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2장. 색마지약 - (3)
사일검법(射日劍法).
점창파의 가장 유명한 독문 무공이자, 모든 검법 중에서 가장 흉악하다 소문난 찌르기 위주의 검술이었다.
무공의 이름이란 그 무공이 추구하는 극의를 뜻하기에 ‘태양(日)을 쏜다(射)’라는 이름만봐도 사일검법의 창시자가 얼마나 원대한 꿈을 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가르쳐줘도 되냐? 나한테?”
독고령은 조심스레 백리소현에게 질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이란 무인의 자산이다.
거대 문파가 왜 거대 문파인가?
자신들의 무공을 철저히 독점하고, 외부인에게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무공은 완벽하지 않기에 널리 퍼질수록 파훼법도 늘어나고, 그럴수록 문파의 힘이 떨어진다.
게다가 독고령이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 응. 상관없어.”
“… 나한테 그걸 가르쳐줘도 네가 괜찮겠냐는 말이다. 그…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거 아니야?”
“…”
독고령의 말을 들은 백리소현이 자신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 괜찮아.”
“…”
“… 령 매는 광마가 되고 싶다매?”
“어?”
“… 나쁜 놈들은 가만히 못 놔둔다매.”
백리소현이 치맛자락을 붙잡던 손을 놓고, 독고령의 손을 붙잡았다.
여리고, 하얀 손이었지만, 물집이 가득한 무인의 손이었다.
강한 손이었다.
“… 그러니깐 내가 도와줄게.”
“…”
백리소현을 바라보고, 독고령이 피식 웃었다.
“하…, 역시 너는 둔치가 맞다.”
“… 응?”
“운공도 못 하고, 힘도 없는 여자의 뭘 믿고 무공을 가르쳐주지?”
독고령의 자조섞인 말을 듣고, 백리소현이 대답했다.
“… 절맥만 고치면 령 매도 엄청 강해질거고…, 약속했잖아?”
“엉?”
“약속은 당연히 지키는 거 아니야…?”
“…”
백리소현의 말을 들은 독고령은 속으로 확신했다.
역시 백리소현은 둔치가 맞다.
둔하고, 멍청해서 남의 말을 쉽게 믿는 바보다.
하지만.
그런 바보가 ‘광마 독고진’은 좋았다.
“… 네 말이 맞다. 약속은 당연히 지키는거지. 병신들만 그걸 몰라.”
“그래?”
“어. 적어도 네가 그 병신들보단 사람답군.”
“… 그럼 이제부터 소현 언니라고 불러.”
“…시발, 얘기가 왜 또 그렇게 흘러가냐?”
“… 내가 령 매의 사저가 되는거잖아. 그러니깐 언니.”
“안 배운다, 때려쳐.”
독고령은 방금까지의 결심을 내동댕이치고, 백리소현의 손을 놨다.
“… 언니라고 부르기만 하면 가르쳐줄게.”
“아, 좆 까.”
“… 나는 깔 좆이….”
“그아아악!!!”
“…”
독고령이 다시 발작하여 소리지르자, 백리소현이 움츠러들었다.
“… 이미 광마 같은데….”
“시바아아알!!!!”
“독고 소저. 조금만 조용히….”
“캬아아악!!!”
“…”
날뛰는 독고령을 보고, 위일청은 굳게 다짐했다.
‘… 다음엔 수면향이라도 사야겠군.’
*
“시발….”
한참을 난리치던 독고령이 조금 진정하자, 위일청은 그녀에게 수통을 건넸다.
“… 목이라도 좀 축이시죠.”
“고맙다….”
호쾌하게 물을 들이킨 뒤, 독고령이 다시 수통을 던져주었다.
“… 그래서. 뇌음사까지는 어떻게 갈 예정인데?”
“…”
“뭐, 새끼야?”
“… 아닙니다. 방금까지 그렇게 날뛰시던 소저가 금세 차분해지는 걸 보니 조금 놀랐습니다.”
“한 번 더 날뛰어 봐?”
“… 죄송합니다. 실언했군요.”
위일청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은 관도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하긴. 산길보다는 낫겠지.”
“그래서 요령, 하북을 거친 뒤, 절강에 잠깐 들리려고 합니다.”
“… 절강은 왜? 그럼 그냥 해안가를 따라 쭉 내려가는 거 아냐?”
“보타문에 들릴 일이 있습니다. 전에 말했던 구양신공이 필요한 아이가 그 곳에 있습니다.”
“…”
독고령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보타문이면 그 검후가 있는 곳 아닌가?”
“맞습니다. 남해검후(南海劍后) 여협이 계시는 곳이죠.”
“… 근데 그 곳이랑 네가 뭔 상관이야? 거기 여승들만 잔뜩 모인….”
거기까지 말하고 독고령의 입이 벌어졌다.
“… 너 설마….”
“아닙니다.”
“이 새끼 여승들도 따먹고….”
“아니, 좀…! 진짜 아닙니다. 제가 무슨 여자만 보면 다 발정해서 달려드는 줄 아십니까?”
“… 그래서 색마 아니야?”
“하아….”
위일청이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했다.
“… 독고 소저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먼저 나서서 여성에게 음양교합하자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요.”
“나한테 처녀 달라매?”
“… 보통은 제가 거기까지 말하기 전에 여성분들이 먼저 제 침소로 오시죠.”
“시발 새끼네, 이거.”
위일청이 억울함을 토로했다.
“… 소저는 정말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리고 그 색마라는 멸칭은 저를 시기하는 자들이 붙인겁니다.”
“그거 아냐?”
“… 어떤 거 말입니까?”
“사실 광마는 되게 이지적인 사람이야. 하지만 그를 시기하던 새끼들이 멋대로 추혈광마 같은 흉악한 이름을 붙여놨지.”
“…”
독고령이 자신의 말을 믿을 생각이 하나도 없어보이자, 위일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여튼. 거기 보타문에 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에게 극양의 신공이 필요합니다.”
“도대체 왜?”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튼 소저와는 이미 약속된 얘기니 그냥 넘어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구양신공 익히려면 뇌음사 가야하는데?”
“광증이 바로 생기는 건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러면 구결이라도 알려주는 게 낫죠. 어차피 보타문은 천축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 그냥 중원을 가로지르는 게 더 빠르지 않냐?”
“장강을 타고 가면 훨씬 빠르죠.”
위일청이 손을 들어 독고령에게 설명했다.
“어차피 사천까지 중원을 가로지르는 것보다 보타문에 제가 들리기도 해야하니깐, 절강성까지 갔다가 그 뒤 상해에서 장강을 타고 오르는거죠.”
“어디까지?”
“사천까지요. 그 뒤에는 배에서 내려서 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 흠,.”
광마 독고진이던 시절이라면 밤, 낮 구별 없이 그냥 중원을 쭉 가로질렀겠지만, 지금은 연약한 아녀자의 몸이다.
체력마저 좋지 못 하니 가능한 걷는 것보다는 마차와 배를 이용한 이동이 오히려 훨씬 빠를 것이다.
조금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독고령은 결국 위일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 그렇게 하지.”
“알았습니다.”
대충 어떤 경로로 뇌음사로 향할지 정해지자, 누군가 마부석을 두드렸다.
똑똑.
마부석에 나 있는 창문이 열리더니 마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위 공자, 말씀은 잘 나누셨습니까?”
“예, 허 마부.”
“다름이 아니라 이제 곧 해가 떨어질듯 한데, 근처에 객잔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곳에 잠시 멈출까요?”
위일청이 잠시 백리소현과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 응. 배고파.”
“둔치가 쉬자고하니 쉬었다 가지.”
위일청이 마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
다시 창문을 닫으려던 마부의 손을 독고령이 막아섰다.
“너도 하오문이냐?”
“예, 그렇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허관영이라고 합니다.”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뭐 좀 물어봐도 되냐?”
“… 그러시죠.”
“색마 저 새끼가 진짜 니네 문주를 따 먹ㅇ…”
“도… 독고 소저!!”
위일청이 기겁하여 튀어올라 독고령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시발! 궁금하잖아! 야!! 진짜냐고!!”
“미… 미안합니다, 허 마부! 빨리 출발하시죠! 소저가 광증이 있어서….”
“시발! 야! 나 미친 년 아니라고…!”
“… 출발하겠습니다.”
“… 령 매, 너무해….”
한동안 마차가 조금 들썩거렸다.
들썩이는 마차를 느끼며, 허관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 광마의 여식은 분란을 일으킬 소지가 농후하다고 보고해야겠군.’
객잔으로 들어가자, 점소이가 나와 독고령과 일행들을 맞이해주었다.
“어서오세요, 묵고 가시나요?”
“그렇소.”
“방은 몇 개를 드릴까요?”
위일청이 잠시 독고령을 쳐다보고는 점소이에게 답했다.
“2개 주시오.”
“알았습니다. 혹시 따로 필요하신 게 있나요?”
“… 배고파.”
백리소현이 위일청의 소매를 잡고는 졸라댔다.
“… 음식들을 좀 준비해주시오.”
“나는 술!”
“… 옆의 붉은 머리를 한 소저에게는 최대한 약한 술을 주시고, 절대 한 병 이상 내어주시지 마시오.”
“아, 왜 시발놈아!!”
“숙취로 고생할 독고 소저를 데리고 가는 것보다 그냥 욕을 쳐먹겠소.”
“… 십새끼. 쪼잔한 새끼.”
“후훗, 예. 그렇게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방은 계단을 올라가자 보이는 두 개의 방을 쓰시면 됩니다.”
점소이가 웃으며 주방으로 돌아가자, 독고령은 적당한 식탁을 골라잡아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백리소현이 그녀의 옆에 앉자, 독고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떨어져.”
“… 싫어.”
“아, 왜! 좀 귀찮게 들러붙지 좀 마.”
“… 그렇게 안 붙었는데. 이따 같이 씻자, 령 매.”
“… 또?”
“그럼 위 오라버니랑 씻으러갈까?”
“맘대로 해라. 시발…, 점소이!! 술 먼저 좀 갖다줘!! 빨리!!”
“예!”
독고령이 싫은 표정을 짓고 계속 백리소현을 거절해도,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실배실 웃으며 독고령의 옆에 붙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위일청이 웃었다.
‘… 백리 소저가 독고 소저를 많이 마음에 들어하는군.’
여자들끼리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생각하며 위일청이 허관영을 바라보았다.
“허 대협, 혹시 근처에 약방이 어딨는지 아십니까?”
“약방이요? 어디 아프십니까?”
“… 그게 아닙니다. 그… 수면향을 좀 만드려고요.”
“아….”
허관영이 잠시 독고령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위 공자.”
“하…, 하하…. 고생까지야….”
“제가 알기로 이 근방에 약방은 없고, 산 중턱에 산에서 약초를 캐다파는 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 자를 찾아가보시지요.”
“고맙습니다. 허 대협도 앉아서 같이 식사를 하고 계시지요.”
그러자 허관영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보고할 거리가 있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알았습니다. 그럼 먼저 객실에 가 있으실 겁니까?”
“예, 그럴 듯 합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백리 소저와 독고 소저에게 변고가 생기지 않도록 틈틈히 신경써주십시오.”
“… 예.”
허관영은 목 끝까지 차오른 ‘독고 소저가 변고를 일으키는 걸 막는 게 아니라요?’ 라는 질문을 꾹 참고 삼켰다.
위일청이 독고령에게 다가오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디 가냐? 약재 찾으러?”
“예….”
“수면향 같은 거에 의존해서 자지 말고, 그냥 땀 좀 흘리고 자는 게 더 좋을텐데?”
“…”
언제봐도 참 뛰어난 기감을 가졌다 생각하며 위일청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 참고하겠습니다.”
“그래. 그보다 저 허관영? 맞나. 저 새끼 좀 치냐?”
“… 예?”
“아니. 딱 보니깐 무인은 아닌 거 같은데 네가 나랑 둔치를 부탁하길래.”
“아…, 후훗.”
위일청이 웃자, 독고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쪼개?”
“허 대협에 대해선 나중에 말할 일이 있을 겁니다. 아무튼 먼저 식사하고 계시죠. 저는 그 약초꾼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백리 소저.”
“… 응.”
“독고 소저를 잘 부탁합니다.”
“… 응. 다녀와.”
“그럼.”
위일청이 객잔 밖으로 나가 몸을 날리는 것을 보고, 독고령이 툴툴거렸다.
“시발 무슨 내가 애새끼도 아니고….”
“… 령 매가 어려보이니깐 그렇지.”
“시발….”
백리소현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자, 독고령이 그녀를 쳐다봤다.
“뭐? 왜?”
“… 언니라고 불러 봐.”
“아, 시발! 싫다고!!”
“… 한 번만? 응?”
“꺼져, 좀!”
“… 히잉.”
“점소이!!! 시발, 술을 빚으러 갔나! 점소이!!”
“예!! 지금 가요!!”
백리소현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독고령이 괜히 엄한 점소이에게 눈치를 줬다.
“거, 좀. 빨리 달라니깐….”
“아이고, 죄송합니다…. 오늘 손님이 많아서….”
“… 뭐?”
독고령이 주변을 한 번 휙 둘러봤다.
식탁은 많았으나, 거의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 점소이.”
“네?”
“귀신이라도 보여?”
“아…, 좀 이따가 모용 세가의 공자님이 친우들과 오실 예정이라서요.”
“… 뭐?”
모용세가라는 단어를 듣자, 독고령의 눈썹이 휘어졌다.
“모용세가~? 요녕에 있는 새끼들이 여기까지 왜 와?”
“근처에 자주 놀러오시곤 하더라고요.”
“… 령 매.”
“왜?”
“… 표정 좀 어떻게 해 봐….”
“응?”
백리소현이 손을 뻗자, 독고령이 그 팔을 쳐냈다.
“뭐? 왜? 말로 해, 말로.”
“… 엄청 사파 같은 얼굴이야.”
“앙?”
“… 누구 하나 죽이려고 벼르는 얼굴.”
“…”
그 말을 듣고, 독고령이 마른 세수를 몇 번 하고는 표정을 바로 했다.
“내가 모용 세가 새끼들이랑 왜 싸우냐.”
“… 그럼 다행이고.”
“술이나 마시자. 너도 마실래?”
“… 응응.”
백리소현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는, 잔을 들어 백리소현에게 술을 넘기자 그녀가 술을 따라주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히고는, 술 잔을 입 안에 털어넘기려던 차.
독고령은 술 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 그래, 나는 광마 독고진이 아니라 독고령이지, 이젠.’
과거의 은원은 과거일 뿐이라 생각하며, 독고령이 술잔을 털어넘겼다.
“크으…, 맛있다.”
“… 아저씨 같아.”
“뭐래. 야, 색마 몰래 좀 더 마실까?”
“… 응, 히힛.”
백리소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때, 한 사내가 객잔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객잔에 계신 분들은 잠시 예를 지켜주시길 권하오!! 대 모용세가의 이공자께서 곧 들어오실 것이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백리소현이 표정을 찡그렸다.
하지만 독고령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쨍그랑.
“…음?”
사내가 갑자기 술 잔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그 곳엔 팔을 뻗은 붉은 머리의 여인, 독고령이 있었다.
“… 소저께서 던지셨소?”
“그래, 시발. 술 좀 먹자는 데 존나 시끄럽네, 십새끼들이.”
“… 하아.”
독고령의 폭언을 들은 백리소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 위 오라버니. 빨리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