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2장. 색마지약 - (5)
광마 독고진은 평범한 사내였다.
다만, 속에 화가 많은 사내였다.
남들보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많은 사내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족이 무인들에게 살해당했을 때, 그들의 강함을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낫을 집어들고 근처의 사파 무인들이 모인 곳으로 쳐들어갔다.
그 날 이후로 화전민은 독고진이 되었고, 세월이 더 흘러 그는 광마 독고진이 되었다.
무림인이면서 무림인을 혐오하는 괴짜.
기연으로 얻은 무공이 너무나도 뛰어난 데다가 악운을 타고나 쉽게 죽지 않고 기어이 깽판을 벌여놓는 무인이 광마 독고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 건드리지 않는 인종이 하나 있었다.
“… 영감탱이, 나 진짜 안 태워줄거요?”
“아, 거 참. 덩치도 큰 양반이 더럽게 징하게 구네. 이보쇼, 그렇게 거대한 쇳덩이랑은 같이 못 탄다니깐.”
“… 하아.”
또 다른 뱃사공이 독고진의 탑승을 거부하자, 그는 그저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섰다.
그의 목적지인 심양으로 향하기 위해선 그 사이에 있는 파저강을 꼭 넘어야만 했다.
하지만 뱃사공들 대부분은 독고진을 태워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의 흉흉한 인상과 덩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가진 거대한 참마도 때문이었다.
무인을 태워서 좋은 꼴을 볼 일이 없다는 것도 있지만, 강이 그렇게 깊지 않았기에 큰 배가 뜨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오히려 작은 배들 밖에 없기에 독고진같이 큰 덩치에 거대한 무기를 가진 이를 태웠다가는 전복이라도 할까봐 사공들이 모두 그를 거절한 것이다.
‘젠장….’
등평도수(登萍渡水)와 같은 상승의 경신술을 펼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배를 타고 가자니 뱃사공이 모두 거절을 하자, 결국 독고진은 팔을 걷어올렸다.
“뭐… 뭐 하시오?”
“헤엄쳐서 넘어가려고 하오.”
“미쳤소? 그런 거대한 쇳덩어리를 등에 매고?”
“가라앉는다면 그걸로 내 인생은 끝이겠지.”
독고진이 강에 몸을 내던지려는 순간, 한 소녀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자… 잠깐만요!”
“뭐냐, 꼬맹이.”
“저희 할아버지 배… 타실래요?”
“… 배?”
독고진이 자신의 등에 걸린 참마도를 가르켰다.
“이런 걸 들고 있는데도 탈 수 있냐?”
“네! 저희 할아버지가 파저강 최고의 뱃사공이거든요!”
“그럼 안내해라.”
“아…, 네!“
앞서서 졸졸거리며 뛰어가는 소녀가 갑자기 휙 돌아서서는 고개를 숙였다.
“아, 저는 비연이라고 해요!”
그리고는 소녀가 활짝 웃었다.
그게 독고진과 비연의 만남이었다.
소녀를 따라가자 그 곳에는 늙어서 노도 제대로 못 저을 것 같은 노인이 있었다.
“… 저 분이냐?”
“네!”
“… 노도 제대로 못 저으실 거 같은데.”
“아니예요! 우리 할아버지가 최고예요!”
“하아….”
독고진은 반신반의하며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 이보시오.”
“응?”
“강을 건너고 싶은데….”
“… 뭐라고?”
“강을! 건너고 싶다고!!”
“아~, 강…. 타시게.”
“…”
안 그래도 허약해보이는 노인이었거늘, 가는 귀까지 먹은 걸 확인하자 독고진은 걱정이 앞섰다.
‘… 도중에 가라앉는 거 아니야?’
불안한 마음에 발을 내빼려고 했으나 뒤에 서있던 비연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빨리 타셔요!”
“… 그래.”
독고진이 발을 뻗어 배에 올라타려던 순간,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한, 둘도 아니고 여러 명이군. 뭐지?’
독고진이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자, 말을 탄 기수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부터 이 곳의 모든 배는 모용세가가 빌린다! 나중에 값을 치룰터이니 서두르도록!!!”
“… 뭐?”
말의 무리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뒤, 그 뒤를 이어 무인들이 나타났다.
‘… 한바탕 했나보군.’
상처를 입은 무인들을 보고, 독고진은 코웃음쳤다.
“패배한 개새끼들이 시끄럽게 짖어대는거였구만.”
“… 녜?”
섬뜩한 그의 말을 듣고, 비연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자 독고진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무것도 아니다. 어서 타자.”
“하… 하지만… 이 곳에서 모용세가의 말을 어기면….”
“… 모용세가가 길림성에도 손을 뻗나보군.”
“…”
비연이 대답을 못 하고 있자, 독고진이 다시 배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노인이 그를 말렸다.
“… 내리지 마시오.”
“응?”
“… 먼저 탄 손님이 먼저 가는 게 맞지. 그게 뱃사공의 규칙이오.”
“… 괜찮겠소, 영감?”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소. 일단 배가 물에 뜨면 저들도 뭐라고는 못 하겠지.”
노인이 흐릿한 눈으로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어차피 배는 많으니 손님 하나 쯤이야 괜찮겠지.”
“… 그러지. 근데 귀가 먹은 거 아니였소?”
“복잡한 세상 일에는 귀를 닫아두고 사는 편이지.”
“크킄….”
노인의 말을 들은 독고진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저 정도 나이를 먹을 정도면 인생에서 험한 꼴도 많이 봤을테고, 그 험한 꼴의 대부분은 중원에 퍼져있는 ‘무림인’이라는 이름의 양아치 새끼들이 대부분의 원인이었다.
“태워주셔서 감사하오, 노인.”
“돈을 안 내게 생기진 않아서 태워주는거요.”
“크하핫, 내가 원래보다 조금 더 얹어드리오리다.”
독고진이 올라타자 잠깐 배가 기우뚱거렸지만 다행히도 큰 문제없이 물 위에 떠있자 노인이 힘을 주어 노를 밀었다.
“비연아.”
“네!”
비연이라 불린 소녀가 배를 땅에 묶어둔 밧줄을 풀려던 찰나, 한 무인이 다가왔다.
“잠깐!”
“…”
챙!
노인이 배를 멈춰세우자, 무인은 칼부터 뽑아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대는 전령의 말을 듣지 못 했는가! 지금 당장 모용세가가 배를 먼저 빌리겠다고 했을텐데!”
“꺄악!”
새파랗게 젊은 놈이 일단 칼부터 뽑아들자, 독고진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하아…. 이 영감은 가는 귀가 먹었소.”
“뭐냐, 네놈은?”
“말이 좀 짧다?”
“하! 내가 누군지 아느냐?”
“지랄났다, 지랄났어. 영감, 잠시 기다리시오.”
독고진이 나서려던 순간, 노인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 그러지 마시오.”
“… 괜찮소. 나 강합니다?”
“…”
독고진의 말을 들은 노인이 잡은 손을 놓자, 그가 배에서 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무인이 코웃음을 쳤다.
“하! 꼴에 칼 좀 휘둘렀다고 자존심을 세우는군. 잘 듣거라! 나는…”
“좆 까!”
후웅!
독고진이 참마도의 옆 면을 사용해 그의 허리를 후려쳤다.
“커헉!”
“오…, 멀리 날아가는군.”
별 다른 무공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휘두른 것 뿐인데 생각보다 멀리 날아가자 독고진은 실실 웃으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크하핫! 보시오, 저 놈 저거. 물보라를 일으키는 게 화려하군!”
“… 자네도 무림인이였군.”
“알고 태운 거 아니였소?”
“… 자네도 결국 무림인이었어….”
노인의 힘 없는 목소리를 듣고, 독고진이 이마를 찌푸리며 되물으려던 순간.
“음…!”
독고진이 자신의 등 뒤로 날아오는 검격을 알아차렸다.
채챙!
독고진은 자신의 무기를 들어 검격을 막아낸 뒤, 공격한 자를 확인했다.
우습게도 공격을 당한 독고진보다 그에게 공격을 가한 자가 더 놀란 상태였다.
“… 내 검을 막는 걸 보아하니 이름이 있을듯 한데. 누구냐?”
“지랄한다. 이 십새끼들은 도무지 자기가 먼저 이름을 밝히는 예가 없군.”
“… 혹시 네 놈이 요즘 ‘광마’라고 불리는 사파 놈이냐?”
“사파는 무슨 시발. 난 무림인도 아니다.”
“미친 놈이 맞군. 나는 노순평이다. 들어본 적 있나?”
“내가 아는 무림인은 당문의 개새끼들과 검신 밖에 몰라.”
“… 미친놈이군.”
“크크큭, 아가리는 그만 털지 그래.”
독고진이 참마도를 어깨에 걸치고, 노순평에게 손짓했다.
“니들 잘 하는 방식 있잖아. 일단 칼부터 들이대는거. 그냥 싸우지?”
“… 굳이 벌주를 마시고자 하는군.”
노순평이 칼을 들어올리는 걸 보고, 독고진이 미친듯이 웃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지랄한다!!”
독고진의 눈이 붉어지고, 그의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다시 정신을 차린 독고진의 눈 앞에 보인 것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노순평과 강의 자갈 바닥이었다.
그의 시야 멀리 강을 건너는 수많은 배들을 보며, 독고진이 말했다.
“커헉…. 더럽게 강하군….”
“후우…. 자네도 한 수가 있군.”
“지랄….”
독고진의 말을 들은 노순평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예의를 모르나?”
“짐승 새끼한테도 예의를 지키는가?”
“… 그렇군.”
스릉.
독고진의 목에 노순평의 칼날이 닿았다.
“… 남길 말은?”
“좆 까.”
“잘 가시게.”
노순평의 칼이 허공으로 들리는 순간, 독고진은 눈을 감았다.
‘시발…, 고작해야 여기까지였군.’
다가오는 노순평의 칼날을 기다리는 순간.
챙!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 가주.”
“그냥 처남이라 부르시죠. 어차피 세가의 사람들은 거의 다 배를 탔으니.”
“… 그러지, 처남.”
독고진이 눈을 움직이자, 그 곳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장년의 사내가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본 독고진이 비꼬며 말했다.
“… 뱀 같은 새끼군.”
“자네가 광마 맞나? 당문세가를 없애버리겠다고 전 무림을 떠들썩하게 했던.”
“크큭…, 그래. 그 얘기라면 내 얘기가 맞는 거 같군.”
“호오….”
장년의 사내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매형. 이 놈, 살려둡시다.”
“… 가주로서의 판단인가?”
“예. 보아하니 이 천한 것도 제법 실력이 있는데 풀어두면 알아서 당문을 괴롭혀 줄 겁니다. 우리 모용세가의 앞 길에 도움이 될 놈이군요.”
“크크큭….”
그의 말을 듣고 독고진이 웃자, 노순평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웃기지?”
“아…, 또 살겠군.”
“… 악운이 강하다고 생각하도록. 두 번은 없을 터이니.”
“아, 크크큭. 그 말도 여러 번 들었지.”
독고진이 몸을 일으켰다.
“너, 이름이 뭐지?”
“음?”
“가주라며. 내 목숨을 살려준 은인의 이름 정도는 알고 싶은데?”
“은인의 이름이 아니라 사냥감의 이름을 듣고 싶어하는 눈이군.”
“마음대로 생각하지.”
“모용벽.”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벽이 독고진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웃었다.
“나는 매형보다 강하니 유의하시게.”
“… 기억해두지.”
“크하핫, 갑시다. 매형.”
“… 그러지.”
마지막 남은 배에 모용벽과 노순평이 올라탔다.
그 배가 하필 독고진이 타려고 했던 배였다.
“출발하지.”
“… 아이가 같이 타야합니다.”
“아이?”
모용벽이 비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이리 오거라.”
“아….”
하지만 비연이 겁에 질려 움직이지 않자, 모용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리 오래두.”
“시… 싫어요.”
“비연아! 그냥 타거라…!”
“하아…. 이래서 천한 것들은….”
모용벽이 눈짓하자, 노순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연의 앞에 섰다.
“빨리 타거라.”
“이… 이 아저씨도 같이…”
짝!
노순평이 비연의 뺨을 후려치자, 노인이 발작하듯 외쳤다.
“나리! 제발 살려주십시오…, 나리!!!”
“무공을 쓰지도 못 하는 어린 아이를 패냐, 이 개새끼들아!!”
독고진이 피를 토하며 외쳤지만, 그 모습을 보고 노순평이 비웃었다.
“약자는 쓸모없지.”
“… 뭐?”
“약자로 태어난 자는 강자에게 굴종한다. 그게 강호의 이치 아니였나?”
“… 무공을 배운 적 없는 일반인들이다.”
“강해지려고 노력한 적 없는 버러지들이군.”
으드득.
독고진이 분하여 이를 갈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노순평을 죽이고 싶었으나,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약자로 태어난 게 죄라도 되냔 말이다!! 먹고 살기 바쁜 데 언제 강해지는가!!”
“이해가 안 가는군. 약자로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면 뭔가?”
그 때, 가만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용벽이 입을 열었다.
“… 매형.”
“예, 가주.”
“천 것들을 이해시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슬슬 지루하군요.”
“… 예.”
노순평이 칼을 들더니, 비연의 배를 찔렀다.
푹.
“… 아?”
“미친 새끼가…!!”
비연이 배를 붙잡고, 쓰러지자 노인이 울부짖었다.
“비… 비연아! 비연아!!”
“호들갑 떨지 마시게, 영감. 저 정도면 죽지 않아.”
“… 예?”
“하지만 시간이 늦어지면 죽겠지.”
축 늘어져 피를 흘리는 비연을 들쳐메고, 노순평이 배에 올라탔다.
“늦으면 손녀는 죽는다. 빨리 노를 젓도록.”
“저… 정말 살 수 있습니까?”
“… 내가 허언을 할 사람처럼 보이나?”
모용벽이 싸늘하게 일갈하자, 노인은 이를 악물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사…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아…, 약조하지. 빨리 의원에게 보여주면 산다.”
“…예!”
그 모든 광경을 독고진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개 같은 새끼들…!’
그가 몸을 회복하고, 수영으로 강을 넘은 것은 그로부터 하루 뒤의 일이였다.
그리고 넘어온 강가에서 비연과 노인의 시체를 발견한 것도 그 때의 일이었다.
“… 약조하마. 나는 저 개새끼들을 반드시 조져놓으마.”
비연과 노인의 시체를 묻어주고, 그 약속을 지킨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