현명한 선택하길 바라오.”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잠시 멈칫했으나, 얼마  가 누군가 소리쳤다.

“쳐라아아!!!”

선을 넘어 달려드는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보며 위일청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 말했거늘.”

그리고 끌어올린 내공을 모두 검에 실어 그가 크게  번 검을 휘둘렀다.

소녀경을 통해 얻은 막대한 내력을 바탕으로 위일청이 스스로 만들어 낸, 오직 그만이  수 있는 독문 무공.

“호접비상(胡蝶飛上).”

그가 우연히 산에서 본 엄청난 수의 나비들이 날아오르는 풍경.

그 모든 나비를 자를  있는 수백개의 검기가 위일청의 손에서 펼쳐졌다.

“만섬.(萬閃)”

서걱.

섬짓한 절단음과 함께.

객잔이 사선으로 잘렸다.

그리고 비명과 피보라가 일었다.

“크아악!!”
“팔… 팔이…!!!”
“끄으윽…!!”

사선으로 잘린 객잔의  부분이 그대로 기울어지며 무너졌다.

갑자기 뻥 뚫린 밤하늘을 살짝 바라보고는 노순평이 웃으며 위일청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좀 하는구려,  소협.”
“… 죽인 자는 없습니다. 이대로 물러나시기만 한다면….”
“물러나? 모용세가가?”

노순평이 핏발선 눈으로 칼을 뽑아들며 외쳤다.

“30년 전의 복수라도 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거늘! 어찌 이 곳에서 물러나겠는가!!”

노순평이 당장이라도 뛰어들 기세이자, 위일청은 칼자루에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백리 소저. 지금입니다.”
“… 응.”
“먼저 가 있으세요, 좀 걸리겠군요.”
“… 다치지 마,  오라버니.”
“예.”

백리소현이 창가로 몸을 날리려던 순간, 다른 한 명이 끼어들었다.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예쁜 소저.”

모용세가의 2공자, 모용준이었다.

그가 칼로 내려찍자, 백리소현이 급히 그의 참격을 막아섰다.

챙!

“… 비켜줘.”
“싫습니다. 그보다… 천한 년이 감히 내게 명령을 해?!”

모용준이 백리소현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결국 백리소현이 반격에 나섰다.

쉬익!

“허억!”

날카로운 찌르기가 그의 볼을 스쳐지나가자, 거리를 벌린 모용준이 자신의 뺨에 손을 올렸다.

손에 묻은 피를 보고는 모용준이 백리소현에게 말했다.

“호오… 제법 한 수가 있는 년이구나.”
“… 지금이라도 비켜줘. 안 그러면….”

백리소현이 검을 활시위 당기듯이 뒤로 옮기며, 기수식을 취하고는 경고했다.

“… 다칠꺼야.”
“크크큭… 약속하마.   또한 광마의 여식과 함께 곱게 죽이진 않을게야!!”

날아드는 모용준을 보며, 백리소현 또한 그에게 뛰어들었다.

*

어두운 산길을 헤쳐나가며 허관영이 질주했다.

“새꺄!  적당히 흔들려야지, 우욱…!”
“등에다가는 토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니깐 좀… 잘 붙잡고 움직… 우웁…!”
“아, 제발…!”

도주를 시작한 허관영과 독고령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추격하는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아니었다.

독고령의 숙취였다.

“으…, 시발. 모용세가 새끼들 만나기 전에 내가 먼저 뒤지겠네.”
“내공으로 술기운을 좀 몰아내시죠.”
“할  알았으면 진작에 했어. 웁…!”

독고령이 다급하게 허관영의 뒤통수를 쳐대자, 결국 허관영이 그녀를 내려주었다.

“우웨엑!”
“… 제발 마시지도 못 하는 술은 적당히 드십쇼.”

허관영이 애잔한 눈으로 그녀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속을 게워낸 독고령이 소매로 입가를 훔치고는 아까보다 좀  개운한 얼굴로 허관영을 쳐다보았다.

“… 물.”
“… 여기 있습니다.”

허관영이 수통을 넘겨주자, 독고령이 벌컥벌컥 들이킨 뒤, 그에게 다시 수통을 건네주었다.

“크으….  살 거 같구만. 다시 가자.”
“… 예. 아…, 잠시만요.”
“뭐 있어?”
“… 전서구가 오는군요.”
“잉?”

한밤 중에 전서구가 어떻게 날아온단 말인가.

허관영의 말을 듣고 독고령이 고개를 듣자, 하늘에서 올빼미가 날아와 허관영의 팔에 내려앉았다.

“… 음침한 새끼들 아니랄까봐. 올빼미를 전서구 대신 쓰냐?”
“… 얘네 나름 빠릅니다. 귀엽기도 하고요.”
“너 효수 알지?  걸어두는 거.”
“저희도 압니다. 효수할 때,  자가 올빼미 효(梟)인거.”
“… 안 찝찝해?”
“흉조라서 오히려 아무도 안 건듭니다. 저희 하오문의 생존 비법이죠.”
“… 음침한 새끼들. 편지나 확인해.”
“… 예.”

올빼미의 다리에 묶인 종이를 뺀 뒤, 달빛이  내리쬐는 곳 아래로 가서 허관영이 편지를 확인했다.

“하…, 독고 소저. 저희 조졌는데요?”
“… 또 왜?”
“무림맹에서 소저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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