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1장. 광마였던 소녀 - (4) (5/225)



〈 5화 〉1장. 광마였던 소녀 - (4)

“끄으….”


신음소리와 함께 독고진은 눈을 떴다.


‘시발….’


엄청난 고통이 복부에서 느껴지자, 독고진은 손을 들어 다친 곳을 확인했다.


‘뼈가 부러졌나?’

팔을 몇  휘적거리며 확인해봤지만, 뼈는 부러지지 않은듯 했다.

‘… 그나마 다행이군.’


몸을 일으켜 주변을 확인했으나,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몇 개 없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듬성듬성 보이는 모닥불과 독고진을 가두고 있는 나무로 만든 조약한 우리가 전부였다.

‘미친 놈들. 나를 감히 나무 우리에 가둬?’

만년한철로 만들어둔 우리도 부수고 나온 것이 광마 독고진이었다.


바로  조약한 우리를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나무를 붙잡자, 독고진은 금세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시발…. 병신같은 환골탙태….’

이 쓰레기 같은 몸으로는 이런 허접한 우리에서 나가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흐읍…!”

아무리 힘을 줘도 부숴지기는 커녕 꼼짝도 안 하자, 독고진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 시발….”

천하의 광마가 이딴 곳에서 곤욕을 치뤄야하는가.

독고진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던 와중,


누군가 다가왔다.


“어? 일어났네?”
“당장 날 꺼내, 십새끼야.”
“… 생긴 것과 다르게 말이 험한 년이네?”
“… 뭐?”


산적이 기분 나쁘게 웃고는 뒤돌아 소리쳤다.

“어이! 왕봉! 네가 잡아온 년이 깨어났다! 두목님을 불러!”
“일어났냐?!”
“그래!”

산적들이 지들만 아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며 자신을 비웃자, 독고진은 또 다시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이 십새끼가 누굴 좆으로 아나….”
“어이, 아가씨. 거 예쁜 상판떼기로 그런 말 하지 말고, 얌전히 굴자. 응?”
“하아…, 시발.”

콰직!


독고진이 나무 우리에 들러붙어 발작하듯 외쳤다.


“야 이 개새끼야! 너는 시발 반드시 내가 죽인다! 개새끼가!!”
“크큭, 무서워 죽겠네. 그래,  죽여라.”


이제는 사라졌을 광증이 다시 올라올 것만 같은 분노를 느끼며 독고진이 발광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불이 나타났다.

“… 뭐야?”
“오셨습니까, 두목님!”
“오냐.”
“…”


여러 개의 불과 함께 등장한 자는 거대했다.

‘… 내가 남자일 때만큼  놈이 있군.’


호랑이 가죽과 어지간한 성인 남성만큼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들춰맨 사내가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독고진이 갇혀있는 우리 앞에 섰다.

“호오….”
“…”

방금까지 발작하듯 소란을 부린 독고진이였지만, 눈 앞에 있는 도끼의 사내를 보자 그는 조용해졌다.

여자가 되면서 이전보다 날카로워진 기감이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 새끼…, 사람을 밥먹듯이 토막쳤겠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서도 일정한 발걸음과 호흡.

도끼와 몸에서 흘러나오는 지독한 혈향.


방금까지 독고진을 가지고 비웃던 산적 나부랭이 새끼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입이 좀 걸하다 들었는데 얌전하구나.”
“…  참고 있는거지.”
“뭘 말이냐?”
“…”


까득.


‘뭐긴 뭐야, 개새끼야.  놈을 죽일 단  번의 실낱 같은 기회를 기다리는거지.’

독고진은 기회만 있다면 지금의 연약한 몸으로도 산적 나부랭이 정도야 얼마든지 토막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니, 확신했다.

지금의 몸이 아무리 무인으로서 쓰레기 같은 몸이라 할 지언정, 그녀는  때 광마였던 소녀다.

광마로서 가지고 있던 지식은 어디 가지 않았다.


하지만 눈 앞에 선 산적의 두목 놈을 상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무인으로 불리기에 모자람 없는 훌륭한 신체.

발걸음이나 호흡이 안정된 것으로 보아 사파의 거렁뱅이치고는 과분한 인연을 얻어 무공도 배웠을 것이라 추정되는 놈이었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내가 죽는다….’

정말 오랜만에 눈 앞에 닥친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독고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습을 본 산적 두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음?”
“내게  원하는 거지?”
“큭큭큭. 네 년, 지금 자신의 처지를 알고는 있는 게냐?”
“알고 있다. 원하는 걸 들어주지, 대신 나를 풀어다오.”
“큭…, 크큭…, 크하하핫!!!”

산적 두목이 크게 웃기 시작하자, 다른 산적들도 그를 따라 웃었다.

모두가 자신을 비웃는 와중에도 독고진의 눈은 두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큭큭. 어이, 왕봉.”
“예, 두목.”
“재밌는 계집을 주웠구나. 받아라.”

두목이 허리춤에서 전낭을 통째로 풀어던져주자, 왕봉이라 불린 산적이 전낭을 받아들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두목!”


왕봉의 인사에 대충 손을 털며 대답한 산적 두목이 다시 독고진을 바라보았다.


“원하는  들어주겠다고 했느냐?”
“그래.”
“원하는 것이라….”

산적 두목이 턱에 손을 올리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 신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흐음…. 네 년을 원한다.”
“몸을 대달란 말인가?”
“그래.”
“하아….”

독고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것으로는  되나? 원한다면 돈을 줄 수도 있다.”
“없다. 나는 네 년이 궁금하구나.”

산적 두목이 나무 우리를 붙잡고, 콧바람을 내뿜으며 말했다.

“네 년이 내 관심을 끌었다. 첫 인상은 그냥 단순히 외모가 예쁜 년이였지. 그런 년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
“하지만 네 년이 입을 여는 순간부터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군.”

뚜둑. 뚜두둑!

두목이 나무 우리를 강제로 잡아열었다.

“네 년이 과연 내 밑에 깔리고도 그렇게 대범할 수 있을지 말이야.”
“… 미친 새끼였군.”
“크큭, 그래. 바로 그런 모습이야!”

두목이 독고진의 턱을 붙잡아 혀로 그의 얼굴을 핥았다.


끔찍한 입냄새와 기분 나쁜 끈적함이 독고진의 얼굴을 휩쓸었다.


“네  같이 앙칼진 년이야말로 침소에서 좀 갖고 노는 맛이 있지.”
“뭘 쳐먹었지?”
“… 응?”
“아가리에서 똥내가 나는 걸 보니 변소에서 똥을 집어먹었나보군. 맛있던가?”
“…”


산적 두목의 얼굴이 멍해졌다.

“나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대답해주겠나?”
“큭…, 크하하핫!!!”


산적 두목이 크게 웃더니 독고진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꺄악!!”

머리에서 느껴지는 격통과 함께 독고진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산적 두목은 개의치 않고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아 끌고갔다.

“재밌군. 정말 재밌어…! 내 앞에서 그렇게 입을  수가 있는 게 대단하군!”
“놔…! 놔, 이 개새끼야!”
“오냐, 놓아주마!”

산적 두목이 독고진을 내팽개치듯이 집어던졌다.

“크큭, 아… 정말. 아까부터 음심(淫心)이 끓어올라 참기가 힘드구나.”
“그런  치고는 바지 위로 티도 안 나는  보니 좆이 어지간히 작나보군.”
“크하핫!”

그가 또 한 번 크게 웃어재끼고는.

짜악!

“미친 년이…!”
“…”

독고진의 뺨을 후려갈겼다.


‘… 정곡이였나보군.’


입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퉤.”
“… 따라와라, 건방진 년. 침대 위에서도 그딴 말을   있을지 한 번 보지.”
“풉, 크흣…!”

독고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 좆만한…. 아니지. 그 작은 좆으로? 나를?”
“…”
“들어와도 아무 것도 못 느끼겠군. 아프진 않겠어.”
“이익…!!”


산적 두목이 독고진의 팔을 붙잡아 강제로 끌고 갔다.

 때, 주변의 이목이 쏠린 것을 느낀 산적 두목이 나지막히 읖조렸다.


“… 뭘 쳐다보는거지?”
“예?”
“눈 안 깔아?!!”

퍼석!

그가 도끼를 휘두르자, 산적 하나의 머리가 으깨졌다.

“흐억!!”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목!”
“죄송합니다!!”


방금까지 자기 옆에 서있던 산적 하나가 죽자, 다른 산적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며 바닥에 머리를 쳐박았다.

“시발 새끼들이….”


두목이 다시 독고진을 잡아 자신의 처소로 향하며 으르렁거렸다.

“네 년이 아까 말했지? 뭐든 하겠다고?”
“작은 좆을 가진 놈에겐 해당하지 않는 약속인데.”

짜악!

다시 한 번, 산적 두목이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한 번 만 더…  양물의 크기를 언급할 시, 목을 따버리겠다.”
“크큭.”

독고진이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다음엔 반대쪽으로 때려줄 수 있겠나?”
“… 뭐?”
“맞은 데를 또 쳐맞으니깐… 기분이 좆같군.”
“… 제대로 미친 년이군.”
“이제 알았나?”
“어디까지 그 시건방진이 유지되나 지켜보지.”

산적 두목이 그의 팔을 붙잡아 처소 안으로 집어던졌다.


“크윽…!”
“후우… 후우….”

처소로 들어온 산적 두목은 거친 숨을 내쉬며 호피를 집어던졌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그가 독고진의 앞에 섰다.

 모습을 본 독고진은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털에 파묻혀서 보이지도 않는군.’

산적 두목은 정말 작은 크기의 양물을 가지고 있었다.

저렇게 작은 크기라면 크기로 놀릴 때 그가 광분할만하다 생각하며 독고진이 웃음을 꾹 참고 있는 와중, 산적 두목이 머리에 손을 올렸다.

“… 빨아라.”
“…”

그가 머리에 올린 손에 힘을 주어 독고진의 얼굴을 자신의 가랑이에 쳐박으려던 순간.


독고진이 손을 들며 외쳤다.

“잠깐!”
“…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느냐?”
“아니, 묻고 싶은  있다.”
“크큭, 해 보거라. 이제와서 목숨이라도 구걸하고 싶으냐?”
“네 이름을 듣지 못 했다.”
“중요한가?”
“중요하지. 나는 처녀거든.”
“호오….”


산적 두목의 얼굴에 흥미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를 놓치지 않고, 독고진이 말을 이어나갔다.

“남자인 네 놈은 상관없겠지만, 여인에게 있어 초야를 뺏어간 남자의 이름을  권리 정도는 있겠지, 안 그런가?”
“크큭…, 일리가 있구나.”

그가 옷과 함께 벗어둔 도끼를 가르키며 말했다.


“혈부귀(血斧鬼) 조창. 그게 네 년의 초야를 뺏어갈 남자의 이름이다.”
“혈부귀 조창…. 기억하지.”

독고진의 눈이 반짝였다.

그가 내내 끊임없이 조창을 도발하고, 흔들며 노려왔던 단 하나의 기회.

그것이 지금이라 확신했다.


“음심에 빠져 죽은 멍청한 새끼로 말야.”
“… 뭐?”


챙!


독고진이 팔을 튕기자, 손목에 묶인 연검이 낭창낭창한 칼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손쌀같이 팔을 움직여 인체의 사혈(死穴)  하나, 조창의 양물과 항문 사이의 회음혈을 향해 찔러들어갔다.


“하앗!!”
“컥…!”

칼에 찔린 조창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색마가 빌려준 연검은 과연 신병이기라 불리기 모자람이 없었다.

내공을 실지 못 하고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휘두른 검이었지만, 독고진이 휘두른 칼은 큰 거부감없이 조창의 몸을 헤집어 들어갔다.

“크윽…! 네 년…!!”
“뒤져, 병신아.”

조창이 마지막 힘을 끌어내 독고진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그보다 독고진의 손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푸욱!


“컥…!”


독고진이 힘주어 칼자루를 돌리자, 연검이 다시 한  조창의 몸을 헤집었다.


“끄르륵….”

조창이 눈을 까뒤집은 채 피거품을 토하며 뒤로 쓰러졌다.


쿵.

“하아… 하아…. 시발….”

칼자루를 잡아빼자 조창의 몸에서 붉게 물든 연검이 빠져나왔다.


“으…, 시발. 좆같네, 진짜….”

독고진이 연검을   휘둘러도 칼날에 묻은 피가 전혀 떨어지지 않자, 조창이 벗어둔 호랑이 모피에 칼날을 닦아내고는 다시 팔에 찼다.

채앵!


‘… 정말 신병이기라고 불릴만하군.’

연약한 힘으로도 단련된 무인의 몸을 궤뚫을 정도의 예기.


낭창낭창 휘어지면서도 쉽게 부러지는 않는 강도.

거기에 평상시에는 아대처럼 숨길 수 있는 은밀성까지.

‘이것도 줄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군.’


색마 따위가 가지기엔 너무 아까운 물건이라 생각하며 독고진은 처소 바깥을 살펴봤다.


‘… 산적 새끼들은 다 들어갔나?’


잠깐 눈을 감아 기감을 끌어올려 주변의 산적들의 위치를 파악하려던 차,

“… 응?”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오고 있는 누군가가 독고진의 기감에 걸렸다.

‘엄청난 실력의 경신술…. 그냥 고수가 아니다. 빙궁인가…?!’


독고진이 눈을 뜸과 동시에 엄청난 실력의 경신술을 가진 고수가 도착했다.

굉음과 함께 대지를 울리며.

콰과광!!


“뭐…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란 산적들이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다가갔다.

‘누구냐….’


독고진이 고수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 때, 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찾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빨간 머리의 소저를  적이 없으십니까?”

색마, 위일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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