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1장. 광마였던 소녀 - (7)
“그래서 할 수 있겠어?”
“… 일단 시도해봐야죠. 아마 막힌 맥은 어느정도 뚫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단…, 어디까지나 소저께서 거래를 승낙하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쪼잔한 새끼.”
“… 저도 얻는 게 있어야죠.”
“구양신공?”
“… 아니요. 그것 말고도 거래에 추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독고령이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자, 색마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소저의 처녀를 받고 싶습니다.”
“… 뭐?”
“… 당황스러워 하시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소저께서 들으신 내용이 맞습니다. 소저의 초야를 받고 싶습니다.”
“…”
독고령이 팔짱을 끼고 넋이 나가 위일청을 쳐다보다가….
팔을 튕겼다.
챙!
“뒤질라고 이 새끼가…!”
“잠깐만요, 소저. 조금만 진정하고 얘기를 들으시죠.”
“… 뭘 진정을…”
“저도 진지합니다! 좀 얘기를 들어주세요!”
위일청이 독고령의 칼을 붙잡았다.
“… 나를 따먹는 얘기가 도대체 왜 거래의 내용에 튀어나오지?”
“저는 ’소녀경(素女經)을 익혔습니다.”
“… 그 음란하기 그지없는 잡서?”
소녀경은 남녀간의 음양합일에 대해 다룬 책이었다.
한 마디로 그냥 ‘야설지’다.
“… 세간에 퍼진 것들은 가짜입니다. 제가 익힌 것은 저희 위씨 세가가 대대로 지켜온 보물이고요.”
“지랄한다, 지랄해. 여자 한 번 따먹으려고 이야기를 열심히도 지어내는구나.”
“하아…, 독고 소저. 생각해보십시오.”
“뭐, 새끼야.”
“저 이제 이립(30세)을 지난 놈입니다. 근데 전 무림에서 가장 고강한 내공을 지닌 자로 항상 이름이 오르내리지요.”
“… 더 지껄여 봐.”
“제 내공의 배경이 그 소녀경입니다.”
“…”
위일청의 개소리를 듣고 있자, 독고령이 또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냥 시발 다 때려치고 혼자 갈까?’
괜히 멍청하게도 색마를 믿었다 후회하던 찰나, 백리소현이 입을 열었다.
“… 진짜야.”
“응?”
“위 오라버니는…, 음양합일을 하지 않으면 내공을 쌓지 못 해.”
“뭐?”
“… 소녀경이 그런 심법이야.”
“별 미친….”
“… 진짠데….”
백리소현이 조금 침울해져 중얼거렸다.
위일청이 그 때 말을 이어갔다.
“… 소저.”
“뭐, 새끼야.”
“압니다, 여성에게 얼마나 처녀가 중요한지요.”
“좆 까고 나는 너한테 다리 벌릴 생각 없어.”
“백리 소저도 그렇게 해서 나았습니다!”
“… 뭐?”
독고령이 다시 그를 바라보자, 위일청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소녀경은 방중술입니다. 예, 남녀 간의 교합을 주로 다룬 책입니다. 맞습니다.”
“…”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녀 간의 양기와 음기를 적절히 조합하여 서로 최상의 신체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 소녀경을 만든 선인의 뜻이었습니다.”
“뭔 시발….”
“이해가 안 가십니까, 소저? 절맥은 과도한 음기 때문에 양기를 못 얻기에 문제입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양기를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요.”
“…”
독고령이 조금씩 흔들렸다.
위일청의 개소리가 점점 그럴싸한 개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 그러니깐 네 말은 너랑 내가 떡을 치면 네가 양기를 넣어주고, 그걸로 절맥을 치료할 수 있다?”
“… 예, 그렇습니다.”
“시발, 이 병신같은 개소리가 왜 점점 그럴싸하게 들리지?”
“… 사실이니깐요.”
“… 진짜야, 령 매….”
백리소현까지 옆에서 거들자, 독고령이 이마를 찌푸렸다.
‘아이, 시발. 무공 되찾자고 남자한테 다리를 벌려야한다고?’
비록 지금은 여인의 몸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남자였다.
일평생을 남자로 살던 그에게 갑자기 무공을 되찾게 해주겠으니 한 번 다리를 벌리라는 제안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닌 생리적인 혐오감이 끓어오르는 문제였다.
“… 독고 소저. 처녀는 당장 받진 않을 겁니다.”
“응?”
“준비 단계가 좀 있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데 소저께 나쁜 일은 없을 겁니다.”
“시발, 절맥을 고치면 당연히 안 나쁘겠지.”
“… 저 엄청 잘 합니다.”
“시발놈이, 진짜!”
“아잇, 소저. 칼 좀 그만 휘두르십쇼!!”
위일청을 조질려고 다시 한 번 칼을 휘두르려던 그 때, 독고령의 마음 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 굳이 이 새끼한테 처녀를 안 주고 이용해먹는게 더 좋지 않나?’
갑자기 머리를 스친 생각에 독고령은 위일청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어이, 색마.”
“… 예.”
“내가 너한테 대주면 너도 분명 얻는 게 있겠지?”
“… 독고 소저가 처녀시면 저 또한 어마어마한 내공의 증진이 있습니다.”
“… 이 새끼, 처녀를 얼마나 따먹고 다닌거야?”
“아녀자의 몸으로 그런 소리를…”
“어허! 쓰읍….”
“…”
독고령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니깐 너가 좀 더 얻는 게 크네?”
“… 예?”
“아니, 시발. 여인에게 처녀는 일평생 하나 밖에 없는 건데 너는 무수히 많은 처녀를 따먹은 새끼잖아.”
“…”
“그럼 시발 내가 좀 억울하지 않아? 맞지?”
“그… 그렇지요?”
“거래 내역을 좀 바꾸도록 하지.”
“구양신공은 꼭 필요합니다….”
“알아, 새끼야.”
독고령이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을 꺼냈다.
“나는 너한테 구양신공과 처녀를 준다. 이걸로 충분해?”
“… 예.”
“그럼 내가 너한테 요구할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 색마 위일청은 독고령을 천축의 뇌음사까지 데려다준다.
둘. 색마 위일청은 독고령의 안전과 숙식을 보장한다.
셋. 색마 위일청은 독고령을 뇌음사까지 데려다주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덮치지 않는다.
이야기를 다 들은 위일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뇌음사는 왜 가시는 겁니까?”
“그게 있지…, 음….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거지.”
“… 예? 광마 어르신이요?”
“… 어. 아버지가 거기 있어.”
“… 여기 흑룡강과는 정 반대쪽 아닙니까?”
북동쪽에 위치한 흑룡강에 비해 뇌음사는 중원의 왼쪽 아래, 남서쪽의 운남을 지나 천축국의 국경에 있는 절이었다.
위일청이 말했다.
“그냥 광마 어르신과 만나고 저를 쫓아내려는 거 아니십니까?”
“…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하지만 진짜 아니야.”
독고령이 백리소현을 슬쩍 쳐다보고는 위일청의 귀에 가까이 입을 가져다댔다.
“… 뇌음사로 가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구양신공의 마지막 구결을 몰라.”
“제가 구양신공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무공이 탐나서가 아닙니다. 그저 양기를 순환할 수 있는 극양의 심법이 필요한 거 뿐입니다.”
“멍청아, 우리 아버지가 광마잖아.”
“…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구양신공의 마지막 구결을 익히지 않으면 광증이 찾아온다. 아버지는 그 마지막 구결을 찾기 위해 떠나신거야.”
“…”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이지만, 독고령 스스로도 제법 그럴싸하다 느꼈다.
“전에는 산보 나가신거라면서요?”
“시발, 내가 그럼 너한테 거짓말 하나 안 하고 다 곧이곧대로 말할 줄 알았냐?”
“…그렇군요.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뭡니까?”
“점창파.”
“…!”
위일청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그가 손을 휘둘러 기막을 쳤다.
백리소현이 듣지 못 하게 내공의 벽을 세운 것이었다.
“… 독고 소저, 단순히 백리 소저를 동정하시는 거라면 그만두시죠.”
“좆까는 소리지. 어제 처음 만난 여자가 불쌍해서 점창파에 시비를 걸 정도로 광마가 미친 놈처럼 보이나?”
“남궁이랑은 점소이 하나 때문에 싸웠다고 들었는데요?”
“아….”
생각해보니 점소이한테 아니꼽게 굴던 게 꼬와서 남궁세가의 대공자를 두들겨 준 적이 있었다.
“모용이랑은 뱃사공 때문에 척을 졌다고 들었습니다.”
“… 아잇, 시발. 좀 닥쳐봐.”
“…”
위일청이 입을 닫자, 독고령이 눈을 찌푸렸다.
“야, 시발 그럼 저대로 놔 둬?”
“… 백리 소저는 이미 점창을 잊었습니다.”
“좆까는 소리지. 쟤는 앞으로 평생 지 배의 상처를 볼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를거다. 아니야?”
“…”
“복수는 말이지, 그 대상에 관련된 모든 것을 찢어발겨 불태운 뒤에 재만 남아도 마음 속에 응어리가 남는 법이야. 하다못해 그 대상이 살아있다면? 잠도 제대로 못 자. 그게 복수심이야. 그게 너희 무림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은원’이라고.”
“… 압니다.”
위일청이 주먹을 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복수하는 게 옳은 일입니까?”
“옳고 그름은 시발 신선들이나 따지라고 그래.”
독고령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위일청은 참 멋진 웃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꼴리는 대로 살다 뒤져야지. 언제 뒤질지도 모르는데 그런거 다 따지고 어떻게 사냐, 시발.”
“…”
위일청이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펴고, 다시 자세를 바로했다.
“… 광마 어르신이 도우리라 생각합니까?”
“내가 뇌음사에 도달하기만 하면 반드시.”
“…”
독고령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합리화했다.
아무튼 뇌음사에 도달해 극양의 신물을 이용해 다시 남성의 몸을 되찾는다면 그가 친히 점창파를 잘게 다져줄 생각이었기에.
“… 알았습니다. 약조하지요.”
위일청이 포권하며 그녀에게 선언했다.
“저는 독고 소저를 뇌음사까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가는 동안 숙식을 제공하고, 도착하기 전까지는 소저의 처녀를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절맥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령 또한 포권하며 말했다.
“그럼 나는 너에게 구양신공의 구결과 점창파를 조지는 걸 도와주지.”
“… 약조하셨습니다?”
“뭐, 못 믿겠으면…. 어디 하늘에다 걸까?”
“아뇨. 소저께서 허언을 하신다면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거겠죠.”
“… 새끼, 호탕하네.”
위일청이 다시 손을 휘둘러 기막을 없애자, 그 낌새를 알아친 백리소현이 말을 걸었다.
“… 끝났어?”
“예, 백리 소저.”
“… 응. 그럼 준비해?”
“예, 부탁드렸던 걸….”
“… 응.”
백리소현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독고령이 위일청에게 물었다.
“응? 준비? 바로 나가게?”
“아니요. 소저의 절맥부터 치료해야죠.”
“아~.”
독고령이 이해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춰섰다.
“잠깐. 시발, 치료라고 하면 떡 치는 거 아냐?”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치료를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고요.”
“… 뭐?”
“사랑 없는 교접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소녀경은 남, 녀간의 기감을 극대화하여 최상의 쾌락을 이루고, 그를 통해 건강과 장생을 추구하는 법도입니다.”
위일청이 상쾌하게 웃으며 독고령에게 손을 뻗었다.
“약조드리지요. 기분 좋으실 겁니다.”
“시발….”
독고령의 단말마가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
흰 백발과 흰 수염을 가진 중년의 무인이 한기를 내뿜으며 길을 걷다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내가 너를 너무 믿었구나, 서린아.”
“… 죄송합니다, 아버지.”
한기를 내뿜는 중년은 빙궁주이자 북해빙제라 불리는 남자, 백련휘였다.
그가 분노에 몸을 떨며, 한기 가득찬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물을 도둑맞는 일도 용서하기 힘든 대죄거늘….”
“…”
“색마 놈에게 빠져 그 범인을 놓쳐?!!”
“죽여주십시오, 아버지!”
“닥쳐라!!”
백련휘가 일갈하자 주변의 나무가 떨리며 나뭇잎들이 떨어졌다.
“후우…, 후우…. 죽음으로 죄에서 도망치려하지 마라. 나는 내 딸을 그리 연약하게 키운 적 없다.”
“…예. 반드시 되찾겠습니다….”
“제기랄, 광마란 자가 그리 눈에 띄는데 어찌하여 흔적을 찾기가 이리…도?”
백련휘의 기감에 무언가 걸렸다.
“… 아버지?”
“거기 숨어있는 자들은 당장 튀어나오거라.”
“!!”
백련휘의 말을 듣고, 백서린이 나무들을 쳐다보자 그 곳에서 하나, 둘씩 숨어있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녹림도인가….”
“어… 어르신, 저희는 그…, 어르신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서린아.”
“예.”
“죄다 죽여라.”
“예, 아버지.”
“시발….”
챙!
백서린이 검을 뽑아들자, 산적들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거 시발. 그러니깐 오늘은 작업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소….”
“광마년이 훔쳐간 것도 없는데 뭐가 급해서 작업하러 나와서 이 지랄이오, 젠장.”
“음…?”
산적들의 유언 아닌 유언을 듣던 백련휘의 귀에 거슬리는 단어가 있었다.
백련휘가 억누르고 있던 내공을 완전히 개방하자, 산적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의 거대한 존재감 때문이었다.
“… 광마? 광마라고 했는가?”
“…”
“말하라, 그럼 살려주지.”
“과… 광마의 딸을 만났습니다.”
“딸?”
그 말을 듣자, 거짓말처럼 백련휘의 내공이 사라지고 고요가 찾아왔다.
“큭…, 크크큭…. 크하하하핫!! 그 천하의 잃을 것 없던 개 망나니에게도 가족이 있었단 말인가!!”
“…”
갑자기 미친듯이 웃어재끼는 빙궁주를 보고 산적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서린아.”
“예, 아버지.”
“죽이지 마라, 저 놈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구나.”
“예….”
“그리고 전서구를 준비하여라.”
“어디로 보낼까요?”
백련휘의 눈에 희열이 깃들었다.
“합비. 무림맹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