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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2장. 색마지약 - (4) (12/225)



〈 12화 〉2장. 색마지약 - (4)

객잔을 나와 경신술을 펼쳐 산으로 향하던 위일청은 갑자기 자신의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멈춰섰다.


‘… 뭐지?’

이런 험한 산 길에 사람이 많을 리가 없었다.


위일청이 소매 속의 연검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리자,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여러 명이 튀어나왔다.


그들을 향해 위일청이 포권하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 우리를 알고 계셨소?”
“예.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단하시구려.”
“과찬입니다.”


위일청이 손을 거둬들이고, 자신을 둘러싼 무리들을 한 번 둘러봤다.


“… 그래서 제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먼저 실례를 범하게 된 점. 사과하겠소.”
“…”


무리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인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고개숙이며 포권했다.

“본 모는 대 모용세가의 호위를 맡고 있는 노순평이라고 하오.”
“… 모용세가의 비수(匕首)를 여기서 뵙는군요.”
“…”

자신이 누군지 한 번에 알아차리자, 노순평은 조금 긴장하였다.

‘저렇게 젊은 무인이 노부를 알아보는가.’

노순평은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 실례가 아니라면 소협의 이름을 알 수 있겠소?”
“… 위일청이라 하오.”
“옥면공자(玉面公子)셨구려.”
“… 그렇게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위일청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를 헐뜯는 자는 대부분 위일청을 색마라는 멸칭으로 불렀지만, 그래도 좀 대우를 해줄 때는 옥면공자라는 이명으로 불러주었다.

달리 말하면, 적어도 모용세가는 이 자리에서 그를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 것과 같았다.

노순평이 손을 들자, 그와 함께 온 무인들이 다시 사라졌다.

“… 미안하오. 현재  모용세가의 이공자께서 이동 중인지라 근처에 고수의 기척이 느껴져 무인들을 이끌고 찾아왔소.”
“아하…, 이해합니다.”


노순평은 어디까지나 호위이기에 주변의 위협을 미리 확인하러 온 것 뿐이었다.


“혹여나 불쾌감을 느꼈다면 노부가 사과하겠소.”
“아닙니다. 선배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일을 하신 것 뿐이니 괜찮습니다.”

위일청이 굳이 ‘선배님’이란 호칭을 써서 스스로를 낮춰주자, 노순평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강호의 이야깃거리들은 역시 믿을 게 못 되나 보오.  노부가 오늘 위 소협을 만나고 다시   깨닫는구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혹시 약초꾼을 찾는 것이라면  길 말고, 살짝 옆으로 돌아가시오. 절벽이 가파르긴 하나  공자의 경공 실력이라면 그 쪽이 더 빠를 것이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저 혹시….”
“음?”

위일청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노순평에게 질문했다.


“혹시 근처의 객잔에서 머무르다 가려고 하십니까?”
“… 어떻게 아셨소?”
“아…, 저 또한 거기서 머무릅니다.”
“허허…, 기연이구려. 이따 술이나 한  같이 하겠소?”
“… 좋지요. 그게 아니라 그… 제 일행 중에 한 명이  문제가 있어서요.”
“무슨 문제 말이오?”


위일청은 잠시 단어를 고르다가, 그냥 포기하고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어차피 이 자리에 독고령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 광증이 있는 소저가 하나….”
“광(狂)?!!”
“헙…!!”


미칠 광(狂)이란 단어를 듣자, 노순평의 온 몸에서 살기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노련한 무인답게 그는 금세 기운을 갈무리했다.

“…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구려.”
“… 아닙니다.”
“미안하오. 우리 모용세가에는 자다가도 ‘광’이란 단어가 들리면 분기탱천할 자가 한, 둘이 아닌지라….”
“… 이해합니다.”


노순평이 이성을 잃고, 한순간 살기를 내뿜어내는 것을 보며 위일청은 식은 땀을 흘렸다.


‘… 독고 소저의 이름은 절대 꺼내선 안 되겠군.’


모용세가와 광마가 한 번 크게 다퉜던 것은 강호에 이미 유명한 얘기였다.


광마가 한창 날뛰기 시작할 무렵, 모용세가의 본가를 박살내놓고는  현판 위에 오줌을 싸지르고 간 일화가 강호에 퍼진 뒤에 한동안 모용세가는 대문을 걸어잠그고 내실을 다지기 급급했다.

오죽하면 그 이후 모용세가가 오대세가에서 쫓겨나고, 황보세가가 그 자리를 꿰찼겠는가.

당연히 그런 수모를 겪었으니 모용세가 또한 광마에게 어마어마한 원한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위일청 또한 몰랐다.


“그래서 위 소협의 일행이 그… 머리에 조금 문제가 있단 말이오?”
“아…, 예! 그 소저가 병이 있어서 간헐적으로 욕을 뱉습니다.”
“… 안타까운 일이구려.”
“예…. 하아…,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공자께 혹여 무례를 범하더라도 내가 잘 설명해드리리다.”
“감사합니다, 대협.”
“별 말씀을. 그럼 이따 객잔에서 다시 봅시다.”
“예, 그러시지요.”

노순평이 멀어지자, 위일청은 잠시 그가 지나온 객잔으로 향하는 길과 노순평이 알려준 약초꾼을 찾는 길을 번갈아 쳐다봤다.

‘… 설마 그 짧은 사이에 독고 소저가 일을 저질렀을까.’


위일청이 객잔을 나선지 이제 겨우  다경(15분)을 지났다.


아무리 독고령이 괴팍한 성정을 가졌더라도  짧은 시간 사이에 벌써 문제를 일으켰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황관영과 백리소현 또한 옆에 있으니 혹여나 독고령이 사고를 칠 낌새를 느끼면  둘이 알아서 막으리라 믿었다.


‘… 그래도 불안하니 최대한 빨리 다녀와야겠군.’


위일청이 다시 대지를 박차고 약초꾼에게 향했다.


*

위일청의 바램과 달리, 독고령은 이미 거하게 날뛰고 있었다.


“시발. 술 좀 먹자는 데 존나 시끄럽네, 십새끼가.”
“… 하아.”

독고령의 폭언을 들은 백리소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깨진 술 잔을 주워든 모용세가의 사내가 고개를 들어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소저께서는 귀가 먹으셨소?”
“뭐?”
“소인은 모용세가에서 나온 무사요. 감히 대 모용세가의 일원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것이라 생각하시오?”
“옘병, 지랄났다. 병신들.”
“… 령 매. 술에 취했나보다. 빨리 들어가자.”
“아, 시발.  봐.  취해? 이제  잔 마셨는데.”
“령 매….”


백리소현의 한탄에도 불구하고, 독고령은 오히려 술병을 통째로 들고 마시며 말했다.


“하여간 시~발. 오대세가라는 새끼들이 지들 무공 가지고 지랄하는 게 아니라 지들 세력가지고 지랄하는 거 보면 존나 웃겨. 야!”
“…”
“야,  새끼야! 귀 먹었냐?! 방금까지 소리치던 개새끼, 그래 너!”
“… 정말 나를 가르키고 하는 말이오?”
“그래, 씹새끼야. 네가 노순평이나 아니면 모용가주냐?”
“미… 미친 년이 감히 우리 모용세가를 모욕하는 것이냐!!”


독고령이 가문의 가장 나이가 많은 원로들의 이름을 불러대자, 사내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시발. 걔네도 아닌데 네가 뭐라고 모가지를 빳빳하게 세워서 지랄이야, 지랄은? 엉! 시발, 누가보면 무슨 절정고수인 줄 알겠네.”
“말로 해서는  될 년이구나…!”

챙!

모용세가에서 나온 사내가 칼을 뽑아들었다.

“내 오늘 네 년의 목을 쳐서  객잔에다 걸어두겠다!!”
“지랄한다, 지랄. 열심히 해봐라, 걸리는 건  목이지.”
“이익!!”


사내가 자신에게 달려드려고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본 독고령이 팔을 털어 연검을 꺼내드려는 순간.

“멈추어라!”
“!!”

중후한 내공이 담긴 고함이 객잔에 울려퍼졌다.


고함 소리를 들은 독고령이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크윽…! 머리가….’

목소리에 담긴 중후한 내공이 독고령의 머릿속을 휘저어놨다.

결국 어지러움을 참지 못 한 독고령이 몸을 숙이며 속에 든 것들을 게워냈다.

“우웩!!”
“령 매! 괜찮아…?”
“으…, 시발. 존나 어지러워.”

독고령은 입 안에 느껴지는 쓴 맛보다 자신을 이 상태로 만든 것이 분해 이를 갈았다.

‘어떤 십새끼가 육합전성으로 나를 뒤흔들어?’


내공만 쓸 수 있었다면 아무 문제없이 가볍게 무시할  있는 수였다.

하지만 내공을 쓸 수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 독고령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 때, 객잔 안으로 방금 소리쳤던 인물이 들어왔다.


모용세가의 비수라 불리는 이, 모용세가의 이인자.


노순평이었다.


“노극명.”
“… 예, 아버지.”
“이리 오라.”
“…”


철썩!


노순평이 힘을 실어 뺨을 후려치자, 노극명의 입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네 잘못이 뭔지 알겠느냐?”
“… 모르겠습니다.”


철썩!

한 번 더 같은 곳을 힘주어 때린 뒤, 노순평이 말을 이었다.

“하나는 무인이 평정심을 유지  하고 무기를 뽑은 것이다. 무인이 평정심을 유지하지  한다면 그게 곧 심마다. 알아들었느냐?”
“… 예.”
“두 번째는 무공도 쓰지  하는 여인을 겁박한 것이다. 저 정도 여인 하나 가볍게 제압하지 못 하고 네가 무슨 낯으로 모용세가의 호위를 자처하느냐?”
“… 죄송합니다.”
“돌아가는  내내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
“예.”
“이공자께 가서 죄를 고하고 얌전히 있도록.”
“… 존명.”


노순평이 객잔으로 들어와 독고령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독고령의 머릿 속에서 그와 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나리! 제발 살려주십시오…, 나리!]
[무공을 쓰지도  하는 사람을 패냐, 이 개새끼들아!!]
[약자로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면 뭔가?]


 모든 기억들이 분노로 치환될 즈음, 노순평이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소. 옥면공자의 일행이 맞소?”
“…예. 저는 소현이라고 합니다.”
“…”


독고령이 입을 다물고 노순평을 노려보자,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 쪽의 소저가  소협이 말한 일행이겠군.”
“…”


독고령이 핏발선 흉흉한 눈으로 노순평을 노려보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백리소현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 일행이… 피곤해서요.”
“아아, 얘기는 들었소. 걱정하지 마시오. 지랄병이 있는 일행이 하나 있다고 위 소협이 그러더군.”
“!!”

 말을 듣는 순간, 백리소현의 등이 서늘해졌다.

독고령이 당장이라도 난리를 칠까봐 당황하여 뒤를 돌아봤지만, 독고령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 위 소협과는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구려. 미안하지만, 객실에서 남은 술을 즐겨주실 수 있겠소? 돈은 우리가 내도록 하지.”
“필요없어.”
“음?”

그제서야 독고령이 입을 열었다.

“필요없어. 돈은 우리가 알아서 하지.”
“… 말을 할 줄 아셨구려. 하도 입을 다물고 있길래 벙어리인 줄 알았소.”


까드득.

비아냥대는 노순평의 말을 듣고, 독고령이 이를 갈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노순평은 넉살좋게 웃으며 말했다.


“통성명이나 하는 게 어떻소? 나는 아직까지 소저의 이름을 듣지  했소만.”
“령 ㅁ…!”
“비연.”


백리소현이 당황하여 독고령의 입을 틀어막기도 전에, 다른 이름이 튀어나왔다.

“들어는  이름인가?”
“… 모르는 이름이구려. 비연…, 비연이라….”


노순평이 활짝 웃었다.

“어여쁜 이름이군. 부디 지병이 빨리 낫길 바라겠소.”
“…”


그의 답변을 들은 독고령은 탁잔의 술병을 낚아채고는 노순평의 옆을 지나갔다.

“가… 같이 가!”

백리소현이 급하게 독고령을 뒤따라갔다.

백리소현과 독고령이 객잔의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노순평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 말이야….”


어디서 들은 이름인지 떠오를듯, 말듯한 찝찝한 기분을 느끼던 와중,  무리의 인원이 도착했다.

선두에 서있던 훤칠한 사내가 말에서 내리며 노순평에게 인사했다.

“어르신?”
“아…, 오셨소. 이공자?”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잠시 독고령이 가버린 곳을 쳐다보던 노순평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 일 없었소.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예.”






객실에 들어온 독고령은 노순평의 혼잣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속에서 들끓는 울화를 참을 수 없었다.

쿵! 쿵!


어찌할  없는 화를 삭히느라, 독고령은 몇 번이고 연신 바닥을 주먹으로 때렸다.


“시발 새끼…, 좆 같은 새끼…, 금수만도 못한 새끼….”


쿵! 쿵! 쿵!

주먹을 내리치는 속도가 더 거칠어지기 시작하자, 옆에 서있던 백리소현이 걱정하는 말투로 물었다.


“령 매…, ‘비연’이 누구야?”
“…”


독고령은 차마 비연이 누군지 백리소현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자신이 광마 독고진이던 시절 알고 있던 인물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 말해줘도 몰라.”
“… 그럼 왜 화가  거야?”
“… 저 개새끼가 기억하지  하니깐.”


독고령이 씹어내뱉듯이 말했다.

“자기가 죽인 사람을 기억 못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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