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1장. 광마였던 소녀 - (3) (4/225)



〈 4화 〉1장. 광마였던 소녀 - (3)

“… 원하는 걸 말해.”
“광마 어르신이 가진 극양의 심법이 필요합니다. 구양신공이요.”

색마, 위일청의 말을 듣는 순간.


독고진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저 새끼가 왜 구양신공을 노리지?’


내공의 총량으로만 따지면 호사가들이 항상 열손가락 안에 포함시키는 무인이 색마다.


“미쳤군. 무인이 자신의 무공을 건네줄 거 같나?”
“그게 아닙니다. 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다른 아이가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하다못해 제자로라도 받아줄 수 없는지 묻기 위해서 왔습니다.”
“헛소…리?”

그 때, 독고진의 귀가 움찔거렸다.

‘… 무슨 소리지?’


갑자기 독고진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위일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저?”


독고진이 번쩍 손을 들어올려 위일청을 제지했다.


“닥쳐. 숨도 쉬지 말고 가만히 있어.”
“…”


눈을 감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더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땅을 박차 달리는 소리.


‘다수의 발소리…, 아니. 말발굽 소리다.’


갑옷이 살과 부대끼거나 철끼리 부딪혀서 나는 금속성의 소리.

‘병장기, 갑옷….’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멀리 가지 못 했을 것이다! 찾기 쉬운 외형이니 추적이 쉽게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산길부터 샅샅이 뒤지고, 소궁주는 나와 같이 근처의 객잔으로 간다.]
[존명!!]


흩어지는 발소리.

독고진이 다시 눈을 뜨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시발.”
“… 독고 소저?”


빙궁의 추격대가 찾아왔다.


‘200장(600m) 정도 거리. 금방 도착하겠군.’

독고진이 색마를 쳐다봤다.


“어이, 색마.”
“…소저, 단어 선택을 조금….”
“네가 색마가 아니면 뭐야. 내가  대협이라고 불러줄  알았나?”
“하아…. 뭡니까? 말씀하시죠.”
“광마를 쫓는 자들이 찾아왔다.”
“빙궁이요? 무슨 소리….”


 때, 위일청의 기감에 다수의 무인들이 객잔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 절맥에 걸려 내공도 운용을 못 하는 여인이 나보다 기감이 좋단 말인가?’


위일청이 경악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로 독고진 또한 위일청의 정보력에 당황했다.

“… 곤란하게 됐네요. 빙궁이 찾아왔단 겁니까?”
“빙궁이 찾아왔단 건 어떻게 알았지?”
“광마 어르신이 빙궁을 무너뜨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분이 머무실만한 객잔들을 뒤지고 있던 중이였죠.”
“…”

생각보다 소문이 빨랐다.

‘… 뭐지? 정보가 이렇게 빨리까지 퍼질  있나?’

이 찝찝함을 지워두고 싶었지만, 독고진에겐 시간이 없었다.

쓰레기 같은 지금의 몸으로 빙궁의 추격대를 따돌리려면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는 게 나았다.

“절맥. 정말 고칠 수 있어?”
“… 예. 소저께서는 마음에 안 들 방법이겠지만, 저는 가능합니다.”
“너랑 떡이라도 쳐야한다는 얘기겠군.”
“…  적나라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렇습니다.”
“시발.”

단전에 자리잡은 정순한 음기들을 사용하기 위해 남자 새끼한테 다리를 벌려야한다니.


‘좆 같네.’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독고진은 일단  울화를 억눌렀다.

그 때, 그의 머리에서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 잠깐. 차라리 그냥 남자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나?’


과도한 음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자의 몸으로 환골탈태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양기를 외부에서 받아들여 다시 남자의 몸으로 환골탈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자 광마의 머릿 속에  세력이 떠올랐다.

천축의 뇌음사.

그 곳의 신이 썻다고 말하는 뇌전의 신물.

금강뢰저(金剛雷杵).

뇌기 또한 극에 달한 양강의 무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만약 그 신물이 진짜라면 빙궁의 만년빙옥 못지않은 양기가 담겨있을 것이다.

‘… 아니면 대막의 태양궁도 괜찮겠군.’


위치로만 따지면 대막이 훨씬 가깝다.


하지만 사막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를 그 곳까지 찾아가기가 힘들어 태양궁을 찾다가 도중에 죽어버린 인원이 부지기수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어이, 색마.”
“… 예, 소저.”
“하지. 거래.”
“정말이십니까?”
“그래. 까짓  다리 한 번 벌려주지.”
“…”


독고진이 갑자기 시원스레 거래를 승낙하자, 위일청의 가슴 속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구양신공, 정말 아십니까?”
“구결은  알아. 단, 조건이 있어.”
“말씀하시죠.”
“하나. 저 빙궁 새끼들의 눈을 좀 돌려봐.”
“… 어떻게 말입니까?”
“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하고. 지금 빙궁 새끼랑 부딪히면 나 죽는다?”
“그럼 광마 어르신을 찾아가면 되겠죠.”
“딸이 죽었는데  양반이 가만있을까?  그래도 무림인이라고는 학을 떼는 양반인데?”


자신의 입으로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독고진의 얼굴이 조금은 붉어졌다.

하지만 금세 독고진은 그러한 부끄러움을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고 확신했다.


위일청이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광마 어르신이라면 그러고도 남으시겠죠.”
“잊지 마. 너 또한 무림에 속하는 이상, 아버지가 순순히 네 얘기를 들어줄까?”
“…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소저는 어떻게 하시게요?”
“도망쳐야지. 아,  칼도 좀 숨겨놔.”
“예?”

독고진이 가르킨 곳에는 그가 쓰던 참마도가 있었다.

“아버지가 칼이 낡았다고  걸 사러 잠시 나가셨어. 근데 저딴 칼 쓰는 무인이 세상에 또 있겠어?”
“… 저건 못 숨길  같은데요.”
“그럼 여기까지 못 들어오게 하던가.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여튼 나 도망친다?”
“어차피 도망치실거 그냥 제가 소저를 안고 경공을 펼치는 게 낫지 않습니까?”
“빙궁주가 왔어.”
“…”


위일청의 눈이 커졌다.


“너 빙궁주 따돌릴 자신 있어?”
“… 삼일 밤낮을 경공만 펼치면…”
“나는 너한테 안긴 채로 3일을 아무것도 안 먹고, 안 마신 채로 버티고?”
“… 잊고 있었군요. 소저가 일반인보다 허약하단 사실을요.”
“그러니깐 내 말대로 하자. 여기서 남쪽으로 반나절 정도 가면 허름한 객잔이 하나 더 있어. 어딘지 알아?”
“예,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다시 만나자. 거래에 관한 건 그 때가서 얘기하지.”
“… 소저, 거기까지  수는 있으시겠습니까?”
“내 기감이 너보다 좋은 거 같은데?”
“하긴….  정도 기감이시면 여인의 몸으로도 충분히 가실 수 있겠죠.”
“여튼 거기서 다시 만나서 나머지 얘기를 하지.”

빙궁에서 온 무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기위해 창 밖으로 뛰어내려던 차, 독고진은 깨달았다.


‘아, 젠장.’


연약한 지금의 몸으로 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다리가 부러질 것이다.

“독고 소저.”
“왜.”
“… 창문으로 내려가시게요?”
“그럼 계단으로 내려가리? 저 새끼들 거의  왔어.”
“… 여성을 혼자 보내려고 하니 조금은 걱정되는군요.”


챙!

위일청이 팔을 털어내듯이 휘두르자 그의 손목에 묶여있던 아대가 낭창낭창한 칼로 변했다.


색마가 그 칼을 들고 다가와 독고진의 손목에 걸어주자 다시 아대의 형태로 바뀌었다.

독고진이 감탄하며 자신의 팔을 살펴보았다.


“… 엄청나게 가볍군.”
“나름 신병이기에 속하는 물건입니다. 여성이 쓰기에도 가볍고, 남성이 쓰기에도 튼튼한 물건이죠.  신뢰의 증표로 생각하시죠. 거래가 성사된 기념으로.”
“…”

독고진이 손목을 들어 위일청이 건네준 사복검을 쳐다보았다.

‘… 아니꼽긴 하지만, 괜찮은 물건을 얻었군.’

“고맙군.”
“별 말씀을.”

독고진이 주먹을 들어 포권하자, 위일청 또한 웃으며 마주 포권했다.

‘아니꼬운 새끼, 웃는 면상이   치고 싶게 생겼군.’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고, 아니꼬운 건 아니꼬왔다.

그 때, 독고진의 귀가 다시 한 번 움찔거렸다.


[저 객잔부터 뒤져봐야겠군. 서린아, 확인하거라.]
[예, 아버님!]

‘젠장, 더 이상은 위험하겠군.’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아래를 쳐다보자 마침 바로 아래, 말에게 먹이기 위해 모아둔 목초 더미가 보였다.

그를 확인한 독고진이 한 발을 창문에 걸치며 색마에게 말했다.

“여튼 거기서 보자, 색마. 빙궁 좀  막아!”
“… 무운을 빌죠.”
“무운은 개뿔.”


독고진이 비웃음을 흘리고는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퍼석!


“아이씨, 냄새. 뭔 목초를 이딴 걸 써….”


몸에 묻은 지푸라기들을 털어내며 독고진이 타박타박 남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멀어지는 독고진의 뒷모습을 보고 위일청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 참. 역시 광마 어르신의 여식이군.  저리 드센 소저가 다 있는가.”

위일청이 다시 자리에 앉아 먹다 남은 음식들을 다 처리하려던 와중, 그의 시선이 광마의 참마도로 향했다.


“… 저  물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위일청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괜히 광마 어르신과 엮여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그는  큰 검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


“하아…! 하아…!”

자신이 기억하는 길을 따라가며 독고진은 두 가지를 후회했다.


하나는 쓰레기 같은 여인의 몸이었다.


조금만 달려도 금방 지치고, 발에 잡힌 물집이 쓰라렸다.

광마 독고진이던 시절에는 칼에 베여도 크게 개의치 않던 그였지만, 지금은 발바닥에 잡힌 조금의 물집에 눈물을 삼키는 처량한 신세였다.


두 번째로 후회한 것은 자신의 아둔함이었다.

‘멍청한 새끼.’

반나절이면 도착할 거리는 어디까지나 ‘남자 광마 독고진’의 보폭에 맞춘 기준이었다.

안 그래도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머리 한  반 즈음  거한이었기에 보폭도 남달랐던 몸이였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쓰레기 같은 몸은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하나 작은, ‘광마 독고진’과는 머리 두 개 반 정도나 차이나는 몸이었다.

게다가 도움이  되는 점소이가 쓸데없이 예쁜 옷을 골라주겠다며 보폭을 제한하는 치마 쪼가리를 입혀놨기에 진즉에 찢어버렸더니 오히려 잔나무가지들이나 돌부리에 계속하여 걸렸다.

“하아…! 시발…!”


지금의 쓰레기 같은 몸으로는 며칠이나 걸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할지 상상조차  됐다.

아니, 도착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아…! 하아…! 쿨럭…!”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하고, 목이 타기 시작했다.

‘젠장…. 이 근방에 분명 강가가 있을텐데….’

하다못해 물이라도 챙겨오길 그랬다며 스스로의 멍청함을 저주했다.

‘이 쓰레기 같은 몸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낫겠군.’

단전의 정순한 음기?


그딴 것보다 울화가 치밀어올라  전에 화병으로 죽을 지경이었다.

“허억…! 쿨럭…!”

그 때.

잠시 나무에 기대 마른 기침을 뱉는 독고진의 귀에 물소리가 들렸다.

‘물…!’


쓰라린 발바닥의 고통을 참으며 독고진이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자 그 곳에는 그의 기억대로 흐르는 강물이 있었다.


독고진이 쏜살같이 달려가 강물에 얼굴을 쳐박았다.


꿀꺽…. 꿀꺽….

쉴  없이 목울대가 꿀렁대며 독고진이 강물을 들이켰다.


“케흑…! 컥…! 쿨럭…. 웨엑! 아잇, 씨발!”

급하게 물을 먹다 사레가 걸렸다.


‘시발, 물 먹는 것마저 힘든 병신 같은 몸뚱아리.’


어떻게든 천축의 뇌음사까지 가서 신물을 훔쳐서라도 남자의 몸을 되찾겠다 다시 한 번 다짐하며 독고진은 천천히 강물을 손으로 떠마셨다.

그 때, 구름에 가려져있던 달빛이 강가를 비추었다.

물을 뜨기 위해 손을 내리던 독고진은 잠시 넋을 잃고 강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구경했다.


“… 쓸 데 없이 아릅답구나.”


도중에 몇 번이고 넘어져서 얼굴에 먼지가 묻었음에도 그 아름다움은 흠집나지 않았다.

‘… 아쉽군.’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무인에겐 쓸모없었다.


아니, 오히려 독이  지도 모르지.


그렇게 자조하며 다시 물을 떠마시려던 차.


조르륵.

“… 엉?”
“으헛! 시발. 뭐…, 뭐야?!”


넝마떼기에 가까운 옷을 입은  남성이 어느샌가 자신의 옆에서 오줌을 싸고 있었다.

“이… 이 시발 새끼가! 야 이 미친 새끼야! 우욱…!”


방금까지 자신이 마시던 물에 남성의 소피가 담겨있다 생각하니 독고진이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너…. 너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우욱…! 시발 새끼야! 내가 와서 물을 쳐마시고 있는데 거기다 오줌을 갈겨?!”
“귀… 귀신?”
“귀신은 지랄. 내가 지금 당장 네 놈의 목을 따서 귀신이 있나 없나 확인시켜주마!”

독고진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오줌을 싸던 남자에게 다가가던 찰나.


“어이, 왕봉! 오줌을 뭐 그렇게 오래 싸…?”
“…”

숲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튀어나왔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독고진의 등이 서늘해졌다.

“노… 녹림?”
“요… 요괴? 아니, 선녀인가?”
“… 시발.”


독고진이 낮게 읖조리며 뒤돌아 도망치려던 순간.


콰직!


배에 묵직한 통증과 함께 독고진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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