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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2장. 색마지약 - (7) (15/225)



〈 15화 〉2장. 색마지약 - (7)

객잔에 돌아온 위일청의 눈에 보인 것은 모용세가의 무인들로 꽉 들어찬 탁자들이었다.


 때, 그 무리 중  인물이 위일청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  소협, 이리 오시오.”
“아, 선배님.”


그에게 손을 흔든 것은 노순평이었다.

위일청이 탁잔에 가까이 다가서자, 근처에 앉아있던 무인이 자신의 의자를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그… 이쪽은….”
“아, 이 쪽은 내 조카이자, 대 모용세가의 2공자. 모용준이라고 하오. 2공자,  쪽은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옥면공자’ 위일청 소협이오.”
“아하…, 모용세가에 기재가 났다고 들었는데 이리 뵙는군요. 위일청이라고 합니다.”
“모용준이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소.”

모용준이 자연스레 하대하자, 위일청은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금세 표정을 바로했다.

“…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도 그렇소. 외숙부님. 이런 분과 알고 있었다면 진즉 소개 시켜주시지 그랬습니까?”
“허허, 나도 아까 방금 만났던 지라 소개가 늦었소. 위 소협, 한 잔 받으시게.”
“아, 예….”

위일청은 이제 막 앉은 자리가 벌써부터 불편해졌다.


‘… 모용 세가의 망나니라고 들었거늘, 생각보다 멍청한 놈이였구나.’

아무리 그가 무림에서 ‘색마’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자이나 명문 세가의 자제라는 놈이 배분도 따지지 않고 대뜸 반말을 하는 것을 보고, 위일청은 조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그보다   분란을 막기 위해서 위일청은 일단 이를 감수했다.

“…  맛이 좋군요. 그보다 선배님, 혹시 제 일행과 이미 만나셨습니까?”
“아,  지랄병이 있다는 소저 말이오? 이미 만났지.”
“… 실례를 범하진 않았습니까?”
“범했지.  아들 놈과 벌써부터 시비가 붙었더군. 내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소협의 일행이 피를 봤을거야.”
“… 죄송합니다. 괜히  일행 때문에….”

위일청이 일어나 고개를 숙이자, 노순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강호에선 결국 인연이 전부. 오늘 그대와 만난 것으로 이미 셈을 치뤘으니 그리 미안해하지 말게.  결례도 아니었거늘.”
“…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외숙부님, 대화가 끝났으면 제가 옥면공자와 얘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허허허, 그러시죠. 이공자께서 몸이 바싹 달아올랐소?”
“그야, 다름없는  옥면공자 아닙니까!”
“…”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모용준을 보고, 위일청은 빨리 자리를 피하고자 마음먹었다.

“하… 하하…. 그보다 2공자께서는 제게 뭐가 그리 궁금하신지….”
“진짜 강호의 사절화(四絶花)와 다 밤을 보냈소?”
“…”

강호에는  무공이 뛰어나고, 미모마저 빼어난 네 명의 여인을 묶어 사절화라고 부른다.


검후(劍侯), 경국(傾國), 침어(沈魚), 적막(寂寞).


그 네 명과 위일청은 하필이면 모두 한 번씩 인연이 있었고, 강호의 호사가들은 매일같이 사절화와 색마가 어떤 밤을 보냈을지 상상하며 떠들어대곤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개인사를 함부로 묻는 것을 색마는 매우 싫어했다.


더군다나 친하지도 않은 남정네가 묻는다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위일청은 그저 솔직한 말을 내뱉었다.

“하아…. 모용세가의 2공자께서는 버릇이 없군요.”
“뭐… 뭐라…!”

방금까지 시끄럽던 객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위일청이었다.

“명문의 자제라 들어 어느정도 예를 아는 자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럽군요.  선배님, 제가 피곤하여 먼저 일어나는 실례를 범하는 것을 용서해주시지요.”

위일청이 자리에 일어나자, 노순평이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


“다시 앉으시게, 옥면공자.”
“…”
“지금 가버린다면 우리 모용세가와 많이 불편한 상황이 될 것일세.”
“…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위일청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뒤돌아섰다.

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일어나 위일청의  길을 막아섰다.

“어떻게 할까요, 노 장로님.”
“… 보내주거라. 후회는 그 자가 감당할 몫이니.”
“… 예.”

길이 열리자 위일청은 그 사이를 빠져나가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노순평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이들의 눈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색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독고 소저에게 사고를 치지 말라고 했거늘, 내가 사고를 쳤구나.”

피곤하다는 거짓말은 금세 현실이 되었다.

오늘 밤은 백리소현의 가슴에 안겨 한숨 자야겠다 생각하며, 위일청이 문을 여는 순간….


“그… 그 개새끼가! 지가 죽인 사람을 기억 못 한다고오…!!”
“… 히잉.”
“…”

개판이 눈 앞에 벌어져있었다.

독고령의 주사를 받아주던 백리소현이 방에 들어온 위일청을 보자 달려들어 그에게 안겼다.

“위… 위 오라버니. 독고 소저가….”
“… 술을 멕이지 말라고 했거늘.”
“… 죄송해요.”
“하아….”

위일청이 소매를 뒤적거려, 약초꾼에게 받아온 약재들을 손에 쥐었다.

“… 덕분에 바로 쓰게 되겠구나. 조금만  참거라.”
“… 히잉.”


위일청이 약초들을 찢어, 수면제를 만들어 물에 살짝 섞은 뒤, 독고령에게 다가갔다.


“… 독고 소저.”
“어?! 색마다!!”
“… 예, 접니다.”
“너 이 새끼…! 또 나 따먹을려고?!”
“… 저는 독고 소저를 따먹은 적이 없습니다.”
“고자였어?!”
“… 목이 타실텐데 물이나 드시지요.”
“아, 그래! 고맙다~.”

독고령이 위일청이 건네준 잔을 받아들고는 꿀꺽꿀꺽 들이키더니 잠시 후, 금세 바닥에 쓰러졌다.


“크어…, 컥.”
“… 코마저 호탕하게 고는 걸 보면 남자로 태어났으면 천하대장부가 되었을 소저입니다.”
“…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백리 소저, 독고 소저를 옆 방에 옮겨두고 오세요.”
“… 응. 근데 괜찮아? 옆 방엔  마부가….”
“허 마부는 없을 겁니다. 그냥 옆에 두고 오세요.”
“… 알았어.”

백리소현이 독고령을 업는 순간, 위일청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 여긴 또 왜 이런지 압니까?”

독고령의 오른손이 조금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 령 매가 아까 노 대협을 만나고 방에 들어와서 바닥을 때렸어.”
“… 하긴. 광마 어르신과 노 대협 사이에 오랜 은원이 있으니 독고 소저께서 화가 나셨을 법도 하군요.”

찌직.


위일청이 천을 조금 찢어 환부에 금창약을 조금 발라주고는 천을 감아주었다.


“… 옆 방에 두고 오세요.”
“… 응. 혹시… 오늘도 해도 돼?”
“뭘요?”


백리소현이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 야한 거.”
“제가  된다고 한 적 있었나요? 독고 소저만 두고 오세요.”
“… 응! 히힛.”


백리소현이 밝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문을 닫기 전까지 미소를 지어주고 있던 위일청은, 백리소현이 나가자마자 표정이 가라앉았다.

‘… 모용세가가 독고 소저의 정체를 알면 소란이 일겠군.’

저 정도의 대규모 무인을 이끌고 있는데다가, 방금 자신이 2공자에게 창피까지 줬다.


그래도 명문세가의 자존심이 있을 터인데 시비를 걸더라도 먼저 선제공격을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위일청의 일행이 광마의 여식임을 아는 순간, 모용세가의 모든 인원이  그녀를 노릴 것이다.

‘… 어찌하여 가는 곳마다 원수를 져놓으셨소, 광마 어르신.’

괜히 한숨만 푹푹 내쉬던 찰나.


드르륵.


백리소현이 다시 돌아왔다.

“… 다녀왔어.”
“독고소저는 깊은 잠에 들었으니 잘  깰 겁니다.”
“… 응.”


백리소현이 스스로 옷을 풀어재끼며, 위일청에게 다가왔다.

금세 나체가 된 백리소현이 바닥에 앉아있는 위일청의 앞에 무릎을 꿇어, 네 발로 기어 그의 다리 사이로 향했다.

“… 오늘은 좀 많이  줄 수 있어, 위 오라버니?”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 앞으로  마부가 있으니깐 눈치가 보이잖아.”
“이런…, 제가  생각을 못 했군요.”

자신의 허릿춤을 풀어재끼는 백리소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일청이 미소지었다.

“그럼 많이 해야겠네요.”
“… 응.”


자신의 양물을 삼키는 백리소현을 보며, 위일청의 미소가 깊어졌다.

*

술 자리를 파하고, 자신의 객실로 돌아온 노순평은 머릿 속에 뿌연 안개가 낀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비연…, 비연…. 비연이라….’


분명 귀에 익은 이름이었으나 도저히 아까 만난 그 소녀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게 요란한 붉은 머리라면 내가 기억을 못 할리가 없다. 헌데 왜….’


그 짧은 순간, 붉은 머리의 소녀를 보고 그녀에게서 노순평은 여러 감정을 느꼈다.

분노, 멸시, 혐오.

온갖 부정적인 것이 다 담겨있던  눈동자가 그의 신경을 거슬렀다.

‘단순히 광증이 있는 년이라고 보기엔 눈이 살아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마치 광마 독고진을 떠올리게 하는 그 건방진 눈.

그 때, 노순평의 머릿 속에 번개가 쳤다.

‘비연! 광마!’


광마가 모용세가를 쳐부수러온 날, 내내 외치고 다닌 이름.

 그걸 잊고 있었을까.

‘잠깐…, 그 년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기에 그 이름을 아는거지?’


노순평이 도대체 광마와 비연, 그리고 그 붉은 머리의 소녀.

이 셋의 상관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고민하던 찰나, 누군가 뛰어들어왔다.


“장로님! 특보입니다! 개방에서 왔습니다.”
“… 개방이?”
“예!”
“줘보거라.”

전령이 들고온 서신은 전서구로  것도 아닌, 무림맹의 가장 긴급한 정보만을 전달할 때 쓰는 전서으로 보낸 특보였다.


서신을 전달받아 읽기 시작하자, 얼마 안  노순평이 웃기 시작했다.


“큭…, 크하하핫. 그랬군…, 그랬어….”
“무… 무슨 일이십니까?”
“그 세상 잃을 것 없는 놈에게도 가족이 있었어…. 큭…, 크크큭, 크하하핫!!!”

노순평이 미친듯이 웃기 시작하자, 전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장로님?”
“2공자를 불러와라. 그리고  조의 조장들 또한 데리고 오도록.”
“존명!”

밖으로 나가는 전령을 보고, 노순평이 자신의 허릿춤에 메달린 칼자루를 어루만졌다.

“광마…,  놈은 못 죽이더라도 네 년의 딸 년은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광마의 딸을 어떻게 처리해야 독고진이 가장 화가 나고, 괴로워할지 기분 좋은 고민을 하며 노순평의 미소가 점점 깊어져갔다.


*

“그냥 들어오시죠, 소저. 할 얘기도 있으니 말입니다.”
“꺼… 꺼져, 미친놈아! 옷부터 입고 다시 불러!”
“… 어차피 언젠가 보실 건데 미리…, 아.”

백리소현은 느리고, 답답했다.


말도 느리고, 반응도 느리고, 어딘가 뭔가 얼이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놀림은 몹시나 빨랐다.


“백리 소저.”
“… 응?”
“독고 소저를 붙잡아주시죠.”
“… 응.”


위일청의 말을 듣는 순간, 독고령이 몸을 빼려고 했으나 그보다 백리소현의 손이 더 빨랐다.

“미… 미친 년아!”
“… 나쁜 말 하면 싫어,  매….”
“놔…! 놓으라니깐…!”


독고령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백리소현의 팔은 마치 뱀처럼 얽혀들어와 독고령을 결박하였다.


“… 이러다가는 객잔의 다른 손님들이 다 깨겠군요.”


위일청이 바닥에 떨어져있던 백리소현의 옷가지를 집어 독고령의 입에 쑤셔넣었다.

“읍…! 읍읍!!”
“독고 소저, 심각하니 조용해주십시오. 백리 소저?”
“… 응. 히아앙!!”

갑자기 백리소현이 야릇한 신음소리를 토해내자, 독고령이 조용해졌다.

“하으읏…! 위 오라버니…! 너무 격렬해엣…!!!”


백리소현의 신음소리 사이로 위일청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독고 소저, 소저께서는 엄청 기민한 기감을 가지고 계시지요? 혹시 1층을 좀 살펴보시겠습니까?”
“??”
“모용 세가의 움직이 심상치 않습니다.”
“!!”


위일청의 말을 듣고 독고령이 눈을 감아 집중하기 시작하자, 그의 말대로 객잔 내의 움직임이 수상했다.

조심스러운 발소리와 빠르게 뛰는 다수의 심장소리들, 그리고 가끔씩 들리는 철이 부딪히는 소리들.

“… 확인하셨습니까?”
“…”


독고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위일청이 그녀의 입에 쳐박아뒀던 옷가지를 뺐다.

“… 거칠게 대해서 미안합니다. 저들이 눈치채기 전에 빨리 나가고 싶었습니다.”
“… 용서해주지. 그래서 무슨 일이야?”
“… 아무래도 제가 사고를   같습니다. 모용세가의 2공자에게 실수를 한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놈들이 덤벼들 거 같군요.”
“하아…, 이런 새끼랑 같이 천축까지 갈 수 있을까?”
“… 독고 소저도 이미 사고를 쳤다고 들었습니다.”
“새끼야, 결정타는 네가 날린 거잖아.”
“… 그런 듯 합니다. 제가 답지 않은 실수를 했군요.”
“여튼, 어쩔려고?”

백리소현이 여전히 야릇한 신음소리를 일부로 내뱉고 있자, 그 소리 사이로 위일청이 속삭였다.

“… 모용세가와 싸우는 건 무리입니다. 노순평 대협도 있으니깐요.”
“… 그 새끼는 좀 하지. 그래서?”
“일단 소저께서는  마부와 도망치시지요.”
“… 내가 그 새끼의 뭘 믿고?”
“허 마부는 하오문에서 제법 위치가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하오문은 저를 전적으로 돕는 곳입니다.”
“… 믿어도 돼?”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르자, 위일청이 말했다.

“… 아까 낮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강호사절화, 경국 은약벽 하오문주와 잔 강호초출이 저라고요.”
“그것 만으로 하오문 같은 거대문파가 너를 돕는다고?”
“… 왜 이러십니까, 진짜.  색마입니다.”

위일청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저랑 한 번이라도 같이 밤을 보낸 여인 중 저를 잊는 여인이 있겠습니까?”
“… 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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